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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너무 우연히 시작된 국토 대장정

우연히, 너무 우연히 시작된 국토 대장정



어찌 보면, 사건의 책임은 배우 하지원에게 있다. 지난해, 한 영화상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시상자로 하정우와 함께 무대에 오른 하지원은 마침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하정우에게 “만약 수상한다면 무엇을 하겠다는 공약 하나 해달라”고 부추겼다. 이미 지난해 수상자로서 시상을 위해 참여한 하정우는 ‘설마’하는 마음이었을것이다. 시상자가 또 수상하는 이변은 없을 것이라 예상

한 그는 “트로피를 들고 국토대장정을 하겠다”는 호기로운 공약을 내걸었다.


장난스러운 출발, 잔잔한 여운의 종착몇 초 뒤 하정우는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자신의 이름을 호명했다. “‘황해’의 하정우”. 너무 놀란 하지원의 얼굴과 기쁨과 난감함이 교차하는 하정우의 얼굴. 그것이 바로‘577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시늉만 해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하정우는 판을 키웠다. ‘러브픽션’에서 찰떡호흡을 확인한 공효진을 캐스팅했고, 오래전부터 인연을 맺어 온 여러 신인 배우들을 ‘국토대장정 단원’으로 끌어들였다. 서울양재동 예술의 전당부터, 해남 땅끝 마을까지 무려 577킬로미터를 걷겠다는 다소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고, 그 모든 과정을 카메라에 담아 ‘다큐멘터리 영화’를 완성하겠다는 야심에 찬 계획을 세웠다.

국토대장정 출발 전, 그는 이 영화가 그리 거창한 게 아니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약속을 했으니 어차피 걷긴 걸어야 하는데, 그냥 걸으면 재미없잖나. 친구들과 함께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그 과정을 촬영하면 더 재미있지 않겠나?”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큰 코 다친다.

하정우가 평소 즐겨 쓰는 표현대로 “밑도 끝도 없이”즉흥적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는 맞다. 정해진 시나리오도 없이 무작정 길 위에 선 18명의 대원들은 장난스럽게 22일간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말 그대로 ‘리얼 버라이어티’인 셈이데, 그 내용이 상상 그 이상이다. 관객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577 프로젝트’에서 스‘ 타’라는 치장을 벗어버린 하정우와 공효진의 ‘날 것 그대로의 일상’이다. 이 부분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는 아마도 200% 충족될 것이다.

예부터 사람을 깊이 알고 싶으면 함께 힘든 여행을 떠나보라는 말도 있지 않나. 몸은 고되고, 마음은 지치고,하루하루 예측할 수 없는 사건사고가 터지면 불쑥 마음의 ‘민낯’이 튀어나오게 마련이다. 리더 하정우는 강철체력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웃음의 리더십을 발휘한다.그는 지치는 기색도 없이 뒤처지는 대원을 다독이고, 끊임없이 주위의 사람들을 웃게 하다. 하정우는 이 영화를 “B급 코미디 영화”라고 소개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아마 예능 프로그램 프로듀서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하정우 모시기’에 총력을 기울일 듯. 한편 공효진은‘공블리’라는 별명이 그저 외부 홍보용이 아님을 확인시킨다. 하고 싶은 말을 에둘러 눙치지 않고 직설로 풀어내는 그녀의 모습은 담백하고 솔직해서 사랑스럽다.

하정우와 공효진의 민낯을 볼 수 있다는 건, ‘577 프로젝트’의 큰 매력이지만, 두 사람이 이 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다른 열여섯 명의 낯선 배우 각자의 사정이 마치 ‘인간극장’을 보는 것 같은 감동을 선사한다.‘577 프로젝트’ 팀의 대원들 중 그나마 눈에 익은 배우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를 통해 인상적인 신고식을 치른 김성균과 아침드라마와 단막극에서 얼굴을 익힌 한성천 정도일 것이다. 이들에게 이번 국토대장정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중요한 시험대와 마찬가지다.

배우로 살고 싶지만 자신을 불러주는 작품이 없어서 ‘유사백수’ 상태이거나, 오래도록 연기를 해왔지만 여전히 ‘무명’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하는 고충, 이 영화를 통해 얼굴을 알리고 싶은 배우로서의 욕망 등 그들이 들려주는 진짜 삶의 이야기가 점점 깊어지면서 관객의 마음을 조용히 두드린다.


길 위에서 또 한 뼘 자라는 어른들‘577 프로젝트’가 더 긴 여운을 남기는 건, 그들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가 ‘교훈’을 전하기 위해 조작한 내용이 아니라는 점이다. 웃음을 주기 위해 하정우가 계획한 장난이 예상과 달리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이 난데없는 상황에서 대원들의 진심 어린 눈물이 터져 나오기때문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감동받을’ 준비를 하고 영화를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만능 엔터테이너 하정우와 그의 친구들이 선사하는 ‘스탠딩 코미디 쇼’를 기대하면 좋겠다. 작정한 코미디와 예상치 못한 감동이 뒤섞인 이‘리얼 버라이어티 로드 무비’에는 우리가 인생사에서 경험하고 있는 모든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길 위에서 또 한 뼘 자라는 어른들의 일기라는 점에서 ‘577 프로젝트’는 일종의 성장영화라 부를 만하다. 대장정 중에는 “죽겠다”고 엄살을 피우던 하정우, 공효진과 대원들은 이 성장 여행이 아주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하정우는 프로젝트를 마친 후“다시 한 번 국토대장정을 나서겠다”는 또 하나의 공약을 선포했다. 물론 조건은 ‘577 프로젝트’가 흥행에 성공해야 한다는 것. 예상하기로 우리는 조만간 ‘577 프로젝트’ 시즌 2를 보게 될 것 같다.


놓치면 안 될 다큐멘터리 신작
피나감독 빔 벤더스 | 출연 피나 바우쉬, 부퍼탈 무용단원

개봉 개봉 8월 30일 | 전체관람가

몸의 언어’인 춤은 언어의 모든 경계를 허물고 가장 본질적인 감정을 전하는 예술이라 할 수 있다. 빔 벤더스 감독은 타계한 천재 무용가 ‘피나 바우쉬’를 통해 그 언어의 강력한 힘을 보여준다. 3D를 통해 피나 바우쉬의 작품세계를 대표하는 ‘봄의 제전’ ‘카페 뮐러’ ‘콘탁스호프’ ‘보름달’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다큐멘터리 ‘피나’는 이모저모 따져도 놓치면 탄식할 만한 작품. 무용이 어떤 예술인지, 피나 바우쉬가 누구인지 모르는 관객이라도 전혀 상관없다. 그저 몸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뛰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무아지경의 감흥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나 나 나 : 여배우 민낯 프로젝트총감독 부지영 | 연출 및 출연 김꽃비, 서영주, 양은용

개봉 8월 23일 | 12세 관람가

이재용 감독의 ‘여배우들’을 흥미롭게 본 관객이라면, ‘나 나 나: 여배우 민낯 프로젝트’를 감상하고 비교체험하기를 적극 권한다. 독립 영화계의 ‘여배우 트로이카’로 통하는 김꽃비, 서영주, 양은용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민낯’을 솔직하게 전달한다. 우리가 스크린에서만 접할 수 있는 여배우들, 그 중에서도 독립영화계에서 활약하는 이들의 삶을 코앞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항상 카메라 앞에서 피사체 역할을 하던 배우들이 카메라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영화만큼이나 인생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접근하는 세 여성의 일상은,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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