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민 전 네오플 대표 _ 20년 안에 100조원쯤 벌고 싶다

“벤처 투자는 사람에 대한 투자입니다. 저는 그 벤처를 이끄는 사람에게 투자합니다. 투자한 결과가 언제 어떻게 나올지는 사실 누구도 몰라요. 이런 식으로 투자했다가 망하기도 하고요.”
벤처 투자가로 돌아온 허민(35) 전 네오플 대표는 “벤처 기업가가 과연 자신만의 생각이 있는 사람이냐가 투자를 결정하는 핵심 조건”이라고 말했다.
“그런 사람에게 투자하면 결국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이지, 가능성 있는 사업을 보고 투자하는 건 아니에요. 사업의 성공 가능성은 후순위 조건입니다. 사업을 해보니 잘한다고 되고 못한다고 안 되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시쳇말로 운칠기삼(運七技三)이냐고 물었더니 운이 차지하는 비중이 90%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운구기일인 셈이다.
허 전 대표는 2001년 온라인게임 업체 네오플을 창업했다. 액션게임 던전앤파이터(던파)로 대박을 낸 이 회사 지분을 그는 2008년 메이저 게임 업체 넥슨에 매각했다. 당시 지분 매각 대가가 2000억원이 넘었다고 말했다. 미디어는 그를 청년 재벌이라고 불렀다.
그 후 미국 유학 길에 올라 명문 버클리 음대에 진학한다. 대중음악을 하는 뮤지션을 배출하는 이 학교 학생의 절반은 외국인이다. 싸이, 김동률, 양파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서울대 화공과 95학번인 그는 대학 시절 서울대 비운동권 출신 첫 총학생회장을 지낸 이력이 있다.
버클리 음대에서 두 학기를 마치고 지난해 귀국한 그는 십여 개의 벤처에 투자했고 그중 여덟 곳의 대주주다. 가장 많은 돈(150억원)을 투자한 회사는 나무인터넷이다. 그가 인수한 후 이 회사는 소셜 커머스 업체로 변신했다. 이 회사가 서비스하는 소셜 커머스 사이트가 위메이크프라이스닷컴(위메프)이다. 소셜 커머스 정보를 제공하는 소셜커머스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4월 위메프의 거래액(130억원)은 티켓몬스터(200억원), 쿠팡(160억원)에 이어 3위다. 벤처를 지원하기 위해 그는 창투사도 차렸다.
경영에 간섭 안 하는 대주주 4월 28일 오후 허 전 대표가 2009년 근 900억원에 사들인 대치동 미래에셋타워 두 동 중 별관 격인 미래에셋벤처타워 7층에서 그와 만났다. 그는 여러 회사 오너지만 이사회 의장 같은 직함이 없다. 심지어 명함도 없다.
경영 참여는 안 합니까?“투자만 하고 경영은 다 맡깁니다. 무슨 아이템을 개발하든, 누구를 뽑든 일절 간여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소유와 경영을 분리했습니다. 속된 말로 전주(錢主)죠. 간섭은 안 하고 도움은 주는 전주 노릇만 합니다. 회사 이름도 통일성이 없고 출근 시간도 제각각이죠.”
앞으로도 일상적인 경영은 안 할 건가요?“경영에 컴백할 만한 작품을 찾고 있습니다. 저는 투자자의 포지션에 만족하기보다 직접 뛰어들어 무언가 만들어 내는 타입입니다.”
소셜 커머스에 대한 과당경쟁을 우려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떻게 보나요?“마치 한때 유행했던 조개구이 집처럼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났다가 요즘 속속 문을 닫고 있습니다. 회사를 인수해 달라는 요청이 하루에도 몇 건 됩니다. 잘된다고 할 때 뛰어들면 이미 늦은 겁니다. 다음도 잘 안 됐잖아요. 지금으로서는 네이버가 진입해도 힘듭니다. 세계 1위 업체도 쉽지 않을걸요? 구글이 세계 1위인데 국내에선 맥을 못 추잖습니까?”
위메프는 어떻습니까?“국내에 소셜 커머스 서비스가 시작되기 전 이건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돈 냄새를 잘 맡는 편이거든요. 더욱이 위메프는 젊었을 때 던파를 만들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이 서비스합니다. 비즈니스의 한 사이클을 경험한 사람들이죠. 그 성공의 경험이 바로 우리의 강점이에요. 미국 벤처업계에서는 투자할 때 이런 성공의 경험을 아주 중시합니다. 저는 위메프에 계속 투자할 겁니다.”
그는 던파 시절의 핵심 멤버가 거의 모두 귀환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성공해 돈을 벌고 나면 각자 갈 길을 가는데 던파의 창업공신들은 다르다고 했다. 그의 말마따나 NHN, 넥슨, 엔씨소프트, G마켓 등에서 창업공신은 대부분 회사를 떠났다.
“던파 멤버들은 돈도 있겠다,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뭉쳤어요. 사실 뭘 할지도 안 정한 채 모였습니다. 저는 이게 우리의 DNA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런 사업 방식이 권할 만한 겁니까?“냉정하게 말하면 권할 만한 방식은 아니에요.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권하는 게 타당하지만 저는 권하고 싶어요.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는 다 의대나 법대에 진학해 고시에 매달리고 아니면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에 들어가려고 하는 나라는 미래가 없습니다. 미국은 다릅니다. 제가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땐 중간기말시험 때만 도서관에 빈자리가 없었습니다. 졸업할 때가 되니까 365일 자리가 없더군요. 유일한 예외가 고시 보는 날이었습니다. 법관이나 의사도 물론 배출해야죠. 그런데 그 쏠림 현상이 너무 심합니다. 누군가 벤처도 해야죠. 여기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누군가 보여줘야 해요.”
대한민국 이대로는 미래가 없다
고교 2학년 때 담임교사는 그에게 부산대 진학을 권했다고 한다. 서울대에 못 갈 거라고 했지만 그는 재수 끝에 서울대에 입학했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 당시 1위로 결선투표에 진출하자 그의 선거대책본부장이 망신당하지 말고 사퇴하라고 권했다. 나머지 6명의 후보가 운동권 후보였는데 이들이 연대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7표 차로 이겼다(과대표ㆍ반대표조차 해본 적이 없다는 그는 연대할 사람들 같으면 애초에 운동권 연대 후보를 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학생회장 출신인 그가 정치를 하지 않고 사업을 하겠다고 하자 주변에서 비웃었다. 정당에 들어가 나중에 공천이나 받지, 사업은 아무나 하느냐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그가 개발한 던파는 MORPG(다중사용자 온라인 롤 플레잉 게임)라는 게임 장르의 효시가 됐다. 자신이 창업한 네오플을 그때 매각하지 않았다면 게임 회사 빅3가 됐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가 버클리 음대에 진학하겠다고 하자 사람들이 또 비아냥거렸다. 성공한 벤처기업가의 호사쯤으로 여겼을 법하다. 그런데 대학 측은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자신이 만들고 부른 곡을 뮤직 비디오로 만들어 학생회장 선거 때 활용한 음악적 열정을 높이 평가해 전공자도 아닌 그를 뽑았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났나요?“저도 설명하기 힘듭니다. 근거를 댈 순 없지만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 같았어요. 제가 감이 좀 발달한 축입니다. 잘 찍거든요. 제가 찍은 아이템을 외면했다가 후회한 적이 몇 번 있기 때문에 동업한 친구들도 제 말을 믿는 겁니다. 물론 운도 좋았고요.”
실패도 겪었다. 네오플은 설립 초기 아이디어 상품 제조업체에 가까웠다. 첫 개발 아이템은 사우나 키처럼 손목에 차고 잠들면 맞춰놓은 시각에 잠을 깨워주는 장치였다. 개발엔 성공했지만 시제품 제작 단계에서 중단했다. 고주파를 이용한 전기 쇼크 요법이 인체에 유해한 데다 잠에서 깰 때 불쾌감을 줬기 때문이다. 두 번째 작품인 소개팅 게임 사이트인 캔디바는 게임 포털 순위 2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 덕에 그 후 이어진 열여덟 번의 실패에도 버틸 수 있었다.
그는 잠 깨우는 장치와 캔디바를 개발할 당시 내부에 개발자가 없었다고 말했다.
“갓 들어온 컴퓨터공학과 1학년 후배에게 소개팅 게임의 개요에 대해 설명했더니 책을 한 권 사주면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이 친구가 나중에 수퍼 프로그래머가 됐고 던파도 그가 개발했죠. 저는 실력보다도 태도가 좋은 사람을 뽑았습니다. 처음엔 고전했지만 3년, 5년, 7년이 흐르고 나니 이 친구들이 무섭게 성장하더라고요. 사람에 대한 투자는 주식으로 치면 가치투자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좋은 사람을 뽑으려면 뭘 봐야 하나요?“인간적으로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 더불어 자기만의 생각이 있는 사람이죠. 제가 미혼인데 요즘 평생 친구 하고 싶은 사람과 맺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친구는 사람이 좋으면 됐지 외모는 안 보잖아요? 실력이 있지만 친구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안 뽑았습니다.”
재산이 얼마나 됩니까?“이 건물을 포함해 주식 등 포트폴리오가 다양한 데다 매일 가격이 변동하기 때문에 저도 정확히 모릅니다. 지금 추세라면 곧 1조원이 될 겁니다. 저의 진짜 자산은 사람들, 그리고 운 좋게 젊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 저커버그처럼 저도 일찍 시작해 한 사이클을 경험했습니다. 스물다섯에 시작한 것이 저에게는 축복이었죠.”
좋은 친구를 사귀는 비결이 뭔가요?“첫째는 운입니다. 인복(人福) 같은 거죠. 둘째로 저 혼자 부자가 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창업 멤버들에게 100억원(가치)씩 지분을 줬습니다. 저 친구는 성공하면 나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다시 뭉칠 수 있었죠.”
‘깜놀’ 제품 만들겠다
꿈이 뭔가요? 어떻게 살고 싶습니까?“행복해지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랑스러운 일을 해보고 싶어요. 저부터 스스로 다니고 싶은 그런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직원들은 평생 자기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재테크는 회사가 알아서 해주는 겁니다. 이미 제가 대주주로 있는 자산운용사와 부동산투자회사가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네오플의 창업 멤버와 직원들을 대신해 수수료 안 받고 자산관리를 해줍니다. 100억원대 자산가지만 수수료 한 푼 안 냅니다. 비즈니스맨으로서는 세계적인 인터넷 기업을 만들고 싶습니다. 단적으로 삼성, 애플, 구글 같은 회사들이죠. 애플의 DNA가 제품을 예쁘게 만드는 디자인 능력이라면 구글은 돈이 안 되더라도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면 과감히 투자하는 회사입니다. 어쨌거나 앞으로 20년 안에 한 100조원쯤 벌어보고 싶습니다. 세계적인 기업이 된다면 100조원은 되겠죠. 물론 그 전에 주저앉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요.”
네오플 시절부터 그가 지배하는 회사의 모토는 “우리는 깜놀(깜짝 놀랄) 제품을 만든다”(We make wonders)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회사를 세 부류로 재편했다고 말했다. 임대사업처럼 지루한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 새 장르 등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회사, 마지막으로 투명 망토나 타임머신 같은 깜놀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그것이다. 개별 회사의 경영에 간여하지는 않지만 각 사 CEO는 사내 유보금을 이런 제품의 개발에 투입할 수 있도록 그에게 넘겨야 한다.
미혼인 그에게 뜬금없지만 재산을 자녀에게 상속할 거냐고 물었다. “대학 들어갈 때 입학금ㆍ등록금, 컴퓨터 한 대 살 돈을 지원받은 후 집에서 단돈 100원도 받은 일이 없습니다. ‘너의 인생은 네가 개척하라’는 게 아버지의 훈육 원칙이었죠. 과외 10개씩 하면서 다녔고 그 흔한 배낭여행 한 번 못했습니다. 저도 아버지의 철학을 따르게 될 것 같군요. 자식에게 거액 상속의 특혜를 주는 건 시류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큰돈을 버는 것도 불공평하다면 불공평한 일인데요. 돈을 번다는 건 물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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