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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퇴진 이후… ‘팀 쿡’이 끌고 ‘팀 스티브’(잡스가 만든 집단지배체제)가 민다

스티브 잡스 퇴진 이후… ‘팀 쿡’이 끌고 ‘팀 스티브’(잡스가 만든 집단지배체제)가 민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거의 모든 것’처럼 여겨졌다.

그가 느닷없이 애플을 떠났다. ‘잡스 없는 애플은 어디로 가나?’.

전 세계가 이 문제를 놓고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잡스 없는 애플은 다른 애플”이란 견해가 있는가 하면, “잡스가 없어도 애플은 애플”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국 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이견이 많다. 스티브 잡스 사임 이후를 전망했다.
결국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떠났다. 황제의 퇴장이다. 스티브 잡스가 CEO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하자 국내외 IT 전문가들은 “잡스는 21세기의 신화적 CEO”라며 “잡스의 사임은 한 시대가 끝났다는 걸 뜻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과 동격이었고, 애플이 세계 모바일 시장을 휩쓰는 핵심 동력이었다. 누구도 ‘잡스 없는(Jobsless)’ 애플의 미래에 대해 장담할 수 없다. 다만 그의 후계자 팀 쿡이 e메일을 통해 언급한 내용과 애플의 과거를 추적하며 방향을 짐작해 볼 뿐이다.

애플의 새 CEO에 오른 팀 쿡은 우선 애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수의 IT 전문가는 팀 쿡이 오랫동안 스티브 잡스를 보좌해온 만큼 큰 변화 없이 회사를 이끌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가트너의 마이클 가텐버그 애널리스트는 “애플에는 잡스 말고도 많은 사람이 있다”고 긍정적 전망을 내놓았다. 팀 쿡은 CEO에 오른 직후 모든 직원에게 e메일을 보내 혹시 모를 동요를 진정시켰다. 그는 e메일에서 “애플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그것이 우리 DNA”라고 강조했다. 영국 가디언은 팀 쿡의 첫 도전이 10월로 예정된 ‘아이폰 5’의 출시에서 시작될 것으로 예상했다. 아이폰5 출시 행사에 팀 쿡이 CEO로서 처음 등장할 전망이다.

스티브 잡스라는 카리스마가 사라져 언젠가 후광 효과도 빛을 잃을 걸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시장조사기관 엔델그룹의 애널리스트 롭 엔델은 “잡스가 없는 애플은 매우 다른 애플이 될 것”이라며 “잡스가 없는 애플에서는 마법을 볼 수 없을 것이며 팀 쿡은 아이콘적 사람이 아니다”고 애플의 미래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주요 임원 이탈 가능성도애플의 주요 임원이 이탈할 가능성도 있다. 흔히 창업자나 CEO의 카리스마가 강하거나 영향력이 클수록 이들의 부재가 구심점 상실, 의사결정 지연, 신사업 동력 약화로 이어지기 쉽다. 더구나 애플의 임원들은 주가가 급등하면서 스톡옵션을 행사할 기회를 잡았다. 반면 인센티브를 받을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작아졌다. 애플스토어를 성공으로 이끈 론 존슨이 백화점 JC페니로 자리를 옮겼고, 맥 소프트웨어 책임자 버트란드 설렛도 지난 3월 애플을 떠났다. 정권택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는 “애플은 스티브 잡스의 카리스마와 비전 제시, 전략적 실행 능력에 좌우될 만큼 잡스의 위상이 절대적이었다”며 “이런 회사일수록 프로세스와 사규, 기업문화로 리더십 공백을 메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팀 쿡은 ‘경영관리의 천재’로 불리며 COO (최고운영책임자)로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애플의 실질적 2인자로서 운영·구매 업무를 총괄했다. PC 회사 컴팩에서 전무로 일하다 1998년 3월 애플에 부사장으로 합류했다. 그는 애플로 옮겨오자마자 부품 조달과 생산 방식을 대수술했다. 부품업체들을 애플의 제품 조립공장 근처로 옮기고 아웃소싱(외주 생산)을 대폭 확대했다. 부품 거래처를 절반 이하로 줄였으며 제품 조립라인은 폭스콘 등 중국 공장으로 일원화해 70일치 넘게 쌓여 있던 재고를 2년 만에 10일 이하로 줄였다.

이런 업적에도 불구하고 팀 쿡의 리더십은 아직 증명되지 않은 상태다. 따라서 애플은 팀 쿡이 이끄는 집단지도체제가 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애플의 선임 부사장으로 재직했던 제이 엘리엇은 미국 포브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잡스 없는 애플을 절망적으로만 볼 필요가 없다”며 “잡스가 만든 집단 지배구조 ‘팀(team) 스티브’가 애플을 이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포레스터리서치의 찰스 고빈 수석연구원은 “예전 애플이 한 명의 절대자에게 결재 받는 체제였다면 앞으로 애플은 경영진끼리 힘을 합쳐 일하는 협업체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팀 스티브’ 체제는 2003년 말 잡스가 췌장암에 걸렸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와 2009년 잡스의 병가 때 빛났다. 잡스는 지난 8년 동안 병가 등으로 회사 경영에서 한발 물러났던 때가 있었지만 회사가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팀 체제를 구축해놨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었다. 잡스는 지난해 아이패드1 개발과 출시 당시에도 대부분 병가로 회사를 떠나 있었다. 그럼에도 그 무렵 나온 아이패드는 아이팟과 아이폰에 이어 또 하나의 전설적 제품이 됐다.

팀 쿡과 더불어 애플의 감성적 디자인 혁명을 이끈 수석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두뇌인 운영체제 iOS의 개발을 지휘한 스콧 포스털, 인터넷서비스부문 담당이자 전천후 해결사로 통하는 에디 큐 , 마케팅 전략을 맡아온 필 실러 등은 ‘팀 스티브’ 체제에서 더욱 부상할 전망이다. 특히 필 실러는 한때 애플을 떠났다가 1997년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임시 CEO직을 수락하자마자 가장 먼저 재영입한 인물이다. 잡스가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마다 함께 등장했을 정도로 아꼈다.



‘잡스 없는 애플’ 전망 극단현재 필 실러는 글로벌 제품 마케팅 부문을 맡고 있다. 마케팅을 비롯해 제품 개발 전반을 책임진다.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등 애플의 전성기를 이끈 제품을 담당해 큰 성과를 내왔다. 2009년에는 잡스 대신 프레젠테이션을 직접 진행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개발된 모든 제품의 개발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디자인을 총괄하는 영국 출신의 조너선 아이브는 1992년 애플에 입사했지만 그다지 주목 받지 못했다. 그러다 1997년 잡스가 돌아온 후 그의 역할이 달라졌다. 잡스는 무명이었던 아이브에게 디자인을 총괄하도록 했다. 그 후 아이브는 아이맥 시리즈, 아이팟, 아이폰 등의 디자인을 담당하며 세계적 디자이너가 됐다. 2006년 그는 영국 왕실로부터 제품 디자이너 중 처음으로 기사 작위를 받았다. 디자인에 남다른 애착을 보였던 잡스는 아이브와 매일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고받을 정도로 아꼈다. 특유의 흰색 사용과 비움의 미학으로 세계 IT시장 디자인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스콧 포스털 역시 1997년 스티브 잡스의 귀환과 함께 애플에 영입됐다. 애플에서 쫓겨난 잡스는 PC 회사 넥스트를 만든 뒤 스콧 포스털과 함께 OS를 개발해 왔다. 애플에 영입된 뒤 그는 아이팟 인터페이스와 아이튠즈 등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이후 아이폰, 아이패드 등에 탑재된 iOS 및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성공시키며 스마트폰 OS 시장에 파란을 일으켰다.

애플이 집단경영체제를 유지한다 하더라도 ‘잡스리스’ 애플을 겨냥한 구글, MS, 삼성의 공세는 더욱 치열할 전망이다. 구글이 선봉에 설 공산이 크다. 구글은 모토로라를 인수해 애플식 수직통합형 모델을 구축했다. 구글은 강력한 소프트웨어 능력에 단말기 제조 능력까지 확보하면서 애플에 대적할 수 있는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다. 게다가 삼성전자-HTC-LG전자 등 구글 연합군을 앞세워 모바일 OS 점유율을 급속히 높여가고 있다. 2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OS 점유율에서 안드로이드는 47.7%로 1위를 차지했다. 구글은 세계 최대 검색엔진에다 유튜브, 구글 어스, 스트리트뷰 등 고부가 콘텐트도 확보하고 있어 잡스의 DNA가 사라질 경우 애플의 아성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MS도 차기 윈도폰 OS인 망고를 9월에 발표하며 역전을 노린다. 애플과 구글에 비해 아직 기반은 약하지만 윈도폰 앱을 3만 개로 확대하고 윈도폰 마켓 플레이스도 문을 여는 등 전투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특히 MS의 노키아 인수설이 꾸준히 제기되는 등 단말기 직접 제조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구글 연합군 반격 거세질 듯글로벌 IT업계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로 대표되는 모바일 분야에서 애플-구글-MS의 삼각 구도가 심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잡스의 부재가 삼성전자 등 하드웨어 강자들에게 희소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구글, MS의 공세가 더욱 거칠어져 국내 기업의 입지가 오히려 좁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 한국IT 복잡한 셈법

애플 힘 빠지면 삼성 ‘굿’ LG디스플레이 ‘배드’


‘Apple’s Loss May Be Samsung’s Gain.’ 한 외신이 잡스 이후의 애플에 대해 다룬 기사 제목이다. 직역하면 ‘애플의 손해는 곧 삼성의 이득’이란 뜻이다. 잡스의 은퇴 이후 세계 IT기업 가운데 삼성전자와 애플의 관계는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애플이 스마트폰·태블릿PC 시장 주도권을 놓고 삼성전자와 치열한 특허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다. 잡스 은퇴에 대한 삼성전자의 공식 반응은 지금도 “노 코멘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남의 회사 CEO의 퇴진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게 우리 입장”이라고 말했다. 권오현 삼성전자 DS총괄 사장도 “(애플과의 관계에)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내부적으로는 잡스 은퇴로 애플과의 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관심사는 애플과 삼성전자가 벌이는 특허 소송전의 향방이다. 4월 15일 애플이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낸 이후 두 회사는 ‘사활을 건 싸움’을 펼치고 있다. 삼성전자와의 특허소송은 잡스가 주도했다. 따라서 차기 애플 CEO인 팀 쿡이 들어서면 뭔가 변화가 있지 않을까라는 전망이 나온다.

당장 증권가에서는 “팀 쿡은 삼성전자와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어 특허소송에도 긍정적 소식이 될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팀 쿡은 애플 COO로서 삼성전자와 부품 조달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다. 한국에도 수차례 왔을 정도로 애플 내 대표적 ‘지한파’로 통한다. 삼성전자 COO인 이재용 사장과도 친분이 두텁다.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재용 사장과 팀 쿡이 친분 관계가 있는 건 맞지만, (그런 관계가) 소송전에 특별한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 잘돼도, 못돼도 고민잡스 퇴임 이후 애플의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삼성전자가 반사효과를 누릴 것이란 시각도 있다. 잡스의 창의성에 많이 의존했던 애플이 향후 시장 주도력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블룸버그통신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애플은 그동안 잡스의 카리스마적 경영에 의존해 왔다”며 “잡스의 사임으로 애플이 한계에 직면할 수 있다”고 전했다.

애플의 경쟁력 약화는 삼성전자와 LG전자에 ‘굿 뉴스’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힘을 잃는다는 점에서다. 무엇보다 애플과 세계 스마트폰·태블릿PC 시장 1, 2위를 다투고 있는 삼성전자에는 이만한 호재도 없을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잡스의 사임은 삼성전자, LG전자에 심리적 호재인 건 분명하다”며 “다만 팀 쿡이 그동안 잡스를 대신해 경영을 이끌어 봤던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에서 애플의 급격한 추락은 아마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애플의 경쟁력 약화가 국내 기업에 꼭 좋은 건 아니라는 것이다. 일단 삼성전자 입장에서도 애플의 추락은 반가운 뉴스만은 아니다. 애플은 삼성전자의 최대 라이벌인 동시에 최대 고객사다. 지난해에만 6조원어치의 반도체와 LCD패널을 구입해 일본 소니에 이어 둘째로 큰 고객사였다. 올 들어서는 1분기에 2조1450억원어치의 부품을 구입해 소니를 제치고 최대 고객사로 올라섰다. 연간 기준으로는 올해에만 10조원이 넘는 부품을 사 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애플이 경쟁력을 잃게 되면 아이폰·아이패드용 부품을 팔 최대 고객을 잃게 되고 삼성전자의 수익성도 동반 추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LG디스플레이와 하이닉스반도체에도 애플의 경쟁력 약화는 악재다. 애플은 LG디스플레이의 최대 고객이다. 아이폰, 아이패드용 액정화면을 LG디스플레이가 많이 공급한다. 권영수 LG디스플레이 사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애플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업체”라고 했을 정도다. 하이닉스도 마찬가지다. 하이닉스는 애플에 아이폰, 아이패드용 D램과 낸드플래시를 공급한다. 특히 최근 들어 애플이 삼성전자를 견제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내심 ‘애플이 삼성전자에서 공급 받던 물량을 하이닉스로 넘기지 않을까’ 하는 반사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지라 애플을 바라보는 국내 전자·IT기업들의 셈법은 복잡하다. 한 기업 관계자는 “애플이 잘못 돼도 골치고, 잘해도 머리 아픈 상황”이라며 “쿡 체제하의 애플이 어떤 전략을 펴는지 따져가면서 이해득실을 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태명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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