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 외환은행 인수로 40년 금융인생에 화룡점정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 외환은행 인수로 40년 금융인생에 화룡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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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4일 하나은행 본점 21층 강당에 나타난 김승유(68)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후련함과 긴장감이 동시에 엿보이는 미소였다. 하루 전날 홍콩에서 론스타와 다시 체결한 외환은행 지분 매매계약에 대해 설명하는 기자간담회였다. 그는 여기저기서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 속에서 일어나 인사말을 했다. “참 1년 이상 여러 가지로 마음 고생 있었지만, 성원해주신데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가격을 깎을 각오로 임했고, 나름대로 소기의 성과를 거뒀습니다.”
김승유 회장이 론스타와 처음 외환은행 지분 매매 계약을 맺은 게 2010년 11월 25일. 바로 다음날 런던에서 귀국한 그의 모습은 마치 개선장군 같았다. 인천공항 하나은행지점으로 들어선 김 회장은 지점 직원들로부터 박수세례와 꽃다발까지 받으며 환하게 웃었다. 그날 그는 이렇게 첫 소감을 밝혔다. “꿈 꿔온 것을 달성했습니다.” 그의 ‘꿈 꿔온 것’이라는 표현이 예사로 들리지 않은 건 김 회장의 인수합병(M & A) 도전 스토리 때문이다.
2006년 3월 하나금융은 외환은행 인수에 도전했다. 미국 사모펀드 론스타가 처음 외환은행을 시장에 매물로 내놨을 때다. 국민은행과 치열한 경합을 벌였지만 자금조달 능력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순위에서 밀렸다. 당시 국민은행은 6조원 가까운 인수가격을 써냈다.
고배를 마신 김승유 회장은 연이어 8월 LG카드 인수전에 뛰어들었지만 또다시 신한금융지주에 밀리고 말았다. 당시 하나금융은 불과 수십억원 차이로 신한지주에 우선협상대상자 자리를 내줘야 했다. 신한지주의 라응찬 회장이 막판에 입찰가격을 주당 1000원 올리라고 지시한 게 성패를 갈랐다. 충청은행(1997년), 보람은행(1999년), 서울은행(2002년)을 인수하면서 하나은행을 키워낸 김 회장이지만 연이은 패배는 뼈아팠다. 신한지주는 LG카드 인수를 계기로 명실상부한 ‘빅3’ 대열로 올라섰다. 하나금융으로서는 덩치 큰 세 은행에 밀리고, 뒤쫓아 올라오는 기업은행에 치이는 형국이 됐다. 자칫 하나금융이 M & A의 먹이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2006년 11월 론스타와 국민은행의 계약이 깨졌다. 론스타의 ‘먹튀’논란이 일며 나라 안팎이 시끄러워지자 국민은행이 인수를 포기한 것이다. 이후 론스타는 해외에서 새 주인을 찾았다. 2008년엔 HSBC와 인수에 합의했지만 깨졌고, 2010년엔 호주 ANZ은행과 협상을 진행했다. 부정적인 여론과 복잡한 승인 과정, 수조원대의 가격. 선뜻 외환은행 인수에 나설 국내 금융회사는 없는 듯했다.
도대체 김승유 회장은 언제부터 다시 외환은행을 노렸을까. 이 질문에 김 회장은 “딜이 클로징 되면 얘기하자”며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꽤 오랫동안 구상했던 건 사실이다. 김 회장 스스로 “처음부터 외환은행과 우리금융, 두 가지를 모두 검토하는 ‘투 트랙’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2010년 11월 16일 월스트리트저널이 홍콩발로 ‘하나금융, 외환은행 인수’를 처음 보도했을 때 금융계는 물론 하나금융 내부에서조차 깜짝 놀랐다. 그만큼 인수작업은 김 회장과 최측근 몇 사람이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하나금융은 우리금융 인수전에 뛰어드는 게 기정사실화 돼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금융과 외환은행이라니, 예상치 못한 조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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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먹으러 간다”고 하곤 출장길 떠나다들 우리금융 민영화를 두고 호들갑스러운 분석을 내놓을 때 김 회장은 외환은행과 우리금융을 동시에 저울질하고 있었다. 사실 김 회장 본인은 한번도 우리금융 인수전에 참여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저 주위에서 앞서나간 추측을 내놓을 때 “M & A는 상대방이 있어서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는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했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그가 외환은행에 대한 속마음을 드러낸 적도 여러 번 있었다. 2009년 11월 20일 송년 기자간담회 땐 “외환은행에 관심 있다”고 말했다. 2010년 5월 5일 미소금융 홍보차 한 재래시장을 방문했을 땐 기자들의 우리금융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자 이렇게 대꾸했다. “외환은행은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얼마나 하려나?” 그러면서 “외환은행 지금 주가가 1만3750원이니까, 30% 프리미엄 붙으면 5조9000억원쯤 할 텐데. 그게 비싼 건가?”라고 혼잣말처럼 이어갔다. 그의 머리 속엔 이미 외환은행 인수를 위한 계산이 서 있었던 것이다.
투 트랙 전략은 외환은행 인수협상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게 김 회장의 설명이다. 김 회장은 론스타 측과 협상을 위해 처음 싱가포르에서 만났을 때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우리금융 입찰의향서 제출 마감이 11월 26일이다. 외환은행 협상이 25일 전에 끝나지 않으면 우리금융으로 가겠다.” 데드라인을 정해 압박한 덕분에 실제 협상을 빨리 진행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승부사 기질이 힘을 발휘한 것이다.
외환은행 인수라는 ‘깜짝 발표’가 나오자 업계에선 “역시, 김승유”라는 반응이었다. 여러 M & A 경험을 가진 노련한 김 회장답다는 뜻이었다. 김 회장 본인도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2011년 3월 말까지 딜을 끝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때만 해도 그 뒤 1년 간 론스타와 하나금융에 닥칠 상황은 예측 불가였다. 3월에 끝내겠다던 인수전은 결국 1년 넘게 끌었다. 그 사이 유회원 전 론스타코리아 대표에 대한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과 금융위의 인수승인 보류 등 대형 위기가 잇따라 닥쳐왔다. 외환은행 인수 무산 가능성은 물론 김 회장의 사퇴설까지 부각됐다. 김 회장 스스로 “하나은행에도 쓰나미가 닥쳤다”(3월 16일), “애간장이 탄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처음 알았다. 간장이 타면 얼굴이 까매지나 보다”(5월 13일)라고 할 정도로 힘든 순간이기도 했다.
김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외환은행 인수전에서 그는 노련함을 발휘했다. 다들 회의적으로 봤던 계약 연장을 7월에 해냈다. 그리고 연장된 계약기간이 종료된 직후인 12월 3일 종전보다 4900억원 깎은 매매가격으로 다시 매매계약서를 썼다. 총 매매가 역시 4조4059억원에서 3조9156억원으로 떨어뜨렸다. 그가 직접 뛴 결과다. 최종 계약서가 체결되기 일주일 전인 11월 25일, 그는 1박 3일 일정으로 런던으로 직접 가서 론스타와 가격을 담판 짓고 돌아왔다. 그는 “다른 사람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금요일에 ‘점심 먹으러 간다’며 나와서 비행기 타고 1박 3일 일정으로 출장을 다녀왔다”고 말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가 어느 때보다도 눈 앞으로 다가온 지금 또다시 관심은 김 회장의 거취에 쏠린다. 그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하나금융 이사회가 정한 임기 제한인 만 70세까지 겨우 2년 남았다. 규정상으로 그는 2012년과 2013년, 두 차례 더 연임할 수 있다. 그가 하나은행의 전신인 한국투자금융에 창립멤버로 입사한 게 1971년. 1997년 2월 26일 하나은행장에 취임했으니, 이제 최고경영자(CEO) 경력만 15년을 채워가고 있다. 1971년 당시 20명으로 출발한 작은 단자회사 한국투자금융이 이제 외환은행까지 인수하게 되면 2만 명이 넘는 대형 금융지주사로 도약한다. 그는 한 조직에서만 꼬박 40년을 보내며 은행으로의 전환, 외환위기 극복, 여러 차례의 인수합병 등의 성장세를 이끌어왔다. 김 회장이 곧 지금의 하나금융을 만든 인물이란 평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김 회장 본인은 “내가 있어서 지금의 하나금융이 있는 게 아니다. 하나금융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김 회장이 하나금융을 떠나려 하지 않을 거란 얘기도 나온다. 만약 내년 3월 한차례 더 연임한다면 회장직만 4연임이 된다. 지난해 내분사태로 물러난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같은 기록(4연임)이 된다. 연임 여부를 묻는 질문에 지금까지 그가 직접 밝힌 입장은 이 정도뿐이다. “CEO라는 자리가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기 싫다고 그만 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문제는 주요 주주, 이사회 멤버들과 함께 논의를 해서 그때 결정할 계획이다.” 연임을 할지 안 할지,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은 모호한 답변이다.
외환은행 인수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한두 차례 연임을 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관측도 그래서 나온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도 있다. “김승유 회장은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두 급 위에 있다. 자리에 연연할 사람이 아니다.” 조직을 위해서라면 자리를 내놓을 수 있는 인물이란 뜻이다.
그의 이런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도 있다. 김 회장은 과거 하나은행장 시절 CEO 자리를 스스로 내놓으려 한 적이 두 차례 있었다. 그의 전임자인 윤병철 초대 하나은행장(현 FP협회장)이 밝힌 내용이다. 2001년 당시 김승유 하나은행장은 ‘신진들에게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며 이사회에 사의를 밝혔지만 이사들의 만류로 물러나지 못했다. 2002년 서울신탁은행과의 합병작업 중에도 합병이 되면 그만두겠다고 결심했지만 물러나더라도 합병 이후 뒤처리를 하고 난 뒤여야 한다는 설득에 밀려 자리를 지켰다.
1000억 드림소사이어티 재단 만든다김 회장은 그동안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면 교육사업과 사회공헌에 집중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쳐왔다. 이미 하나고등학교 이사장을 맡고 있는 그는 “이사장은 계속 할 것”이라며 애착을 보였다. 다만 내년 2월 임기인 미소금융중앙재단 이사장 자리에 대해서는 “그건 그때 가봐야 안다”며 유보적인 입장이다. 그는 12월 4일 기자회견에서 1000억원 이상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인 가칭 ‘드림소사이어티 재단’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는 몇 년 전 무주·장수·임실 지역 베트남 며느리를 초청한 공연 행사에서 결국 다 함께 눈물을 흘리고 말았던 경험을 거론하며, 다문화가정을 돕는 사회공헌을 추진하게 된 계기를 한참 동안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어쩌면 그가 생각하는 하나금융 회장 그 이후의 인생 모습은 이미 설계를 마쳤을지 모른다. 다만 외환은행 인수전이 그랬듯이 그의 의지가 언제, 어떤 식으로 발현될 지 아직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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