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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경협 어디로 - 남북경협 공든 탑 ‘중·러’에 넘겨줄 판

남북경협 어디로 - 남북경협 공든 탑 ‘중·러’에 넘겨줄 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후계자 김정은이 얼어붙은 남북경협에 활력을 불어넣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2011년 10월 5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외통위) 회의실. 박주선 외교통상통일위원회(민주당) 위원이 김영현 현대아산 관광사업본부장에게 물었다. “2008년 7월 박왕자씨가 민간인 출입금지 지역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피격돼 사망했습니다. 이후 금강산 관광사업이 중단되고 현대아산은 50년간 획득했던 독점 관광권을 몰수당했죠.”



2011년 11월 화해 제스처 보냈지만…김영현 본부장은 어두운 표정으로 답했다. “북측에서 (독점 관광권 몰수조치 관련) 법적 조치가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 위원이 다시 물었다. “해결 방법은 무엇입니까.” 잠시 머뭇거리던 김 본부장은 이렇게 답했다. “국제사회가 중재노력을 할 수 있고 국제사법재판소로도 갈 수 있어요. 하지만 궁극적으로 북한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사법재판소로 가든, 중재절차를 거치든 말입니다.”

남북경협의 열쇠는 북측이 갖고 있다. 박 위원과 김 본부장의 문답에서 이를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남북경협에 대한 북측의 태도는 일관성이 없다. 2008년 7월 남측 관광객을 별다른 이유 없이 죽인 북측은 2010년 4월 금강산에 있는 남측 재산을 몰수·동결 조치를 했다. ‘금강산국제관광특구법’은 남측과 상의 없이 제정했다. 올 3월 북측이 자행한 천안함 사태의 책임을 묻겠다면서 한국정부가 ‘5·24 조치’를 단행하자 남북경협은 걷잡을 수 없이 얼어붙었다. 5·24 조치는 남북교류협력과 관련된 인적·물적 교류를 잠정 중단한 것을 말한다.

1차 피해자는 북한에 진출한 국내 기업이다. 현대그룹이 2011년 10월 말까지 금강산 관광사업에서 입은 손실은 4482억원이다. 개성관광까지 포함하면 손실액은 5105억원으로 늘어난다. 현대아산은 2008년 3분기부터 13분기 연속 적자행진 중이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DJ(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진행된 경협사업이 현 정부 들어 타격을 받았다”며 “남북경협은 개성공단 하나만 남고 나머지 사업은 궤멸상태”라고 지적했다.

개성공단의 상황도 좋지 않다. 북측은 남북경협의 상징이라는 개성공단까지 대남 압박전술의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 2008년 3월 북측은 “북핵 문제가 타결되지 않으면 개성공단 확대가 어렵다”는 김하중 당시 통일부 장관의 발언을 꼬투리 잡아 남측 당국 인원의 철수를 요구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개성공단 상주 체류 인원을 일방적으로 880명으로 제한했다. 2009년 3월 한·미 양국이 합동군사훈련을 하자 육로통행을 전면 차단했다. 그 해 5월 개성공단 법규·계약의 무효를 통보하기도 했다.

그 결과 개성공단의 입주율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개성공단의 부지는 총 6600만㎡(2000만평). 이중 공업단지는 2805만㎡(850만평), 배후도시는 3795만㎡(1150만평)다. 공업단지는 3단계로 건설되고 있는데, 1단계는 330만㎡(100만평), 2·3단계는 2475만㎡(750만평)다. 1단계 330만㎡의 입주율은 2011년 10월 현재 37%에 불과하다.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1단계 입주율이 100% 도달할 시기를 현재로선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송민순 민주당 의원은 최근 열린 ‘남북경협효과 분석 및 경협 정상화를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5·24 조치가 단행된 이후 1년 반 동안 개성공단에 입주한 남한 기업은 11조7000만원에 이르는 경제적 손실을 봤다”고 주장했다. 강창범 개성공업지구기업책임자회의 기획재정분과위원장은 “5·24 조치로 개성공단의 추가투자가 금지돼 후발 기업들의 평균 공장 가동률이 35%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2011년 9월 이후 한국 정부는 북측에 화해의 제스처를 보냈다.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 재개, 개성공단 활성화 조치 등으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모색했다. 북한은 오랜만에 호응했다. 익명을 원한 현대아산 관계자의 말이다. “2011년 11월, 금강산관광 재개와 재산권 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북측이 먼저 ‘남측이 당국간 회담을 제안하도록 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런 화해 물결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다시 가라앉았다. 양문수 교수는 “2011년 9월 류우익 장관의 취임 이후 대북정책이 유연성을 찾고 있었는데, 김 위원장 사망이라는 돌발변수가 터졌다”고 말했다. 김규철 남북경협시민연대 대표는 “북측이 빗장을 다시 열지, 그렇지 않을 지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철기 동국대(국제관계학) 교수는 “김 위원장의 사망으로 정책결정구조가 복잡해 질 것으로 보인다”며 “얼어붙은 남북경협이 신속하게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전망했다.

남북경협이 재개될 가능성은 물론 있다. 북한은 경제난이 심각하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124만원에 불과하다. 한국의 약 19분의 1이다. 2010년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0.5%로 2009년(마이너스 0.9%)에 이어 2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김 위원장의 후계자 김정은은 경제 살리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의 유훈이기도 하다. 김규철 대표는 “김 위원장이 생전 목표로 내걸었던 강성대국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고 말했다.



북 개혁·개방, 남한에 도움 줄까강성대국은 김일성 주석 사망 4년 뒤인 1998년 권력을 장악한 김 위원장이 내건 청사진이다. 목표는 사상정치의 강국, 군사강국, 경제강국이다. 강성대국의 원년은 2012년이다. 황진하 외통위(한나라당) 위원은 “김 위원장이 원했던 사상정치의 강국, 군사강국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섰다”며 “남아 있는 목표는 경제강국뿐이었다”고 말했다. 조동화 이화여대(북한학) 교수는 “경제적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김 위원장의 유훈 때문에 북한은 경제를 개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은이 김정일의 유훈과 거리를 두는 모험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태양절(김일성 주석의 생일·4월15일)이 지나면 김정은이 경제 분야에서 새로운 것을 모색할 것”이라며 “김 위원장이 추진한 나선이나 황금평 등 지역 중심의 개혁·개방에 나설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조 위원은 “김정은이 2010년 후계자로 공식 부상한 후 북한경제정책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며 “북한의 외자유치를 담당하는 국방위원회 산하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이 2010~2020년 1000억 달러를 유치해 나선·청진·김책·남포지역을 중점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은 대표적인 변화”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김정은이 개혁·개방정책을 펼치면 한국에게 기회가 오겠느냐’는 것이다.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는 “남북경협이 활성화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김정은은 중국·러시아와의 경협에 매진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북한과 중국은 최근 들어 경제적으로 밀착하고 있다. 2011년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도발로 남북경협이 주춤하는 사이 속도가 더 붙었다. 코트라는 “2011년 북·중 교역이 사상 최대치인 6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1년 1월~10월 양국의 무역 규모는 46억7365만 달러로 2010년 같은 기간보다 73.5% 늘었다. 무역규모가 늘면서 북한의 대중 무역의존도 역시 커지고 있다. 코트라에 따르면 2010년 북한의 대중국 무역비중은 57%다. 한국과 25%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다.

북·러 경협의 물꼬도 터졌다. 김 위원장은 2011년 8월 9년 만에 러시아를 방문해 소원했던 북·러 관계를 회복시켰다. 러시아는 김 위원장 방문 이후 북한을 통과하는 가스관 건설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러시아~북한~남한을 잇는 가스관 건설이 실제로 이뤄지면 북한은 가스관 통과료만으로 연간 1억 달러를 벌 수 있다. 조봉현 연구위원은 “북·중, 북·러 경협은 김정은의 강력한 후원자로 알려진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중, 북·러 경협이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남북경협 뒷전으로 밀려날 위기유승경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은은 김 위원장만큼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며 “북한의 경제난을 장성택 부장의 도움을 받아 북·중, 북·러 경협을 통해 풀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채텀하우스(왕립국제문제연구소)의 케리 브라운 아시아 담당 수석연구원은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정권 초기에는 장성택 부장이 섭정을 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이 남북경협을 정상화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김규철 대표는 “남북경협의 키는 북한이 쥐고 있기 때문에 현재로선 5·24 조치를 완화해 북한을 유인하는 게 능사”라며 “민간 차원의 경협을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철기 교수는 “우리 정부가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가 대북 기조를 전환해야 할 이유는 많다. 무엇보다 정부가 추진하는 남북경협이 난관에 부딪혀 있다. 개성공단·금강산 관광사업은 물론 광역두만개발계획(GTI) 역시 차질을 빚을 공산이 크다. 북한에 진출한 국내기업의 경영 악화도 문제다. 남북경협시민연대의 자료를 보면 일반·위탁가공 남북경협업체 154곳 가운데 19곳이 사업을 중단했다. 일시 중단한 업체는 102곳에 이른다. 더구나 남북 교역액이 갈수록 줄고 있다. 2011년 1~10월 남북 교역액은 14억2522만 달러로 2010년 같은 기간보다 12.6% 감소했다. 최성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2~3년간 경색된 남북경협에 비해 북·중 경협은 크게 활성화했다”며 “우리는 이런 흐름에 위기의식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정근 고려대(경제학) 교수는 “자칫 잘못하다가는 북한경제의 패권을 중국에 완전히 빼앗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자본은 이미 북한 경제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있다. 최근 서해에서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이 문제가 된 이유는 북한이 중국에 어업권을 일부 팔아서다. 지하자원은 더 심각하다. 중국은 함경북도 회령시 오룡광산, 함경남도 덕성광산, 평안남도 용흥탄광 등의 철·몰리브덴·금·동의 채굴권을 확보했다. 나진항 부두 확장, 압록강 황금평 자유무역지구 개발 등 인프라 구축에도 중국 기업의 자금이 유입됐다.

중국의 대북 투자는 2003년 110만 달러에서 2008년 4100만 달러로 크게 늘었다. 자본 투입의 증가는 중국의 경제적 장악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다. 미국 닉슨센터의 드류 톰프선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침묵의 파트너’라고 표현하면서 “양국의 경제적 관계는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 제재를 복잡하게 하는 효과를 낸다”고 분석했다.

독재자가 사라지면 개혁·개방정책을 택한 사례가 많다. 중국 모택동 이후 권력을 잡은 등소평이 그랬다. 김정은도 개혁·개방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그의 후원자 장성택 부장의 움직임도 개혁·개방 쪽에 맞춰져 있다. 우리 정부의 과제는 이런 개혁·개방의 물결은 서둘러 남북경협 쪽으로 돌려놓는 것이다. 조치가 늦으면 중국이 가장 큰 이득을 볼 게 분명하다(금융연구원 이명활 국제거시금융연구실장). 그 다음 수혜자도 우리가 아니다. 러시아다.



이윤찬 이코노미스트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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