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세계 제약시장 상황] 중국, 세계 의약품 생산기지 되다

[세계 제약시장 상황] 중국, 세계 의약품 생산기지 되다

미국 보스턴에 있는 ‘노바티스 생명의학연구소’ .

홍콩 바로 옆 선전의 베이산 공업지구에 위치한 베이징 지놈연구소(BGI)에서는 160여 대의 초고속 지놈분석기가 1년 365일 쉴 새 없이 가동 중이다. 미국 전체보다 많은 최신형 지놈분석기를 보유하고 있어 ‘세계 최대 지놈분석센터’라는 별칭을 얻게 된 BGI는 전 세계에서 유전자 분석 연구를 요청 받아 유전자 해독에 몰입하고 있다.

글로벌 바이오·제약산업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에 미국, 영국, 일본이 아닌 중국이 유전자 해독 같은 기초연구에 열중하는 것일까?



인건비 싸고 고급인력 풍부2000년대 이후 바이오·제약산업의 가장 큰 화두는 바로 ‘생산성 하락’이다. 바이오·제약의 생산성은 신약 수와 신약 개발에 필요한 비용으로 평가하는데, 미국 FDA(식품의약국)가 승인한 신약은 1996년 53개를 최다로 매년 급감해 2008년 이후 20여 개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신약 개발비용은 1990년대 3억 달러에서 2006년 13억 달러를 넘어 4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글로벌 제약사의 혁신 역량이 감소하고 안전성 우려로 임상 규모가 확대된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글로벌 제약사는 개발비 급증에 대응하기 위해 연구대행 기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바이오·제약산업의 밸류체인은 기초연구-물질탐색-물질합성-전임상-임상-허가 등 6단계로 나눠 볼 수 있다. 제약사는 이 가운데 전임상-임상단계를 아웃소싱하고 기초연구-물질탐색-물질합성 영역을 핵심 역량으로 내재화했다. 그러나 비용 증가와 생산성 하락 위기에 직면하자 인건비가 저렴하고 고급인력이 풍부한 아시아의 연구대행 기업과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의 대표적 연구대행 기업인 욱시파마테크는 70여 개 글로벌 제약사와 협력을 맺고 타깃 발굴부터 임상까지 거의 전 분야를 섭렵하고 있다. 이로 인해 2004년 2400만 달러였던 매출이 올해엔 4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2005년 이후 글로벌 제약사는 좀 더 적극적으로 아시아지역에 진출하고 있다. 특히 중국을 생산 및 연구기지로 적극 활용 중이다. 이미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노바티스 ·GSK 등은 베이징 및 상하이에 대대적으로 신약 개발 및 대외협력센터를 설립하고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30개의 최신 의약품 제조공장도 중국에서 가동 중이다. 세계 최대 제약기업 화이자가 한국의 제조공장을 폐쇄하고 중국 공장을 강화한 예는 글로벌 제약사의 중국 활용전략을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기초연구 역량을 활용하고, 생산기지 선점을 통해 고속성장하고 있는 중국 및 아시아 제약시장을 본격 공략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연구대행 기업의 활용과 더불어 바이오·제약산업의 새로운 트렌드는 산학협력 강화다. 이 트렌드는 정부의 연구개발 투자 감소에서 비롯됐다. 연구비 부족에 시달리게 된 대학은 기업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게 됐다. 제약기업 입장에서는 대학의 뛰어난 연구역량을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화이자는 2010년 이후 뉴욕·캘리포니아·보스턴 지역의 유수 대학과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각각 1억 달러 규모의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94건의 산학협력을 체결하고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바이오 의약품에 뛰어든다2011년 6월 NIH(미국보건연구원)는 획기적 청사진을 발표해 산업계 및 학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콜린스 원장은 개발 중지된 약물을 공개하고 새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NIH는 사용하지 않는 구식 약물이나 개발 중지된 화합물을 선별해 용도변경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2011년 4월 8000개의 기승인 의약품의 데이터를 공개했으며, 글로벌 제약사와 협력을 통해 중도 포기된 신약 후보물질을 차례대로 공개할 예정이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물질이 의약품으로 개발될 확률은 1만 분의 1 이하지만 약물 용도변경을 통해 신약이 개발될 확률은 무려 30%에 이른다. NIH는 이런 점에 착안, 기존에 사용되고 있는 의약품과 글로벌 제약사가 개발에 실패한 후보물질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용도변경을 추진해 신약을 단기간 내 개발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운 것이다. 기존에도 이와 비슷한 ‘리포지셔닝’ 방법이 추진됐지만 정부 차원에서 제약사와 협력해 신약 개발을 하는 사례는 처음이라고 생각된다. 생산성 향상이 바이오·제약산업의 본질적 문제라면 로슈-제넨테크, 화이자-와이어스 등 바이오기업의 M&A와 바이오시밀러 등 사업 다각화는 성장동력 확보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글로벌 의약품 시장은 2010년 8700억 달러에서 2020년 1조6000억 달러로 연평균 6%씩 성장할 전망이며 단백질·항체·백신 등 바이오의약품은 2010년 1400억 달러에서 2020년 3300억 달러로 연평균 8%씩 성장하면서 전체 의약품 시장성장을 견인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제약시장 내 바이오의약품의 비중은 2010년 17%에서 2020년 21%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바이오의약품은 기존 의약품의 단점으로 지적됐던 부작용을 줄이고, 맞춤형 치료 측면에서 탁월한 장점을 보이고 있어 전문가의 예상을 뛰어넘는 고성장이 가능하다.

글로벌 제약기업은 특허 만료로 2015년까지 1000억~1500억 달러 규모의 매출 감소 위기에 처해 있다. 바이오의약품은 매출 감소 극복,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이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 또한 매우 치열하다. 바이오기업 제넨테크는 로슈에 무려 468억 달러에 인수됐으며 백신업계의 강자 와이어스는 화이자에 680억 달러에 넘어갔다. 2011년 사노피는 또 다른 최고의 바이오기업 젠자임을 201억 달러에 인수했다.

이뿐만 아니라 바이오시밀러, 복제약 같은 사업 다각화도 본격화되고 있다. 미국, 유럽 등에서 의료개혁에 따른 저가 의료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글로벌 제약사는 자회사 및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해 바이오시밀러, 복제약 분야에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 이 분야는 기존의 테바(이스라엘), 랜박시(인도)뿐만 아니라 한국 제약기업도 적극 육성하고 있어 향후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바이오·제약산업은 기술과 지식의 혁신에 의해 도약이 가능한 분야로 오래전부터 주목 받아왔다. 1975년 한 유전공학도와 펀드매니저가 설립한 제넨테크는 불과 20년 만에 세계 최고의 바이오기업으로 성장했다. 최근에는 맞춤형 암백신을 개발한 덴드리온 등이 유망한 바이오기업으로 촉망 받고 있다.

기술혁신뿐만 아니라 생산성 하락은 연구대행 기업 성장, 산학협력 활성화, M&A를 통한 몸집 불리기 등 제약산업 지도를 급속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앞으로는 중국 제약기업의 성장, 혁신 바이오의약품의 개발 및 상업화, 맞춤 의약품 등의 대두로 의약품·기기·서비스의 융복합이 제약산업의 커다란 화두로 등장할 것이다. 한국 제약산업도 규모의 경제 확보, 기술혁신의 강소기업, 그리고 내수시장 기반의 생존전략 등 전략 방향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향후 10년을 준비할 시기다. 뛰어난 인재와 글로벌 수준의 기초 및 임상연구 역량을 보유한 한국이 바이오·제약산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의대생 단체 "내년에도 대정부 투쟁"…3월 복학 여부 불투명

2‘5만 전자’ 탈출할까…삼성전자, 10조원 자사주 매입

3하나은행도 비대면 대출 ‘셧다운’…“연말 가계대출 관리”

4 삼성전자, 10조원 규모 자사주 매입 “주주가치 제고”

5미래에셋증권, ‘아직도 시리즈’ 숏츠 출시…“연금 투자 고정관념 타파”

6대출규제 영향에…10월 전국 집값 상승폭 축소

7“하루 한 팩으로 끝”...농심, 여성 맞춤형 멀티비타민 출시

8미래에셋, ‘TIGER 글로벌BBIG액티브 ETF’→’TIGER 글로벌이노베이션액티브 ETF’ 명칭 변경

9한투운용 ‘ACE 주주환원가치주액티브 ETF’, 주주가치 섹터 중 연초 이후 수익률 1위

실시간 뉴스

1의대생 단체 "내년에도 대정부 투쟁"…3월 복학 여부 불투명

2‘5만 전자’ 탈출할까…삼성전자, 10조원 자사주 매입

3하나은행도 비대면 대출 ‘셧다운’…“연말 가계대출 관리”

4 삼성전자, 10조원 규모 자사주 매입 “주주가치 제고”

5미래에셋증권, ‘아직도 시리즈’ 숏츠 출시…“연금 투자 고정관념 타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