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City] 맨체스터는 자랑하지 않는다
첫 대면부터 낯을 가리지 않고 매력을 과시하는 도시가 있는가 하면 시간을 두고 서서히 속살을 드러내는 도시도 있다. 관능적이지 않지만 자생력이 있고 돌아보기 쉬우며 유쾌하고 미안해 하지 않으면서 겸손한 도시들이다.
런던 북서쪽으로 320km, 더 시끌벅적한 이웃 도시 리버풀에서 차로 불과 30분 거리에 있는 맨체스터는 후자 쪽이다. 아름다움이 결여됐다는 말은 부정확한 표현이다. 면화가 귀한 대접을 받고 맨체스터가 면화의 중심지였던 시절에 대형 공장과 창고가 많이 들어섰다. 그 건물들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궁전과 같은 크기이며 실제로 햇빛 찬란한 날에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궁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금은 호텔, 클럽, 아파트 건물로 변한 옛날 공장과 창고는 끊임없는 근면의 사원에서 한없는 즐거움의 궁전으로 훌륭하게 변모했다. 빅토리아풍의 신고딕 건축물도 맨체스터에서 활짝 꽃을 피웠다(enjoyed a flowering). 첨탑이 있어 동화 같이 근사한 시청이 대표적이다. 자신감과 풍족함이 넘치는 상업계의 대성당처럼 보이지만 자신을 과시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젖은 거리 위에 내려앉는 달빛, 저 멀리 피어 오르는 연기에 반사된 빛으로 반짝이는 굴뚝, 요즘 같은 불경기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단 계곡들, 그리고 토요일 밤 날씨가 어떻든 허벅지를 드러낸 소녀들과 반 소매 셔츠 차림의 소년들이 야외에서 모히토 칵테일을 마시는 모습 등이 이 도시의 풍경이다. 그러나 맨체스터가 항상 전하고자 하는 이미지는 시적이라기보다 실질적인 모습이다. 예술가나 모험가보다는 실업가, 자유무역주의자, 개혁자들을 기념하는 조각상, 공공건물, 광장에 반영된 철저하게 실용적인 둔감함이다.
맨체스터가 자신의 문화적 성과를 가볍게 여긴다면 그건 화려함을 경멸하기 때문이다. 100년 전 맨체스터는 음악도시로서 베를린·빈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50년 전 독일 이민자가 창단한 할레 오케스트라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교향악단이 됐다. 이는 당시 찰스 할레 같은 독일 베스트팔렌 출신의 젊은 음악 신동이 그곳을 고향으로 선택하게 만들었던 어떤 매력이 맨체스터에 있음을 말해준다. 소규모지만 능동적인 독일인 거주자 그룹은 이미 맨체스터에 정착해 음악을 작곡하고 토론모임을 열어 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창작에 소극적이던 맨체스터 원주민들이 이런 자극이 필요하다고 느꼈다면 그것은 순전히 그들이 마음을 열고 받아들인 덕분이다.
내가 성장할 동안 유대인 인구는 적었지만 맨체스터는 내게 유대인 도시 같은 인상을 줬다. 우리 유대계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편하게 느껴졌으며 활기차고 희극적인 비관주의와 조화를 이뤘다. 위대한 도시는 다름을 수용할 수 있을 때 가장 자신다워진다는 사실을 안다. 맨체스터의 경우는 그 결과로 다른 문화들이 맨체스터의 겸허함과 유머감각을 받아들였다. 그에 따라 맨체스터에서는 런던에서보다 더 재미있는 유대인 조크를 듣게 된다.
이 도시 제일의 천재는 1976년 세상을 떠난 화가 L S 로리다. 산업경관(industrial landscapes)으로 유명한 그의 그림은 생명력이 넘치면서도 머리 위로 낮게 깔린 구름이 걷히는 때가 아주 드문 북부 사람의 쓸쓸함을 표현했다. 로리의 위대함이 인정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가 철저하게 평범한 미술을 추구하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재능을 깎아 내렸기 때문이다. 축구(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외에는 맨체스터에선 자기 자랑을 하는 법이 없다(it’s not done to blow your own trumpet). 사람들은 버스에서 또는 상점에서 남들을 따라 웃는다. 인간의 희극이 보편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들 자신도 남들 못지않게 코미디의 대상이 된다. 한때 어마어마하게 부유했던 방적도시의 주민들이 쇠락하는 현실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아니다. 맨체스터는 항상 간결한 쾌활함(laconic mirth)이 강점이었다. 지금도 맨체스터 사람들은 거리에서 그것을 공기처럼 호흡하며 산다.
[필자는 소설 ‘핑클러의 질문(The Finkler Question)’으로 2010년 맨부커상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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