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USICAL] 뮤지컬 디바 차지연 바람

지난 5월 8일 방영된 MBC TV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는 마치 임재범이란 가수의 재기 무대인 듯했다. ‘왕의 귀환’이라는 수식이 지나치지 않을 만큼 그의 공연은 화려했다. 그때 부른 ‘빈잔’은 세간의 화제가 됐다. 그 무대에서 또 한 명의 가수가 이목을 끌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임재범의 목소리를 더욱 빛나게 해준 백 코러스의 주인공. 마치 영혼을 부르는 듯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방송이 끝난 뒤 네티즌들의 손길이 분주해졌다. 뮤지컬 배우 차지연(29)이었다. 그녀는 2006년 뮤지컬 ‘라이온 킹’을 시작으로 데뷔해 ‘드림걸즈’ ‘선덕여왕’ ‘서편제’ ‘몬테크리스토’에서 주연급으로 출연했다. 올해는 ‘서편제’의 송화 역으로 ‘뮤지컬 어워드’ 여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요즘 그녀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차지연은 임재범의 ‘그대는 어디에’를 리메이크 한 곡으로 가수로 데뷔했다. 그 노래는 순식간에 디지털 음원차트 정상에 올랐다. 뮤지컬 무대에서 쌓은 내공과 탄탄한 보컬 실력, ‘임재범 효과’로 불리는 특수까지 겹치면서 그녀는 가장 주목 받는 가수 중 한 명이 됐다. 뮤지컬 무대에 이어 가요계의 샛별로 떠오른 차지연이 걸어온 길이 궁금해졌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6월 19일까지 일요일을 빼놓곤 매일 뮤지컬 ‘엄마를 부탁해’에 출연한단다.
옥주현, 바다, 시아준수, 이지훈 등 톱 가수가 뮤지컬 무대에 진출한 경우는 많지만 거꾸로 뮤지컬 배우가 가요계에 진출한 경우는 흔하지 않다. ‘노래를 부른다’라는 점에선 같지만 사실 뮤지컬 배우와 가수 사이엔 큰 간극이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뮤지컬 작품은 주어진 시간 내에 배우가 감정의 변화를 조절하지만 가수는 3~4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쏟아내야 하잖아요.” 차지연은 ‘나는 가수다’에 출연해 “짧은 순간이었지만 많은 걸 배웠다”고 말한다. “편곡의 힘도 알게 됐고 짧은 시간 무대에서 모든 것을 토해내는 가수의 고통도 실감했거든요.” 임재범의 ‘빈잔’ 피처링은 뜻밖에 찾아온 기회였다. “녹화를 불과 이틀 앞두고 전화 연락을 받았어요. 녹화 당일, 노래는 즉흥적으로 불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임재범씨 목소리에서 나오는 카리스마가 장난 아니잖아요. 제 노래를 제대로 못할 정도였어요.”
그녀는 뮤지컬 무대에서 함께 활동하는 옥주현(31)을 자신과 비교하는 일이 많아져 부담스럽단다. 두 사람 모두 파워풀한 가창력에다 가수와 뮤지컬 무대를 넘나들면서 함께 활동하는 까닭이다. 지난해에는 ‘몬테크리스토’의 여주인공으로 더블캐스팅 됐고 뮤지컬 어워드 여우주연상 후보에 함께 오르기도 했다. 지난주에도 ‘나는 가수다’를 통해 두 사람의 라이벌 관계가 다시 부각됐다. 옥주현이 ‘나가수’에서 부른 ‘천일 동안’과 차지연의 ‘그대는 어디에’가 음원시장에서 1, 2위를 다투었기 때문이다. “옥주현 언니와 저를 비교해주면 저는 감사하죠. 언니는 가수로도 뮤지컬 배우로도 이미 인정을 받았잖아요. 언니랑은 평소 서로 문자도 주고받을 정도로 친해요. ‘나는 가수다’에서도 잘하리라 믿어요.”
뮤지컬 무대에는 성악과 출신으로 클래식한 목소리를 내는 배우가 많다. 하지만 차지연은 태생부터가 조금 다른 듯하다. 그녀의 외조부는 판소리 고법 인간문화재 송원 박오용 옹이다. 세 살 때부터 그의 공연을 따라다녔고 중학교 때는 잠깐 판소리를 배웠다. “13년 동안 북을 치면서 소리를 들었다”고 그녀가 말했다. 그녀가 올해 ‘서편제’의 송화 역을 맡았을 때는 마치 고기가 물을 만난 듯했다. “국악은 자연스레 제 몸에 배어있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 7분가량 심봉사가 눈뜰 때 판소리를 하거든요.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부분인데 처음엔 너무 두려운 대목이었어요. 명창들도 어렵다고 하는 그 대목을 어떻게 소화할까, 숨어서 눈물도 많이 흘렸지요.”
판소리에 익숙한 환경이었지만 본래부터 그녀의 꿈은 가수였다. 고등학교 시절 대전에서 상경해 7년 동안이나 가수가 되려고 기획사를 전전했다. 하지만 번번이 쓴 잔을 마셨다. “내 길이 아닌가보다 후회도 많이 했어요. 그럴 때마다 노래방으로 달려가 3시간씩 노래를 했는데 휘트니 휴스턴의 팝부터 최진희, 패티김 노래까지 가리지 않고 불렀죠. 그때 임재범의 그대는 어디에, 유익종의 해바라기, 조관우의 늪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요. 아프고 힘든 시간을 음악이 치유해줬어요.”
그녀는 2006년 라이온킹에 출연한 뒤 프로듀서 하광훈을 만나면서 가수의 꿈을 키웠다. “리메이크를 하게 되면 꼭 임재범의 ‘그대는 어디에’를 부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지요. 예전부터 많은 버전으로 불렀는데, 이번엔 절제되고 담백한 느낌을 살리자고 했어요. ‘나가수’ 때문에 부각돼 앨범까지 냈다고 하는데 급작스럽게 만들어진 건 아니에요.”
평소 차지연의 목소리는 “팝가수 같다”는 평을 많이 듣는다. 그녀는 2009년 ‘드림걸즈’에 출연하면서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다. “한때 플라멩코 슈즈를 들고 스페인으로 떠날 계획까지 짰어요. 그런데 마침 ‘드림걸즈’ 제작진에서 전화가 왔더라고요. 에피 역을 맡아달라고요.” 그 배역을 소화하려고 그녀는 한 달 만에 15kg 살을 찌웠고 적극적으로 뮤지컬 무대에 뛰어들었다. 거기서 선보인 그녀의 폭발적인 가창력이 아직까지도 화제를 모은다. 하지만 웬만한 유명세가 아니라면 뮤지컬 배우에겐 누구에게나 ‘원죄’ 같은 것이 있다. “요즘 티켓파워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제아무리 훌륭한 배우라도 잘 알려지지 않으면 활동에 제약이 있거든요.”
그녀에게 올해의 뮤지컬 어워드 무대는 더욱 각별하다. 얼마 전에 세상을 등진 뮤지컬 ‘서편제’ 제작자 피앤피컴퍼니 조왕연 대표를 향해 바치는 무대라서다. “저를 서편제에 캐스팅해주시고 힘들고 어려울 때 많이 의지했던 분이에요. 무대를 정성껏 준비해서 마지막 가시는 길을 편하게 해드리고 싶어요.” 서편제에 대한 그녀의 애착은 대단한 듯하다. “창작뮤지컬 서편제는 우리 소리를 가지고도 대중이 얼마든지 호흡할 수 있도록 세련되게 만들어졌어요.” 그녀는 “공연을 하며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나를 비우는 법을 배웠고 그때마다 관객이 그 빈 부분을 채워주셨다”고 덧붙였다. 차지연은 요즘도 커튼콜이 되면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울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관객의 진심 어린 눈빛과 박수를 받으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이 밀려와요. 내 연기와 노래를 사랑해주시는 데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녀는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에 자주 섰지만 유명제작사의 뮤지컬만을 선호하진 않는다. 뮤지컬 ‘몬테크리스토’를 끝내고 나서 올해에도 대형제작사에서 러브콜이 이어졌지만 모두 거절했다. “요즘엔 ‘내가 뮤지컬 배우로서 이런 배우였으면 좋겠다’라는 그런 욕심이 들어요. 한 이미지, 한 장르에 머물지 않고 뭔가 뮤지컬 배우로서 파격을 시도하고 싶거든요. 남자 동성애를 다룬 2인극 ‘쓰릴미’나 ‘헤드윅’같은 작품은모두 남자가 하는데 여자는 할 수 없을까요? 무대에서 예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저도 극을 하고 싶어요.” 현재 그녀가 공연 중인 ‘엄마를 부탁해’도 뮤지컬이라기보다는 한편의 음악극에 가깝다. “손숙, 김성녀 같은 대 선배님들과 언제 제가 공연을 해보겠어요. 연기 말고도 정말 많은 걸 배웁니다.” 그녀의 그런 열정 덕분인지 ‘엄마를 부탁해’는 공연 예매순위에서 3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누린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배가 고프다. 당분간 뮤지컬 배우와 가수일을 병행해 갈 생각이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영화도 해보고 싶단다. “박찬욱, 홍상수, 김기덕 감독님의 영화를 무척 좋아하거든요. 작은 역할이라도 그 현장에 꼭 서보고 싶어요.” 그래도 여전히 그녀의 가장 큰 자양분은 음악인 듯하다. “힘들고 아팠던 시간에 나를 위로해준 건 음악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의 무대에 섰고요. 제 목소리로 엄마의 품처럼 아늑한 음악을 들려주는 게 꿈이에요. 소망이 있다면 제 이름을 건 콘서트를 꼭 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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