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 어디로 - 내부 개혁보다 외화벌이에 힘 쏟을 듯
북한 경제 어디로 - 내부 개혁보다 외화벌이에 힘 쏟을 듯
북한은 2000~2004년 동안 비교적 개혁적이고 개방적인 노선을 유지하다가 2005년 이후부터 내부적으로 ‘반개혁 정책과 외화벌이 증대를 위한 각종 사업 확대’로 노선을 바꿨다. 이런 정책은 2012년에도 기본 노선으로 삼을 것이다.
2005년 이후 북한의 경제정책 방향을 좀더 자세히 보자. 북한은 2005년부터 시장활동 억제, 배급제 재도입, 노동 동원 강화, 계획원칙의 강조, 국가주도 경제의 강화와 같은 반개혁적 노선을 추진해 왔다. 이에 따라 경제의 생산성이 떨어졌다. 북한은 이런 정책의 약점을 보완하는 방법은 외화벌이용 대외사업을 적극 확대해 벌어들인 외화로 부실한 경제를 지탱했다. 이를 위해 2008년까지는 한국을, 2010년부터는 중국을 주요 파트너로 삼았다. 외화벌이용 대외사업으론 광물 수출, 황금평과 나진·선봉과 같은 폐쇄형 경제특구 증설, 식량외교와 핵 외교를 통한 해외 원조, 중국과 러시아 등으로 노동력 수출, 그리고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는 사업(관광사업, 가스파이프라인 연결, 나진·청진 항구 개방 등)이 있다.
김일성 100회 생일 등 경축 행사 준비에 올인문제는 외화벌이 사업과 내부 개혁은 서로 상반된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외화벌이가 잘되면, 북한은 내부 개혁을 추진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외화벌이가 잘 되지 않는 경우에 경제 파산을 면하자면 내부 개혁으로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내부 개혁을 회피할수록 내부 경제가 불모화되기 때문에 외화벌이 사업은 그만큼 더 강화해야 한다.
외화벌이 사업 중에서 현재까지 가장 큰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석탄을 비롯한 광물 수출이다. 2005년 이후 특히 2010년부터 대중국 광물 수출은 급증했다. 북한의 대중 광물 수출은 2011년 1∼9월에 842만3000t(8억5200만 달러)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304만8000t(2억4500만 달러)에 비해 물량 기준으로 2.7배, 금액 기준으로는 3.5배 급증했다. 지난해 북한 수출에서 광물과 가공도가 낮은 동식물성 물품이 차지하는 비율, 다시 말해 원자재 비율은 70%에 이른다.
북한은 2010~2011년에 외화벌이 확대 정책을 기조로 2012년에 치를 각종 주요 행사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 북한 당국은 2012년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원년’으로 설정했다. 따라서 그 이유를 납득시킬 만한 무엇인가를 보여줘야 한다. 또한 김정일 70회(2월 16일)와 김일성 100회 생일(4월 15일), 군 창건 80돌(4월 25일) 등의 경축 행사를 치러야 한다. 경축 행사 가운데 핵심은 ‘4.15’가 될 것이다. 이날을 경축하기 위해 귀빈이나 가무단 초청 같은 각종 기념행사를 개최할 것이다. 또한 4월 15일에 맞춰 평양 10만 세대 살림집과 문화봉사시설 건설 완수, 105층짜리 류경호텔 개장이 예정돼 있다. 영변에 건설하고 있는 실험용 경수로도 2012년에 완공할 예정이다. 북한은 김정은의 전면 등장에 맞춰 식량공급을 정상화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전력 문제 해결을 위해 희천 발전소를 2012년 1월까지 완공해야 한다.
2010~2011년 북한 경제 정책은 2012년 행사준비에 ‘올인’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위한 무리한 경제운영이 북한 경제에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2012년 하반기가 되면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2012년에 치를 엄청난 행사용 지출은 성격상 비생산적 지출이다. 반시장 정책에 따른 경제 부진 속에서 추가 자금 조달이 수탈 강화식 방법(자원 수출 증가, 기관과 주민의 상납금 증가, 비정상적 국내 외화 수집)으로 이뤄졌다. 이는 경제 구조 왜곡(자원수출 의존성 구조의 심화, 생산투자 중단 연장에 따른 탈공업화, 비생산적 부문으로 자원 배분 증가)과 주민의 소비 수준 악화로 이어진다. 또한 단기적으로 수입 수요 급등에 따른 외화 수요 급증, 행사비용 조달을 위한 북한 통화의 공급 증가, 이에 따른 환율 급등, 수입 물가 상승, 내부 물가 상승 등으로 경제 체질이 더욱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제조업 부문의 경쟁력은 더욱 약해지고, 주민 생활도 더욱 궁핍해질 것이다. 여기에다가 국경단속 강화와 자의적인 세관폐쇄로 수출입 파동, 석탄 과잉 수출, 무역일꾼 물갈이에 따른 무역 거래 폐해 등이 추가되고 있다. 한마디로 수탈 강화 속 장기 경제 침체를 초래하는 악순환 고리가 강화된 것이다.
2012년 경축사업에 대한 지출 이외에도 갑작스러운 김정일의 사망 때문에 추가된 경제적 과제가 있다. 김정은은 2012년에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 때문에 추가적인 외화 자금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북한 체제는 ‘공포와 포상’으로 유지하고 있다. ‘독재의 경제논리’에 따르자면 경제운영의 목적은 민생 향상이 아니다. 경제운영의 실질 목표는 충성그룹에 충분한 포상을 제공해 ‘권력 블럭’을 공고화하고, 남는 게 있으면 독재자가 개인적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2012년은 김정은 통치의 첫 해이기 때문에 권력을 공고히 하는 핵심 기간이다. 따라서 2009~2011년 사이에 간부 물갈이를 통해 새로 나온 충성그룹을 대대적으로 포상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광물 수출 더욱 늘릴 가능성2012년 북한 경제는 두 가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2012년 행사준비를 위한 무리한 경제 운영의 부작용, 그리고 김정은 권력 공고화를 위한 추가 외화 수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 가지 정책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지금까지 해왔던 외화벌이 방법을 좀더 강력히 추진하는 것이다. 예컨대 대중 광물 수출을 더욱 증대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광물 수출의 갑작스러운 증가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2015년에 중국과 북한의 철도·도로 연결 사업이 완공되기 전까지는 황금평, 나진선봉 개발 사업은 부진할 것이다. 관광 증진, 노동력 수출 증가 노력도 따를 것으로 보이지만 큰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북한은 또한 해외공관, 무역일꾼 등에게 의무 상납액을 늘릴 것이다.
둘째, 유연한 대외정책으로 해외 원조 유입을 늘릴 수 있다. 이미 북한이 6자 회담과 관련해 유연성을 보이면서 원조 증대를 도모하는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김정일 사망 직전 북한은 6자 회담 개최를 위한 3대 선행 조치(농축우라늄 생산 중단,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 복귀, 핵과 미사일 실험 중단)를 수용하고 그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20만t 상당의 영양(식량)원조를 받기로 했다. 북한의 이런 행보는 2012년에도 이어질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과 관계 개선에도 노력할 전망이다.
셋째, 만약 위의 두 가지 방법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못 거두면, 내부 개혁조치와 시장 확대 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북한은 2009~2011년까지 권력층이 상당히 물갈이됐고, 2009년의 화폐 개혁 실패로 중하층 상인이 대부분 몰락했다. 따라서 정치 권력층이 장악하고 있던 상권과 ‘부패 허가권’이 주인 없는 빈자리로 남아 있다. 새로운 개혁조치는 권력 물갈이를 통해 새로 등장한 ‘김정은 충성파’에게 상업적 특혜와 부패 행위를 통해 치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기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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