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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necting the Dots] 미국 ‘건국의 아버지’를 다시 본다

[Connecting the Dots] 미국 ‘건국의 아버지’를 다시 본다


헌법을 제정한 건국의 아버지들은 오늘을 사는 정치인들과 똑같이 오류를 가진 인간이었다. 이제 그들을 완벽의 화신으로 떠받드는 행동은 그만두자
(왼쪽부터) 해밀턴, 리비어, 제퍼슨

독립선언문의 초고를 작성한 토머스 제퍼슨이 지금 살아 있다면 대통령은 고사하고 공화당 경선에서조차 이기기 힘들다. 노예로 부리던 사람의 십대 딸과 내연 관계를 맺고 사생아를 낳았다는 게 문제가 아니다. 코란 영어본을 들고 다니는 수상쩍은 모습으로 뉴트 깅리치(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으로 공화당 후보를 검증)의 지지를 받지 못하기 때문도 아니다. 제퍼슨의 정치 인생을 끝장낼 폭탄은 바로 그가 예수를 믿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토머스 제퍼슨은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을 거부했다. 더 나아가 예수가 스스로 ‘하느님의 아들’로 지칭했다는 사실조차 믿지 않았다.

종교에 관해서라면 제퍼슨은 삼위일체와 성모 마리아, 부활이 모두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퍼슨은 1800년 선거 당시 그의 적들이 주장했던 대로 무신론자는 아니었다. 독립선언문에서 ‘신의 가호’나 ‘섭리’를 언급했듯이 그는 우주를 창조한 창조주의 존재를 믿었다. 제퍼슨의 기준에 비춰 보면, 그는 나사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도덕적 가르침을 숭배하는 진정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는 뛰어난 개혁가이자 인간이었던 예수를 성직자들이 수 세대에 걸쳐 메시아로 왜곡시켰고, 그가 인간의 죄를 씻으려 희생양이 됐다는 신화를 만들어 냈다고 주장했다.

이런 종교적 신념 때문에 그가 열정적으로 주창한 ‘작은 정부’가 아무리 공화당의 신조와 어울린다 하더라도, 제퍼슨이 미셸 바크먼 의원과 같은 열혈 기독교 신자를 누르고 경선에서 이길 리 없다. 그러나 그의 합리적 이신론(理神論)은 터무니없는 자유주의적 희망을 실현하려는 안이한 시도가 아니라 논쟁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종교를 공적 영역으로 편입시켜서는 안 된다는 제퍼슨의 굳은 다짐 또한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니까 보수파 시민정치연합 ‘티 파티(Tea Party)’의 지도자가 될 만큼 정부 역할의 축소를 주장한 미국의 철학자 겸 대통령 제퍼슨은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를 허구로 받아들인 사람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진짜’ 역사란 바로 이런 거다. 역사는 여기저기 풀기 힘든 모순과 미국적인 영웅 후보로 가득하고, 복잡한 불완전성을 자랑한다.

역사를 주의 깊게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수 세대에 걸쳐 대중의 입맛에 맞는 요소만 골라 미화한 또 다른 신화 속 건국의 아버지는 바로 알렉산더 해밀턴이다. 유부녀 마리아 레이놀즈와 “치정 관계”를 가졌다는 이유로 당시의 스캔들 전문 논객 제임스 톰슨 캘린더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아 궁지에 몰린 해밀턴은 공적자금을 투기에 사용해 부당 이득을 취한 심각한 범죄에 대해서는 자신이 아무런 잘못도 없으며, 나머지는 자신의 사생활일 뿐이라고 뻔뻔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에 캘린더는 해밀턴이 불륜행위만 인정하고 이를 방패막이 삼아 더 심각한 재무 비리를 덮으려 한다고 비난했다.

진짜 역사는 경외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건국의 아버지들을 무결점과 완벽의 화신으로 미화하는 일은 그들에게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헌법 또한 종교적 계시를 담은 성서가 아니라 논쟁과 설전, 조각조각 이뤄낸 타협으로 얻어진 결과물일 뿐이다. 헌법 제정에 참여한 정치인들을 ‘건국의 아버지’로 한데 묶어 지칭하는 말도 이들 사이에 있었던 격렬하고 신랄한 논쟁과 타협이 불가능한 분열을 깡그리 무시하는 처사나 다름없다. 역사는 미국 정부의 합법적 성격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살피고 반성을 통해 지혜를 얻는 책과도 같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1세대 정치 지도자들이 서로 대립하며 싸우고 골머리를 앓았던 문제, 미 연방정부의 합법적 예산 확보를 위한 근거에 대해 배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헌법이 미 정부에 부여하는 권한을 실행에 옮기고자 필요하고 적합한” 법안을 입법하는 의회 권한이 왜 중요한지를 두고 해밀턴과 제임스 매디슨이 패트릭 헨리에 맞서 벌인 논쟁이나 헌법 비준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토론 등을 ‘연방주의 교서(The Federalist Papers)’에서 찾아 면밀히 비판적으로 검토해 본 사람은 별로 없다.

이런 지식 대신에 우리에게 남은 이미지는 당시 그들이 쓰고 다녔던 삼각 모자뿐이다. 국립 공문서관에 보관된 헌법 사본을 뚫어져라 보거나 독립전쟁의 시발점이었던 뉴잉글랜드로 순례 여행을 나선다 해도 세라 페일린이 ‘폴 리비어의 질주(말을 타고 다니며 영국군의 침략을 알린 폴 리비어의 애국심을 기리는 시)’를 미 총기협회가 영국에 보내는 경고(‘미국 총기 시장에서 빌어먹을 손을 떼시지!’)로 엉뚱하게 해석하는 걸 막지는 못한다.

존 애덤스가 보스턴 학살에 연루된 영국 장교를 변호하면서 한 말과 같이 사실은 “고집스럽게 분명한 것”이다. 편견을 굳히려고 얼마나 자주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는지 안다면 애덤스는 분명 경악을 금치 못할 듯하다. 앤드루 나폴리타노는 보수파 논객 글렌 벡의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상원의원 선출에 직접선거제를 도입한 제 17차 헌법 수정안이 미국 시민권을 저해하려는 윌슨 대통령의 책략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윌슨 대통령은 1911년 한 공화당 상원의원이 수정안을 제안하고 의회에서 이를 승인한 후에 백악관에 입성했다. 바크먼 의원은 건국의 아버지들이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사라질 때까지 쉬지 않고 일했다”고 묘사했지만, 사실 당시 각 주가 헌법을 수용한 이유는 헌법이 노예 1명을 백인의 5분의 3으로 간주해서 노예 농장이 많은 남부의 정치적 대표성을 인위적으로 부풀린 교묘한 수법을 썼기 때문이다.

역사를 안다는 성인들조차 미국의 과거에 얽힌 망상을 떨치지 못하는 마당에 학생들의 성적이 가장 낮은 과목이 역사라는 미 학업성취도 평가의 결과는 더 큰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다. 역사를 한가할 때 떠올리는 과거의 추억 정도로 여긴다면 이는 별문제가 아니겠지만, 사실 역사는 그보다 훨씬 큰 가치를 가진다. 현재 우리를 극명하게 대립시키는 문제들은 오래전에 우리 조상들이 벌이던 열띤 설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런데 바로 지금, 이런 논쟁에 필요한 지혜를 주어야 할 역사 교육이 목소리 큰 사람만 이기는 유치한 싸움으로 변질돼 간다.

선거운동으로 시끄러워지기 시작한 요즘, 역사를 통해 자기 반성의 지혜를 얻으려는 사람은 ‘쇠퇴주의’라는 억울한 비난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쇠퇴를 가져올 사람은 역사적 사실을 자신의 입맛대로 바꾸어 근거 없는 자만심의 소재로 삼는 사람들이다. 제퍼슨이 즐겨 읽은 에드워드 기번의 역사서 ‘로마제국 쇠망사’가 매우 유려하게 표현하듯, 틀림없는 역사적 사실에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맹목적 고집만큼 한 나라의 정치·문화의 부패상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도 없다.

[컬럼비아 대학 역사학 교수인 필자는 이번 호에 뉴스위크 칼럼니스트로 첫선을 보인다.

번역 우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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