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SOUTH AMERICA 페루의 잃어버린 제국
- [TRAVEL] SOUTH AMERICA 페루의 잃어버린 제국
오는 7월로 정확히 마추픽추 발견 100주년이 된다. 이 유적을 발견한 미국인 하이람 빙엄은 책을 쓰고 자녀를 낳고 주지사와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그러나 역사는 그를 어느 날 오후 산에 올라 수풀 속에 파묻힌 담장과 토대, 계단을 발견한 이로 기억할 듯하다.
페루인이 아니라면 마추픽추가 그들의 민족정서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 의미는 수치심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1500년대 초 스페인인들이 잉카인들과 접촉했을 때 잉카 문명은 시들어 가는 중이었다. 어느 정도는 스페인인들이 들여와 크게 창궐했던 천연두 탓이었다. 잉카 문명을 정복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단 정복하고 나자 스페인인들은 본색을 드러내 (또는 그 시대의 대다수 군인이 그랬듯이) 약탈자처럼 행동했다. 많은 사람을 징발해 광산의 노예 노동자로 부렸다. 피정복자의 종교적 상징물을 녹여 금을 만들었다. 사원, 학교, 수녀원을 허물어 골재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유럽인이 아닌 원주민의 후손인 페루인에게 그 얘기를 꺼내면 금방 분노로 달아오른다. 그들이 원하는 금을 주겠다고 했는데도 스페인인들은 잉카의 왕을 죽였다…. 종종 그 분노가 너무 생생하게 전달돼 어제 정복을 당했나 싶을 정도다.
정복당한 데서 오는 분노와 함께 수치심도 엿보인다. 왜 그렇게 쉽게 정복당했나? 멍청했나? 게을렀나? 내분이 일어났나? 그럴 만한 잘못을 했나?
마추픽추는 이런 의혹을 반박하는 좋은 증거다. 조상의 잘못은 없었고 훌륭했으며 존경스러웠다는 선언이다.
마추픽추는 산등성이에서 튀어나온 안장 모양의 지형에 얹혀 있다. 여기 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적에 관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 마추픽추를 이루는 구조물의 절반 가까이가 땅 밑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 구조물은 마추픽추가 산에서 미끄러져 내리지 않도록 막는 옹벽이다. 마추픽추는 그 토대를 이루는 산과 어울리게 세워지지 않았다. 그 대신 산을 깎아 잉카인이 원하는 형태로 만들었다.
쿠스코에는 들개가 어슬렁거린다고 안내책자는 경고했다. 작대기나 돌을 갖고 다녀라.
쿠스코는 대다수 관광객에게 마추픽추와 새크리드 밸리로 가는 관문 역할을 하는 도시다. 그 유적지의 86km 남쪽에 위치하며 잉카제국의 수도였다. 이곳에 가면 마추픽추의 역사적 배경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대다수 관광객은 쿠스코를 찾아가 관광 당국이 보여주고 싶어하는 모습만 본다. 조명이 아름답게 반짝이는 교회들이 들어선 웅장한 광장은 고급 자동차 광고의 배경으로 안성맞춤인 듯하다.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체인의 호텔 모나스테리오는 성스러운 공간을 근사하게 재단장한 대단히 호화로운 건물이다. 분수가 놓인 안뜰에 앉으면 근엄한 분위기에 압도된다.
하지만 쿠스코의 진면목을 보려면 광장을 벗어나야 한다. 쿠스코는 언덕 위에 널리 펼쳐져 있다. 사람들이 쉬엄쉬엄 낑낑거리며 언덕을 올라가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거리를 따라 늘어선 주택의 다수는 가파르게 경사진 보도보다 30cm가량 낮은 곳에 세워졌다. 그래서 마치 사람들이 땅 밑에서 사는 듯이 보인다. 그리고 이런 집들은 환기를 위해 곧잘 문을 열어놓는다. 온 가족이 침대에 누워 TV를 시청하는 모습이 밖에서 훤히 보인다. 노숙자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또한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삶, 연민이나 위선이 필요하지 않은 삶의 모습도 엿보인다. 양초를 취급하는 매장이 몰려있는 거리도 있다. 교회에서나 종교 행사에 양초를 사용한다. 가끔은 이들 양초가게에서 여자들이 나란히 서서 녹색·적색·금색 그리고 장식 양초들을 살펴보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 여자들이 양초를 들고 수다를 떠는 모습은 마치 드레스를 만들 만한 옷감을 고를 때처럼 크게 들떠 있다.
마추픽추에 가기 전에 새크리드 밸리에 가서 유적을 돌아보라는 말이 있다. 이는 페루 관광의 정석이다. 고고학적인 상상력을 지닌 사람은 극히 드물다. 땅 위에 놓인 돌을 보고 그 자리에 존재했던 건물이나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삶이 어땠을지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사람들은 대부분 유적을 돌아보며 ‘우’ 하고 ‘아’ 하며 탄성을 올리다 다시 관광버스에 올라탄다.
새크리드 밸리는 쿠스코와 마추픽추 사이에 놓인 계곡이다. 이곳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실 만한 얘기가 또 있다. 이 지역을 가리키는 정식 명칭은 현지 퀘추아 말로 우루밤바 밸리인데 이를 번역하면 ‘거미들의 평지’라는 뜻이다.
올란타이탐보는 이 계곡의 주요 고고학 유적지다. 도로 양편의 언덕이 계단식으로 올라간다. 돌을 쌓아 올려 테라스 형태를 유지했다. 언덕 꼭대기에는 곡물창고가 있다. 그곳에 세운 이유는 바람이 잘 통해 곡식에 곰팡이가 슬지 않기 때문이다. 언덕 꼭대기에는 개방된 공간도 있다. 붙박이 형태로 거대한 돌벽을 세운 작은 광장 형태다. 거대한 돌을 자연스럽게 끼워 맞춰 벽을 세운 솜씨가 절묘하다. 이는 이 건축물에 미적이며 어쩌면 종교적인 목적이 있음을 고고학자들에게 말해준다.
물론 이 계곡에는 다른 유적도 있다. 이곳은 잉카제국의 곡창지대 중 하나였기 때문에 유적이 대단히 많다. 그러나 이 계곡을 찾는 일차적인 목적은 유적보다는 계곡 자체의 경관이다. 유적도 물론 애틋한 애수의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잉카인들이 바꿔놓은 엄청난 규모의 계곡 풍경은 탄성을 자아낸다.
나는 차로 언덕을 이동하면서 수시로 멈춰서 녹음이 우거진 계곡과 푸른 강을 내려다봤다. 전망 좋은 곳에 서면 언덕을 깎아 만든 다랑이 농지가 보인다. 수 마일에 걸친 계단형 지대의 풍경을 지켜보며 비탈진 땅을 일궈 농지로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노동과 준비, 시간이 소요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잉카문명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았다. 하지만 자연환경을 개조한 방대한 프로젝트를 지켜보며 불현듯 잉카인의 두드러진 야심과 지혜가 느껴졌다.
그곳에 도착하기 전부터 워낙 많은 이야기를 들은 탓에 마추픽추에 대한 기대감이 잔뜩 고조된다. 그리고 언제 가도 그곳은 관광객으로 북적댄다. 그래도 이 유적지는 실망을 주지 않는다.
내가 묵은 호텔 마추픽추 생크추어리 로지는 고고학 공원 입구에서 100m가량 떨어져 있다. 어느 날 호텔 밖으로 나왔더니 버스 행렬이 길게 늘어섰고 대부분 젊은이 무리가 입구 근처에서 서성거렸다. 그중 다수는 방풍 재킷 주머니에 샌드위치를 우겨 넣고 있었다. 공원 내 음식반입이 금지됐지만 구내 매점에서 음식을 사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침 일찍 도착해 공원에 입장하는 사람들은 종종 곧바로 전속력으로 앞으로 달려나간다. 마치 한정품 폭탄세일 매장에서 먼저 물건을 확보하려는 쇼핑객의 모습이다. 이 유적지에서 혼자 있는 기분을 느껴보려는 속셈인데 이는 마추픽추가 얼마나 넓은지를 생각하지 못한 무지의 소치다. 이곳의 면적은 13㎢에 가깝다. 구름도 빨리 움직인다. 마추픽추 위쪽의 날씨는 변덕이 죽 끓듯 하는 편이다. 이런 극적인 성격 때문에 하늘이 거의 개인의 전유물처럼 느껴진다. 마치 자신의 작은 하늘 조각이 다른 모든 조각과 달라 어쩐지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마추픽추는 상부와 하부로 나뉜다. 하부는 기본적으로 세속적이며 상부는 성스러운 곳으로 고고학자들은 간주한다. 이 유적지의 많은 곳이 비교적 한산하다. 관광객들은 소수의 주요 관광지로 몰리기 때문이다.
내 경우 마추픽추 정상에 올라섰을 때 가장 근사한 경험을 했다. 태양이 등 뒤에서 내려 쬐는 동안 구름이 발 밑으로 흘러가면서 갑자기 은빛 구름 위에 9~12m 길이의 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걸어가는 시늉을 하자 마치 내 그림자가 구름 위를 걷는 듯했다.
잠시 후 구름이 지나간 뒤 발 밑에는 그 유명한 고대 유적지가 펼쳐졌다. 하이람 빙엄이 처음 발견했을 때처럼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필자는 ‘순종적인 아버지(An Obedient Father)’의 저자다. 그의 새 소설 ‘다른 하늘의 별들(Stars From Another Sky)’이 올해 출간된다.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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