이익 40% 줄고 부실 100% 늘다
이익 40% 줄고 부실 100% 늘다

5월 19일 외환은행 직원들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나금융지주의 외환은행 인수 발표 직후 반대 투쟁을 선언한 지 6개월여 만이다. 5월 12일 금융위원회가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에 대한 심사를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온 후로 미루겠다고 발표해 외환은행 매각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외환은행 김보헌 노조 전문위원은 이날 “당분간 집회를 하지 않기로 했다”며 “하나금융과 론스타 간 계약 만료일인 5월 24일까지 지켜보고 앞으로 행동 방향을 정하겠다”고 말했다.
휴가·연차 내고 집회 참여현재 하나금융지주와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 계약 연장에 합의했다고 알려져 있어 노조가 재투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노조 측은 이미 “계약이 파기되지 않으면 언제든 집회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외환은행은 아수라장이나 마찬가지였다. 5월 16일 오후 2시 서울 명동 외환은행 본점. 건물 밖에는 하나금융지주의 외환은행 인수를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펄럭인다. 본점에 들어서자 1층 로비에는 직원들이 쓴 투쟁 결의문이 벽면에 빽빽하게 붙어 있다. 벌써 6개월째다. 같은 시각 10명 남짓한 직원이 투쟁복이라고 불리는 파란 티셔츠를 입고 인수 반대 플래카드를 들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본점 영업점에는 빨간 티셔츠를 입은 10명 남짓한 직원이 앉아 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부터 유니폼이나 정장 대신 ‘외환은행을 사랑합니다’라고 적힌 투쟁복을 입고 일하고 있다. 영업점 안에도 ‘빚잔치로 론스타 먹튀, 하나금융 외환은행 인수반대’ ‘론스타만 살찌우는 하나금융 결사반대’ 등 붉은 글씨로 쓰인 갖가지 구호가 어지럽게 붙어 있다. 이걸 처음 보는 고객은 낯선 풍경에 다시 한번 여기저기를 훑어봤다. 영업점은 한산했다. 입출금 창구에 있는 몇몇 고객이 전부였다. 네 곳에 마련된 대출상담 창구는 텅 비어 있었다.
한 20대 여성은 “회사 일로 가끔 오는데 그때마다 사람들 옷차림이나 벽면에 붙은 문구가 거북하다”고 말했다. 대출 상담을 받으러 왔다는 50대 남성은 영업점 앞을 기웃거리다 발길을 돌렸다. 그는 “은행 앞에서 집회가 열리고 곳곳에 대자보가 붙어 있어 일을 하는지 한참 들여다봤다”며 “이런 곳에서 어떻게 상담을 받겠느냐”고 눈살을 찌푸렸다. 반복되는 집회에 주변 건물에 입주한 상점 사람들도 폭발 직전이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민자(46·가명)씨는 “하루 이틀도 아니고 너무 시끄러워 장사를 할 수 없다”고 화를 냈다. 그는 “바로 옆이어서 주거래 은행으로 이용했는데 자꾸 저런 모습을 보니까 불안해서 은행을 바꿨다”고 말했다.
5월 18일 오전 10시. 외환은행 본점 앞에는 다시 300여 명의 직원이 모였다. 하나금융의 인수 반대 마지막 집회였다. 투쟁 구호와 더불어 요란한 음악소리가 본점 앞을 가득 메웠다. 노조는 이날 1인당 130번의 절을 올리는 ‘릴레이 백만배(拜)’ 투쟁을 진행했다.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도 벌이던 백만배 집회였다. 이날 집회는 2시가 돼서야 끝났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2010년 11월 2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나금융지주가 외환은행의 대주주인 론스타 지분 51%를 인수하기로 했다는 발표가 나오면서다. 8000여 명의 외환은행 직원은 ‘하나금융 인수에 반대한다’며 즉각 투쟁에 나섰다. 이튿날 여의도 금융감독원 건물 앞에 400여 명이 모였다. 삼보일배와 촛불시위 등 지금까지 120여 번의 집회를 열었다. 금융감독원 앞에 전경 차량이 상주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금융위 정례회의가 열리는 날마다 외환은행 노조가 집회를 열었다”며 “지금이야 만성이 됐지만 초기에는 외환은행 노조의 움직임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휴화산인 매각 반대 투쟁하나금융 인수반대 100만인 서명운동, 거리 선전전 등의 투쟁은 주중, 주말에 상관없이 이어졌다.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서울시청 광장, 여의도공원 등에 모였다. 전국 지점의 직원까지 연차나 휴가를 내고 수천 명씩 모이기도 했다. 이들은 집회를 위해 30억원의 투쟁기금을 모았다. 계약직 1200여 명도 노조에 가입했다. 서울 중구 외환은행 지점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한 달 두세 번씩 집회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 지분을 인수한 후 지금까지 여러 차례 매각을 추진했다. 외환은행 노조는 HSBC나 호주ANZ 등이 인수를 추진할 때는 반대 목소리를 거의 내지 않았다. 유독 하나금융의 인수를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
노조 관계자는 “하나금융은 외환은행을 인수해 키울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인수자금 조달 능력도 검증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전직 외환은행장인 A씨도 반대 의사를 밝혔다. 그는 “하나금융지주는 외환은행 인수자금의 절반이 넘는 돈을 외부에서 조달했다”며 “은행 규모로 보나 자금력으로 보나 월등한 DBS(싱가포르개발은행)와 HSBC은행도 금융당국 승인을 받지 못했는데 자금마저 부족한 하나금융은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외환은행이 투쟁 기간 동안 영업에 소홀한 측면도 있다. 은행 분위기가 어수선한 가운데 잇따른 집회에 참석하느라 직원들도 뒤숭숭했다.
외환은행 서울 시내 영업점의 한 직원은 “대개 목표치를 얼마나 초과 달성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데 투쟁 기간에는 목표치라도 달성하면 다행이라는 분위기였다”고 귀띔했다. 20년간 외환은행과 거래한 중소기업 대표 김모(52)씨는 “가입한 적금이 만기가 됐는데 창구 직원이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고 혀를 찼다.
일선 창구에서 펀드나 방카슈랑스를 팔 때도 예전처럼 적극적이지 않았다. 한 자산운용사의 마케팅본부장은 “외환은행이 투쟁을 벌이면서 신규 영업을 중단하는 등 적극적으로 판매하지 않아 펀드 판매를 중단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10개 은행에서 상품을 팔고 있는데 외환은행의 판매 비중은 미미하다”고 덧붙였다.
경쟁 은행은 반색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외환은행이 영업에 적극적이지 않자 이탈하는 고객이 다른 시중은행으로 옮기는 일이 많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외환은행장에 내정됐던 윤용로 전 기업은행장은 지금 상황에서 얘기하기가 조심스럽다면서도 “(계속 이런 상황으로 가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외환은행의 영업력 약화는 1분기 실적에도 드러난다. 외환은행의 1분기 당기순이익은 IFRS(국제회계기준) 기준으로 1941억원이었다. 같은 기준으로 계산한 지난해 같은 기간의 3549억원보다 40% 넘게 줄었다. 국민은행이 같은 기간 42.3% 증가한 7405억원의 이익을 내는 등 경쟁 은행이 순항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에 대해 외환은행 김승권 BMC(브랜드매니지먼트커뮤니케이션)본부장은 “지난해 1분기에는 하이닉스 매각 이익(1300억원) 등 일회성 요인이 있었다”며 “이런 걸 제외하면 이익 규모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슷하다”고 반박했다.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소지가 있는 일도 있었다. 외환은행은 3월 직원들에게 기본급의 150% 수준인 정기성과급 외에 200%의 특별성과급을 지급했다. 성과급 총액만 460억원에 이른다. 이 때문에 외환은행의 1분기 총경비(3767억원)가 직전 분기보다 12.5%나 늘었다. 동종업계 최고 수준이다. 이에 대해 외환은행 관계자는 “특별성과급은 지난해 경영목표 8000억원을 웃도는 1조원 이상 실적을 달성하면서 격려 차원에서 지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일상으로 돌아갔지만…외환은행 노조는 5월 19일 6개월여의 투쟁을 중단했다. 일이 모두 잘 풀린 건 아니다. 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외환은행의 진로는 다시 안갯속으로 들어갔다. 가장 큰 피해자는 하나금융지주다. 주가 급락에다 대외 신인도 하락 등의 위기를 겪고 있다.
외환은행은 겉으론 장기 투쟁에서 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영업력 훼손과 더불어 여전히 새로운 주인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러는 사이 론스타는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외환은행에서 어떻게든 많은 이익을 챙기려고 애쓸 공산이 크다. 미래 경쟁력을 높이려는 투자보다 배당금에 매달릴 수 있다.
증권가의 반응도 싸늘한 편이다. 한국투자증권 유상호 애널리스트는 외환은행 목표주가를 1만5000원에서 1만원으로 대폭 낮췄다. 그는 “외환은행 주주는 권한을 행사하기도, 보호받기도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어 외환은행 주식을 사야 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KB투자증권 심현수 애널리스트는 “반년간 투쟁으로 기초적인 영업가치가 훼손돼 예전 수준의 주가를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 론스타의 손익 계산서
매각 늦어져도 배당으로 이익 챙겨
외환은행 매각이 지연돼도 론스타는 별로 잃을 게 없다. 오히려 더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다.
론스타는 이미 배당 이익과 지분 매각으로 2조4058억원을 챙겼다. 2003년 외환은행 인수 당시 투자금 2조1548억원을 회수하고도 2510억원의 이익을 남겼다. 외환은행 매각이 성사됐다면 론스타의 총수입은 매각 가격 4조6888억원을 보탠 7조946억원으로 늘어난다. 투자금의 2.3배에 이르는 4조9398억원의 순익을 챙길 수 있었다.
금융위원회가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을 유보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매각 작업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그래도 론스타는 손해 볼 게 없다. 배당 이익에다 언젠가 받을 매각 대금이 있다. 증권가에서는 법원의 판결이 나올 2013년까지 외환은행의 배당 가능 금액이 7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선 외환은행의 배당 가능 이익은 지난해 말 현재 3조2000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4월에 현대차그룹에서 받은 현대건설 매각 차익 1조600억원, 하반기 하이닉스가 매각될 경우 챙길 매각 차익 7000억원(추정)도 있다. 여기에 2013년까지 해마다 8000억~1조원 정도의 순익이 보태질 것으로 보고 있다.
외환은행 지분 51%를 가진 론스타는 4조원이 넘는 돈을 주주에게 배당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외환은행의 배당성향은 68.5%였다(배당성향은 배당금을 당기순이익으로 나눈 값이다).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의 배당성향이 각각 16.8%, 24.6%인 점에 비춰 외환은행의 배당성향은 매우 높은 편이다. 이렇게 배당하면 론스타는 2조원이 넘는 돈을 챙길 수 있다.
김성희 기자 bob282@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선미' 없는 선미 NFT?...가격 폭락에 발행사 "로드맵 이행"
2데브시스터즈 ‘쿠키런: 모험의 탑’, 일본 현지 CBT 시작
3美 유통업체 세대 교체?...아마존, 월마트 분기 매출 제쳐
4주부부터 직장인까지…BC카드 서비스 개발 숨은 조력자
5고려아연 운명 3월초 갈린다...법원, 임시주총 가처분 결론
6"부산, 식품은 다른 데서 사나?"...새벽배송 장바구니 살펴보니
7테무, 개인정보 방침 변경…“지역 상품 파트너 도입 위해 반영”
8알트베스트, 비트코인 재무준비자산으로 채택…아프리카 최초
9조정호 메리츠 회장 주식재산 12조원 돌파…삼성 이재용 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