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가을에 떠나는 동남아 여행 ① - 라오스 루앙프라방
Travel 가을에 떠나는 동남아 여행 ① - 라오스 루앙프라방
우기가 끝난 9월의 라오스 루앙프라방. 이곳의 아침은 승려들이 깨운다. 새벽녘 푸른 기운이 걷히는 시사방봉 거리 저편에서 주황색 가사를 걸친 승려들이 점점 그 모습을 드러낸다. 루앙프라방을 상징하는 새벽 탁발 행렬이 시작된 것이다. 각 사원의 승려들은 노승을 선두로 줄지어 시주들 앞을 지난다. 흑백 복장 일색인 주민들 앞을 걷는 그들 모습이 마치 오래된 흑백사진의 한 부분에만 색깔을 입힌 것 같은 느낌이다.
승려들은 시주들을 지나치며 어깨 줄로 늘어뜨린 바리때 뚜껑만 반쯤 열었다 닫는다. 시주들은 무릎을 꿇은 채로 또는 무릎으로 엉거주춤 일어서 공양함에 미리 준비한 찹쌀떡이나 바나나를 넣는다. 이 새벽 행렬은 200여 명의 승려와 그보다 더 많은 주민이 참여하지만 전혀 소란스럽지 않다. 승려들 모두 맨발이어서 신발 끄는 소리가 없고, 다문 입에서는 숨소리조차 새지 않는다. 그저 관광객이 누르는 카메라의 셔터 소리만이 호들갑스러울 뿐이다.
수많은 외침 이겨낸 ‘사원의 도시’국토의 75%가 푸른 숲으로 덮여 있고, 북부의 산과 남부의 평원을 넉넉히 적시며 메콩강이 흐르는 나라 라오스. 그중에서도 북부 지역 루앙프라방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느긋하고 평화로운 도시로 꼽힌다. 태국의 화려함도, 베트남의 열정도 아닌, 느리고 고요한 삶의 방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황금 지붕을 인 오래된 사원들과 프랑스풍 저택들이 독특한 조화를 이루는 이곳은 1995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만큼 고유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다. 루앙프라방은 14세기 란 상(Lan Xang) 왕국의 수도가 된 이래 라오스에 들어선 여러 왕국의 수도이자 종교 및 상업 중심지로 번성했다. 그런 까닭에 왕궁과 사원, 수많은 불상을 간직하고 있다.
이곳 문화유적 중 가장 화려하고 매력적인 것은 시내 곳곳에 자리한 불교사찰이다. 이들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하는 곳은 1560년 전통적인 라오스 건축기법으로 지은 왓 시엥 통 사원이다. 사원의 세 겹 지붕이 특이하고,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황금색 지붕이 눈부시다. 사원 건물은 모두 색유리와 금으로 장식해 화려함을 뽐내는데, 특히 본전 벽에 새겨진 부조는 정교하고 아름답다. 수많은 외세의 침략에도 본 건물은 그대로 살아남았다.
왓 아함, 왓 마이 수반나푸마캄, 왓 마노롬, 왓 타트 루앙, 왓 비수나라트, 왓 시엥 무안, 왓 시엥 통 등도 유명하다. 왓(Wat)은 라오스어로 사원이라는 의미로, 라오스 사원은 현재도 가난한 이들에게 교육기관 역할을 하고 있다.
메콩강가에 위치한 왕궁박물관은 라오스의 문화를 알기에 좋은 곳이다. 라오스 왕조의 마지막 왕인 시사방봉 왕의 궁전이었다. 전통적인 라오스 양식과 프랑스 스타일이 조화를 이룬 건물이다. 화려한 왕관을 비롯한 란 상 왕조의 유물과 종교 유물 등을 전시하고 있으며, 루앙프라방의 명물인 황금불상이 소장된 곳으로 유명하다.
이 불상은 처음 스리랑카에서 만들어져 11세기에 라오스로 들어와 보물로 숭배되었으며, 루앙(큰)프라방(불상)이라는 도시 이름 자체가 이 불상에서 시작했다. 특히 프랑스 화가가 왕의 접견실에 그린 벽화에는 민초들의 애틋한 일상이 잘 나타나 있다.
야시장에서 만난 순박한 사람들라오스의 불교문화는 메콩강을 40㎞ 거슬러 올라가 만나는 팍오 동굴에 잘 나타나 있다. 작은 동굴이지만 세계 여느 거대한 동굴 못지않은 깊은 맛을 간직하고 있다. 동굴 두 곳에 4000여 개의 불상이 자리하고 있는 것. 400년 전 호티사랏 왕자가 치앙마이 공주와 백년가약을 맺고 메콩강을 거슬러 돌아오다 이 동굴을 발견한 뒤로 성역화됐다고 한다. 인도차이나 반도가 전쟁의 불길에 휩싸였을 당시엔 주민들의 피란처가 되기도 했다.
메콩강은 중국에서 시작해 티베트, 미얀마, 인도차이나 반도를 거쳐 바다로 빠져나간다. 인접한 국가들엔 삶의 터전이자 사람과 짐을 옮기는 교통로이기도 하다. 라오스 역시 메콩강을 중심으로 삶의 흔적이 뚜렷하다. 강변에서 벌거벗은 채 멱을 감는 아이들, 통통배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 담도 대문도 없이 가난한 살림을 보여주는 마을들…. 하지만 “아침에 길어다 놓은 물이 남았으니 오후엔 잠을 청한다”는 그들의 말처럼 ‘각박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팍오 동굴 인근의 반상하이도 같은 모습이다. ‘도자기를 빚는 마을’이라는 뜻의 이 마을은 ‘라오라오’라는 민속주(찹쌀술)와 베틀로 짠 스카프를 관광객에게 팔아 생계를 꾸린다. 소쿠리 안에서 놀고 있는 손녀와 베를 짜는 할머니, 그리고 손님을 향해 수줍게 웃는 어린 어미의 모습이 마치 1960~70년대 우리네 모습과 닮았다.
루앙프라방 도심 한가운데서 매일 밤 펼쳐지는 야시장은 어슬렁거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레스토랑, 인터넷 카페 등이 몰려 있는 중심지 시사방봉 거리에 오후 5시가 되면 바리케이드가 쳐지고 노천시장이 들어선다. 이곳엔 산에서 내려온 소수민족들이 봇짐을 하나 둘씩 풀어 좌판을 만들어 색색의 스카프, 등갓, 실을 꼬아 만든 팔찌 등 수공예품을 선보인다. 예전에 비해 태국에서 들여온 기성품이 늘었지만 루앙프라방의 야시장은 여행객을 채근하는 호객행위가 없어 여유롭다.
야시장이 끝나는 지점 골목에서 시작하는 음식 노점상 또한 이국적이다. 값싸고 맛난 음식이 가득한데, 근처 게스트하우스에 숙소를 잡은 유럽인들이 주 고객이다. 그들과 어울려 현지 맥주 ‘비어 라오’를 마시는 것도 즐겁다. 마사지숍과 카페 등 관광객을 위한 시설이 늘어선 대로변의 한낮 분위기도 비슷하다.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엔 무심함이 가득하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악다구니하는 모습이 없다. 팔꿈치를 꺾어 올려 손바닥을 내보이는 형태의 이곳 부처입상이 말하는 ‘다투지 말고 평화로이, 베풀고 만족하며 사는’ 의미를 곱씹어보게 한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루앙프라방 근교의 광시 폭포에 들러 발목을 담가보는 것도 좋다. 9월 말은 우기 끝자락이어서인지 물이 넘쳐났다. 옥색의 맑은 물이 계단처럼 고인 멋진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루앙프라방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푸시 언덕에서 즐기는 메콩강 노을이다. 100m밖에 되지 않는 높이지만 탁 트인 전망을 자랑하는 루앙프라방의 랜드마크다. 328개 계단을 수놓은 프랜지파니 꽃잎을 밟으며 언덕을 오르면 이미 노을을 기다리는 관광객으로 가득하다. 이곳에서는 루앙프라방 시내 전경이 한눈에 잡힌다. 합류하는 두 강과 푸른 숲, 그 사이의 사원과 붉은색 낮은 지붕의 식민지풍 건물은 그 자체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역임을 실감하게 한다.
루앙프라방에서는 시간조차 느리게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조용히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싶은 이들에게는 최고의 여행지라 할 수 있다. 루앙프라방 시내에서 카페 ‘빅트리’를 운영하는 손미자씨는 “루앙프라방에서의 시간은 사람이 걷는 속도로 천천히 흘러간다”고 말했다. 여행자들은 최대한 게을러지기 위해,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곳은 관광지의 번쩍거림을 한 움큼도 주울 수 없는 곳이다
가는 길 아직 국내에선 라오스 루앙프라방 공항까지 직항이 없다. 베트남 하노이공항을 거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베트남항공이 매일 인천공항과 김해공항에서 하노이행 비행기를 띄워 루앙프라방까지 연계하고 있다(www.vietnamairlines.co.kr).
여행 Tip 루앙프라방 카페 ‘빅트리’ 손미자 대표의 ‘관광 포인트’
● 왕궁박물관과 왓 시엥 통 - 라오스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
● 푸시 언덕 - 루앙프라방 하면 떠오르는 여유로운 노을
● 아침 재래시장과 야시장 - 순박한 눈망울 속에서 느끼는 인생의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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