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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대리운전 잘못 맡기면 낭패 볼 수도

[Law] 대리운전 잘못 맡기면 낭패 볼 수도

대리기사가 다른 차량을 들이받아 사고를 내면 자동차 소유자도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기분 좋게 술을 마신 김 사장이 대리운전 기사를 불렀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박 기사가 5만원을 받기로 하고 김 사장의 차량을 운전하다가 운전 미숙으로 서울 신사동 교차로에서 영업용 택시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뒷좌석에 앉아 졸고 있던 김 사장은 비장이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다. 차는 크게 부서져 피해액이 1억원에 이르렀다. 교통사고는 대리운전을 하던 박 기사의 과실 70%와 영업용 택시기사의 과실 30%로 결론이 났다. 박 기사는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고, 달리 재산도 없는 무자력자였다. 김 사장은 누구에게서 얼마나 배상 받을 수 있을까.



제3자 피해 때는 대리기사 과실분 부담해야자동차를 운행하다 보면 음주나 부상 등 여러 사유로 자신이 직접 운전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런 때 자동차를 대신 운전해주고 그 대가를 받는 대리운전업자가 생겨 많은 사람이 일상에서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다. 일시적으로 자동차를 운전하기 곤란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일정한 장소까지 자신의 자동차를 대신 운전하게 하고 그 대가를 지급하기로 하는 계약이 ‘대리운전계약’이다. 대리운전자는 의뢰 받은 자동차를 안전하게 운전해 일정 장소까지 옮겨놓아야 하는 의무를 부담하고, 대리운전을 의뢰한 자는 그에 대한 대가를 지급할 의무를 부담한다. 경기불황 속에서 취업난이 계속되자 대리운전을 영업으로 하는 사람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손님이나 손님을 소개해주는 가게 주인에게 사은품을 제공하는 업체까지 생겼고, 대리운전 비용도 많이 줄었다.

대리운전자와 대리운전을 시킨 자동차 소유자의 책임은 어디까지 일까? 먼저 대리운전자의 과실로 제3자를 다치게 한 경우를 보자. 예를 들어 자동차 소유자가 술을 마시면서 술집 주인에게 자기 차를 호텔에 가져다 놓으라고 했고, 술집 주인이 호텔까지 운전하고 가던 도중 사고를 일으킨 경우다. 법원은 자동차 소유자와 대리운전자는 똑같이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상의 운행자에 해당되므로 두 사람이 연대해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봤다. 자동차 소유자가 피해자의 손해를 전액 배상해준 경우 자동차 소유자는 자신이 배상해준 금액 전부를 대리운전자에게 구상할 수 있다고 했다.

대리운전자의 과실로 자동차 소유자가 피해를 본 경우를 보자. 자동차 소유자는 대리운전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자동차 소유자가 대리운전자에게 자신의 자동차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운전해주는 것에 대한 반대급부로 대가를 지급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대리운전자는 자동차 소유자로부터 대리운전을 의뢰 받아 이를 수락하고 자동차를 인도 받아 그 자동차의 운행에 따른 위험을 전면적으로 인수한 것이다. 따라서 대리운전자의 과실로 피해를 본 자동차 소유자는 대리운전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다음으로 대리운전자와 다른 차량의 운전자가 사고에 공동 책임이 있는 경우는 어떻게 될까. 자동차 소유자는 다른 차량의 운전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자동차 소유자는 대리운전자의 선임과 그의 운전에 대해 지휘감독을 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를 게을리한 과실이 있으므로 대리운전자의 과실을 참작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입장이다. 즉, 대리운전자에게 과실이 있었다면 동승한 자동차 소유자의 손해액을 산정할 때 대리운전자를 선임하고 그의 운전을 지켜본 자동차 소유자가 그 과실 부분을 부담하는 게 타당하다는 얘기다.

김 사장이 당한 사고는 대리운전자와 택시기사의 공동 과실로 일어났다. 그래서 김 사장은 대리기사와 영업용 택시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제1심에서 김 사장이 대리기사와 정당하게 대리운전 계약을 했고, 사고 차량의 운전을 전적으로 대리기사에게 맡긴 이상 김 사장이 본 모든 손해는 사고를 일으킨 대리기사와 택시회사가 함께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리기사와 택시회사가 연대해 김 사장에게 1억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대리기사 운전능력 확인하길김 사장 교통사고의 쟁점은 자동차 소유자가 대리운전을 의뢰하고 자기 차에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한 경우 자동차 소유자의 손해배상액을 정할 때 대리운전자의 과실을 참작해야 되는가 하는 문제다. 대리운전자의 과실을 참작해야 된다면 김 사장이 손해를 보게 되고, 반대로 참작을 안 해도 된다면 그 손해를 택시회사가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택시회사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김 사장이 자동차 소유자로서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상 운행자에 해당하므로 택시회사의 배상액에서 대리기사의 과실분을 공제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항소심 법원은 이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대리기사와 택시회사가 연대해 1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은 ‘대리기사와 택시회사가 연대해 3000만원을 배상하고 나머지 7000만원은 대리기사가 단독으로 배상하라’는 판결로 바뀌었다. 이 판결은 쌍방이 모두 상고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단, 김 사장 입장에서는 대리기사가 무자력자이기 때문에 7000만원은 받을 수 없는 채권이 됐다.

김 사장의 교통사고처럼 자신이 음주운전을 안 하려고 돈을 주고 대리운전을 시켰는데 대리운전자의 과실에 대해 왜 자신이 책임을 져야 되느냐는 항변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그러나 대리운전은 대부분 야간에 행해지는 데다 운전 경험이 적고 다른 사람의 다양한 승용차를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하게 갖추지 못한 사람이 적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자연히 자동차 소유자가 직접 운전할 때보다 사고 위험이 그만큼 커질 확률이 높아진다.

따라서 자동차 소유자가 대리운전을 맡길 때는 대리운전자가 충분한 운전능력을 갖추었는지, 사고에 대비한 보험에 가입했는지, 안전하게 운전을 잘하고 있는지 등을 확인할 의무가 있다. 자동차 소유자로서 자신의 위험뿐 아니라 대리운전 중에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요구되는 사회적인 책임이다.

결국 대리운전을 시킨 자동차 소유자는 대리운전자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경우 대리운전자와 함께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 반면 자신이 피해를 본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대리운전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그가 무자력자라면 그의 과실에 해당하는 몫을 배상 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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