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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승장구하는 금호석유화학 _ 그룹 위해 희생하다 분리 후 주가 10배로

승승장구하는 금호석유화학 _ 그룹 위해 희생하다 분리 후 주가 10배로

금호석유화학의 울산고무공장 야경.

“뛰어난 자질에도 불구하고 동생들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한 큰누나 격이다. 홀로서기에 나서면서 잠재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 증권사 화학담당 애널리스트가 말한 금호석유화학(이하 금호석화)에 대한 촌평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 역할을 했던 금호석화의 내부 사정을 아는 이들은 대개 이런 시각에 고개를 끄덕인다.

재무제표만 봐도 이해가 된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3조8863억원, 영업이익은 3595억원이다. 당기순이익은 4714억원.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이다. 하지만 2009년 상황은 달랐다. 매출은 2조8016억원, 영업이익은 1161억원을 남겼지만 6148억원 적자였다. 부채비율은 500%에 육박했다. 영업을 잘해도 금고는 비고 적자를 보는 상황. 한 애널리스트는 “금호석화가 번 돈으로 그룹 M&A(인수합병)나 신규사업 자금을 댔다”며 “그룹이 무리한 차입으로 덩치를 키우면서 금호석화에 너무 많은 희생을 요구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금호석화는 2010년 2월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고 경영 정상화 과정을 밟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과는 사실상 분리된 상태고 박찬구 회장이 경영을 총괄한다. 그사이 회사는 몰라보게 안정됐다. 올 2분기 금호석화는 매출 1조7074억원, 영업이익 2755억원을 달성했다. 이 역시 사상 최고 성적이다. 부채비율은 288%로 떨어졌다. 주가는 최근 2년 사이 10배 가까이 올랐다.

금호석화의 주력 사업은 합성고무와 합성수지다. 합성고무는 천연고무의 대체품으로 타이어, 신발, 골프공 등의 주원료로 쓰인다. 합성수지는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 등의 원료다. 금호석화가 지난해와 올해 승승장구하는 것은 주력 사업인 합성고무 시장 호황 덕이다. 합성고무는 지난해부터 공급이 수요를 힘겹게 맞출 만큼 시장 상황이 좋았다. 합성고무 원료인 부타디엔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합성고무 가격도 덩달아 올랐다. 올해도 양상은 비슷하다. 올 상반기 금호석화의 공장 가동률은 91~94%. 공장을 사실상 24시간 풀가동하고 있다.



합성고무 호황 속 공장 풀가동금호석화는 얼마 전 채권단과 조율해 올해 경영목표를 상향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이 회사가 세운 목표는 ‘42038’이었다. 매출 4조2000억원, 영업이익 3800억원 달성을 뜻한다. 회사 관계자는 “목표가 30% 정도 상향됐다”며 “그나마 보수적으로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박찬구 회장은 “업황이 좋은 덕도 있지만 그룹과 경영이 분리되면서 설비투자 확대 등 시장 지배력이 강화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빈말이 아니다.

부타디엔 가격이 오르면서 원료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자 금호석화는 공장 가동률을 일시 낮추는 전략을 폈다. 그러자 부타디엔 가격이 떨어졌다. 시황을 보며 생산 및 마케팅 전략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금호석화의 시장 지배력이 공고하다는 방증이다.

금호석화를 바라보는 증권가 평가도 좋다. 하이투자증권 이희철 연구원은 “글로벌 톱 합성고무 생산업체로서 적극적 신·증설 투자와 함께 경쟁력이 개선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원은 “신흥 시장 등의 수요 확장으로 영업실적이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며 “고부가가치 합성고무, 페놀유도체 등에 추가 투자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장세가 지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합성고무 생산능력 세계 1위안상희 대신증권 연구원은 “합성고무 생산능력 글로벌 넘버원의 생산제품을 보유하고 있는 업체”라며 “중국 등 글로벌 타이어 수요의 견조한 성장을 바탕으로 금호석화의 안정적 수익과 성장을 전망한다”고 전했다.

또한 안 연구원은 “지속적 설비투자로 합성고무의 글로벌 가격 경쟁력을 강화시켜 향후 안정적 수익구조를 구축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동욱 한맥투자증권 연구원은 “금호석화는 지속적 증설을 통해 부동의 세계 1위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세계 1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고 평가했다.

공식적 통계는 아니지만 금호석화가 생산하는 합성고무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10%를 조금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75%다. 중국과 중동, 서남아시아가 핵심 공략 지역이다. 회사 관계자는 “고객과의 비밀 협약 때문에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글로벌 타이어 회사 상당수가 주요 고객”이라고 말했다.

금호석화는 최근 랑세스, 시노펙 등 글로별 경쟁사보다 한발 빠르게 설비 증설에 나서면서 합성고무 글로벌 리딩 기업으로서 입지를 확고히 한다는 전략을 펴고 있다. 투자는 매우 공격적이다. 이 회사는 올 2월 여수에 제2 고무공장을 준공하며 연간 12만t의 부타디엔고무(BR)를 추가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연간 합성고무 생산능력은 102만t으로 늘었다.

확고한 세계 1위다. 4월에는 차세대 합성고무로 불리는 솔루션스타이렌부타디엔고무(SSBR)를 6만t 추가 증설하기로 결정했다. SSBR 증설은 내년 말부터 EU(유럽연합)를 시작으로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이 도입할 예정인 타이어 라벨링 제도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타이어 라벨링은 타이어의 연비, 젖은 노면 접지력, 소음 등급에 관한 정보를 제품에 의무적으로 표시하도록 하는 제도다. 회사 측은 “일반 범용 제품에서 시장을 선도하는 변화주도형으로 합성고무 제품군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7월 말에는 여수시와 3년간 8800억원을 투자하는 MOU(양해각서)를 맺었다. 이 투자협약에는 금호석화와 계열사인 금호폴리켐, 금호피앤비화학, 금호미쓰이화학이 참여했다. 회사 측은 “친환경 타이어, 의료용 장갑 등 합성고무 수요처가 빠르게 변화하고 성장함에 따라 투자 계획을 1년 정도 앞당기게 됐다”며 “2013년부터 연간 4000억원 정도 추가 매출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금호석화가 전례 없는 호황을 맞고 있지만 현안 역시 많다. 우선 채권단과 공동관리 절차를 빨리 종결하는 게 관건이다. 금호석화가 채권단과 맺은 종결 조건은 크게 네 가지다. ▶채권은행협의회에서 승인한 경영 정상화 계획의 주요 경영목표를 2년 이상 연속 달성하고 그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영업이익 실현 등으로 재무구조가 현저히 개선돼 자체 신용으로 정상적 자금 조달이 가능한 경우 ▶경영 정상화 작업의 졸업 후 남은 채무에 대해 구체적 상환 일정이 명료하게 제시돼 있는 경우 ▶경영 정상화 기간 중 재무제표상 부채비율이 200% 이하인 경우다.

이 네 가지 조건 중 2개 항목을 만족하면 채권단의 공동관리를 마칠 수 있다. 증권가에서는 금호석화가 이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중에는 독자 경영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늦어도 내년 중 자율협약 졸업할 듯금호아시아나그룹과 법적으로 완전한 분리를 위해 오너 일가의 지분 정리도 뒤따라야 한다. 현재 이 회사의 최대주주는 11.96%를 보유한 고 박정구 명예회장(박인천 창업회장의 차남)의 아들인 박철완 부장(해외영업 1팀장)이다. 박 부장은 박찬구 회장의 장남인 박준경 부장(해외영업 3팀장)과 함께 금호석화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박찬구 회장과 박준경 부장의 지분은 합해서 16.32%다.

문제는 금호석화 분리를 원하지 않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일가 지분이다. 박삼구 회장과 아들인 박세창 금호타이어 전무가 보유한 금호석화 지분은 10.45%다. 만약 금호석화가 채권단 자율협약을 졸업한 후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 일가 간에 지분 확보 경쟁이 벌어지면 회사는 다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금호석화 관계자는 “채권단과 맺은 협약대로 박삼구 회장이 금호석화 지분을 매각하는 것이 갈등을 푸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말했다.

박찬구 회장은 올 초 ‘비전 2020’을 통해 금호석화의 중장기 목표를 제시했다. 2020년까지 매출 20조원, 세계 1등 상품 20개를 달성해 글로벌 리딩 화학그룹으로 도약한다는 것이 골자다. 박 회장은 “그룹은 그룹대로, 금호석화는 금호석화대로 각자의 길을 가 최고가 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 핵심 계열사 3인방의 경쟁력

금호피앤비·폴리켐·미쓰이화학 실적 탄탄


금호석화 못지않게 핵심 화학 계열사도 탄탄한 실적과 설비투자로 주목 받고 있다. 금호피앤비화학, 금호폴리켐, 금호미쓰이화학이다. 모두 일본 기업들과 합작으로 설립한 회사다.

금호피앤비화학은 금호석화와 일본 신일철화학이 1976년 공동 설립한 합작투자 회사다. 금호석화가 지분 78.2%를 보유하고 있다. 금호피앤비화학은 가전제품, 휴대전화, 자동차부품, 전기절연재료 등에 원료로 쓰이는 ‘비스페놀-A(BPA)’라는 수지를 생산한다. 생산능력은 지난해 말 기준 세계 7위다. 이 밖에 세계 9위의 페놀 생산능력을 바탕으로 아세톤, 에폭시 등의 화학제품을 생산한다.

회사 관계자는 “2012년 말까지 BPA 15만t 추가 증설을 추진해 세계 5위의 생산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호피앤비화학의 지난해 매출은 1조992억원, 영업이익은 1921억원이다.

금호폴리켐은 자동차부품, 타이어 튜브 등에 폭넓게 쓰이는 고기능성 합성고무인 ‘EPDM’을 전문으로 생산한다. 일본 JSR(옛 일본합성고무)과 50대50으로 투자해 설립했다. 국내 최초로 EPDM 생산을 시작한 금호폴리켐은 현재 이 분야 아시아 1위, 세계 4위의 생산능력을 보유했다. 금호폴리켐은 올 초 2013년 완공을 목표로 여수 국가산업단지 내에 연간 6만t 규모의 공장을 증설한다고 발표했다. 회사 측은 “2013년까지 세계 3대 EPDM 메이커로 도약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매출은 3098억원이다. 71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1989년 일본 미쓰이화학과 손잡고 설립한 금호미쓰이화학도 견실한 실적을 내는 계열사다. 지난해 매출은 3819억원, 영업이익은 235억원이다. 금호미쓰이화학은 자동차 내장재, 냉장고 단열재, 건축 자재 등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MDI를 만든다. 고기능성 폴리우레탄의 핵심 원료다. 금호미쓰이화학은 MDI 국내시장 점유율 1위다. 이 회사 역시 공격적 증설을 추진 중이다. 금호미쓰이화학은 내년 하반기를 목표로 MDI 생산공장 5만t 증설을 추진 중이다. 회사 관계자는 “이번 증설 투자로 연간 1500억원 매출 증대와 500억원의 수입대체 효과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올 1월 금호폴리켐, 2월 금호석유화학, 4월 금호피앤비화학, 7월 금호미쓰이화학이 잇따라 생산 확대를 발표했다. ‘글로벌 리딩 화학그룹’으로 도약하기 위한 시동은 이미 시작됐다.

2011년도 임단협 조인식 장면. 왼쪽부터 울산고무공장 양근주위원장,김성채 대표이사, 울산수지공장 최환혁 위원장, 여수고무공장 신희성 위원장.


■24년 무분규 전통 이어가는 금호석화

임금 3년 동결에도 노사 신뢰


금호석화 임직원의 연봉은 2008년 이후 3년간 동결됐다. 그룹이 총체적 위기에 빠지면서다. 올해는 달랐다. 금호석화 노사는 올 4월 생산직 임금을 9.4% 인상하는 내용의 임금단체협약에 합의했다. 이로써 금호석화는 1988년 이후 24년째 무분규 전통을 이어가게 됐다. 노사 갈등을 겪고 있는 금호타이어와는 대조적이다.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화 직원들이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았다”며 “흡족한 수준은 아니지만 고생한 임직원에게 보상해줄 수 있는 여건이 돼 기쁘다”며 “이런 결정에 흔쾌히 동의해 준 채권단에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임원은 “그동안 그룹 눈치를 보느라 직원 복지에 소극적이었다”며 “직원이 흥이 나야 기업 이윤도 극대화된다는 것이 박 회장의 지론”이라고 말했다. 임단협과 별도로 금호석화는 지난해 말 직원들에게 350%의 특별성과금을 지급했다. 올해는 공채 신입사원 전원에게 아이패드를 선물했다.

회사의 한 임원은 노사화합 비결에 대해 “회장님이 노조를 굉장히 챙긴다”며 “울산, 여수 공장에 갈 때마다 노조 간부, 공장 팀장들과 반드시 회식을 한다”고 말했다(실제로 8월 17일 울산고무공장에 내려간 박 회장은 점심은 노조위원장과 저녁은 팀장급 20여 명과 함께했다). 한 노조 간부는 “회사 문화가 가족적이고 인간적인 분위기”라며 “사측과도 신뢰가 깊은 것이 무분규를 이어가는 이유”라고 밝혔다.

협력업체에 대한 지원도 울산석유화학공단에서는 화제다. 금호석화의 협력사 직원은 900여 명. 이 회사는 올해 용역비를 대폭 올려 협력사 직원의 임금이 약 16% 인상되도록 했다. 또한 협력사 직원의 자녀 대학 등록금에 대해 1인당 300만원, 최대 600만원까지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금호석유화학은 지난해 말 고용노동부와 노사발전재단이 주관하는 ‘2010년 노사문화대상’ 고용노동부장관상을 수상했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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