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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S] 사상 최고의 축구팀은?

[SPORTS] 사상 최고의 축구팀은?


Barcelona! 바르셀로나! 시적인 발놀림과 정확한 공격력을 갖춘 바르샤를 역대 최고의 축구팀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챔피언스 트로피를 손에 든 바르셀로나 선수들.

5월 28일 열린 FC바르셀로나(이하 바르샤)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많은 구호가 난무했지만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광장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바르샤 팬이 야유하듯 되풀이한 주문만큼 큰 반향을 얻지는 못했다. “포르케, 포르케, 포르케, 포르케(‘왜’라는 의미의 스페인어)?”

약 한 달 전 주제 무리뉴 감독이 던진 질문이다. 스페인 내 바르샤의 맞수 구단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인 무리뉴는 도발적인 발언으로 유명하다. 그는 팀이 바르셀로나에 패해 챔피언스 리그에서 탈락하게 된 후 기자회견에서 언성을 높이며 불만을 터뜨렸다. 바르샤가 자신의 팀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둔 이유는 오로지 그들이 경기장에서 뛰어난 연기력으로 심판으로부터 유리한 판정을 받아내는 수완이 좋기 때문이라고 무리뉴는 주장했다. 무리뉴가 말한 연기란 상대 선수의 태클이 들어올 때마다 선수들이 일부러 넘어지거나 부상을 당한 척 엄살을 부린다는 뜻이다.

그러나 무리뉴의 발언은 피해망상에 빠진 감독의 근거 없는 주장으로 드러났다. 바르샤는 결승전에서 잉글랜드 챔피언 맨유를 3대 1로 눌러 이겼다. 선수의 다이빙도 없었고 심판은 어느 팀의 경기에나 개입을 최소화했다. 대신 전 세계의 수많은 관중이 스포츠맨십의 진수를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경기를 목격했다. 이는 특히 맨유의 널리 존경 받는 감독 알렉스 퍼거슨경을 포함한 전 세계의 평론가가 인정한 사실이다. 같은 주 국제축구연맹(FIFA)은 부패 스캔들이 초래한 세력다툼으로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하지만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펼친 그 축구 미학은 전 세계의 팬을 경탄하게 만들었다. 최고의 감독으로 손꼽히는 퍼거슨은 바르샤야말로 맨유 감독 25년 동안 자신이 상대한 최고의 팀이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챔피언스 리그 맨유와의 결승전에서 바르셀로나를 응원하는 팬들

이는 맨유가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던 1989~90년 시즌보다 바르샤가 더 낫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괜찮을 듯하다. 당시 맨유는 잉글랜드 팀 최초로 프리미어 리그, FA(잉글랜드 축구협회) 컵, 챔피언스 리그 3관왕을 차지했다. 선수 중에는 데이비드 베컴이라는 진화하는 젊은 스타도 있었다.

이 ‘아름다운 경기’의 팬들에게 맨유를 압박하는 바르샤의 움직임은 축구의 백미였다. 기량이 춤을 췄고 몸싸움은 적었다. 바르샤 선수들은 공을 소유하는 (또는 드물게 공을 빼앗긴 순간 되찾아오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 뒤 정교한 안무처럼 정확하고 짧은 패스로 공격해 들어갔다. 선수들은 흐르는 물처럼 끊임없이 움직이며 공으로 접근했다 멀어졌다. 더 타임스 스포츠 담당 수석기자인 사이먼 반스의 말마따나 “모든 축구팬이 즉시 발레 평론가로 변해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들의 경기 스타일은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나아가 살기가 느껴질 정도로 승리를 쟁취하려는 목적에 집중할 뿐 아니라 미적인 차원까지 갖췄다.”

바르샤는 맨유를 능가했다. 이는 맨유가 레알 마드리드와 함께 세계 3대 구단 중 하나라는 점을 감안하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맨유는 바르샤의 작은 천재들(사비 에르난데스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이 공을 주고받으며 경기장 한복판까지 치고 올라올 때 그들의 정확성과 속도에 대처하지 못했다. 그리고 체구가 작은 리오넬 메시의 현란한 드리블도 저지하지 못했다. 메시를 역대 최고의 선수로 평가하는 축구 전문가가 갈수록 늘어난다. 그러나 빛을 발한 선수는 이른바 바르샤의 3총사뿐이 아니었다. 팀원 전체가 시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효과적이면서도 시각적인 즐거움까지 느껴졌다. 뛰어난 해외파 선수들(브라질의 다니 알베스,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프랑스의 에릭 아비달, 스페인 발렌시아 구단 출신의 다비드 비야)이 십대 시절부터 함께 뛰어온 선수들과 함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갔다.

이 팀의 경기 스타일과 정신에는 주제프 과르디올라 감독의 특성이 그대로 살아 있다. 그가 현역으로 뛰던 시절 바르샤팀은 대다수 팬으로부터 사상 가장 위대한 팀으로 평가 받았다(5월 28일 이전의 일이다). 과르디올라는 자신의 기량을 상당부분 요한 크루이프에게서 물려받았다고 인정한 최초의 감독이었다. 네덜란드 출신인 크루이프는 바르샤 사령탑을 맡은 뒤 외국인 스타들과 토종 재목으로 드림팀을 구성해 1992년 처음으로 유러피언컵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크루이프는 바르샤에 ‘토털 사커’ 개념을 접목한 인물로 평가 받는다. 그는 1971~73년 3년 연속 유러피언컵을 차지한 네덜란드 챔피언 아약스 선수 시절 토털 사커를 몸에 익혔다. 크루이프가 운영하는 탄력적인 시스템의 핵심은 이른바 중심축이다. 센터포워드와 자유롭게 이동하는 중앙 미드필더가 마치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된 듯이 끊임없이 맞물려 돌아 갔다. 정지상태는 아예 그의 사전에 없었다. 이 시스템은 매끄러운 공격 리듬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고안됐다. 문지기를 포함해 11명의 선수 모두에게 공을 앞으로 전진시킬 책임이 있었다. 과르디올라는 크루이프의 토털 사커를 개량하고 가다듬었다. 그 노력의 결실은 맨유를 물리친 경기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그렇다면 바르샤는 어느 정도 위대한 팀일까? 크루이프 스스로 현재의 팀은 92년의 드림 팀을 능가한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역대 사상 최고의 팀들과 비교하면 어떨까?

클럽 차원에서 바르샤의 영원한 맞수 레알 마드리드가 쉬 물러서지는 않을 듯하다. 그들도 세계 축구에서 가장 성공한 구단 중의 하나로 꼽혔던 나름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과르디올라는 감독 재임 3년 동안 두 차례 유러피언컵을 차지한 반면 레알 마드리드는 1956~60년 유러피언 컵 트로피를 5년 연속 가져갔다. 당시 레알 구단주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는 정치에선 보수파였지만 축구에 관한 한 이상주의자였다. 그는 처음으로 외국인 수퍼스타들을 주축으로 유능한 국내파들이 그 뒤를 받치는 팀을 구성했다. 그의 팀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아르헨티나 출신 알프레도 디 스타페노와 그의 투톱 파트너인 헝가리 출신 페렌크 푸스카스의 기량과 공격력이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1960년 독일 챔피언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의 경기에서 두 선수가 7골을 합작해 압승을 거뒀다. 이 경기는 당시 그리고 그 뒤 여러 해 동안 최고의 유러피언컵 결승전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기억됐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도 훌륭했다. 브라질이 찬란한 정복자로 떠올랐다. 베테랑 축구기자 브라이언 글랜빌은 월드컵 역사를 다룬 글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끔찍한 더위와 고도 문제에도 불구하고, 앞서 제기된 난폭하고 수비 위주 경기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브라질 팀은 당당하고 품위 있고 진취적으로 승리를 쟁취해 공격 축구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부풀렸다.” 70년 월드컵은 브라질의 수퍼스타 펠레가 보여준 경이의 마법으로 특히 기억에 남았다. 국가대표팀과 소속팀 산토스에서 뛰며 눈부신 경력을 쌓은 펠레는 은퇴를 앞두고 있었다. 그는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에서 그간의 경력뿐 아니라 자신의 경기력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량과 효과적인 운영으로 그림 같은 한 골을 넣고 두 골을 어시스트했다. 그 한 경기로 앞서 12년간의 약속을 모두 실행했다.

바르셀로나 포워드 리오넬 메시가 두 명의 맨유 미드필더를 현란한 드리블로 제친다.

20년 뒤에는 이탈리아의 AC 밀란이 역대 최고의 팀에 도전했다. 골문을 지키는 수비 전략에서 잠시 탈피해 토털 사커를 접목했다. 1989~90년 2년 연속 유러피언 컵을 손에 넣었다. 네덜란드 선수들이 들여온 공격 축구에 카테나치오(빗장수비)로 알려진 이탈리아의 엄격한 ‘압박’ 수비를 결합한 보기 드문 전략이었다.

그 밖의 후보로는 1974~76년 바이에른 뮌헨, 1977~81년 리버풀, 1986년 마라도나가 사상 최고의 골을 넣은 아르헨티나,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결승전에서의 스페인(바르샤팀 소속 선수 여덟 명이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진정한 경기력을 측정하는 데는 국가대표팀 간의 토너먼트 경기보다 클럽 경기가 더 적합하다는 이론이 축구계의 정설로 자리 잡았다.

현재의 바르샤가 과거의 명문 팀들보다 낫다고 단언하긴 결론적으로 불가능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축구의 성격도 바뀌기 때문이다. 오늘날 스타들에게 요구되는 육체적·심리적 능력은 펠레 시절에는 상상도 하기 힘든 수준이다. 전체 출전 경기 횟수, 훈련 프로그램의 엄격함, 기업과 언론의 광고·취재 열기의 강도가 크게 높아졌다.

하지만 현재의 바르샤가 역대 최고의 팀이냐고 묻자 과르디올라 감독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요한 크루이프의 아약스 팀을 보지 못했다. 디 스테파노의 레알 마드리드, 펠레의 산토스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10~15년 뒤 우리의 현재 경기 모습을 사람들이 기억한다면 나는 더 바랄 게 없다.”

[필자는 기자이자 ‘바르샤(Barca: A People’s Passion)’의 저자다.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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