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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김종섭 삼익악기 회장

[INTERVIEW] 김종섭 삼익악기 회장


세계 최고의 악기 회사인 미국의 스타인웨이를 인수했다. 지난해엔 경영권도 확보했다. 그에 앞서 세계 2, 3위인 유럽 피아노 회사들도 손에 넣었다. 김종섭 삼익악기 회장 이야기다. 정작 그는 “좋은 일을 하다 간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의 뛰어난 경영자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인수·합병(M&A)에 능한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과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 그리고 삼성의 CEO들은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경영자들이죠. 나는 한국의 탁월한 중소기업인들도 세계적으로 손색이 없는 경영 능력을 갖췄다고 봅니다.”

김종섭(65) 삼익악기 회장은 “우리 중소기업인들도 이런 능력을 발휘해 해외 M&A에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1979년 건설 장비 플랜트 전문업체 스페코를 창업한 김 회장은 2002년 법정관리 위기에 몰린 삼익악기를 인수했다. 그 후 독일의 유명 피아노 회사 벡스타인(세계 2위)과 자일러(세계 3위)를 인수한 데 이어 2009년엔 세계 최고의 피아노 회사인 미국 스타인웨이의 최대 주주가 됐다. 스타인웨이는 전 세계 연주홀에 놓인 그랜드피아노의 98%를 점유하고 있는 명품 피아노. 세계 80여 개국에 수출되고 가격은 대당 3억원을 웃돈다. 스타인웨이는 과거 그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피아노를 납품하고 싶어했던 회사이기도 하다.

삼익은 지난해 3%의 스타인웨이 황금주까지 인수했다. 스타인웨이의 황금주는 보통주 98배의 차등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특별주식이다. 주주총회 결의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김 회장은 지난 2000년 두산그룹이 박용만 회장 주도로 한국중공업(두산중공업의 전신)을 인수할 당시 경합하기도 했다. 그는 M&A를 할 때 브랜드 파워가 세계 시장에서 1, 2위인 업체를 노린다. 그런 회사라야 메리트가 확실하고, 경영 능력이 떨어지거나 경영 환경이 악화하더라도 이른바 ‘승자의 저주’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2위 브랜드를 인수할 때의 효용은 그만한 브랜드 가치를 축적하는 데 소요되는 막대한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타인웨이는 158년 역사의 독보적인 브랜드다. 50년 역사의 삼익은 세계 최고급 목재를 사용하고도 스타인웨이 제품의 10분의 1 값밖에 못 받는다.

“정보기술(IT) 업계를 예로 들면 애플이나 삼성전자는 누가 인수하든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노키아를 인수한다면 다시 애플과 삼성전자를 따라잡기 위해 기를 써야겠죠. 중소기업도 할 수 있습니다. 돈이 없어도 비즈니스 플랜이 확고하면 외부의 도움을 받아 해외 M&A를 할 수 있어요.”



M&A 대상은 세계 1, 2위 브랜드그는 스타인웨이의 가능성에 대해 이런 저런 구상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스타인웨이 생수’를 만들어 파는 식이다.

“우리나라에서 페리에와 에비앙의 소비가 크게 늘었듯이 요즘 중국 부자들은 자국에서 생산되는 물을 먹지 않습니다. 스타인웨이를 인수한 목적 중 하나가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었죠.”

지난 3월 중순 논현동 삼익악기 사옥에서 김 회장과 두 차례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의 방엔 커다란 세계지도가 걸려 있었다. 그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무역장벽을 쌓고 그 안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단적으로 어느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든 우리가 손해날 수도 있다는 피해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그보다는 잘 활용할 생각을 해야죠. 피아노를 예로 들면 삼익 피아노는 1500달러인데 중국산은 800달러짜리도 있습니다. 가격이 삼익의 2분의 1 수준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밀리지 않아요. 이렇게 모든 사물엔 양면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중국산 식품을 잘 안 먹듯이 우리 농산물도 브랜드 가치를 키우면 두세 배 값 받고 팔 수 있어요. K팝이 그런 예죠. 이수만 씨가 이끄는 SM의 아이돌 가수 연습생은 일본어·중국어·영어를 하는 지망생들로 구성됩니다. 해당 언어권을 겨냥한 포석이죠. 이렇게 5년 동안 훈련을 시키니 먹히는 거예요. K팝의 비즈니스 모델을 축구에 원용하면 한국 축구도 세계를 제패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한때 풍미했던 ‘샌드위치론’도 일축한다. 우리나라가 일본을 바짝 따라잡고 중국과의 격차는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업체들과 미팅을 해 보면 지난 5년 동안의 엔화 강세로 지친 기색이 역력합니다. 특유의 저력으로 잘 버텼지만 이제 한계에 이른 셈이죠. 일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중국과는 20년의 격차가 있습니다.”

삼익악기는 매출의 80%를 해외에서 올린다. 인력의 80%도 해외 법인에 근무한다. 인도네시아 생산법인에만 2900여 명이 소속돼 있다. 올 매출액은 지난해보다 2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삼익 측은 전망했다. 삼익은 2004년 부도 직전이었던 영창악기의 지분을 인수했지만 독점을 우려한 공정거래위원회가 두 회사의 합병을 불허해 인수가 무산됐다. 이 일로 삼익은 큰 손실을 입었다. 그는 당시 미국 현지법인 사장이 본사를 미국으로 옮기자고 제의했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에 글로벌 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으면 그런 기업들이 점차 불편해 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김 회장은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출신이다. 동성고 3학년 시절 좋아하던 선생님이 “사회복지학은 앞으로 뜰 학문”이라고 귀띔한 것에 영향을 받았다. 성적도 사회복지학과에 지원하면 따 놓은 당상이었다. 어려서 뇌막염을 앓아 정신장애가 생긴 동생도 눈에 밟혔다. 입학하고 보니 사회복지학은 정말 좋은 학문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지금도 주변 사람들에게 “딸은 사회복지학을 전공시키라”고 권한다.

그는 “사회복지학이야말로 부자를 위한 학문”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의 맹점을 보완하는 학문이라는 뜻에서다. 그는 이런 예를 들었다. 어느 마을에 큰 부자가 살았다. 어느 해 이 마을에 극심한 기근이 들었다. 부자는 이런 상황에서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하나는 수백 가마에 이르는 쌀을 지키기 위해 담장을 높이 쌓는 것이다. 곳곳에 경호원을 배치하고 외출할 때면 방탄차를 탄다. 그 결과 집은 마치 왕궁 같지만 대문만 나서면 지옥이 따로 없다. 다른 하나는 보유한 쌀의 30%쯤 푸는 것이다. 그러고 났는데 이 집에 불이 났다고 가정해 보자. 쌀을 풀기 전 굶어 죽을 수 없어 이 집 담장을 넘으려던 마을 사람들이 물동이를 들고 불을 끄러 올 것이다. 대문을 나서면 반갑게 인사하고 혹시 도울 일이 없느냐고 물을 것이다.

그는 연말이면 직원들 동원해 연탄 나르고 김장 담그는 대기업들이 딱하다고 했다. 사진 찍혀 신문·방송에 나가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정작 도움 받는 당사자들에게선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얘기다.

“요즘 연탄은 질이 낮아 한겨울에 하루 세 번은 갈아야 합니다. 당사자인 할머니들이 고달파요. 그런데 100만원이면 전기 보일러로 바꿔줄 수 있습니다. 영세민들은 전기료도 공짜지요. 100만원씩 100세대라고 해 봐야 1억원입니다. 연탄 나르는 은행장의 연봉을 일당으로 환산하면 100만원입니다. 그런 고액 연봉자가 연탄을 나른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죠. 김장 김치 담가 돌리면 할머니들이 도로 가져가라고 합니다. 김치 다섯 포기면 겨울을 나는데 매일 김치만 먹습니까?”

문제는 사회공헌 활동에 담긴 진정성이라고 했다. 연탄 나르고 김장 담그는 일은 중소기업이나 지역사회에 맡기고 대기업은 규모에 걸맞은 일, 돈과 조직, 아이디어가 요구되는 활동을 하라는 것이다.

“재벌 총수 한 분쯤은 ‘연탄 쓰는 가구 없애기 운동’을 벌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1년에 10억원씩 10년만 투입하면 없앨 수 있을 텐데요. 전 세계에 백신을 보급해 소아마비를 추방하겠다고 선언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처럼 말이죠. 재산도 재산이지만 자녀들에게 그런 평판을 물려줘야 합니다.”

그는 뜬금없이 “사채업자 후손 가운데 성공한 사람 보았냐”고 물었다. 그러더니 “단 한 명도 없다”고 자문자답했다.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이 없어 성공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평범했다면 욕을 안 먹었을 텐데 돈이 많아 욕 먹는 사람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중소기업도 자체 구내식당에 동네 노인들을 초대해 밥 한 끼 대접하는 건 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삼익악기는 2010년 업종 대표 중소기업 가운데 매출액 대비 가장 많은 기부를 했다. 약 0.6%로 6억원 가량이다. 그는 대주주로서 자신이 받는 배당을 기부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기부를 하려면 배당금에서 또 세금을 떼이기 때문이다. 그는 스타인웨이 경영진에게도 매출액의 1~3%를 사회에 환원하라고 제안했다고 강조했다.

“스타인웨이는 ‘위대한 회사’ ‘위대한 이름’이라고 하는데 아프리카의 흑인 소년한테서도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지 않으냐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10만 달러짜리 피아노를 10만3000달러에 팔아도 살 겁니다. 부유층에게 ‘당신이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사면 아프리카 대륙의 아이들에게 3000달러가 기부된다’고 하면 좋아할 거예요. 복 받을 일이니까요.”



나눔 활동은 감성 마케팅 툴그래서 구상중인 게 스타인웨이 재단이다. 그는 일찍이 이런 생각을 마케팅과 연결시켰다. ‘복 마케팅’이라고 할까. 과거 스페코의 장비를 팔 때 그는 “우리 기계는 복 받는 기계”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우리 기계를 들여놓으신 분들은 다 돈을 벌었습니다. 복 받는 기계이기 때문이죠. 돈 벌면 저도 좋은 일에 쓸 겁니다. 그래서 사업 하는 거고요. 그러니 동참하시죠’라고 말했습니다. 당시엔 레미콘·아스콘 붐이 일 때라 실제로 고객들이 돈을 벌었어요.”

그 연장선에서 그는 “나눔 활동을 통해 감성 마케팅을 하는 시대가 열렸다”고 말했다. “삼익과 영창이 어떻게 다르냐고 묻는데 피아노 소리가 어떻고 저떻고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겁니다. ‘우리는 수익금 일부를 아프리카 아이들을 돕는 데 씁니다’라고 하는 게 더 고차원 마케팅이죠.”

삼익악기 인도네시아 현지법인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각각 20만 달러씩 출자해 삼익 측 부지에 기술학교를 세웠다. 정식으로 당국에 등록을 하고 지난 2월 개교식도 했다. 이름은 삼익기술학교. 교장은 교사 출신의 현지인이다. 1년 과정으로 피아노 조율, 악기 제조 목공예, 제빵, 봉제, 이·미용 기술 등을 가르친다. 과정을 마친 학생들에게는 마이크로 크레딧을 통해 창업 비용을 대출해 주려고 한다. 창업 인큐베이팅을 거쳐 자립까지 시키겠다는 것이다. 김 회장으로서는 전공인 사회복지를 제대로 살리는 셈이다.

“우리나라 ‘미소금융’은 대출금액이 커 보입니다. 본래 마이크로 크레딧의 취지는 소액 대출을 해주는 겁니다. 우리는 100만원 이하를 빌려주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에겐 별 것 아니지만 거기서는 그 돈이면 구멍가게를 차릴 수 있죠. 이게 성공하려면 사회적 약자이자 생활력이 강한 여자들한테 돈을 빌려줘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가정을 책임지게 하는 거예요. 자립하면 돈을 갚게 하고요. 여자들은 평생 이런 도움을 받아본 일이 없어 돈을 떼이는 일도 없을 겁니다. 한국인이 하는 봉제공장에 취직도 시킬 겁니다. 이런 계획을 밝혔더니 한국 공장들이 기술학교에 미싱을 제공하겠다고 합디다. 봉제 일을 하는 인력을 우리가 공장에 공급하는 거죠. 기술을 배우는 동안 한국어도 익히면 여러모로 이득이죠. 현지 법인 우리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서 20년 벌었는데 지역사회에 현지인을 고용하는 것 이상의 사회환원을 해 보자고.”

그는 인도에 진출하면서 현지인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는 포스코를 비롯해 우리 기업들이 이런 ‘선무작업’을 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공장가면 반드시 공장밥 먹어 봐기업을 인수하거나 공장을 찾을 때면 그는 반드시 공장밥을 먹는다.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짐짓 식사의 질을 높이라고 한 마디 한다. 이 소문이 나고 다음 날부터 식단이 좋아지면 공원들의 일하는 자세가 달라진다. 회장이 자신들을 배려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있던 노사분규도 잦아든다. 그래서 노사분규 철이 되면 아예 식단의 질을 올리라고 지시한다. 삼익악기 인수 후 인도네시아 법인을 방문했을 땐 50만 달러를 들여 식당을 수리하게 했다.

“대원군 시절 임오군란이 일어난 것도 배급 쌀에 돌을 섞은 게 빌미가 됐습니다. 인도네시아 공장식당에 가서 현지인들이 먹는 음식을 먹는데 도저히 못 먹겠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인 직원들에게 당신들은 먹어 봤느냐고 물었더니 진출한 지 10년인데 한 명도 먹어본 적이 없더라고요.”

그는 대한적십자사 부총재와 서울대발전기금 이사를 맡고 있다. 그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지는 서울대 글로벌 사회공헌센터의 건축비를 그는 이중근 부영 회장에게 ‘떠넘겼다’고 했다. 동남아 국가 각급 학교에 디지털 피아노를 기증하고 있는 부영은 이 일을 위해 삼익 제품을 1만 대 구입했다. 이를 눈여겨본 그가 일면식도 없는 이 회장을 점 찍은 것이다. 글로벌 사회공헌센터 조감도 한 장 달랑 들고 이 회장을 찾아간 그는 “서울대 안에 지어지는 이 건물에 부영 간판을 하나 다시라”고 권했다. 피아노를 많이 사줘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온 줄 알았던 이 회장은 그의 제의를 즉석에서 수락했다.

“프로그램만 잘 만들면 기부할 기업들 많습니다. 삼성도 좋은 프로그램을 제시하면 1조원은 쏠 겁니다. 석유왕 록펠러, 철강왕 카네기도 악착같이 벌어 대학 등에 기부해 자선가로 후세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습니까?”

1960년대 후반 사회복지학도 시절 김 회장은 정신지체아동 보호시설을 찾았다. 한겨울에 여성 봉사자가 찬물에 옷을 빨고 있었다.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그녀의 손등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그렇게 희생적인 봉사를 할 자신이 없었다. 그 시절에 이미 미팅 주선으로 가정교사 이상의 수입을 올린 그는 돈 버는 재주를 살려 남을 돕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또래들이 행정고시를 거쳐 공무원의 길을 걸을 때 창업을 했다.

“기업인 김종섭은 스타인웨이 인수로 1등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회사를 잘 지키는 것으로 족해요. 그런데 그보다 좋은 일을 하다 간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이 방면에선 나만큼 지식을 쌓고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도 없고요. 나는 좋은 일을 하려고 돈을 법니다. 이런 생각으로 돈을 버니까 돈도 잘 벌리더라고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더 노력해야죠. 이 나이에 돈 더 남기겠다고 뛴다면 얼마나 초라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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