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신오쿠보의 한국 상점 거리 - 평일 늦은 점심에도 일본 주부로 꽉차
도쿄 신오쿠보의 한국 상점 거리 - 평일 늦은 점심에도 일본 주부로 꽉차
일본 내 한류열풍으로 도쿄 중심가 신주쿠(新宿) 신오쿠보(新大久保) 지역에 한국인 상점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동서남북으로 500~600m 남짓한 이 일대에 지난 2년 사이에 생긴 한국 음식점만 해도 150곳이 넘는다. 가장 쉽게 눈에 띄는 삼겹살집을 중심으로 비빔밥, 순두부, 족발, 한국식 중국음식, 김밥, 호떡, 떡볶이 등으로 그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여기에 K팝을 공연하는 소극장도 생겨나 한류팬인 일본인들이 찾지 않고는 못 배기는 유명한 곳이 됐다. 하루에만 2만~3만 여명이 몰려 길거리를 꽉 메운다. 평일 점심시간에도 한국 음식점 앞마다 줄이 늘어설 정도로 성업 중인데 주말이면 지방에서 오는 단체손님까지 더해진다. 가부키쵸 등 기존 일본 번화가보다 오히려 이곳에서 더 큰 활력이 느껴진다.
신오쿠보역 부근에 있는 한 삼겹살 가게는 오후 2시가 넘었음에도 늦은 점심을 먹는 일본인들(주로 20~60대 여성들)로 50여 개의 자리가 이미 꽉 차있었다. 삼겹살을 주문하자 돌판 위에 김치가 올려져 나왔고 마늘, 상추, 깻잎, 쌈장, 숙주나물 등이 나온다. 된장찌개와 공기밥은 추가 주문이다. 거기에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 소주까지 곁들여지니 우리나라 삼겹살 가게를 보는 듯 하다. 진로소주 1300엔(1만9천원 정도), 참이슬 980엔(1만4천원 정도) 수준이니 국내 소매점 가격 1200~1300원짜리 소주가 ‘귀한 술’로 변신한다.
아무리 줄서기 문화에 익숙한 일본인들이라지만 왜 1~2시간씩 얌전히 줄을 서면서까지 삼겹살집을 찾는 것일까. 20대부터 50대 여성 고객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답이 나온다.
푸짐한 음식, 저렴한 가격이 최대 강점일본인들의 식습관이 바뀌면서 새로운 맛을 찾게 된 것. 일본에서는 보통 돼지고기를 삶아서 먹는데 생삼겹살을 연탄불 위의 돌판에 구워서 기름을 쪽 뺀 뒤 고소하게 먹는 게 삶아 먹는 것 보다 더 맛있다는 것이다.
“오이시(美味しい)! 오이시!” 맛있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한 업소 사장의 말에 따르면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본다”면서 눈물까지 흘리는 여자손님이 있을 정도란다.
값싸고 질 좋은 서비스도 한 몫 했다. 일본의 음식점에서는 주요리 외에 반찬은 돈을 따로 지불해야 한다. 반면 한국음식점에서는 메인 요리인 생삼겹살 외에 여러 가지 반찬이 무료로 많이 나온다. 일본인 고객 입장에서는 값도 저렴한 삼겹살을 반찬과 함께 푸짐하게 즐긴다고 느끼게 된다.
이 곳을 찾는 손님들은 가게의 자유로운 분위기도 좋아한다. 한류스타의 인기곡이 나오는 가운데 삼겹살을 굽고, 소주를 한 잔 마시면서 담배를 피우고 수다를 떠는 것이다. 잘 생긴 한국 젊은이들의 친절한 서빙 태도 또한 인기를 끄는 요소임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신오쿠보의 한국 관련 업소의 직원은 대부분 한국인 청년인데 대부분 워킹홀리데이를 위해 건너왔다.
삼겹살집이 큰 규모의 식당이라면 틈새 공간을 활용한 분식집도 자주 눈에 띈다. 채 2평도 안 되는 ‘뽀뽀(POPO)분식’은 호떡 200엔(3000원), 떡볶이 대 500엔(6000원) 소 300엔(4500원)에 판매한다. 싸면서 맛있는 인기메뉴로 길가는 여성들이 손에 하나씩 분식집 간식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호떡과 오뎅, 떡볶이를 길거리에서 서서먹는 모습 또한 발견하기 어렵지 않다. 하루에 호떡만 300개를 판다는 가게 주인은 일본유학을 왔다가 눌러앉아 호떡 대박을 터뜨렸다. 이 가게를 모방한 호떡집이 인근에 많이 생겼다.
최근 일본 마이니치(每日新聞) 신문은 신오쿠보지역을 ‘한류 유원지’라고 표현하면서 단순히 쇼핑하고 한국식당 이용하는 차원에서 더 발전된 관광지가 됐다고 보도했다.
2003년 ‘욘사마’로 통하는 배우 배용준이 주연한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 방영되면서 한류 붐이 일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50~60대 여성들이 열광했는데 2007~2008년을 거쳐 한국의 아이돌 가수 배우가 일본에 속속 진출하며 10대부터 70대까지 전 일본 세대가 한국의 대중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10년 전 일본인들은 한국산 제품이라면 인삼밖에 몰랐지만 한류스타들의 일본 진출이 빈번해지면서 김치, 김 등의 식료품부터 화장품, 한류스타 음반, 액세서리에서 삼겹살과 호떡 등의 분식까지 한국의 음식과 제품을 즐겨 사고 있다. 한국음식재료 등을 공급하는 대형매장도 속속 생겨나고 한국인 직영 호텔도 생기는 등 창업과 일자리 창출에 한몫을 하고 있다.
한국음식가게 열풍으로 좋은 자리찾기 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장사는 목이 최고’라는 말 대로 중앙 거리 좌우의 몫 좋은 가게들은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후미진 뒷골목의 가게까지 다 잘되는 것은 아니다.
신오쿠보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김 모씨는 “2~3년 전부터 한류열풍이 불면서 가게를 찾는 사람들이 몰리다보니 이젠 프리미엄이 붙어 임대료가 훌쩍 올랐다”고 말했다. 사실 일본에서는 프리미엄이란 말이 없었다. 매월 월세 개념으로 임대를 하는데 이 권리금을 뜻하는 ‘프리미엄’이라는 말이 한국인들끼리 가게를 넘기는 과정에서 붙었다.
김 씨에 따르면 1층 가게의 경우 1평당 월 임대료 3만~4만엔(45만원~60만원), 여기에 위치, 조건에 따라 권리금이 붙는데 목이 좋아 영업이 잘 되는 가게는 2천만엔(3억 원)~4천만엔(6억 원 정도)까지 권리금이 붙어 거래된다고 귀띔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올해 2월까지 농식품 일본수출은 해외수출물량의 31% 정도로 증가추세에 있다고 밝혔다. 한류가 젊은층과 지방도시까지 확산되면서 한국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1세대 한식붐이 김치와 부침개, 조미김 정도이고 2세대로 삼계탕, 잡채가 추가됐다면 최근 3세대 한식붐은 막걸리, 고추장, 떡볶이, 젓갈, 청국장, 각종 양념류 등 다양해졌다고 한다.
농식품 해외 수출의 31%가 일본행 이에따라 신오쿠보와 오사카 쓰루하시(鶴橋) 등 대도시 코리아타운을 중심으로 한국식재료를 판매하는 상점이 크게 늘었다. 작년 12월에 선보인 신오쿠보 중심가의 K프라자는 지하1층, 1층, 2층에 대형몰을 차려 기존의 재래시장과 같은 분위기를 백화점처럼 멋있게 바꾸어놓았다. 1개 층이 약 160평 정도로 ‘거리만 있고 한류 브랜드가 없는 곳’에 일대 변화를 가한 것이다.
지하 1층 그랜드파크, 1층 총각네, 2층 스킨가든 매장은 층별로 각각 별도의 사장이 운영한다. 한류 연예인 사진집과 브로마이드, 음반, 드라마 CD 등을 팔고 있는 지하 1층의 매장의 최고 인기 상품은 장근석의 브로마이드와 카라, 소녀시대의 한국판 음반이다. 이 매장의 운영자는 신오쿠보 외에도 요코하마, 후쿠오카에도 그랜드파크 매장을 열었고 한국식당과 식품점도 따로 운영하고 있는데 전체 매출액은 연간 20억엔(300억 원)이라고 말했다.
농협은 신오쿠보에 선식과 옥수수차, 김치 등을 소개하는 ‘농협 안테나 숍’을 최근 개장했다. 손님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기 위한 일종의 테스트 숍(test shop)이다. 통계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한국상품은 김, 김밥, 김치, 동반신기 한국발매 CD 순이라고 한다.
한국인의 한류 비즈니스 열기는 도쿄 신오쿠보 지역을 출발점으로 해서 점차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중국과 동남아 등 “한류가 가는 곳에 한국상점이 진출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여서 한류의 바람을 탄 한류창업은 앞으로 더욱 더 그 영역을 넓혀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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