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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변했다 경제도 변한다

날씨가 변했다 경제도 변한다

7월 27일 서울에 내린 폭우로 올림픽대로가 주차장으로 돌변했다.



7월 27일 서울과 경기·강원북부 지역에 물폭탄이 쏟아졌다. 산이 무너지고 도로가 침수됐다. 서울의 주요 도로는 주차장으로 변했고 대중교통은 멈춰 섰다. 대한민국의 최대 번화가인 서울 강남역 사거리는 ‘흙탕물’로 얼룩졌다. 한국의 여름이 심상치 않다. 장마는 길어지고 폭염은 해마다 심해진다. 국지성 폭우는 ‘아열대 스콜’을 방불케 한다. 기상 전문가들은 “이상기후가 올 들어 더욱 심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여름철 이상기후는 경제에 큰 부담을 준다. 여름에 발생하는 기상재해는 겨울보다 피해 규모가 크고 복구비용은 더 든다. 여름 날씨에 민감한 농업·어업·건설업 등 각종 산업의 피해도 우려된다. GDP(국내총생산)가 감소하고 이에 따라 1인당 소득이 줄어들 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2005년 8월 23일. 미국 플로리다주 동쪽 약 280㎞ 지점에서 회오리가 발생했다. 처음엔 별것 아닌 줄 알았다. 열대성 저기압으로 발생한 작은 회오리로 봤다. 단순 회오리가 아니었다. 발생 후 세력을 넓히더니 직경 700㎞, 초속 75m짜리 대형 허리케인으로 돌변했다. 기상학자들도 예상하지 못한 이상기후 현상이었다.

‘카트리나’로 불린 이 허리케인은 지대의 80%가 해수면보다 낮은 뉴올리언스를 강타했다. 사망·실종 등 인명피해는 2500명이 넘었다. 복구비용은 1500억 달러(약 158조원)에 달했다. 2001년 9·11 테러 복구비용의 10배 규모였다. 카트리나 허리케인은 미국 경제를 흔들었다. 월가 애널리스트는 기상정보를 구하기 위해 미 기상청의 문을 두드렸다. 미 언론은 당시 “기상청 문턱이 월가 애널리스트 때문에 닳아 없어질 판국”이라고 풍자했다. 이상기후가 경제를 움직이는 변수가 된 것이다.

한국의 여름 날씨도 변했다. 장마가 빨리 시작되고 강수량이 늘었다. 이코노미스트와 민간 기상정보업체 케이웨더가 공동 분석한 ‘서울의 장마 기간 강수일’을 보면 올해 6월 15일부터 7월 17일까지 0.1㎜ 이상 비가 온 날은 22일이었다. 지난해는 15일이었고, 2000년에는 9일밖에 내리지 않았다. 강수일이 많아진 만큼 강수량도 늘었다. 같은 기간 서울의 강수량은 803㎜로 2008년의 8배나 됐다. 2001~2010년 평균 298㎜보다 2.7배 더 내렸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은 “올해 장마철 중부지방에는 평년 대비 207% 늘어난 757.1㎜의 비가 내렸다”고 말했다.

폭염도 심해졌다. 2010년 하루 중 최고기온이 35도 이상인 폭염이 발생한 날이 전국 평균 12.1일이었다. 2001~2009년 8.9일보다 3.2일 늘었다. 올해는 더 뜨거운 여름을 보낼 전망이다. 기상청 신진호(기후예측과) 연구관은 “8월에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으로 무더운 날이 많겠다”며 “폭염과 열대야가 자주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장마·폭염만이 아니다. 국지성 호우(이하 폭우)가 때를 가리지 않고 쏟아진다. 기상청 진기범 예보국장은 “우동 면발 같은 비가 내린다”는 표현까지 썼다. 7월 27일 서울과 경기·강원북부 지역에 내린 폭우는 각종 기록을 갈아치웠다. 7월 26일부터 28일 오후 7까지 서울에 내린 비는 536㎜로 1907년 기상 관측(3일 연속 강수량 기준) 이래 가장 많았다. 특히 7월 27일 서울에 301.5㎜의 비가 쏟아졌다. 7월 하루 강수량 최고 기록이었다. 종전 기록은 1987년 7월 27일의 294.6㎜였다. 동두천(449.5㎜)·문산(287㎜)·인제(211㎜)에서도 7월 하루 강수량 기록이 깨졌다.

주목할 점은 더 있다. 올여름 강수량이 부쩍 늘었음에도 기온은 떨어지지 않았다. 반기성 센터장은 “장마가 시작되거나 비가 많이 내리면 평년 기온보다 떨어져야 정상”이라고 했다. 그는 “더우면서도 비가 많이 내린다는 게 진짜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 5월 1일부터 7월 20일까지 전국의 평균 기온은 20.9도였다. 평년보다 0.6도 높았다. 평균 최고기온·최저기온은 평년과 비교했을 때 각각 0.2도, 1.0도 올랐다. 비는 많이 오고, 기온은 되레 올라가는 기현상이 반복되는 것이다. 부산대 안중배(대기역학과) 교수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이 본격 시작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기록적인 폭우 등 이상기후 현상이 더 심해질 공산이 크다”고 내다봤다. 기상청 심지훈(기후예측과) 연구관은 “폭우와 폭염의 주기가 짧아지는 추세”라며 “지구가 예년보다 빨리 달궈지면서 이를 식히는 역할을 하는 대기의 움직임도 빨라진 탓”이라고 분석했다.



여름철 이상기후 피해 규모 커‘한반도가 아열대 기후가 됐다’는 분석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심 연구관은 “여름에 비가 많이 내리고 폭염일수가 증가했지만 겨울에는 한파가 발생하고 있어 이상기후라는 말밖에 쓸 수 없다”며 “아열대 기후로 바뀐 건 아니다”고 말했다. 반면 반기성 센터장은 “긴 장마, 폭염, 집중호우 등이 반복되는 것에 비춰볼 때 한반도가 아열대 기후로 바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문제는 여름철 이상기후가 겨울보다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는 것이다. 기상재해 피해 규모가 증가하는 원인은 겨울이 아니라 주로 여름에 있다. 독일 뮌헨 재보험사의 보고서를 보면 기상재해에 따른 보상액 규모가 1995~2000년 2250억 달러(약 237조원)에서 2001~2005년 3000억 달러(약 316조원)로 33% 늘었다. 독일 작센주의 홍수 피해(2002), 450년 만의 유럽 폭염(2003), 카트리나 허리케인(2005) 등 대형 여름철 기상재해가 발생한 탓이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소방방재청 자료를 보면 기상재해 피해액은 2007년 251억원에서 2010년 4268억원으로 늘었다. 십중팔구 폭우나 태풍 피해가 늘어나서다. 소방방재청 서상덕(방재대책과) 과장은 “피해금액이 가장 큰 기상재해 10건 중 9건은 폭우 또는 태풍”이라며 “폭우나 태풍이 갑자기 몰아치면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7월 27일 물폭탄을 맞은 서울과 경기·강원북부 지역의 피해 상황을 봐도 그렇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서울과 경기·강원북부 지역에 내린 폭우로 7월 29일 오전 6시 현재 59명이 사망하고 10명이 실종된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중앙재난대책본부는 “주택 침수와 산사태 우려로 서울지역 1048가구 1936명, 경기 4071가구 9081명 등 모두 5256가구 1만1193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여름철 이상기후는 ‘일시적인 게 아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유엔 산하 국제협의체 IPCC의 『기후변화에 관한 제4차 보고서』는 “1906년부터 2005년까지 100년 동안 지구 온도는 0.74도, 해수면은 연평균 1.8㎜ 상승했다”며 “2090~2099년 지구의 평균 기온은 1980~1989년 대비 최고 4도, 해수면은 최대 59㎝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IPCC의 무서운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나면 국내 산업은 큰 피해를 볼지 모른다. 기상변화에 민감한 농업부터 무너질 공산이 크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창길 연구위원은 ‘기후변화가 농업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에서 “지구온난화로 평년보다 기온이 2도 오르면 10a당 벼 수확량이 4.5% 감소하고, 평년 대비 3도 상승하면 8.2% 준다”고 분석했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의 보고서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부터 40년 동안 국내 기온이 1.1~1.2도 오르면 쌀 수확량이 6.4% 감소한다. 2014년부터 2070년까지 2.5~2.8도 상승하면 12% 줄어든다. 2010년 쌀 수확량은 429만5000t이었다. 여름철 날씨가 계속 뜨거워지면 2040년 27만4880t, 2070년 51만5400t의 쌀이 사라진다. 쌀 27만t은 국민 전체의 한 달 소비량과 비슷하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국립농업과학원 심교문 연구원은 “지금 같은 기후변화 속도라면 2050년 쌀 생산량이 최대 15% 줄어들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양식업도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작지 않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지구온난화가 연안해 역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에서 “해수면이 1m 상승하면 국토 50.4㎢와 (국토로 인정되지 않는) 간석지 1551㎢가 유실된다”고 분석했다. 지구온난화가 빨라지면 여의도 200배 규모의 땅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그 결과 양식 및 공동어장의 총 생산액이 50% 줄어 어업손실액은 5000억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건설 역시 이상기후에 민감한 업종이다. 폭우가 쏟아지면 공사를 못한다. 폭풍이 몰아칠 경우 포클레인·크레인 등 대형 건설장비를 움직이기 어렵다. 기온이 올라가도 문제다. 콘크리트 타설 비용이 치솟고 안전사고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강운산 연구위원은 “8월 평균 온도가 2도, 3도 상승할 경우 현장노동자의 사망률이 각각 0.1%, 0.4%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수송업의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다. 폭우나 폭설이 내리면 도로가 막혀 교통혼잡비용이 증가한다. 둘 중에선 폭우로 인한 비용 증가가 많다. 2008년 교통혼잡비용은 3981억원이었는데 이 중 70%는 폭우 때문이었다. 한국교통연구원 정연식(교통안전·방재연구실) 박사는 “차량운행이 지체됨에 따라 발생하는 기름값·톨게이트 비용 등을 모두 합치면 복구비용만큼 큰돈이 지출된다”고 말했다. 정 박사는 “올해는 2008년보다 훨씬 많은 교통혼잡비용이 지출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이상기후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산업은 거의 없다. 가전·의류·식품업은 기상이변이 생산기획·재고관리·판매 등에 영향을 끼친다. 기상예측을 잘못하면 재고 발생에 따른 손실뿐만 아니라 경쟁업체에 시장을 뺏길 우려도 있다. 유통업은 대표적 사례다. 올여름 TV홈쇼핑의 매출은 크게 늘었다. 비 때문에 집에서 쇼핑하는 고객이 많아져서다. 현대홈쇼핑은 6월 1일부터 7월 17일까지 매출이 평년 대비 25% 늘었다고 밝혔다.



이상기후로 ‘GDP 페널티’ 부담할 수도이상기후가 산업에만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다. 국가경제에도 직결된다. 유엔 IPCC는 “지구 평균기온이 2.5도 오르면 선진국의 GDP(국내총생산)는 1~1.5%, 개도국은 2~9%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조사가 이뤄졌다. 동의대 임동순(경제학) 교수는 산업계와 지자체가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를 어떻게 복구하는지, 복구비용은 얼마인지를 종합적으로 연구했다. 이를 토대로 이상기후가 가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임동순 교수의 분석자료를 보면 2100년이면 1인당 소득이 최소 143만원, 최대 303만원 줄어든다. 임 교수는 “기상재해 복구비용의 60%는 국고에서, 나머지는 지자체가 부담한다”며 “복구비용이 늘어날 경우 국가와 지자체는 어쩔 수 없이 개인에게 비용을 전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를 ‘GDP 페널티’라고 했다. “개인에게 부과되는 환경부담금처럼 기상재해 복구비용도 언젠가 개인에게 넘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여름철 이상기후가 잦아진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먼저 ‘기상보험시장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상재해 손실 중 80%가 보험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중앙대 김정인(경제학) 교수는 “미국은 홍수보험 가입자가 80%에 이를 만큼 날씨보험 상품이 확산돼 있다”며 “최근 들어 폭우 등 기상재해로 인한 피해가 늘고 있기 때문에 정부 예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화재 정천재(방재연구소) 차장은 “날씨보험은 국고 손실과 개인 피해를 줄여줄 뿐만 아니라 기업의 신규 사업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방재대책을 새로 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의 방재대책은 아직 허술한 측면이 있다. 한강 제방은 200년 빈도의 홍수에 견디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1970~80년대 묻은 서울시 하수관로 약 1만㎞는 지역에 따라 10년 또는 30년 빈도의 강수량에 대비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짧은 시간에 살인적 폭우가 쏟아지면 하수구 용량이 감당하지 못할 때가 많다. 방재대책이 제대로 구축되면 기상재해가 발생했을 때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서울 메트로는 지난해 강남역 등 저지대에 있는 13개 지하철역의 출입구 턱을 25㎝ 높였다. 70㎝ 높이의 차수판(遮水板·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판)도 설치했다. 그 결과 7월 27일 폭우로 강남역 일대는 아수라장이 됐지만 강남역 지하상가는 아무 피해가 없었다. 케이웨더 김동식 대표는 “이상기후에 시의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은 사실 어렵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하지만 “철저한 방재대책은 기상재해 피해 규모를 줄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지구촌 날씨가 이상하게 변했다. 세계 각국은 기상재해에 대비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힘쓴다. 한국은 출발이 늦었다. 고가 기상장비는 우리 손으로 만들지 못한다. 지금 대비책을 세우지 않으면 이상기후가 초래할 무서운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다. 쌀 생산량이 줄고, 어장이 무너지고, 사망자가 생기고, 국가 GDP가 감소한다. 충격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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