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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김준태의 ‘세종과 정조의 가상대화’ ① 인재론

Management 김준태의 ‘세종과 정조의 가상대화’ ① 인재론


반대하는 사람이 능력 발휘하게 하는 것도 군왕의 자질

“사람의 천성과 감정의 작용이 같고, 시대가 융성하고 쇠망하는 흐름 또한 비슷하기에, 잘 관찰해보면 오늘의 일은 옛 사람이 일찍이 겪었던 일이고 옛 사람이 남긴 말은 지금도 마땅히 되새겨야 할 금언이 된다”. 정조가 남긴 말이다. 이 연재는 세종대왕과 정조 임금의 어록과 일화를 토대로, 주요 사안들에 대해 정조가 세종에게 질문하고, 세종이 답변하는 가상대담 형식의 글이다. 『세종실록』 『정조실록』 『홍재전서(정조의 문집)』에 나타난 역사적 기록이나 두 임금의 생각은 많은 부분에서 접점을 이룬다. 시대라는 옷만 달리 입었을 뿐, 고민했던 주제와 문제의식이 일치되는 부분이 많다. 실제로 정조는 세종의 시대를 그리워하며 당대의 문제점을 개탄하곤 했다. 정조가 직접 세종에게 자신의 고민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는 상상을 이 글에 담았다. “ ”의 내용은 자료의 원문을 직접 인용한 것이고, ‘ ’ 부분은 원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의역하여 각색한 것이다.



정조 인재를 선발하는 문제를 여쭙고자 합니다. 흔히 인재가 없다고 한탄하지만 소손은 “어느 시대나 그 시대의 과업을 성취해낼 수 있는 인재를 가지고 있으며, 진실한 마음으로 찾고자 하면 반드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인재를 구별하는 게 쉽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혹 찾지 못해 묻힌 인재는 없는지 염려해야 할 것입니다.”(홍재전서 권170)



세종 훌륭한 말이다. “옛 사람들이 말하길 ‘어느 시대인들 사람이 없으랴’고 하지 않았더냐. 인재는 언제나 반드시 있지만 다만 몰라서 쓰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세종 20.4.28)



정조 참으로 그러하옵니다. 하온데 전하, 소손이 “나라 안 모든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 적임자다’라고 인정할 만한 인재”를 뽑고자 노력했습니다만 “선발한 사람들이 과연 선발되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인지, 다른 이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만한 훌륭한 사람인지”(홍재전서 권8) 자신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인재를 뽑을 수 있을 지요. 가르침을 청하옵니다.



세종 “정치를 함에 있어 인재를 얻는 게 급선무이니, 직무에 적당한 관원을 선발한다면 모든 일이 다 잘 다스려지겠지.”(세종 5.11.25) 그러나 너의 말처럼 그 직무에 적당한 “사람을 알아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세종 12.8.30) “어찌 임금 혼자서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사람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을 다 파악하고 장점과 단점을 평가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인사를 맡은 신하들이 “거듭 자세하게 검토한 뒤 임금에게 추천하도록”(세종 13.11.5) 하는 제도를 잘 갖출 필요가 있다. 그리고 너는 그 추천된 인재가 열의를 가졌는지, 아닌지를 잘 살피도록 하라. “대체로 처음에는 부지런하다가 나중에는 게을러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비록 열정을 내어 일에 임하다가도 끝을 완수하지 못하는 일이 많은데, 하물며 처음부터 열의가 없는 자를 어디에다 쓰겠느냐.”(세종 29.9.9)



정조 명심하겠사옵니다. 또 여쭐 것은 어떤 이들은 제게 군자(君子)만 가려서 뽑으라고 합니다. 이 말이 과연 옳은 것이겠습니까. 소손은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되 “현명한 자와 불초한 자,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 모든 재능을 취할 자와 한 가지 재능만을 취할 자를 가려 그 능력에 맞게 쓰면”(홍재전서 권172) 된다고 생각하옵니다.



세종 옳은 말이다. ‘임금은 소인(小人)이라도 내쳐서는 안 된다. 그에게도 분명 적당한 임무가 있고, 활용할 바가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말은 임금이 군자와 소인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가 된다. 군자를 가까이 하고 소인을 멀리 하는 것이 군왕의 정치이니까. 그러나 좋은 목수가 나무의 크고 작은 것, 길고 짧은 것, 굽고 곧은 것, 아름답고 미운 것 중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잘 살펴서 각기 그 적당한 쓸 곳을 찾듯, 임금도 그래야 한다. 재목에 따라서 그 용도에 맞게 잘 활용하면, 천하에 버릴 재목이란 없을 것이다.’(세종 5.5.17)



정조 가슴 깊이 새기겠나이다. 그런데 제가 보위에 오른 이후 혼신을 다해 노력해 왔으나, 이런 제 마음에 호응해주는 이들이 별로 없사옵니다. 그리하여 “이루어진 성과가 거의 없으니 멍하니 그저 실망스러울 따름입니다.”(홍재전서 권170)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이겠습니까? 인재를 구하고자 하는 저의 마음이 절실하지 않은 탓입니까. 제 마음을 알아주는 인재가 없는 이유, 저의 조정에 인재가 적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가르침을 주시옵소서.



열정이 있는 사람을 써라

세종 “이 세상 어느 임금이 훌륭한 인재를 찾아 등용해 쓰고 싶어 하지 않겠느냐. 그런데 인재가 있어도 임금이 그를 쓰지 못하는 경우가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임금에게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없는 것이고, 둘째는 임금이 인재를 절실하게 구하고자 하는 자세가 없는 것이며, 셋째는 국왕과 인재의 뜻이 합치되지 못하는 경우이다.”(책문, 『사숙재집』) 너는 앞의 두 가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세 번째다.

너는 너와 생각이 같고, 너의 뜻에 합치되는 인재만을 찾은 것은 아니냐. “인재는 선천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임금이 어떻게 정치하느냐, 어떻게 이끌어 가느냐에 달렸다.”(책문, 『사숙재집』) 그런데 이끌어간다는 것은 인재가 너의 뜻에 따라오도록 하거나, 너의 생각에 무조건 인재를 합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너와 너와는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인재가 끊임없이 의논하여 하나 된 의견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의미함을 명심하라. 당부한다. 부디 너를 거스르는 사람이나 너에 뜻에 반대되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능히 정사(政事)를 감당할 재주가 있다면 포용하고, 단 한 사람이라도 버리지 마라. 반대자가 능력을 발휘하도록 만드는 것도 군왕의 자질이다.



정조 전하께서 전하의 장인을 죽이는데 앞장섰던 박은을 집현전의 영전사(최고책임자)로 삼고, 전하가 세자로 책봉될 당시 결사반대 했던 황희에게 영의정을 맡겨 치세 대부분의 국정을 책임지게 했던 것처럼 말입니까. 저도 부족하나마 저의 정적들을 등용하고, 그들에게 권력을 주었으며, 국정을 운영해 나가는데 참여하도록 했나이다. 허나 그자들은 “(그대들이) 더 한층 노력하여 내가 하려고 하는 정치를 도와줬으면 하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라는 제 바람(정조 24.5.30)을 비웃었으며, 부디 나의 뜻에 부응해달라 여러 차례 사정을 했음에도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저의 신하들은 전하의 신하들과 같지가 않사옵니다.



세종 너의 정치적 여건이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음을 안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듯 위태로웠고, 수많은 정치적 위협 속에서 보위를 지켜야 했음도 안다. 그러니 내가 어찌 너를 뭐라 할 자격이 있을까. 다만 너는 재위 내내 신하들을 다그치고, 면전에서 면박을 주었다. 네 안의 울화를 이기지 못하고 신하들에게 “(너희가) 두려워할 줄 모르는 구나”, “누가 감히 반대하여 나를 이기려는 생각을 가질 것인가”, “만일 살고 싶다면 어찌 감히 그처럼 강경하게 고집을 세운단 말인가”라 위협하지 않았느냐. 조금 더 의논하고, 조금 더 포용하고, 조금 더 차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할 수는 없었을까? 명심하라. 신하는 너를 위한 인재가 아니라, 나라와 백성들을 위한 인재여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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