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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ny] 연비를 졸라매야 살아남는다

[Company] 연비를 졸라매야 살아남는다

쏘나타 하이브리드.

전기자동차는 본래 가솔린 자동차보다 먼저 등장했다. 증기기관으로 마차를 끌던 시기를 막 지난 1832년 영국 스코틀랜드의 사업가 앤더슨이라는 사람이 전기마차를 발명했다. 1835년 네덜란드의 크리스토퍼 베커는 지금의 골프장 카트보다 작은 크기의 전기자동차를 만들었다. 전기자동차는 실험적인 시도로 그치지 않았다. 1842년 미국의 토머스 데이븐포트와 영국의 로버트 데이비슨은 실용적으로 쓸 수 있는 전기자동차를 만들어 판매에 성공했다.

그러나 당시 기술적 한계 때문에 전기자동차는 시속 32㎞를 넘지 못했다. 이에 더해 1920년대 미국 텍사스 유전이 발견되면서 휘발유 가격이 급락했고, 막 만들어진 가솔린 자동차는 높은 성능을 발휘하면서 가격경쟁력도 좋았다. 값이 전기자동차의 40% 이하에 불과했다. 결국 1930년대에 이르러 전기자동차는 배터리 중량에 따른 성능 저하, 긴 충전시간이 문제로 지적돼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전기자동차가 다시 달리고 있다. 환경 문제가 대두되고 유가가 고공행진하면서 각광 받고 있다. 다시 등장한 전기자동차는 ‘원조’의 전철을 피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성능이다. 전기자동차는 가솔린 자동차에 버금가는, 혹은 능가하는 성능을 보여줘야 한다. 욕심이 많아진 소비자는 연비와 환경 못지않게 뛰어난 성능까지 요구하기 때문이다. 최근 많은 운전자에게 관심을 받고 있는 현대·기아차의 쏘나타 하이브리드, K5 하이브리드는 친환경이라는 가치에 부합하면서도 떨어지지 않는 성능을 보여줘야 할 입장에 놓였다.



연비 개선을 위한 신기술 쏟아내

일반 내연기관과 전기모터를 조합해 동력을 얻는 하이브리드전기자동차(HEV)는 여러 가지로 나뉜다. 크게는 가솔린 엔진이 중심인지, 전기모터가 중심인지로 구분된다. 엔진이 중심이 되면 전기를 많이 축적할 필요가 없어 차체 중량을 줄여 보다 높은 퍼포먼스를 얻을 수 있는 반면, 하이브리드로서의 연비 메리트는 떨어진다. 전기가 중심이 되면 배출가스가 적고 연료 소비를 줄일 수 있지만 무거운 중량 때문에 성능이 뒤진다.

쏘나타 하이브리드와 K5 하이브리드는 현대·기아차의 독자적인 기술로 ‘병렬형 하드 타입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했다. 2008년부터 34개월간 3000여억원을 들여 개발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다. 일본 도요타와 미국 GM 등이 사용하는 ‘복합형 하드 타입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비해 간단한 구조이면서도 더 뛰어난 성능을 보인다. 복합형은 엔진과 모터에서 각기 발생하는 토크를 바꿔주는 컨버터를 따로 두고 있는 반면 병렬형은 엔진 클러치를 탑재한다. 엔진에서 모터로, 모터에서 엔진으로 동력을 바꿀 때 드는 에너지 손실을 줄인 것이다.

하이브리드의 성능을 상징하는 것은 역시 연비다. 현대·기아차는 연비 개선을 위해 하이브리드 전용 6단 자동변속기를 달아 시스템을 단순화하고 제동 에너지의 회생을 극대화해 연료 효율을 높였다. 또 지능형 공기 유압제어 장치인 액티브 에어 플랩을 설치했다. 앞 범퍼의 그릴 후면에 개폐가 가능한 에어 플랩을 설치, 전기모터를 사용할 때는 플랩을 닫아 공기 유입을 차단한다. 그만큼 연료 소비를 줄인다는 의미다. 가장 연료가 많이 소비되는 상황은 급가속과 급정거다. 현대·기아차의 하이브리드는 모터를 제너레이터로 활용, 제동과 감속 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해 배터리 충전에 사용한다.

연비 개선을 위한 색다른 기술도 개발됐다. 일반 자동차는 에어컨 가동 시 엔진동력의 일부를 사용하기 때문에 연료를 소모하지만 현대·기아차 하이브리드는 전동 에어컨 컴프레서를 활용, 전기만으로 에어컨이 구동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하이브리드가 에어컨을 구동하기에 충분한 전기를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기술이다. 현대·기아차가 하이브리드 버전으로 제시한 연비는 L당 21㎞. 도요타의 캠리 하이브리드 19.7㎞보다 뛰어나고, 동종급 최신 가솔린 차량 12.5㎞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효율적이다. 연비가 가장 좋다고 알려진 도요타 프리우스는 1L로 29㎞까지 갈 수 있지만 차량 가격과 대비하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현대·기아차의 설명이다.
K5 하이브리드.

쏘나타 하이브리드와 K5 하이브리드는 모두 2.0 누우 하이브리드 엔진을 탑재하고 있다. 엔진 출력은 150마력, 전기모터는 41마력을 발휘, 모두 191마력을 내뿜는다. 최대 토크는 18.3㎏·m다. 캠리 하이브리드는 2.4 직렬 4기통 DOHC VVTi로 엔진 출력은 150마력으로 같지만 전기모터 출력이 143마력으로 월등히 높다. 그러나 복합형 엔진으로 무단변속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출력이 산술적으로 합산되지 않아 총 출력은 196마력에 그친다.

쏘나타 하이브리드를 가솔린 엔진만 사용하는 쏘나타와 비교하면 하이브리드의 장점이 두드러진다. 쏘나타 2.0은 165마력을 자랑하지만 전기모터 출력에 힘입은 하이브리드보다 출력이 떨어진다. 최대 토크는 가솔린 엔진답게 쏘나타 2.0이 20.3㎏·m까지 나오지만 연비가 L당 13㎞로 큰 차이가 난다. 지난 6월 내수시장에서 쏘나타 하이브리드는 YF쏘나타 판매량의 20% 수준을 보였다. 현대·기아차는 하이브리드 판매를 독려하기 위해 쏘나타 하이브리드와 K5 하이브리드의 3년 후 중고차 가치를 최고 57%까지 보장하는 프로그램을 내놨다. 3년이 지나도 반값 이하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회사가 보증한다는 것이다. 도요타는 프리우스와 캠리 하이브리드에 대해 3년 후 52%의 가치를 보장하고 있고, 한국 GM은 6월 말까지 준대형세단 알페온에 대해 50%를 보장하고 있다. 그만큼 현대·기아차 하이브리드의 중고차 잔존가치가 더 높다는 점을 자신있게 내세운 조치다.



배터리, 6년 12만㎞ 무상보증현대·기아차가 이런 보장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은 하이브리드 차량의 감가상각 속도가 일반 차량에 비해 빠를 것이라는 시장의 불안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특히 소비자가 우려 섞인 눈길로 바라보는 것은 하이브리드에 들어가는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의 짧은 수명이다. 배터리 가격이 약 200만원 내외이기 때문에 몇 년 뒤 중고 현대·기아차 하이브리드를 살 때 배터리 교체 비용이 추가로 들어갈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배터리 등 동력 관련 부품의 무상 보증기간을 일반차량보다 더 늘려 6년 12만㎞로 확대했다”며 “성능시험에서는 30만㎞를 주행한 이후에도 배터리 성능에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전기자동차나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핵심 부품 중 하나는 배터리다. 캠리의 경우 과거 사용하던 니켈수소 배터리를 사용한다. 최대 출력은 26㎾이며 시스템에 장착했을 때 무게는 53㎏에 달한다. 이에 비해 쏘나타와 K5에 사용된 배터리는 리튬이온폴리머다. 34㎾ 출력을 내지만 42㎏에 불과하고 부피도 54.4L로 작은 편이다. 같은 하이브리드 자동차이면서도 좋은 퍼포먼스를 발휘할 수 있는 이유다.

현대·기아차 하이브리드가 좋은 연비를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자동차의 운전방식에 맞춰 동력원을 적절하게 나누는 데 있다. 자동차가 정차 시에는 엔진을 정지시켜 공회전을 막아 연료 소비와 배출가스를 차단한다. 차가 막히는 시내 주행의 경우 전기모터만으로 차량을 이동시켜 연료 소비 원인을 없앤다. 주행부하가 적은 완가속에서도 가솔린 엔진을 사용하지 않고 전기모터만으로 가속을 시작한다. 급가속이 필요하게 될 때는 엔진을 가동하지만 이때도 전기모터가 이를 보조한다. 어느 정도 속도가 올라있는 정속에서는 모터로만 주행되고 힘이 조금 더 필요할 때만 단속적으로 엔진을 사용한다. 차량이 감속하거나 제동할 때 급격히 발생해 버려지는 운동에너지는 회수해 배터리에 충전한다. 운전 대부분의 과정에서 전기모터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해 엔진이 사용될 여지를 줄이는 것이 현대·기아차 하이브리드의 장점이다. 자동차에 필요한 동력을 적절하게 분배하는 것도 현대·기아차 하이브리드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하이브리드 차량의 연비와 효율을 더 높이기 위한 운전 요령이 몇 가지 있다고 일러둔다. 연비 향상을 위해 본래 엔진이 껐다 켜지기를 반복하지만 빈번히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비효율적으로 엔진이 다시 켜져 연비가 악화된다는 것이다. 또 회생 제동에너지를 모으기 위해서는 급제동을 피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감속하는 동안 에너지가 충전되는데 급제동하게 되면 에너지가 한꺼번에 몰려 충전할 수 없어 그냥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 먼 곳에서부터 천천히 차가 정지되도록 하면 그만큼 많은 양의 제동에너지를 회생시킬 수 있다.

현대·기아차 하이브리드는 시작부터 좋은 판매실적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미국 판매를 시작했던 쏘나타 하이브리드는 6월까지 미국에서 1422대를 판매했다. 6월 내수판매 대수는 1301대다. 이제까지 국내외 총 누적판매 대수는 4746대다. 이는 본격적인 판매 이후 3개월 만에 미국 하이브리드 시장 31개 하이브리드 모델 가운데 판매순위 2위에 오른 실적이다. 이는 동급 중형 하이브리드 부문의 경쟁 모델인 캠리 하이브리드, 알티마 하이브리드보다 2~3배가량 많은 판매량을 보인 것이다. K5 하이브리드는 6월 내수 872대, 미국 103대의 판매실적을 보였다. 미국 판매 실적 순위는 15위. 이제까지 누적판매 대수는 1207대다. 현대·기아차는 2009년 아반떼 LPi 하이브리드로 국내 처음으로 양산형 하이브리드 모델을 선보인 이래 지속적으로 하이브리드 자동차 연구개발과 출시를 이어오고 있다.

전기 모터만으로 달리는 비중을 늘릴수록 연비는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현대·기아차 하이브리드의 전기모터 주행 시 계기판.

하이브리드 등 연비를 절감할 수 있는 자동차 개발 경쟁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현재 한국에서 판매되는 고연비 차량은 도요타 프리우스, 렉서스 CT200h, 혼다 시빅 하이브리드, 혼다 인사이트 등이 있으며 이들은 모두 현대·기아차 하이브리드보다 연비 수준이 높다. 현대·기아차는 대신 이들 수입 하이브리드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커 내수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이브리드 등 고연비 차량으로 세계 자동차 시장이 본격 재편된 것은 미국에서 시작된 연비 규제가 원인이다. 연비 규제를 어긴 차량에 대해 미국 정부가 회사에 부과금을 징수하면서부터다. 현대·기아차는 미국 자동차 시장에 진출하면서 연비 규제를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대안을 마련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쏘나타와 K5 모델을 대상으로 한 하이브리드 개발로 이어졌다.

미국에 이어 한국에서도 연비 규제를 시행할 예정이다. 연비 규제는 연비가 나쁘거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기준치를 초과한 차에 대해 부과금 등을 제조사에 물리는 방식으로 시행된다. 환경부는 최근 자동차 배출가스와 연비를 규제하는 새로운 고시를 공포했다. 고시에 따르면 내년부터 판매하는 모든 승용차의 평균 연비는 L당 17㎞ 이상이어야 하며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당 140g을 넘지 않아야 한다.



환경부 규제, 연비경쟁 불붙여규제 기준을 넘어서면 일종의 부과금을 회사가 내야 한다. 부과금은 그대로 자동차 가격에 반영될 것으로 보여,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주 요인이 될 전망이다. 일단 내년 판매 차량의 30%가 고시된 기준을 넘겨야 하고, 2013년에는 60%, 2014년에는 80%, 2015년에는 모든 차량이 이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환경부는 내년 생산되는 차량을 대상으로 평균 연비를 조사, 2013년부터 부과금을 매길 방침이다. 아직 부과금 규모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미국 등 해외 차량가격 대비 부과금 수준을 참고할 예정이다.

정부의 연비 규제와 전 세계적인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 중동발 유가 상승의 영향이 깊어질수록 한국 자동차 산업의 하이브리드 개발 러시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 자동차 산업에서는 현대·기아차의 두 하이브리드 모델이 국제적인 연비 경쟁의 대표선수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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