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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체력 다져 종합손보사로 도약

기초체력 다져 종합손보사로 도약

맹자에 ‘영과이후진(盈科而後進)’이라는 구절이 있다.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이뤄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김학현 NH농협손해보험 대표는 요즘 이 말을 자주 떠올린다.



NH농협손해보험(농협손보)은 NH농협보험에 속했을 때 전체 농협 공제사업 보험료의 10%를 차지하는 작은 조직이었다. NH농협생명보험과 분리되면서 자산을 배분하는 비율은 무려 36대 1이었다. 그만큼 생명보험과 비교해 손해보험의 존재는 미미했다. 출범 7개월이 지난 지금 농협손보는 IT(정보기술) 시스템 개발, 영업인력 충원 등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성장을 위한 기반을 다지고 있다.

농협이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가 겸업할 수 없다는 보험업법을 따르게 되면서 농협손보는 3월2일 독립 법인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출범 후에도 총자산, 원수보험료 수준은 업계 하위권을 맴돌았다. 독립된 회사로서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 써야 할 게 많았다. 두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9월11일 서울 충정로 농협손보 본사에서 만난 김학현(57) 대표는 “법에 따른 결정이긴 했지만 전문성을 키우고 금융시장의 변화에 대응한다는 점에서 독립 분사는 장기적으로 잘 된 일”이라고 말했다. 농협손보가 종합 손보사로 도약할 절호의 기회라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보험영업을 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인프라가 있습니다. 좋은 상품과 이를 판매할 채널이 우선돼야 하고요. 농협손보는 인력 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조직을 체계적으로 정비해야 합니다.”

현재 농협손보 매출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품은 저축성보험이다. 김 대표는 “한꺼번에 1000억원이 넘는 보험료가 들어왔지만 저금리 시대 운용수익률이 떨어질 것을 고려해 4월 중순부터 일시납 저축성 보험은 판매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무분별하게 자산을 늘리기보다 체력 다지기에 중점을 두겠다는 얘기다. 김 대표는“앞으로 손해보험 고유의 보장성 상품 비중을 늘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년에 선보일 실손의료보험에 주력하려고 합니다. 단독상품이라 실손특약과 다르게 보험료가 저렴한 것이 장점입니다.”

본래 손해보험사의 주수입원은 자동차보험이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손해보험 전체 수입보험료에서 자동차 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은 20.6%다. 자동차보험은 의무보험으로 과거에는 지인의 권유에 별 고민 없이 가입하곤 했지만 상품을 꼼꼼히 비교해보고 가입하는 소비자가 느는 추세다. 최근 가계부채 증가, 고유가 부담 등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돼 경쟁이 더 치열하다. 농협손보는 아직 이 경쟁에 발을 들이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 보험 영업을 하려면 자동차보험 전문인력, 보상조직, 전산 시스템 같은 여건을 갖춰 금융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아직 심사를 받을 만큼 체력이 되지 않습니다.” 그는 “조직과 시스템 안정화를 먼저 이루고 내년에 자동차 보험 영업과 관련한 구체적 계획을 세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부에서 얘기하는 그린손해보험 인수설에 대해서는 “기존 손해보험사를 인수하는 것이 자동차보험을 취급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일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다른 손해보험사를 인수할 여력이 없다”고 답했다.

무리하게 외형을 확대하기보다 기초 체력에 집중하는 동안 조금씩 성과가 나타났다. 출범 당시 1조8000억원이던 자산은 7월말 기준 2조3000억원으로 늘었다. 8월 기준 원수보험료는 1조2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64% 증가했다. 김 대표는 “올해 목표액인 1조2700억원의 95%를 달성했다”며 초과 목표 달성에 대한 의지를 나타냈다. 6월 기준 지급여력비율은 337.7%로 업계 상위권이다.

지급여력비율은 보험회사가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제때 지급할 수 있는지를 나타낸 수치로 높을수록 재무상태가 튼튼함을 뜻한다.독립 IT 시스템을 조기에 안정화한 것 역시 김 대표의 성과다. 농협손보는 8월 개발을 시작한 신보험 시스템을 내년 1분기에 오픈할 계획이다. “IT 인프라는 분사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 중 하나입니다. 현재 70~80% 완성됐다고 할 수 있어요. 신보험 시스템은 고객 서비스 부분을 강화해 개발하고 있습니다.”김 대표는 기반을 갖추고 농협손보만의 강점을 활용해 중위권 손해보험사로 올라서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농협손보는 전국에 4492개 농축협과 1282개 NH농협은행을 점포망으로 두고 있다. 김 대표는 “지역 밀착형 영업활동으로 고객과 유대가 깊고 다른 손해보험사보다 사업비가 낮다”고 설명했다.

농협의 기존 판매망을 활용하는 동시에 판매 채널을 다각화하겠다는 게 김 대표의 계획이다. 현재 농협손보는 100% 방카슈랑스를 통해 보험을 판매하고 있다. “올해안에 FC(보험 설계사) 조직을 2개 꾸리려 합니다. 이 조직을 내년에 3~5개 더 늘릴 겁니다. 2020년까지 방카슈랑스를 제외한 FC, TM(전화 영업), 보험 대리점 등의 판매채널 비중을 40%까지 올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방카 제외한 판매 비중 40% 목표12년 동안 공제사업에 몸담은 김 대표는 손해보험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손해보험은 사회공익적 성격이 짙습니다. 올 여름처럼 큰 태풍이 왔을 때 손해보험이없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손해보험사의 역할은 무시하고 비판만 할 때 안타깝습니다.” 실손보험 보험료 인상,자동차 보험률 인하 등 최근 불거진 손보업계 이슈를 가리키는 듯했다. 김 대표는 “특히 농협은 농민과 상부상조 정신에서 시작된 조직이니만큼 농민의 실익을 먼저 생각하고 안전한 곳간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9월2일임직원 50여 명과 함께 경기도 평택 칠원동에 있는 신흥농장을 찾았다. 태풍 ‘볼라벤’과 ‘덴빈’의 피해 현황을 집계하는 동시에 배 농장에서 떨어진 배를 줍고 선별작업을 도왔다.

농협손보는 농협 공제사업을 하던 2001년부터 농작물재해보험, 가축재해보험, 농기계종합보험 등의 정책보험을 취급해왔다. 내년부터는 풍수해 보험도 판매할 예정이다. 농작물재해보험은 농민들에게 태풍이나 우박 같은 자연재해 때문에 발생한 피해를 보상해주는 상품으로 정부가 보험료의 50%를, 지방자치단체가 25% 내외를 보조해준다. 국내에서는 농협손보가 단독으로 판매하고 6개손해보험사가 재보험 방식으로 취급하고 있다.

김 대표는 “4만여 농가 6만 헥타르에 달하는 농작물의 피해 보상액이 22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8월 초 폭염으로 전국 20여 농가에서 42만여 마리가축이 폐사했을 때는 10억여원을 보상했다. 농작물재해 보험은 손해율이 180%를 넘으면 초과 부분을 정부가 보상해준다. 김 대표는 “아직 정확하게 집계되지 않았지만 손해율이 250%를 넘을 것으로 본다”며 “사실 100%만 넘어도 보험사로서는 손실을 보는 것이라 이번 태풍 피해소식에 더 애가 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연재해가 점점 심해지는 요즘 농업 정책보험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국 농작물재해보험의 가입률은 면적 기준 45% 정도입니다. 이 가운데 사과, 배, 벼가 80%를 차지합니다.농작물재해보험의 보상 품목을 확대하고 올해 가축재해보험의 폭염 피해에 대한 특약을 신설해 농업 정책보험가입률이 많이 높아졌습니다.”농작물재해보험은 품목별로 가입률이 증가하는 추세다. 6월 말 기준 벼 품목은 전년 대비 거수보험료가 68%증가했다. 농기계종합보험 가입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23% 늘었다. 가축재해보험 역시 가입 가축 수가 전년 동기 대비 29% 늘었다.




농업 정책보험 가입률 높이겠다김 대표는 포장하거나 꾸미지 않는 스타일이다. 있는 그대로 농협손보의 현재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이런 특유의 소탈함과 친화력은 새로운 조직을 정비하는데 큰 힘으로 작용했다. 농협손보는 올 초 신입사원, 전문 경력직원 등 70여 명을 충원해 현재 직원 수가 400여 명에 달한다.급격한 조직구조 개편으로 내부 분위기가 어수선해질 수밖에 없었다. 김 대표는 4월 경기도 원당 농협 중앙연수원에서 열린 비전선포식에서 ‘우리는 하나가 돼야 한다.여러분은 한 명 한 명 내 자식이고 가족이다. 하나로 뭉칠수 있게 내가 먼저 노력할 테니 나를 믿고 따라와라’며 직원들을 다독였다. 그는 “새롭게 출발하는 조직에서 경영자와 직원이 공감하고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눈 앞에 해결해야 할 과제가 쌓여있지만 그는 꼭 필요한 회의만 한다. “급한 것만 빨리 결정하면 되지 맨날 회의한다고 해결됩니까. 허허.” 회의 횟수를 줄이는 대신 팀장급 직원들에게 부하 직원들의 의견을 꼼꼼히 챙기라고 주문하고, 매주 월요일 간부회의에서 이를 경청한다.김 대표의 메시지는 전 직원이 공유하도록 했다. 또 사장실은 직급과 관련 없이 누구든 들어와 의견을 밝힐 수 있게 개방했다.

‘직원들에게 e-메일 편지도 쓰느냐’고 묻자 그는 손을 내저었다. “형식적으로 쓰지는 않습니다. 할 말 있으면 제가 내려가서 하면 되지요. 행동으로 마음을 전해주고 싶어요.” 이벤트성 행사를 마련하기보다 복도에서 마주친 직원에게 ‘힘든 것은 없느냐’ ‘요즘 어떠냐’ 한 마디 던지는 것이 김 대표의 소통 방식이다.김 대표는 중간 관리자 때부터 CEO가 된 지금까지 ‘자율’과 ‘책임’을 강조해왔다. “제 경험상 자율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면 직원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더군요. 이 과정에서 책임의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이는 팀워크로 이어집니다.”


40년 넘게 일한 원조 ‘농협맨’김 대표는 덕수상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농협에 입사한 뼛속까지 ‘농협맨’이다. 상호금융자금운용본부장, 인천지역본부장 등 주요 직책을 맡았고, 공제사업 파트에 온게 1996년이다. 그는 맏형으로서 농협의 조직문화에 애착을 보였다. “동료들 간 끈끈한 것이 장점입니다. 내가살려고 남을 깎아내리는 행동은 찾아볼 수 없어요. 그래서 공동 목표가 생기면 다 같이 잘해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그는 40년 넘게 겪어 온 조직문화에 변화를 주려고 한다. “기존 농협의 조직문화가 공생이라면 필요한 것은 경쟁입니다. 같이 살아가는 것은 좋지만 일 많이 한 직원,안 한 직원 똑같이 월급 타 가는 온정주의는 옳지 않아요.개인 역량 개발이나 창의력을 끌어내야 합니다.” 농협손보는 성과에 따른 인사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적정한 수준에서 개인 성과와 팀워크를 조화롭게 엮는 것이 쉽지 않지만 시행하면서 적정선을 찾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출범 7개월. 농협이라는 ‘국민 브랜드’를 업고 있지만 종합손해보험사로 도약하기 위한 길은 아직 멀다. “푸근한 이웃 같은, 때로는 편안한 그루터기 같은 금융회사로 만들고 싶습니다. 외형 확대와 수익 위주의 고속성장에 매진하기보다 고객과 함께 간다는 마음으로 점진적으로 성장하겠습니다.” 그가 세운 농협손보의 장기비전은 2020년 자산 12조원, 당기순이익 2000억원 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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