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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자본 한국 빌딩 매각 - 올해 오피스 빌딩 매입 0건, 매물만 20개

외국계 자본 한국 빌딩 매각 - 올해 오피스 빌딩 매입 0건, 매물만 20개



글로벌 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GE)가 한국 부동산 시장을 떠난다. GE의 부동산 투자 부문인 지이리얼에스테이트(GERC) 측은 10월 초 한국에서 부동산 투자를 전면 중단하고, 자산을 모두 처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 부동산에 투자한지 10년 만이다. GERE는 지난해 서울 다동의 한외빌딩을 매각한 데 이어 철수 발표 직후 논현동 트리스빌딩과 인텔렉스빌딩, 성남 탑빌딩 등 총 4000억원대 규모의 빌딩을 내놨다. 독일계 투자회사인 데카는 3월 서울 명동센트럴빌딩을 팔아 878억원을 현금화했고 외국계 투자사인 맥스씨아이도 여의도 아시아원빌딩을 현대카드·캐피탈에 매각해 보유하고 있던 오피스 빌딩을 모두 팔았다.

이들은 대부분 매매로 차익을 거둔데다 오피스 빌딩의 공급이 늘면서 임대료 수입이 예전보다 줄자 철수를 결정했다. GERE는 2000년 중반 4개 오피스 빌딩으로 연간 500억원의 임대 수익을 냈지만 2010년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해에도 순이익이 15억원에 그쳤다.



싸게라도 팔기에 급급외국계 투자회사들이 내놓는 물건은 대부분 오피스 빌딩이다. 부동산 컨설팅업체인 메이트플러스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 말까지 외국계 투자회사들은 1803억원어치의 오피스 빌딩을 처분했다. 서울시에 있는 상업 시설과 리테일 오피스 등 100억원 이상의 매매거래 금액을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다. 이들의 매물은 대부분 국내 사모펀드 회사와 투자회사 등이 사들였다. 삼성사모부동산신탁과 다올자산운용, KB부동산신탁 등이다.

지난해 삼성사모부동산신탁은 서울 종로구 HSBC건물과 삼성금융플라자, 프라임타워 등을 3963억원을 주고 매입했다. 이들은 매물로 내놓은 오피스 빌딩은 20건에 이른다. 메이트플러스 변제현 팀장은 “최근 3~4년 동안 외국계 자본이 1년에 적어도 2~3개 빌딩을 사들였지만 올해는 팔기에 급급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중심의 외국계 자본은 한동안 국내 오피스 빌딩 시장의 큰 손으로 군림했다. 모건스탠리와 맥쿼리, 론스타 등은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 초 국내 오피스 빌딩 시장에 본격 진입했다. 이 중 모건스 탠리는 외환위기 이후 국내 오피스 시장에 가장 공격적으로 투자한 회사였다. 10여 년간 대우빌딩을 비롯한 10여건의 오피스 빌딩을 사고 팔아 수익을 냈다.

그런데 요즘 국내 오피스 시장에서는 이들의 모습을 찾기 어려워졌다. 올 상반기에 총 26건의 국내 오피스 빌딩이 거래됐지만 외국계 자본이 매수자로 나선 건수는 단 한건도 없다. 외국계 자본이 본격적으로 들어온 1998년 이후 처음이다. 이처럼 사지 않고 팔기만 하는 이유는 국내 오피스 시장의 투자 매력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외국계 자본은 그동안 주로 가격이 떨어진 오피스를 사서 가치를 올린 후 팔아 시세 차익을 얻어 왔다.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목적으로 들어온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시세 차익이 목적이었다. 메이트플러스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08년까지 국내 빌딩 시장 매매 규모는 22조9383억원으로 이 중 40.22%(9조2277억원)를 외국계 자본이 사들였다.

시세차익을 많이 챙긴 건 론스타다. 론스타는 2001년 현대산업개발이 내놓은 서울 테헤란로의 강남파이낸스센터(구 스타타워)를 6632억원에 매입했다. 론스타는 이 건물을 2004년 싱가포르투자청에 9500억원에 되팔고 2800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맥쿼리 증권도 서울 여의도 대우증권 빌딩을 2003년 720억원에 사들인 후 2007년 1120억원에 되팔아 400여억원의 수익을 냈다. 푸르덴셜증권도 2003년 1580억원에 매입한 서울 남대문 서울시티타워를 4년 뒤 3185억원에 처분해 1600여억원의 차익을 거뒀다.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팀장은 “외국계 자본은 그동안 시세차익으로만 최소 20~30%에 이르는 수익률을 기록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지금은 외환위기 때처럼 급하게 사옥을 내다 팔려는 국내 기업이 드물고 오피스 빌딩 가격도 비싸다. 부동산컨설팅 업체인 SIPM에 따르면 1분기 서울 오피스 빌딩의 평균 매매가는 ㎡당 약 469만9000원이었다. 2010년 1분기 서울 오피스 빌딩의 평균 매매가(369만1000원)보다 약 100만원 가량 상승했다.

빌딩을 사들인다고 해도 안정적으로 임대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금융위기가 본격화되기 전인 2008년 연간 13.74%였던 국내 오피스 빌딩 수익률이 올 3분기 현재 연 5.25%로 급감했다. 2분기(6.95%)보다 더 떨어졌다.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기업들이 임대료가 싼 외곽으로 사무실을 옮기고 있는데다 서울 을지로 센터원, 여의도 서울국제금융센터(IFC) 등 대형 오피스빌딩이 줄줄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오피스빌딩 공실률은 평균 8.6%로 2분기보다 0.2%포인트 높아졌다. 빌딩컨설팅업체 교보리얼코에 따르면 올 들어 오피스 빌딩이 몰려있는 강남구와 여의도의 공실률은 4%대를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다. 빌딩컨설팅업체 알투코리아 김태호 이사는 “앞으로 용산국제업무지구 초고층빌딩, 잠실 수퍼타워 등 대규모 오피스 빌딩 공급이 예정돼 있어 기존 빌딩으로 시세 차익을 남기기 어렵고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내기도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실제로 외국계 투자자가 보유한 서울 중심부의 한 대형 빌딩에는 임대되지 않은 몇몇 사무실이 수개월째 방치되고 있다. 또 다른 외국계 투자가가 보유한 서울 종로구의 한 대형 빌딩은 지난해 매물로 나왔다가 마땅한 매입자가 나타나지 않자 매각을 철회하기도 했다. 알투코리아 김태호 이사는 “과거에는 대형 오피스 공급이 적어 수익률이 매우 높았지만 최근에는 오피스 공급 과다로 수익률 하락이 불가피해졌다”며 “외국계 자본도 과거와 같은 높은 수익을 기대하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높은 수익률 기대하기 어려워외국계 자본이 오피스 빌딩 투자에서 실패한 사례도 생겼다. 모건스탠리는 2007년 금호그룹으로부터 옛 대우빌딩을 9600억원에 사들였다. 1000여억원을 들여 리모델링을 하고 빌딩 이름도 ‘서울스퀘어’로 바꿨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로 사무실 임대가 제대로 되지 않고 빌딩 가치도 하락해 거액의 손실이 불가피해졌다. 결국 8000억원에 서둘러 매각했다. 모건스탠리는 “한국의 부동산 시장의 전망은 어둡다”고 말하며 한국을 떠났다.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잠실 전산센터를 5월 1600억원에 매각했다. 지난해 협상 당시 매각 예정가가 2000억원 이상이었던 걸 감안하면 20%가 떨어졌다.

금융위기 이후 지난해까지 외국계 자본이 오피스 빌딩을 내다판 금액은 총 4조2796억원이다. 부동산을 내다팔면서 국내 오피스지분율도 2008년 10%에서 7%로 줄었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조주현 교수는 “유럽발 재정위기와 내수 부진 탓에 외국계 자본들이 투자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며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이 이전과 같은 상승기가 아니라는 판단도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한국 부동산 시장을 떠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늘었다. 한국HP는 여의도 HP빌딩 매각을 위해 신영증권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시장에서는 여의도 사옥 매각가격을 2000억원 선으로 예상하고 있다. 독일계 은행인 코메르츠방크도 보유 중인 서울 충무로타워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싱가포르 부동산투자회사 아센다스가 지분 30%를 보유한 부동산펀드도 씨티은행센터 처분에 나섰다.

메이트플러스 변제현 팀장은 “일부 외국계 투자회사들은 매각 가격을 낮춰서라도 매매를 서두르고 있다”며 “최근에는 건물을 사는 것보다 리조트나 오피스의 지분 투자를 문의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한국 오피스 시장을 포기한 건 아니다. 변제현 팀장은 “당분간 매각 움직임은 지속될 수 있지만 실제로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하는 외국계 회사는 여전히 적지 않다”고 말했다.



오피스 빌딩 시장 영향은 제한적빌딩업계에 따르면 현재 외국계 투자기관이 서울 지역에 소유한 10층 이상 고층 오피스 빌딩은 60채가 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인 외국계 투자기관으로는 싱가포르투자청(GIC), 도이체방크가 꼽힌다. 싱가포르투자청은 서울 강남과 강북을 대표하는 서울파이낸스센터, 강남파이낸스센터, 무교동 코오롱빌딩, 프라임타워 등을 보유하고 있다. 2004년 9300억원에 매입한 강남파이낸스센터의 시가는 대략 1조5000억원 이상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외국계 투자자의 매물이 늘더라도 국내 오피스 빌딩 시장이 큰 타격을 입진 않을 거란 분석도 나온다.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 팀장은 “국내 오피스 빌딩 매매 시장의 덩치가 많이 커졌고 국내 자산운용·리츠사를 비롯해 개인자산가 등도 꽤 많이 투자하고 있다”며 “빌딩 운영이 어려워지고 임대료가 낮아져 잠시 주춤할 뿐 하는 외국계 자본이 국내 오피스 빌딩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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