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Travel] 독일 베를린 - 고대와 현대의 절묘한 조화

[Travel] 독일 베를린 - 고대와 현대의 절묘한 조화

최근 몇 년 사이 베를린은 세계 예술계에서 주목 받는 도시가 됐다. ‘1980년대의 뉴욕’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세계의 젊은 아티스트들이 모이는 예술의 도시로 자리 잡았다. 요즘 베를린을 여행하는 키워드 안에는 건축과 아트가 있다. 예술 도시로서 베를린의 매력을 넘치게 하는 것은 우선 건축일 것이다. 낭만적인 운터덴린덴 거리를 걷다 보면 로코코, 바로크, 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은 다양한 건축물을 만날 수 있다. 다섯 개의 박물관이 섬처럼 모여 있는 뮤지엄진젤에 가면 고대 헬레니즘 건축에서 19세기 프랑 인상파의 걸작품까지 두루 감상할 수 있다.

베를린에는 파리의 루브르나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필적할 만큼 대단한 건축·예술 작품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도 페르가몬 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고대 역사 자료와 유물을 소장한 곳이다. 제우스 신전의 제단을 비롯해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의 건축 조각 작품들을 대거 전시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신 로마네스크 양식의 카이저 빌헬름 교회와 신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설된 제국의회(Reichstag), 바로크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손꼽히는 샤를로텐부르크 성 등 베를린의 건축만 둘러보는 데에도 며칠이 걸릴 정도다.

세계의 건축가들이 완성한 현대 건축물도 전시장을 이룬다. 특히 포츠다머 플라츠는 이런 현대식 건축물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랜드마크 같은 곳이다. 이곳에 가면 파리의 퐁피두 센터를 설계한 렌조 피아노의 다임러 크라이슬러 건물과 헬무트 얀이 지은 소니센터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의 작품을 둘러볼 수 있다.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는 소니센터의 원형 광장 위에는 ‘서커스 텐트 탑’이라 불리는 흰색 돔형 지붕이 북적대는 여행자들을 감싸고 있다.

베를린만의 독특한 건축이라면 전쟁과 분단, 유대인 학살과 관련된 추모 공간이 여럿 있다는 점이다. 전쟁의 참혹성과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파괴된 교회를 일부만 복원하고 그대로 놔둔 카이저 빌헬름 교회나 베를린 장벽으로 유명한 이스트사이드 갤러리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축물은 홀로코스트 메모리얼과 유대인 박물관이다. 미국의 저명한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이 설계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2711개에 달하는 직사각형 기둥이 물결을 이루듯 도심 한복판의 광장을 메우고 있다. 유대인에 대해 저지른 만행과 잘못을 인정하고, 일상 생활 속에서 반성하고 기억하기 위해 만든 건축물이다. 겉으로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지만 이곳에서 경험하게 되는 숙연함과 엄숙함은 뛰어난 건축미 이상의 감동을 전해준다.



전쟁과 분단, 학살의 추모공간또 티타늄 아연판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채 만들어진 유대인 박물관도 베를린의 뛰어난 건축물로 평가 받는다. 9·11테러로 무너진 월드 트레이드 센터 자리에 들어설 프리덤 타워를 설계한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만든 곳으로, 독일에 사는 유대인의 2000년 역사를 담고 있다. 이곳에서는 학살된 유대인들의 얼굴을 상징하는 철판이 무수히 깔려있는 방인 ‘공백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베를린의 골목 어디에서나 그래피티(공공장소나 벽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를 보게 된다. 낡은 건물의 벽과 문, 다리 밑 등 빈 틈이 있는 모든 곳에 자유롭게 그려진 그래피티는 그 자체로 훌륭한 갤러리 역할을 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스트리트아트 작가들의 캔버스로 애용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 집 건너 갤러리일 정도로 많은 갤러리 탐방도 베를린 여행의 묘미다. 실제로 베를린에는 470여 개의 갤러리가 있고, 1만여 명에 달하는 세계의 아티스트들이 살고 있다. 저렴한 집값과 물가를 찾아 베를린으로 몰려든 젊은 작가들은 신선한 아이디어와 창의적인 작업으로 서로에게 예술적 영감을 전해주며 보다 창조적인 작업과 에너지를 공유하고 있다. 작가들이 작업과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장소도 무궁무진하다. 갤러리는 물론 바와 카페, 춤추는 클럽에서도, 그리고 오래된 공장 안에서도 전시와 파티, 아티스트들의 교류가 이루어진다. 이처럼 공간의 제약 없이 자유분방하게 작업을 하고 전시가 가능한 분위기는 베를린이 컨템포러리 아트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일 것이다.

베를린에는 갤러리 거리로 유명한 곳이 몇 군데 있다. 우선 베를린의 최신 트렌드와 문화를 이끄는 미테(Mitte)를 빼놓을 수 없다. 가장 대표적인 화랑가는 아우구스 스트라세와 리니엔 스트라세. 베를린 비엔날레를 주관하는 카붸를 비롯, 독일의 대표적인 현대미술 작가를 대거 보유한 노이거림슈나이더, 신 라이프치히 화파의 대표적인 작가인 네오 라우흐와 팀 아이텔이 적을 두고 있는 갤러리 아이겐+아트, 쿡카이+쿡카이 등이 대표적인 갤러리다.



컨템포러리 아트의 갤러리 순례아우구스트 스트라세에서 걸어서 5분 정도면 갈 수 있는 브루넨 스트라세는 신생 갤러리들의 밀집 지역. 5년 전까지만 해도 세 개의 갤러리밖에 없었던 이 지역에 현재는 스무 군데가 넘는 갤러리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2km에 이르는 오전의 한적한 거리를 거닐며 여유롭게 갤러리 구경을 할 수 있는 동네다.

현재 베를린에서 가장 주목 받는 갤러리 지역은 쇼네베르그 지역의 포츠다머 스트라세다. 원래 집창촌이 있던 이 지역은 최근 1~2년 사이, 번지수 70에서 100 사이에 갤러리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히 독일의 유명 일간지인 타게슈피겔의 창고로 쓰였던 건물 안에는 작은 현대 갤러리들이 층마다 입주하고 있는 상태다. 포츠다머 거리의 갤러리들은 한 건물에 여러 집들이 층마다 있는 주택을 그대로 갤러리로 개조한 곳이 많다. 그래서 이 지역의 갤러리들은 건물 앞에서 해당 집의 벨을 누르고 들어간 다음, 다시 갤러리가 있는 층으로 올라가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가게 되어 있다. 마치 아는 사람 집에 놀러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갤러리들이다.

미테가 갤러리 위주의 전시가 주로 이루어진다면, 크로이츠베르크와 노이쾰른은 프로젝트 위주의 전시와 퍼포먼스가 주를 이룬다.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의 오라니엔 스트라세를 중심으로 이름난 갤러리들이 몇 군데 있긴 하지만, 이 지역에서는 카페와 바로 운영되면서 새로운 아트 전시나 퍼포먼스, 실험적인 공연을 함께 선보이는 프로젝트 갤러리들이 많다. 20세기 가장 아방가르드하고 중요한 예술학교였던 바우하우스의 ‘마틴 그루피오스 바우’의 18개 갤러리에서 실험적인 예술이 펼쳐지는 포가튼 바에 이르기까지 호기심 넘치는 매력적인 예술 공간들이 가득하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코오롱 ‘인보사 사태’ 이웅열 명예회장 1심 무죄

2‘코인 과세유예·상속세 완화’ 물 건너가나…기재위 합의 불발

3최상목 “야당 일방적 감액예산…결국 국민 피해로”

4日유니클로 회장 솔직 발언에…中서 불매운동 조짐

5최태원은 ‘한국의 젠슨 황’…AI 물결 탄 SK하이닉스 “우연 아닌 선택”

6서울지하철 MZ노조도 내달 6일 파업 예고…“임금 인상·신규 채용해 달라”

7인천시 “태어나는 모든 아동에게 1억 준다”…출생아 증가율 1위 등극

8경기둔화 우려에 ‘금리 인하’ 효과 ‘반짝’…반도체 제재 우려↑

9얼어붙은 부동산 시장…기준금리 인하에도 한동안 ‘겨울바람’ 전망

실시간 뉴스

1코오롱 ‘인보사 사태’ 이웅열 명예회장 1심 무죄

2‘코인 과세유예·상속세 완화’ 물 건너가나…기재위 합의 불발

3최상목 “야당 일방적 감액예산…결국 국민 피해로”

4日유니클로 회장 솔직 발언에…中서 불매운동 조짐

5최태원은 ‘한국의 젠슨 황’…AI 물결 탄 SK하이닉스 “우연 아닌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