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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경비행기 레저스포츠 시대

[FOCUS] 경비행기 레저스포츠 시대

70미터쯤 달렸을까. 경비행기는 양 날개를 가볍게 흔들더니 충남 태안군 한서대 태안비행장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안면도 상공. 조종간을 좌우로 꺾어 선회할 때마다 사방이 탁 트인 2인승 경비행기 발 밑으로 해안선과 논밭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시속 50노트(약 90㎞)의 비교적 빠른 속도로 날았지만 풍경은 천천히 흘러갔다. 저 멀리 천수만에 모여든 철새들이 보였고, 꽃지해수욕장의 할매·할아비 바위가 작은 돌멩이처럼 느껴졌다. 약 280kg의 ‘작은 새’는 바람을 가르며 자유롭게 날았다. 가끔 구릉을 타고 오른 바람이 기체를 흔들어 운항중임을 알려 주는 듯 했다.

“관제탑, 5마일 남쪽에서 접근 중. 착륙 허가를 요청한다.” 한 시간 남짓 비행 후 관제탑에 보고를 하고 속도를 낮추었다. 성인 두 사람을 태웠으니 항공기의 무게는 약 430kg 남짓. 하지만 착륙은 생각보다 가뿐했다. 세 바퀴가 땅에 닿고 약 100미터를 달린 후 10여 개의 계기판 바늘이 모두 멈췄다.

기자가 탄 경비행기는 ‘유로스타 베이직’. 날개 길이 8.15미터, 앞뒤 길이 5.98미터, 높이 2.48미터, 최대이륙 중량 472kg의 초경량항공기다. 최대 순항속도는 시간당 110노트(약 200㎞), 최대 항속거리는 1300㎞. 현대H몰이 지난 2월14일부터 판매하고 있는 경비행기 중 한 모델이다.



주문 6개월 후 납품, 맞춤형 디자인 가능


홈쇼핑의 경비행기 판매가 특별한 레저스포츠를 즐기려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1월 11번가가 경비행기 ‘제니스 스톨 CH-750’을 선보이자 현대H몰이 해외 유명 브랜드 경비행기를 상품으로 내놓으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제니스 스톨은 이륙 시 최소 30m, 착륙 시 최소 38m의 활주로만 확보되면 이착륙이 가능한 기종이다. 미국에서 유사·동일기종 1000여대가 운용될 만큼 상용성과 안전성을 검증 받았다고 11번가 관계자는 전했다. 가격은 9900만원. 웬만한 자동차 한대 값이다.

현대H몰은 체코의 유로스타, 독일의 자이로플레인·CTLS 등 8900만원짜리 헬리콥터형 경비행기부터 2억4900만원의 최고급 모델까지 다양한 상품을 내놓았다. 지난해 추석 독도 상공 비행에 나서 화제가 됐던 산악인 허영호씨의 경비행기도 독일 플라이트 디자인사가 제작한 CTLS 기종이다. 일반적으로 2인승 경비행기는 판매 가격이 9000만원 대에서부터 1억6000만원 대에 이르지만 동체 라인을 유려하게 설계하고 각종 최신 항법 전자 장비를 갖추면 2억원을 넘어선다.

두 홈쇼핑 업체에서 선보인 상품은 모두 도원항공에서 제작한다. 도원항공은 비행기 제작에서 교육·정비까지 진행하는 경비행기 전문 업체다. 대통령전용기 조종사 출신인 이강윤 도원항공 대표는 “고객이 원하는 옵션 사항을 고려해 해외에서 비행기의 각 파트를 수입하고 이를 조립해 비행기 전체를 완성하게 된다”며 “외부 디자인은 물론이고 수천만 원대의 3D 디지털 계기판 등 주문자의 개성에 따라 옵션 및 세부사항 구성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상품 인도까지는 주문 후 6개월이 소요된다. 이 기간에 경비행기 자격증 취득과정, 등록 안전성 검사와 항공기 등록 대행 서비스가 무료로 제공된다. 격납고는 태안반도에 있는 한서대 태안비행장 격납고를 사용한다. 홈쇼핑에서는 구매 욕구를 높이기 위해 경비행기 체험 상품도 함께 판매하고 있다. 이론 교육 30분과 체험 비행 30분으로 구성된 10만원짜리 패키지다.

이번 경비행기 관련 상품을 기획한 이창우 현대홈쇼핑 e가용팀 선임은 “단순히 해외 경비행기를 수입해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들의 요구 사항에 맞는 맞춤형 경비행기를 제작하는데 차별화를 두었다”며 “취미 생활까지 남들과 차별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경비행기가 새로운 레저스포츠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비행기는 최대 이륙중량이 600㎏ 이하, 최대수평비행속도 120노트(시속 220㎞) 이하, 조종사 좌석을 포함한 탑승좌석이 2개 이하인 비행기로 스포츠 에어크래프트(sports aircraft)라고도 부른다. 4인승 이상 항공기는 운송이 기본 목적이지만 2인승 경비행기는 레저스포츠로 만들어진 비행기다. 이 때문에 사양 자체도 심플하게 만들었다. 양쪽에 같은 제동장치가 설치돼 있어 조종과 훈련이 쉽다. 단, 야간비행과 계기비행은 제한된다.

이창우 선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수상레포츠를 비롯한 다양한 레저 활동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고 최근에는 요트 세일링·경비행기 조종 등 보다 특별한 여가 활동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며 “현재 공식적으로 등록돼 있는 경비행기가 730대를 넘었고, 항공레저스포츠 인구가 12만 명을 넘는 등 선진국형 항공레저에 대한 수요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자격증 취득 간소화, 항공레저 시대 온다


경비행기 조종사 자격은 일반 항공기 조종사에 비해 쉽게 딸 수 있다. 단독 5시간 포함 20시간 이상 조종시간을 채우면 자격증 취득에 도전할 수 있다. 필기시험은 항공법·항공역학·항법·항공기상 등 4과목이며 과목별로 70점 이상 받으면 합격이다. 일반 항공기의 경우 20여 개 검사 등 신체검사가 상당히 까다롭지만 경비행기의 경우 자동차운전면허가 있으면 신체검사를 대신할 수 있다. 주말을 이용해 5개월 정도 준비하면 자격증을 딸 수 있다. 1주일에 2시간 정도 운항을 한다고 했을 경우 관리비는 계류비·연료비·정비검사료 포함 월 70만원 수준이다. 단 아직까지 일반 항공기 보험이 적용돼 2억원 경비행기의 경우 종합보험료가 연 2000만원에 이른다.

현대H몰이나 11번가 두 홈쇼핑 모두 실제 판매 사례는 아직 없다. 대신 체험상품을 찾는 사람들은 느는 추세다. 이 대표는 “판매 공고가 나간 후 하루 한 차례 꼴로 체험 고객이 방문하고 있다”며 “주로 20~50대 후반으로 수상스키와 요트 같은 해상레저, 스포츠카 등 스피드레저를 거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체험한 사람이 구체적인 상담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20% 정도. 이 대표는 “우선 비행기를 홈쇼핑에서 살 수도 있구나 하는 사실에 사람들이 신기해한다”며 “체험한 고객들을 중심으로 경비행기 판매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척박한 인프라다. 활주로 등 기반시설이 부족해 경비행기 레저스포츠 확대가 쉽지 않다. 이 대표는 “태안비행장의 경우 국내 최고의 시설이지만 서울 등 대도시에서 거리가 멀다는 게 단점”이라며 “마리나 시설 확충이 요트 열풍에 큰 도움이 된 것처럼 활주로, 격납고 시설이 확대되면 항공레저스포츠도 바람이 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국토해양부는 2015년까지 전북 김제 또는 경남 고성에 경비행장, 충북 제천에 수상비행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또 2인승 경비행기 국산화 개발 사업에 200억원을 투입해 2014년 8월에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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