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경영 전문가 10인 ‘3세 경영인에게 바란다’

경영 전문가 10인 ‘3세 경영인에게 바란다’


경영 전문가들은 창업 못지않게 지켜내는 것도 힘들다는 점에 동감했다. 무엇보다 3세 경영인들이 선대의 카리스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압박감에 눌려 있어 안타깝다는 의견이다. 선대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파악한 후 경영자로서 ‘꿈’을 가지라고 입을 모은다.
(왼쪽부터)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조현아 대한항공 전무,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올해 재벌그룹 3세 경영인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이력을 쌓으며 점차 경영 일선에 나서는 모습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3남매인 이재용·이부진·이서현 모두 지난해 12월 승진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은 1991년 12월 삼성전자 총무그룹으로 입사해 19년 만에 사장에 올랐다. 업계에선 이 사장이 대표이사 자리를 맡지 않고 최고운영책임자(COO)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 성과 부담을 덜어주고 일선에서 좀 더 경영 수업을 쌓으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이 사장은 연초 LG그룹 구본무 회장과 면담을 나눴다. 이후 하이닉스, 현대중공업 등 대형 고객사들도 찾아다니며 현장 목소리를 듣고 있다. 4월엔 경북 포항제철소에 내려가 정준양 회장을 만나는 등 보폭을 넓히는 모습이다.

1995년 삼성복지재단 기획팀으로 입사한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은 15년 만에 사장이 됐다. 지난해 인사에서 그는 전무에서 부사장을 건너뛰고 두 단계 승진했다. 그뿐만 아니라 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 사장과 삼성물산 상사부문 고문까지 겸하게 됐다. 삼성의 유통사업을 책임지는 셈이다.

그는 세계 최초로 루이뷔통을 인천공항 면세점에 입점시켜 주목 받았고, 2004년 12.6%에 불과하던 시장점유율을 지난해 기준 29%까지 끌어올렸다. 전무 시절 호텔신라와 삼성 에버랜드 수익성을 크게 개선하는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막내인 이서현 제일모직·제일기획 부사장도 활발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제일기획은 지난 3월 아시아 광고연맹 주관 애드페스트에서 포스트잇 광고로 금·은·동상을 휩쓸더니 6월 칸 국제 광고제에서 ‘홈플러스 전철역 가상 매장’ 광고로 미디어 부문 그랑프리와 금상 4개 등 모두 5개 본상을 차지했다.



보폭 넓혀가는 3세 경영인들삼성그룹 3세 경영인들보다 앞서 경영일선에 나선 이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다. 그는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의 외아들이다. 이재용 사장보다 두 살 어린 그는 2005년 기아차 사장을 맡았다. 2009년 승진과 함께 현대차로 자리를 옮긴 뒤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그는 디자인과 품질 관리에 주력했다. 2006년 직접 아우디와 폭스바겐 디자인 총괄을 맡았던 피터 슈라이어를 수차례 설득해 영입했다. 그게 기아차의 디자인 경영이 주목을 받게 된 계기가 됐다. 최근엔 아버지 정몽구 회장이 주력한 ‘품질 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에 글로벌 생산공장에서 불량률이 높아졌다는 보고서가 올라왔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은 최근 1차 협력업체 20여 곳을 방문하며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 그는 자동차뿐 아니라 신규 사업을 위한 의사결정에도 관여하고 있다. 23조원에 달하는 브라질 고속철 사업을 따낼 수 있도록 측면에서 지원하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CEO 2년차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장남인 그는 2009년 12월 신세계 총괄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신세계는 지난해 2009년보다 14.3% 늘어난 14조557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영업이익도 8% 신장한 9927억원을 기록했다. 사상 최고 실적이다. 정 부회장은 직원이 행복한 회사를 만드는 데 주력한다. 대표적인 예가 퇴직 임직원을 위해 선보인 복지제도다. 임직원이 퇴직한 뒤에도 10년 동안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생 자녀 학자금까지 지원한다. 지난 3월에는 서울 성수동 이마트 본점과 신세계백화점 부산 센터시티점 등 점포 3곳에 어린이집을 열었다.

그는 트위터 CEO로도 유명하다. 트위터에 올라온 고객들의 글에 일일이 답해준다. 특히 고객들이 이마트 카트 등 시설 이용 시 불편함이나 고객 아이디어 등을 올리면 바로 경영에 반영한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자녀들도 점차 보폭을 넓혀가는 모습이다. 장녀 조현아 대한항공 전무는 대한항공 기내식기판사업본부장과 객실승무본부장을 겸하고 있다. 대한항공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는 조 전무가 주도하는 모습이다. 차세대 항공기인 A380 안에 면세품 진열장을 설치하거나 ‘저칼로리 웰빙 기내식’ 등을 선보이는 등 기내 서비스를 끌어올리는 데 주력한다.

장남 조원태 전무는 작년 말 여객사업본부장에서 경영전략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항공 예약·발권·운송 등 대한항공 신여객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힘쓰고 있다. 막내딸인 조현민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팀장(상무)은 올해 4월 한진에너지 이사에 등재됐다.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의 아들 박세창 금호타이어 한국영업본부장은 지난해 말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세 아들 조현준 사장, 조현문 부사장, 조현상 전무 등도 3세 경영인으로 이력을 쌓고 있다.



10대 그룹 자산 국내GDP의 75.6%재벌그룹 3세 경영인의 잇따른 경영 참여에 경영 전문가들의 관심이 높다. 경영 성과에 따라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10대 그룹 자산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75.6%에 달한다. 10대 그룹 계열사 시가총액은 전체 주식시장의 50%를 차지한다. 그만큼 한국 경제는 대기업 의존도가 높다.

포브스코리아는 경영 전문가 10인에게 설문을 돌렸다. 설문에 참가한 이들은 기업의 경영 전략을 연구한 경영학과 교수, 경영 컨설턴트, 그리고 2·3세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경영 전문가 등이다.

그들에게 3세 경영인들이 앞으로 경영을 잘하기 위해 갖춰야 할 요건에 대해 물었다. 1차 설문을 거쳐 3세 경영인에게 필요한 교육, 기업 가치, 구성원 간 소통, 리스크 관리 등 4가지 항목에 대해 구체적인 방법을 들어봤다.

교육에 대해 경영 전문가들은 3세 경영인들이 해외에서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고, 상당한 수준의 국제 감각을 갖추고 있다고 봤다. 재벌 3세들의 학력을 보면 해외파가 많다. 국내에서 공부했더라도 해외에 나가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밟는 게 보편적이다.

삼성의 이재용 사장은 서울대에서 동양사학을 공부한 뒤 일본 게이오대 대학원 석사와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샌프란시스코 MBA)과 조원태 대한항공 전무(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MBA)도 MBA 과정을 거쳤다. LG가 3세인 구광모 LG전자 차장, GS가 3세인 허윤홍 GS건설 부장은 고교 졸업 뒤 바로 유학길에 올랐고, 김승연 한화 회장의 아들 셋은 고등학교부터 외국행을 택했다.

경영 전문가들은 3세 경영인들이 글로벌 경영 환경에 익숙한 반면 한국 경영에 경험이 부족한 점이 CEO로서 취약점이 될 것으로 염려했다. 경영 전문가 중 7명이 현장 경험을 많이 쌓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은 교육과 비즈니스는 다르다고 말한다. 교육은 좋은 성적을 내야 하지만 비즈니스에선 성과가 필요하다는 것. “성과를 잘 내려면 현장을 알아야 합니다. 밑바닥부터 공부해야죠. 꼭 회사의 사원이나 대리부터 하라는 게 아니에요. 겸손하게 현장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배운 내용을 현장에 적용하려고 하기보다 현장 중심에 교육을 접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종석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와 예종석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가급적 자신이 속한 그룹 계열사가 아니라 다른 기업에서 현장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벌가 자녀라는 신분을 숨긴 채 밑바닥부터 경험해야만 현실 감각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부회장도 남다른 경영 수업을 받았다. 1986년 동원산업으로 입사한 그는 4개월간 명태잡이 어선을 탄 채 남태평양을 누볐다. 당시 누구도 그가 오너 아들이었다는 걸 몰랐다고 한다.



3세 경영자들 현장경험 필요해박철순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경영 패션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내외 명문 대학을 나온 그들은 최근에 각광받는 경영 이론, 기법, 트렌드 등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전문 경영인과 달리 경영인으로서 치열한 검증을 받지 않았다는 부담감 때문에 ‘남보다 앞서거나 글로벌 하다’는 이미지를 외부에 표출하려고 하지요. 그러다 보니 대중매체에 소개된 최신 경영기법을 남들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경영기법은 이론일 뿐입니다. 경영자로서 자신만의 경영원칙, 철학, 가치관을 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당수 전문가도 ‘3세 경영인들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우선 기업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병남 보스턴컨설팅그룹 사무소 공동대표는 “1, 2세 경영진이 만든 과거의 성과에 안주하지 말아야 하는 동시에 꾸준히 쌓아온 기업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속 가능한 변화는 과거 핵심 가치의 유지와 새로운 경쟁 가치의 도입이 균형을 이룰 때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전성철 IGM 세계경영연구원 회장 역시 3세 경영인들은 기업의 가치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들려줬다. “과거에 기업은 돈을 많이 벌어 고용을 창출하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21세기엔 이윤 추구뿐 아니라 투명 경영에 주력해야 합니다. 최근 몇몇 기업이 비자금이나 분식회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까? 투명 경영에 대한 기업의 비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필요가 있죠. 동시에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존경 받는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구성원 간의 원활한 소통도 중요하다고 봤다. 소통을 잘하는 방법이 있을까. 의견이 두 가지로 나뉘었다. 몸을 낮춰 상대방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게 첫째고, 곧은 소리를 할 수 있는 조언자를 옆에 두는 게 둘째 방법이다.

박철순 교수는 소통을 하려면 ‘그들만의 리그’에서 나와야 한다고 얘기했다. 태어날 때부터 황태자였던 3세 경영자들은 특권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고 봤다. 그는 ‘을’의 마인드를 키우라고 한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을’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 이 얘기는 다시 현장 경험으로 이어진다. 이들을 단시간 내에 승진시키기보다 조직 내 하위직, 영업직 등을 거치는 혹독한 경영수업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는 올바른 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을 옆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3세 주변에는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또 좋은 얘기만 하는 사람들도 조심해야 해요. 당장은 싫을 수 있지만 쓴소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옆에 둬야 합니다. 쉽지는 않겠죠. 곧은 소리를 하는 인재가 직접 찾아오지도 않을 겁니다. 3세 경영인들이 직접 찾아 나서야 합니다.”

김종석 교수 역시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급적 선대 경영인을 모시고 기업을 오랜 기간 일군 그룹 내 원로 경영인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독단 방지할 의사결정 시스템 갖춰야넷째, 3세 경영인이 갖춰야 할 경영 자질로 위기관리 능력이 꼽혔다. 이성용 베인앤컴퍼니 대표는 위기에 대처하려면 실무 경험이 중요하다고 얘기했다. “오너들이 손익 책임을 자녀들에게 묻지 않고 안전지대에서만 사업을 경험하도록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3세 경영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기업의 턴 어라운드(Turn-around) 경험은 너무나 중요하며 앞으로 그룹을 이끄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한근태 대표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예상 시나리오를 그릴 줄 알아야 한다고 들려줬다. 가능한 한 투자는 보수적으로 할 것을 당부했다. 빨리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사업을 벌이다 보면 현금 유동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다. 3세가 의사결정을 하기 앞서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나 기업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들려줬다.

경영 전문가들은 창업 못지않게 지켜내는 것도 힘들다는 점에 동감했다. 무엇보다 3세 경영인들이 선대의 카리스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압박감에 눌려 있어 안타깝다는 의견이다. 선대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파악한 후 경영자로서 ‘꿈’을 가지라고 입을 모은다.

이병남 대표는 선대의 장점은 장점대로 겸허히 받아들이고 단점은 임직원의 공감대를 충분히 얻은 후 과감하게 고쳐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더불어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경청하고 소통하는 시간을 아끼지 말라고 당부했다.

박철순 교수는 경영자로서 명확한 꿈을 갖고 이를 구성원과 공유하라고 강조했다. 경영자가 꿈을 향해 열정을 갖는다면 구성원들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희망과 용기를 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검은 반도체’ 김 수출 역대 최고기록 달성…10억달러 수출 청신호

2이복현 "상법 개정보다 자본시장법 개정이 합리적"

3롯데, 해외 부실면세점 철수 검토…케미칼, 자산매각 추진

411월 기록적 폭설에 車사고 60% 급증…보험료 인상 조짐

5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4년만에 승인…통합 LCC도 출범

6이재명 “‘국장’ 떠나는 현실...PER 개선하면 ‘코스피 4000’ 무난”

7롯데바이오로직스 설립 2년 만 수장 교체…신임 대표는 아직

8상법 개정 되지 않는다면 “국장 탈출·내수 침체 악순환 반복될 것”

9열매컴퍼니, 미술품 최초 투자계약증권 합산발행

실시간 뉴스

1‘검은 반도체’ 김 수출 역대 최고기록 달성…10억달러 수출 청신호

2이복현 "상법 개정보다 자본시장법 개정이 합리적"

3롯데, 해외 부실면세점 철수 검토…케미칼, 자산매각 추진

411월 기록적 폭설에 車사고 60% 급증…보험료 인상 조짐

5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4년만에 승인…통합 LCC도 출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