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센텀시티 개발 10년, 돈 빨아들이는 블랙홀 됐다

#1 9월 15일 오전 10시30분, 이재문(45) 삼성증권 SNI해운대(가칭) 개설준비위원장이 부산 중동에 있는 파라다이스호텔 부산을 찾았다. 지점 공사현장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파라다이스호텔은 이 일대에서 객실료가 비싼 곳 중 하나다. 삼성증권은 10월 말 이 호텔 신관 1층에 SNI 지점을 열 계획이다. 이 위원장은 “원래 있던 카페 철거를 끝내고 내벽을 세우는 날”이라고 말했다. SNI는 삼성증권의 VVIP PB센터로 금융자산 30억원 이상 고액 자산가가 고객이다. 서울에선 호텔신라, 코엑스인터컨티넨탈호텔 등 5곳에 입점했고, 지방 SNI로는 1호다. 올해 6월까지 서울 방이동 올림픽지점장으로 있던 그는 공사 현장소장과 점심을 먹고, 오후에 아이디어 미팅을 한 후 부산 지역 중소기업 CEO와 저녁 약속이 있다며 바삐 걸음을 옮겼다.
#2 9월 17일 토요일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1층 루이뷔통, 샤넬 매장 앞에 몇 명의 쇼핑객이 줄을 서 있다. 샤넬 매장을 들여다보니 점원 한 명당 고객 한 명을 맡아 일일이 응대하고 있었다. 밖에서 기다리는 쇼핑객들의 표정은 지치기는커녕 오히려 밝아 보였다. 가방을 사러 왔다는 이현영(37·가명)씨는 “기다리며 다른 매장을 둘러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라며 웃었다. 백화점 관계자는 “주말에는 명품 매장 앞에 줄이 늘어선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며 “지난 5월 샤넬이 가격을 올린다는 소식에 30~40명이 줄을 서 명품을 사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다른 명품 매장에서는 중국인들이 쇼핑을 하고 있었다. 매장 관계자는 “한 중국인 고객이 지인들에게 선물한다며 같은 디자인 가방을 다 포장해 달라고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 고객이 한번에 쓴 쇼핑 비용은 2000만원을 훌쩍 넘는다.
해운대에 돈이 몰리고 있다. 늦더위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던 9월 15일, ‘100년을 내다보는 100% 완벽한 도시’라는 뜻의 센텀시티에서부터 돈맥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출발점은 홈플러스 센텀시티점. 매장 안으로 들어가자 여느 대형매장과 다를 것이 없었다. 다시 밖으로 나와 걸음을 옮기는데 BMW 한 대가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좀 더 걷다 보니 주차장 출구로 포르쉐 한 대가 나왔다. 잠시 횡단보도에 서 있어 보니 심심찮게 수입차가 지나다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길 건너 벡스코(부산전시컨벤션센터)가 보인다. 주변의 높은 건물들 사이로 신세계백화점의 로고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이 부산지하철 2호선 센텀시티역 주변 중심가다.
30억원 이상 자산가 위한 PB센터 들어서역 주변에는 금융회사가 몰려 있다. 역을 중심으로 반경 1km 안에 증권사만 11개다. KB국민은행, 경남은행, 기업은행, 부산은행, 우리은행, 외환은행, 한국씨티은행 등 은행 간판을 거리마다 찾을 수 있었다. 대우월드마크센텀 2층에 자리한 대우증권 PB클래스센텀시티에 들어가 봤다. 문에서 몇 발자국 떼기도 전에 직원 두 명이 나와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아늑한 소파, 미술품으로 장식한 고급 인테리어가 서울 강남의 PB센터 못지않았다. 작년 12월에 문을 연 대우증권 PB클래스센텀시티는 3개월 만에 예탁자산 기준으로 11개 증권사 중 6위에 올랐다. 이 지점의 이창현 센터장은 “골프레슨, 와인스쿨, 안티에이징 같은 감성 마케팅은 물론, 전국 어느 PB센터에서도 시도한 적이 없는 ‘고객과 올레길 걷기’ 이벤트를 벌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아직은 PB센터보다 일반 지점이 많지만 자산 규모는 적지 않다. 지난해 말 기준 11개 증권사의 예탁자산은 2조4000억원 정도다. 이 센터장은 “최근 PB센터 개설이 붐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연말이나 내년 초 우동에 투체어스해운대센터를 개점할 계획이다. 기업은행 역시 하반기 중 해운대 지역에 PB센터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하나은행, 외환은행, 한국씨티은행은 일반 지점이지만 PB들이 활동한다.
증권가 밀집지역에서 5분 정도 걷자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이 나왔다. 세계 최대 백화점이라는 현수막이 걸린 신세계백화점은 밖에서 보기에도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우동에 사는 안미나(34·여)씨는 “추석 연휴 직후라 조용한 편이지만 평소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일본인, 중국인 관광객들로 붐빈다”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 앞에서 사진 찍기가 외국인들의 부산 관광 코스 중 하나라는 것이다.
명품 판매로 백화점 매출 두 자릿수 신장

바로 옆 롯데백화점 역시 매년 10~15%의 매출 신장률을 보였다. 롯데백화점의 전체 매출 중 명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17%다.
해변가에 위치한 마린시티에서는 수입차가 더욱 자주 눈에 띄었다. 2차로 횡단보도에 수입차 두 대가 나란히 서는 것은 흔한 광경이고, 포르쉐가 연이어 3대씩 지나가기도 했다.
해운대는 수입차 업체의 격전지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여름에는 수입차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며 “수입차가 너무 많아 회사에서 사고 예방 교육을 따로 할 정도”라고 말했다. 수입차 매장이 해운대구에 몰린 것은 2007년부터다. 해운대 해수욕장 근처에 BMW, 도요타, 아우디 매장이 있다. 수영역 앞길에는 포르쉐, 메르세데스 벤츠, 닛산 간판이 보였다.
포르쉐 부산점은 서울, 경기 지역 외에 유일한 국내 지점이다. 매장 안에 들어가자 2층으로 된 전시장에 카이엔, 파나메라 등이 전시돼 있다. 카이엔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모델이다. 2007년에 개장한 포르쉐는 첫해 10대, 2008년 34대, 2009년 29대, 2010년 70대를 판매했다. 전국 판매량의 10% 정도가 이곳 부산점에서 팔린다. BMW, 벤츠 부산점 역시 지난해 판매대수가 1467대, 1165대로 전국 판매량의 7~8%를 차지한다. 올해 상반기에는 닛산, 렉서스, 도요타 등 일본 차들의 부진으로 부산 지역 수입차 판매량이 30% 줄었지만 포르쉐, BMW, 벤츠 등 독일 3사의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20% 정도 늘었다. 이지호 포르쉐 부산지점장은 “포르쉐 고객의 40%가 해운대구에 집중돼 있다”며 “자산 100억원대 이상 CEO, 의사 등 전문직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부산 포르쉐 고객 중 40%가 해운대 주민해운대구의 상권은 부동산 개발과 맞물려 더 활기를 띠고 있다. 마린시티의 고층 주상복합빌딩 1층에는 테라스가 있는 카페나 고급 음식점이 들어서 외식문화를 바꿔놓았다. 특히 10월 입주를 앞둔 현대아이파크(72층)와 12월 말 입주를 시작하는 두산위브더제니스(80층)는 부동산 업계의 핫 이슈다.

현대아이파크의 최고층 347㎡(105평)형의 분양가는 35억원 정도다. 두산위브더제니스의 325㎡(98평)형의 분양가는 43억원 선. 업계 관계자들은 주로 경남 양산, 녹산 등에 회사를 둔 CEO들이 이곳으로 이사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인근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분양을 시작한 2008년 당시 수천만원에서 최고 4억원까지 프리미엄이 붙었다”고 말했다. 이 두 빌딩에는 5성급 호텔, 명품 숍 등이 들어서 입주가 시작되면 주변 상권의 판도가 바뀔 전망이다.
해변의 고층 주거형 콘도도 인기다. 이 지역에서 가장 먼저 지어졌다는 포스코더샵 아델리스는 211㎡~278㎡형이 10억~25억원에 거래되고 있다. 해변에 인접한 팔레드씨드는 연예인들이 자주 온다고 알려진 곳으로 배우 배용준이 구입해 화제가 됐다. 마린시티에서 3년 전부터 영업해 온 부동산 중개업자는 “포스코더샵 아델리스, 대우월드마크해운대, 대우트럼프월드마린 같은 주거형 콘도는 주로 서울 자산가들이 사놓고 휴가 때 이용하는 세컨드 하우스나 외국인 손님이 왔을 때 접대하는 용도로 쓴다”고 말했다. 외국인 거주자도 많다. 이 중개업자는 “러시아, 노르웨이, 영국, 네덜란드인 선박 기술자들이 주를 이루고 일본인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월 300만~450만원을 내고 주거형 콘도에 장기 체류한다. 외국인 전문 대여만 하는 부동산이 있을 정도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자 동백섬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동백섬은 2005년 누리마루에서 APEC이 개최된 이후 유명 관광지가 됐다. 해운대구는 이 지역을 관광특구로 개발할 계획이다. 현재 중동에 108층 높이의 해운대관광리조트를 건설 중이다. 마린시티에는 서울의 구로디지털단지처럼 벤처타운을 조성할 계획이다. 액센추어 등 세계적 컨설팅 회사를 비롯해 630여 개 IT·영상·방송업체가 입주했다. 경남 김해, 양산, 녹산 등으로 빠져나갔던 기업들도 다시 돌아오고 있다.
헬스케어 업체 디오는 2008년 경남 양산에 있던 본사를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로 옮겼다. 디오는 매출액 500억원대의 국내 임플란트 2위 업체다. 이 회사 김영일 부장은 “해운대구의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이전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3년이 지난 현재 이전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우선 접근성과 숙박시설이 좋아 전국 3000여 명의 의사와 관계가 한층 친밀해졌다. 의료관광지 조성에 따른 수혜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실제 이전 후 거래가 1000여 건 더 늘었고, 매출은 매년 30~50% 상승했다.
해운대구를 한 바퀴 돌고 나면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떠오른다. 센텀시티 지역은 원래 수영비행장이었고, 마린시티는 멸치잡이를 하던 매립지였다. 이 두 구역이 있는 우동뿐 아니라 중동의 달맞이동산도 맛집코스로 바뀌었다. 1993년에 조성된 신시가지 좌동은 백병원을 중심으로 의료관광 특구를 추진 중이다. 센텀시티 개발을 시작한 지 10여 년 만에 해운대에서 ‘쩐의 전쟁’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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