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경영 전면에 나선 3세들 - 이젠 성적표로 실력 보여줄 때
[ISSUE] 경영 전면에 나선 3세들 - 이젠 성적표로 실력 보여줄 때
2011년 6월 9일 인도네시아 리포 치카랑에서 한국타이어 신공장 기공식이 열렸다. 60만㎡(18만1800평) 규모의 공장에서는 북미와 중동지방으로 수출되는 타이어를 생산한다. 이날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은 행사 내내 만족한 표정이었다. 신공장 프로젝트는 조 부사장이 기획부터 착공까지 전 과정을 진행한 사업이다. 경영자로서역량을 보여 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 그는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매달렸다. 오너가 직접 발품을 팔며 세밀하게 챙긴 탓에 직원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당시 인도네시아에서 일했던 직원의 말이다. “(부사장님의) 추진력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새벽까지 고민하는 날이 많았고 마무리 될 때까지 쉬지 않고 (직원들을)쪼셨어요. 본인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그만큼 강했던 것 같아요.”
조직에서 그는 소탈한 스타일의 경영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함께 일했던 본사 직원들은 조 사장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이다. ‘보고를 하면 핵심을 빠르게 파악한다’ ‘통계나 숫자에 현혹되지 않고 정곡을 짚어 내곤 한다’는 것이다. 사원들에게 스스럼이 없고 조직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6일 그는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의 영문 타이틀은 CSO(Chief Strategy Officer)로 조직의 전략을 총괄 관리한다. 한국타이어 측은 승진 배경에 대해 “인도네시아 신공장을 성공적으로 진행하며 기업의 글로벌화를 이끌었다”며 “경영 시스템을 안정시켰고 사회공헌 활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도 받았다”고 설명했다.
미국 보스턴대학을 졸업한 조 사장은 1998년 한국타이어에 입사한 이후 광고홍보팀장·마케팅본부장·경영기획본부장 등 주요 보직을 거치며 경영수업을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셋째 사위다.
태양광 ‘열공’ 하는 김승관 실장
작년 12월 15일 한화그룹 인사에서는 김승연 회장의 장남 김승관 회장실 차장이 경영 전면에 등장했다. 이날 인사에서 그는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으로 승진했다. 2010년 1월 한화 회장실에서 일을 시작한 그는 신입사원 연수를 마친 직후 김 회장과 함께 다보스포럼에 참석했다. 김 회장은 포럼에 참석한 글로벌 대표 CEO를 만나는 자리에서 “여러 명망 높고 훌륭한 분들과 만나 기쁘다. 주요 이슈들에 대해서는 아들이 이야기할 것”이라며 김 실장을 소개한 바 있다. 이후 김 회장은 주요 경영현장 방문 시 늘 김 실장을 대동했다.
2010년 5월 제주에서 한국 전경련·일본 게이단렌·중국 국제무역촉진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2차 한중일 비즈니스 서밋에 김 회장은 김 실장을 대동해 각국에서 모인 60여명의 경제인에게 인사를 시켰다. 11월 열린 서울 G20 비즈니스 서밋에서는 환영 만찬 때부터 김 실장이 김 회장을 수행했다. 이때부터 재계에서는 김 회장이 김동관 실장을 후계자로 점 찍고 경영 수업을 시키는 것이란 말이 돌았다.
이번에 김 실장이 경영에 참여한 한화솔라원은 태양광 전문 기업이다. 한화그룹이 2010년 8월 인수한 세계 4위 태양광 기업 솔라펀파워홀딩스가 모체다. 재계에서는 한화의 결정에 다소 의외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지금 태양광 산업은 경기가 불투명한 상태다. 공급 과잉으로 인해 공장 가동률을 줄이거나 투자 계획을 보류하는 기업도 많다. 이런 때 한화가 태양광 산업 야전사령관으로 김 실장을 임명한 것이다. 재계에서는 김 회장이 어려운 사업을 맡겨 경영 능력을 시험하려는 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김 실장은 의욕에 넘쳐 있다. 지금 김 실장의 사무실에는 칸막이가 없다. 직원들과 소통하며 조금이라도 일을 빠르게 배우기 위해서라고 한다. 주 1~2회 점심시간을 쪼개 직원들과 함께 피자를 먹으며 태양광 산업을 공부하고 있다. 한화솔라원의 주력공장은 중국 상하이에 있다. 김 실장은 수시로 중국에 달려가 현안을 챙기고 있다. 한국에 있을 땐 매일 새벽 종로의 한 어학원에서 중국어를 공부한 다음 8시에 여의도 63빌딩으로 출근하고 있다. 그와 가까운 관계자는 “해외 출장 중에도 비행기 안에서 중국어 교재를 손에서 떼지 않는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태양광 사업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만 김 실장은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는 “해외 시장 변화를 주의 깊게 보고 있다”며 “솔라원은 일괄생산체제를 갖춘 기업으로 글로벌 태양광 사업을 이끌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화솔라원은 태양광 모듈 조립 등 생산뿐 아니라 프로젝트 개발 및 파이낸싱까지 통합사업군을 구축하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2012년은 창업100년의 미래 비전을 여는 한 해가 될 것”이라며 “태양광 등 신사업에 지속적으로 힘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 실장이 진두지휘 하는 만큼 각종 사업이 힘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성욱 부사장 해외서 승부
신세계에서는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의 남편인 문성욱 이마트 부사장이 새로운 사업을 맡았다. 그는 신설된 해외사업총괄을 맡아 이마트의 해외 사업을 전담하게 됐다. 문 부사장은 2004년 신세계 경영지원실 부장을 거쳐 2005∼2008년 신세계I&C 전략사업담당 상무를 지냈다. 2011년 5월 신세계 I&C에서 이마트로 옮기면서 중국 사업을 맡아왔다. 이마트의 해외사업을 총괄하게 된 문 부사장의 숙제는 베트남 시장의 성공적인 진출과 침체에 빠진 중국 이마트 사업을 활성화하는 일이다.
이마트는 지난해 7월 합자법인을 설립해 베트남에 진출했다. 이마트는 10억 달러를 투입해 하노이에 1호점을 개장하는 것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하노이·호치민·하이퐁·껀터 등 베트남 전역에 52개의 매장을 확보할 계획이다. 하지만 베트남은 해외 유통기업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곳이다. 먼저 진출한 롯데마트도 2호점 이후 매장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 문 부사장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신세계는 롯데와 다르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베트남에 가서 매장 개설 대상 부지를 물색하기도 했다.
침체에 빠진 중국 사업에 대한 해결책도 마련해야 한다. 이마트는 지난해 11월 중국 내 27개 점포 중 6개 점포를 매각했다. 이마트 중국 매장은 현지화에 어려움을 겪으며 2004년부터 적자를 내는 상태다. 2010년에도 이마트 중국법인은 910억원의 적자를 냈다.
문 부사장이 해외사업을 총괄하게 된 것은 어려운 상황과 관련이 있는 듯 하다. 해외 사업은 국내와 달리 시장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유통업의 특성상 새 점포를 내려면 정확한 판단과 결단이 필요하다. 초기 투자가 많기 때문에 전문경영인이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신세계는 문 부사장이 오너십을 발휘해 해외 사업을 활성화 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2011년 5월부터 해외 사업을 실질적으로 문 부사장이 담당했다”며 “업무 지식이 풍부한 만큼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범LG가인 LS그룹 인사(12월8일)에서도 뉴페이스가 등장했다. LS그룹의 공동 창업주인 고(故)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의 외아들 구자은 LS니꼬동제련 부사장이 LS전선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한 것이다. LS니꼬동제련에서 최고마케팅책임자(CMO)로 일했던 그는 LS전선 최고운영책임자(COO)로서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구 사장은 지난 1990년 미국 시카고대 MBA를 마친 후 LG와 LS그룹 계열사에서 경험을 쌓아왔다. LG와 GS그룹은 오너 일가라도 현장부터 차근차근 올라가는 전통을 갖고 있다. 구 사장도 LG정유(현 GS칼텍스)에 입사해, LG전자를 거쳐 계열분리 이후 LS전선에서 근무하며 전무로 승진했고, 2008년 LS니꼬동제련으로 옮겨 2009년 부사장이 됐다.
LS그룹은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동생인 구태회·구평회·구두회 명예회장 등 3형제가 2003년 11월 LG그룹에서 독립해 만들었다. 이들은 그룹 출범 직후 일선에서 물러나 아들들에게 기업 경영을 맡겼다. 이후 LS그룹은 사촌형제 간 공동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LS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구두회 명예회장이 별세한 후 사촌형제 간 공동경영 차원에서 구자은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7일 삼성 사장단 인사에서 오너가 중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인물이 있다. 김재열 사장이다. 인사에서 그는 삼성엔지니어링 경영기획총괄 사장에 임명됐다. 그의 부인은 이서현 제일모직·제일기획 부사장이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최근 그룹 안에서 비중이 높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석유·화학플랜트 수주가 크게 늘면서 매출과 이익, 시가총액이 급증했다. 2011년 3분기까지 매출액은 6조1673억원으로 2010년의 연간 매출액 5조2189억원을 넘어섰다. 매년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고, 임직원 수도 최근 5년 사이 3배 이상 늘어났다.
삼성엔지니어링은 김 사장의 글로벌 경영 역량을 주목하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매출의 90%가 해외에서 발생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MBA 출신인 김 사장은 영어 등 여러 외국어에 능통하고 국제 감각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이 해외서 영토를 확장하는데 김 사장의 해외 네트워크가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주변에서는 보고 있다. 삼성 측은 “김 사장은 제일기획 글로벌 전략과 제일모직 경영기획총괄을 역임해 글로벌 경험과 역량을 갖춘 인물”이라며 “삼성엔지니어링을 초일류 기업으로 이끌 적임자”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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