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수록 치열해지는 연비 전쟁- 미래차 생존은 연비에 달렸다

미국·EU·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내년부터 연비 기준을 대폭 강화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에너지를 아끼려는 게 기본 취지다. 자동차 회사 입장은 다르다.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당장 벌금을 물어야 한다. 고연비(친환경차)의 선두주자인 폭스바겐도 현재 수준으로 차를 만들면 내년에 33억 유로의 벌금을 내야 할 판이다. 더구나 연비 나쁜 회사로 인식되면 차 팔기도 어려워질 수 있다. 마케팅 수단의 하나이던 연비가 생존의 문제로 바뀐 것이다.
이에 따라 연비 전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첨단기술을 동원해 L당 100㎞ 넘게 달리는 차까지 나오고 있다.
공인연비가 실제 주행 때보다 20∼40%까지 떨어지게 마련이어서 나온 ‘뻥 연비’ 논란은 옛말이 될 수 있다. 연비를 1%라도 높이려는 세계 자동차 업계의 피나는 노력과 차종별 최고 연비 차도 살펴봤다.#1. EU(유럽연합)가 ‘자동차 배기가스 기준’을 대폭 강화한다. EU는 2012년부터 새로 파는 차량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허용 기준(㎞당 130g)을 초과할 때마다 자동차 생산업체에 단계적으로 벌금을 매기기로 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연비와 직결돼 있다. 둘의 상관관계는 99.9%에 이른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라는 건 연비를 높이라는 말과 같다. 규제 첫해인 내년에는 허용 기준 만족 차량이 전체 판매 차량의 65%를 넘지 못하면 벌금을 내야 한다. 2013년에는 판매 차량의 75%, 2014년에는 85%, 2015년에는 100%로 규제는 갈수록 강화된다. KOTRA는 최근 발간한 ‘선진국의 환경규제와 기업 대응’ 사례 보고서에서 친환경차 기술의 선두주자인 독일 폭스바겐도 현재 수준으로 차를 만들면 내년에 33억 유로의 벌금을 내야 한다고 분석했다.
#2.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7월 29일 2025년까지 연비를 지금의 배 수준으로 높인 새 연비기준안을 공개했다. 새 기준에 따르면 2025년까지 평균 연비가 지금의 2배 수준인 갤런당 55마일 또는 L당 23.4㎞ 수준으로 올라간다. 그 전인 2016년까지 미국에서 운행되는 차량의 전체 평균 연비를 갤런당 35.5마일로 올려야 한다(2009년 현재 갤런당 평균 25마일). 특히 일반 승용차는 같은 기간 갤런당 39마일의 연비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소형 트럭은 갤런당 30마일까지 연비를 개선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새 연비 기준이 미국의 외국산 원유 의존도를 줄이는 의미 있는 발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워싱턴 컨벤션센터 연설에는 포드, 제너럴모터스, 크라이슬러, 혼다, 도요타 등의 대표가 함께 자리했다.
연비 기준 못 맞추면 벌금 물어야이들 못지않은 자동차 강국인 일본 정부는 내년 새 자동차 연비기준안을 시행할 예정이다. 새 기준에 따르면 2009년 현재 L당 16.3㎞인 일본 자동차의 평균 연비를 2020년까지 24.1% 개선해 L당 주행거리를 약 20.3㎞로 끌어올리도록 의무화할 계획이다. 캐나다 역시 내년에 승용차를 시작으로 2017년에는 중대형 차량까지 배출가스 기준 미달 차량에 벌금을 부과할 예정이다.
한국도 이미 규제안을 내놨다.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는 2015년까지 L당 17 ㎞/L 또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140g/㎞ 이하로 맞추도록 했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단계적으로 적용하고, 2012년부터 자동차 회사를 대상으로 벌금을 부과할 방침이다. 미국 자동차 업계에서 이에 반발할 정도로 기준이 엄격하다. 게다가 내년부터 자동차 연비 1등급 기준이 현행 L당 15㎞에서 16㎞로 상향된다. 이에 따라 1등급 비중도 7.1%로 낮아진다. 1등급 비중은 지난해에 17%까지 올라갔다. 자동차 연비 라벨에 도심 주행 연비, 고속도로 주행 연비, 도심과 고속도로 주행의 가중평균치인 복합연비 등도 함께 표시해야 한다. 지금은 도심 주행 연비만 표시하고 있다. 지식경제부 에너지절약협력실 권기만 사무관은 “내년에 출시되는 차량에는 바로 바뀐 제도를 적용하고, 기존 판매 차량은 준비기간을 거쳐 2013년부터 적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연비 규제가 더욱 강화되면서 세계 자동차 업계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연비가 매력적인 마케팅 수단에서 생존의 키워드로 달라지고 있어서다. 연비(또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벌금을 내야 할 뿐만 아니라 차를 팔기 어려워진다. 당장 남은 시간도 많지 않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장인 폭스바겐코리아 박동훈 사장은 “독일 본사에서는 이미 대형차 라인업을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전했다. 대형차가 많으면 아무래도 전체 평균 연비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박 사장은 이어 “연비만 너무 강조하다 보면 퍼포먼스(성능)가 떨어져 운전의 즐거움이 줄어들 우려가 있어 둘의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게 자동차 업계의 고민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연비 좋은 소형차가 거의 없는 쌍용자동차는 불만이 적지 않다. 기본적으로 덩치 큰 차가 많아 새로운 연비 기준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공인연비를 측정하는 기관 가운데 하나인 자동차부품연구원의 서영호 박사는 “현대·기아차는 국내외 새 연비 기준을 거의 맞출 수 있고 GM대우도 포트폴리오를 잘 짜면 어렵지 않겠지만 쌍용자동차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구개발 현장에서도 연비를 둘러싼 고민이 깊다. 현대·기아차 기술연구소 연비개발팀의 김세준 책임연구원은 요즘 정신이 없다. 연구소에서 가솔린·디젤 엔진은 물론 하이브리드카, 수소연료전지차 등도 동시에 개발하고 있어서다. 원가 절감이 관건이지만 기존 가솔린·디젤 엔진에 새로 적용할 기술이 많다는 것이다. 전혀 새로운 기술은 말할 것도 없다. 그는 “하이브리드카가 예상보다 빨리 대중화 단계에 들어섰다”며 “수소연료전지차는 워낙 비싸고 인프라도 부족해 대중화가 쉽지 않을 듯하지만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라 개발팀이 바쁘다”고 설명했다.
연비는 자동차가 에너지(연료)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단, 연비는 상대적 수치다. 같은 차라도 개인의 운전습관과 주행환경에 따라 숫자가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등장한 게 공인연비다. 공인연비는 자동차 업체가 아닌 국가가 ‘공인’한 시험기관이 측정한다. 국내에서는 자동차부품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자동차공해연구소, 자동차성능시험연구소 등에서 잰다. 국내에서 파는 수입차 연비도 여기서 새로 잰다. 승용차는 배기량에 상관없이 연비에 따라 1~5등급으로 나눈다. 배기량 큰 차 가운데 좋은 연비등급을 찾기 힘든 이유다.
‘뻥 연비’ 사라질까공인연비를 표시하는 단위는 나라마다 제각각이다. 미국에서는 1갤런의 연료로 달릴 수 있는 거리를 마일(mpg)로 표시한다. 유럽연합에서는 100㎞를 달릴 때 소비하는 연료량을 리터(L/100㎞)로 표시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같다. 연료 1L로 주행할 수 있는 거리(㎞/L)를 단위로 쓴다. 나라마다 연비를 재는 기준이 달라 똑같은 차라도 결과도 다르게 나온다. 나라별로 공인연비를 재는 기준은 한국이 상대적으로 깐깐한 편이다. 자동차부품연구원의 서영호 박사는 “자동차 업계의 평균 연비는 미국이 가장 떨어지지만 공인연비 표시 기준은 미국이 가장 까다로우며, 한국은 미국식을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는 사려는 사람 입장에서 연비는 가격·디자인과 더불어 구매의 중요한 요소다. 국내 소비자들과 시민단체는 그러나 오래전부터 정부가 발표하는 공인연비를 ‘뻥 연비’라고 불렀다. 공인연비가 실제 주행 때보다 20∼40%까지 떨어지게 마련이어서다. 앞으론 조금 다를지 모른다. 기술의 발달로 이런 비난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미래형 고연비차가 속속 나올 전망이다. 폭스바겐은 L당 연비 111㎞를 자랑하는 컨셉트카 ‘포뮬러 XL1’을 1월 카타르에서 열린 모터쇼에 선보였다. 아직 양산체제를 갖추진 않았다. 도요타는 프리우스의 연비를 30%가량 개선한 소형 하이브리드차 ‘아쿠아’를 내년 초 내놓는다. 아쿠아의 연비는 L당 4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요타는 첫 번째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인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프리우스’를 2011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내놨다. 내년 초 일본과 미국·유럽에서 먼저 판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내연기관과 전기모터 두 종류의 동력을 조합해 구동하는 하이브리드카에 일반 가정에서 충전해 쓸 수 있는 배터리를 장착한 차세대 친환경 자동차를 말한다. 최대 180㎞/h의 속력을 내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프리우스’는 한 번 충전으로 23㎞를 주행한다. 연비는 L당 47.6㎞로 알려졌다. 볼보는 내년에 L당 53㎞를 가는 V60 디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내놓는다. 세계 첫 디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볼보와 스웨덴의 전력회사인 바텐폴이 손을 잡고 만들었다.
현재 고연비(친환경) 기술은 클린 디젤과 하이브리드가 대세다. 특히 성숙한 디젤 기술보다는 하이브리드 쪽의 발전 잠재력이 크다는 평가다. 미래에셋증권의 김윤기 애널리스트는 “디젤과 하이브리드에 선수를 뺏긴 미국이 전기차에 집중하려다 하이브리드로 돌아서는 추세이고 전기차에 올인하던 중국도 하이브리드를 선호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한국투자증권의 이현영 애널리스트는 “디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기술에서 볼 수 있듯 기존 기술을 조합해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역량이 중요하다”며 “미래 고연비 차량 개발은 돈과 더불어 특허를 누가 많이 갖고 있느냐의 전쟁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동차 고객 입장에선 이들이 난타전을 벌일수록 남는 장사가 될 수 있다. 차값이 더 오를 수도 있지만 자동차 업계의 고연비 전쟁이 치열할수록 ‘연비 좋고 잘 달리는 차’를 탈 수 있는 확률은 그만큼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 연비에 관한 오해와 진실
내리막길서 기어 중립 놓지 말아야
Q 차량은 연식이 오래될수록 연비가 떨어진다?
A 아니다. 2년까지는 실제 연비가 더 좋아지는 게 정석이다. 대림대 자동차학과 김필수 교수는 “자동차 내연기관은 어느 정도 사용하면 부드러워지기 때문에 연비는 오히려 더 좋아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차를 산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체감 연비가 줄었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많다. 이유는 운전 습관과 같은 외적 요인 때문이다. 한국석유관리원 이민호 박사는 “올 초에 체감연비와 표시연비가 차이 나는 원인을 조사해 본 결과 급감속이나 겨울철 엔진 관리 등 운전 습관에 따른 차이가 가장 컸다”며 “작은 습관의 변화만으로도 최대 20%의 연료를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Q 여름엔 에어컨보단 창문을 여는 게 연료 절감에 효율적이다?
A 상황에 따라 다르다. 창문을 열면 공기 저항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라대 장성국 교수는 “에어컨을 틀면 연료 손실이 20% 정도 발생한다. 하지만 고속 주행 때 저항에 따른 손실은 최대 25%까지 발생한다”고 말했다.
Q 신호대기나 내리막에서 기어를 중립(N)으로 놓으면 연료 절감에 효과가 있다?
A 그렇다. 하지만 하지 않는 게 좋다. 임옥택 교수는 “공회전을 줄여 연료를 아낄 수 있는 건 맞지만 효과는 아주 미미하다”며 “사고를 유발할 수 있으니 시도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다. 또 기어를 중립에 맞춘 상태라는 걸 깜빡 잊고 가속페달을 밟으면 변속기에 충격을 줘 엔진의 수명을 단축시키기도 한다. 내리막에서의 중립 역시 시도하지 않는 게 좋다. 최근에 생산되는 자동차는 내리막에서 연료 공급을 차단하는 장치들이 이미 달려 있어 중립 상태로 놓는 것은 위험한 상황만 초래할 뿐 큰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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