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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계저축률 2%대 시대 -소득감소·가계부채 탓에 “저금할 돈 없다”

한국 가계저축률 2%대 시대 -소득감소·가계부채 탓에 “저금할 돈 없다”



한때 ‘저축의 날’은 국가적 행사였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3달러였던 1964년 첫 제정된 저축의 날 행사는 성대히 치러졌다. 행사에는 대통령이 참석해 포상자를 격려했다. 저축왕은 신문 1면을 장식했다. 언제부턴가 저축의 날 행사에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는다. 행사를 주관하던 저축추진중앙회는 1997년 해산했다. 이후엔 한국은행이 주관하다, 2008년부터 금융위원회가 행사를 주관한다. 이제 저축의 날 행사는 단신 거리도 안 된다.

400~500명씩 받던 수상자는 100명 이하로 줄었다. 탁재훈(2002년), 권상우(2005), 김래원(2006), 김제동(2007), 비(2008), 장동건(2009), 이다해(2010), 이승기(2011). 당대 가장 인기 많고 당연히 수입도 많은 연예인을 포상자에 포함시켰지만 별 관심을 끌지 못한다. 49회째를 맞은 올해는 우리은행에서 추천 받은 배우 조인성, 이민정씨가 각각 대통령 표창,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그들의 공적서에 저축과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

저축률이 정점을 찍은 1988년 우리 국민은 100만원을 벌면 24만 7000원을 저축했다(가계저축률 기준). 지난해는 2만7000원을 저축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 수준이자, 저축률 하락 속도는 1990년 이후 가장 빨랐다. 우리나라 가계저축률이 곤두박질친 것은 외환위기 이후다. 1998년 21.6%였던 저축률은 2002년 0.4%로 떨어졌다. 이후 8%대로 회복됐지만 2004년 카드사태가 터지면서 다시 하락했다. 이후 저축률은 줄곧 5%를 밑돌았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얘기가 있다. 일반적으로 국민소득이 어느 시점에 오르면 저축을 덜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 선진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1만5000~2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저축률이 하락했다. 우리나라는 달랐다. 저축률이 꺾이기 시작한 1988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4600달러였다.

또 하나는 저축률 급락이 가계에 국한된 얘기라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990~1999년 평균 가계저축률은 19.8%에서 2000~2010년 4.7%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기업저축률은 11.9%에서 16%로 늘었다. 기업과 가계의 총저축률은 2000년 역전돼 이후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기업-가계 양극화’가 그만큼 심해졌다는 얘기다. 소득계층별 저축 양극화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가계 저축률이 하락한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한마디로 하면 저축할 돈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소득 증가율은 1990년대 12.7%에서 2000년대 6.1%로 낮아졌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도 이런 현상은 이어졌다. 가계소득이 국민총소득(GNI)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64.6%에서 지난해 61.6%로 줄었다.

최근 5년간 가계소득증가율도 21.2%에 그쳐 기업소득 증가율 51.4%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6년부터 지난해까지 실질임금상승률은 43.6%였다.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은 64.9%다. 외환위기 이후 상용직 비중은 줄고, 임시·일용직이 크게 늘어난 것도 가계주머니를 가볍게 한 요인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임금 근로자 넷 중 한 명은 저임금계층이다. 저임금계층은 임금근로자 평균임금의 3분의 2 미만을 받는 근로자를 말한다. 소득불평등이 심화한 것도 저축률을 낮춘 중요한 원인이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최근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1996년 근로소득 하위 20%의 연평균 실질소득은 649만원. 하지만 2010년에는 492만원으로 24% 정도 줄었다. 2분위(하위 20~40%) 실질급여도 같은 기간 10% 가량 줄었다. 반면 소득 상위 20%의 근로소득은 같은 기간 40% 정도 늘었다.

가계 빚이 증가한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2000년대 들어 이어진 저금리 기조 속에서 금융회사들은 경쟁적으로 가계대출을 확대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5년 520조원이던 가계부채는 1000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자 부담은 저축률 감소로 이어졌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04~2010년 연평균 가계부채 증가율은 8.8%로, 같은 기간 처분가능소득 증가율(3.2%)보다 두배 이상 높았다. 또한 가계의 실제 이자지급액은 2004년 15조원에서 지난해에는 45조원으로 늘었다(일부에서는 60조원으로 추정한다). 가계가 싼 금리로 빌린 돈은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면서 집값이 오르고 저축 동기는 떨어지는 현상도 200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주택가격 상승률이 시장금리보다 0.25%포인트 높을 때 가계 부채는 3.6%포인트 상승하고, 가계저축률은 2.9%포인트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한국은행 최근 작성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부터 개인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연평균 6%포인트 상승하는 동안 가계저축률은 연평균 0.8%포인트 하락했다. 한국은행은 “이처럼 저축률이 하락할 경우 금융기관의 기업 부문에 대한 자금공급 여력이 제약되면서 성장잠재력이 낮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파른 노령화도 저축률 하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70년대 6%였던 노령인구 부양비율(생산가능인구 대비 65세 이상 노령 인구 비중)은 1990년 7.4%, 지난해 16.1%로 가속도가 붙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은미 수석연구원은 “예상보다 빠른 고령화와 기대수명 연장으로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고령인구가 늘면서 가계저축률이 하락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생산인구 자체가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생산가능인구(15~65세) 비중은 올해 73.1%로 정점을 찍은 후 하락세로 돌아서, 오는 2018년부터 급격히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 강종국 부장은 “생산가능인구가 줄면 경제성장률과 소득 증가율을 낮추고 가계의 부양 부담이 커지면서 저축여력이 줄게 된다”고 설명했다.



저축률 1%p 떨어지면 경제성장률 0.15%p 하락국민연금, 건강·고용보험 등 사회보장 관련 지출이 늘어난 것도 저축률을 떨어뜨린 요인이다. 특히 강제저축 성격을 갖는 국민연금이 전 국민으로 확대된 것이 1988년인데 이때부터 저축률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회보장 지출 비용이 가계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면서 저축동기와 저축여력이 모두 약화된 것이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사회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예전에는 저축을 하고 남은 돈으로 소비하는 인식이 강했다면, 요즘은 소비를 하고 남은 돈을 저축한다는 인식이 많다. 여기에 통신, 교육, 교통 등 선택적 소비가 늘면서 저축할 여력은 더 줄었다. 특히 신용카드의 대중화가 한 몫 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일종의 단기 빚인 카드·할부금융사 판매신용은 지난 2분기 53조원으로 전분기보다 11조원 정도 늘었다. 1995~2000년 가계 판매신용은 18조~26조원 정도였다. 각종 통계를 보면, 1995~2010년 중 가계저축률과 가계 판매신용액은 뚜렷하게 반대로 움직였다. 이 밖에도 잠재 경제성장률 하락, 청년층 실업난, 물가상승 등도 근본적으로 저축률을 하락시킨 요인이다.

우리나라의 저축률 하락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유독 도드라진다. 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저축률은 낮은 성장률과 높은 사회보장비용을 감당하는 유럽 국가들보다도 낮다. 지난해 프랑스의 가계저축률은 16.8%, 독일은 11%, 영국은 7.4%였다. 복지 강국인 스웨덴도 8%다. 심지어 소비 대국인 미국(4.7%)보다도 낮았다. 여러 통계와 분석을 종합해보면, 가계저축률이 1%포인트 하락하면 GDP 대비 민간소비 비중은 0.25%포인트 내려가고 경제성장률은 최대 0.15%포인트 떨어진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한 번 떨어진 저축률은 회복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전망도 어둡다. OECD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2060년까지 회원국의 민간저축률이 평균 5%포인트 떨어질 동안 한국은 10∼12%포인트 떨어져 하락률이 최대 수준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물론 우리나라 가계저축률 하락은 단기간에 해결하기 힘들다. 4% 밑으로 떨어진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도 어렵고, 소득 양극화를 해소할 방안도 당장은 마땅치가 않다. 늘어만 가는 가계부채를 줄일 명쾌한 해법도 보이지 않는다.

기준금리를 대폭 올려 저축을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전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를 고려하면 힘든 얘기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우선 저축률 하락 속도를 막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저축을 장려할 수 있는 금융상품 개발에 금융당국과 금융회사가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10월 30일 저축의 날 축사를 통해 “다양한 금융상품을 개발해 저축환경을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축사에서도 같은 얘기를 했었다.

좋은 사례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캠퍼스의 크레이그 메킨토시 교수팀이 실시한 실험인데, 부채를 줄이면서 저축을 유도하는 방법이다. 메킨토시 교수팀은 과테말라 최대 정부계 은행에서 소액의 자금을 빌리는 차입자들을 대상으로 매달 대출금 상환과 동시에 저축기회를 부여하고 이에 따른 저축 유발 영향을 분석했다. 이 정부계은행은 저축예금계좌 개설 캠페인을 벌이면서 소액 차입고객들에게 무작위로 일반 계좌보다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세 가지 옵션 중 선택권을 부여했다.

첫째는 저축 의무사항이 없는 일반 저축 계좌(옵션1), 둘째는 상환할 때마다 일정 금액을 저축하는 계좌(옵션2), 마지막으로 상환금의 10%를 채무불이행 옵션으로 저축하는 계좌(옵션3)였다. 결과적으로 옵션 1과 2는 저축계좌를 새로 만든 비율이 40%였다. 하지만 옵션2를 선택한 고객이 실제 저축한 돈은 옵션1의 2배가 넘었다. 옵션3은 저축통장을 만든 비율이 77%에 달했다. 이 결과는 저축과 연계된 대출상품을 장려할 때 저축률도 올라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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