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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불호령에 숨죽인 삼성타운

이건희 불호령에 숨죽인 삼성타운

부정부패와 전쟁을 선언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가운데)의 의중이 무엇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순택 삼성 미래전략실 부회장은 6월 15일 미래전략실 경영진단(감사)팀장 교체 이유를 설명했다. 김 부회장은 “삼성 사장단이 50여 명이나 되는데 감사 기능을 강화하려면 직급이 부사장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삼성그룹 전체에 부정부패가 퍼져 있는 것 같다”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질타 후 일주일 만에 팀장을 전격 교체한 배경이었다. 김 부회장은 쇄신의 칼날이 사실상 경영진을 향해 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드러냈다.

삼성은 지난해 초 이 회장이 경영 복귀를 선언하자 그룹 컨트롤 타워인 미래전략실을 연말에 복원했다. 이건희 회장-미래전략실-전문경영인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삼성 특유의 경영방식도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삼각편대 경영이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 4월 말. 이 회장이 개인 집무실인 승지원을 떠나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으로 정기적으로 출근하는 시점이었다.



인적 쇄신 선전포고삼성 사람들은 잔뜩 긴장했다. 5분이면 삼성타운 어느 곳이든 이 회장이 갈 수 있는 데다 전자계열사 사장단을 필두로 사업 현안을 직접 보고 받기 시작해서였다. 그러던 두 달여 만에 이 회장은 ‘뇌물·향응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감사팀의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이 회장의 메시지는 대규모 인적 쇄신이란 선전포고로 삼성타운에 퍼졌다.

6월 8일 임직원 비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오창석 삼성테크윈 사장이 물러났다는 발표를 접한 삼성 임원들은 속속 주말 골프 약속을 취소했다. “외부 인사 회동처럼 불가피한 모임이 아니면 당분간 골프나 저녁 약속은 접는 게 좋겠다”는 가이드 라인까지 내려올 정도로 삼성은 얼어붙기 시작했다. 과장·차장급 직원들은 의기소침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일했는데 마치 부정을 저지른 집단처럼 비춰진다”는 푸념도 들렸다.

삼성 임직원의 관심사는 신임 감사팀장에게 쏠렸다. 앞으로 이어질 쇄신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라서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미래전략실이 경영진단팀장뿐만 아니라 인사지원팀장까지 교체한다는 발표를 하자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사람을 다루는 최고위직의 교체는 좀 더 큰 그림의 변화를 뜻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신임 팀장의 나이가 40대 말 50대 초인 데다 삼성을 대표하는 삼성전자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인물이란 점에서 더욱 그랬다.

신임 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장인 정현호(51) 부사장은 1983년 삼성 공채로 입사해 2002년 삼성전자 경영관리그룹장을 지냈다. 덕수정보산업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경영학과,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친 그는 40대 초반에 임원으로 발탁됐다. 2006년엔 삼성 전략기획실 상무로 그룹 감사업무를 했고 2007년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지원팀장을 맡아 삼성전자로 복귀했다. 그는 올 초엔 삼성전자 디지털이미징사업부 부사장을 맡아 디지털카메라 사업을 이끌 정도로 삼성전자 ‘빠꿈이’로 통한다. 지난해 기준 153조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린 삼성전자를 훤히 꿰고 있는 경영진단팀장의 등장은 의미심장했다. 구매와 영업 마케팅 등 일선 임원이 긴장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삼성 미래전략실 정현호 경영진단팀장(왼쪽)과 정금용 인사지원팀장.

인사지원팀장으로 선임된 정금용(49) 전무는 인사통으로 삼성전자 사정에 밝다. 최근까지 삼성전자에서 복수노조와 관련된 업무를 담당했다. 서대전고와 충남대 법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삼성전자 인사그룹 담당과장을 시작으로 인사업무를 맡아왔다. 1995년엔 삼성비서실 인사팀, 1998년 삼성구조조정본부 인력팀 담당부장을 지냈다. 2007년부터 삼성전자 인사팀 인사기획 그룹장을 맡아오면서 삼성특검 이후 삼성전자 임직원의 현장 재배치와 임원 인사 등을 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와 인사 라인이 전격 교체되자 삼성 직원 사이에선 “거래처나 협력업체와는 자판기 커피도 마시지 말아야 할 정도로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돌았다. 삼성 계열사의 한 직원은 “후배들에게 거래처를 만날 때 지켜야 하는 행동수칙을 일러주고 있다”고도 말했다. 예컨대 협력업체를 방문했을 땐 점심시간을 피하고, 불가피하게 식사를 함께하게 될 때에는 밥값을 반드시 계산하고 나오라는 것이다. 전자계열사의 한 직원은 “점심식사로 자장면을 시켰는데 협력업체에서 탕수육을 함께 배달시켜 탕수육 값까지 카드로 결제하고 회사에 보고했다”고 털어놨다. 삼성 임직원 윤리규정상 2만원 이상의 식사를 대접 받아야 ‘향응’에 해당하지만 ‘뒷말’이 나올 수 있는 행동을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는 분위기다.

냉랭한 분위기와 더불어 무성한 억측과 추측이 돌기 시작했다. ‘삼성전자 LCD(액정디스플레이)사업부 임원이 대거 옷을 벗는다’ ‘어느 사장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더라’와 같은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통상 매년 여름휴가를 앞두고 실시되는 삼성전자의 ‘하반기 글로벌 경영전략회의’에서 임원의 희비가 엇갈릴 것이란 소문도 나왔다.

삼성전자는 해마다 두 차례에 걸쳐 최지성 부회장과 이재용 사장 등 경영진과 각 사업부 사장단이 주재하고 글로벌 임원 400여 명이 참석하는 전략회의를 연다. 각 사업부와 법인별 상반기 실적을 평가하고 하반기 경영계획을 수립한다. 이 자리를 계기로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갈 임원이 상당할 거라는 추측이었다.



“경영권 승계작업의 토대” 분석몸을 낮춘 삼성 직원들은 ‘이건희 회장의 의중이 무엇이냐’는 데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삼성 계열사의 한 부장은 1987년 삼성 회장을 맡은 뒤 1993년 이건희 회장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며 변화와 혁신을 주문했던 걸 떠올렸다. 제2의 창업을 선언하면서 삼성전자를 세계 1위의 전자회사로 키운 이 회장이 경영복귀 후 조직 장악력을 더욱 키워가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28만 명에 이르는 삼성 임직원 가운데 외부에서 영입된 인력이 상당한 데다 신경영을 잘 알지 못하는 젊은 세대가 대거 포진하면서 전열을 재정비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삼성’으로의 변화와 이번 삼성테크윈 사건으로 촉발된 부정부패와 전쟁 선언이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최근 일본으로 건너간 이 회장이 귀국 후 ‘제2의 신경영’을 들고 올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삼성의 변화는 젊은 경영진의 약진과 더불어 경영권 승계작업의 토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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