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 notebook - 방글라데시의 영문학 열기
NB notebook - 방글라데시의 영문학 열기
무질서하게 뻗어나가는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오래 전부터 아름다운 고대 사원들, 지독한 교통정체, 비좁은 거리에 늘어선 인력거 행렬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다카에서 영국 문학이라고? 높은 문학수준을 자랑하는 서방세계에선 턱도 없는 소리라는 반응을 보일 듯하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 몇 달 사이 방글라데시 작가 타미마 아남의 소설 ‘선한 무슬림(The Good Muslim)’이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으며 다카가 문학적 인재의 요람으로 급부상했다.
지난해 다카 영국문화원에서 열린 헤이 문학예술축제(the Hay Festival of Literature and Arts)에는 1000명이 참석했다. 그와 같은 성공에 힘입어 올 11월 헤이 축제가 훨씬 더 많은 문화계 인사의 참여로 다시 개최됐다. 이번 개최장소는 다카의 권위 있는 방글라 아카데미였다. 벵골어와 문학을 홍보하는 최고 정부기관이다.
이틀 동안 반얀나무가 드리워진 널따란 아카데미 부지, 그리고 라빈드라 사로보르의 호변에서 열린 헤이 다카 음악 축제에 2만 명이 다녀갔다. 운집한 청중이 부드러운 겨울 햇살 아래 잔디 위에 앉아 인도 소설가 비크람 세스, 방글라데시 시인 시예드 하크 같은 작가들의 낭송회에 귀 기울였다. 여러 종류의 영어 도서와 저널이 출간됐으며 카데물 이슬람과 마리아 쵸두리 등 신인작가 두 명이 블룸스베리 출판사와 회고록의 세계 출간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다카의 영국문학 신고식에 논란이 없지는 않았다. 청중이 강당을 가득 메울 동안 방글라데시에서 영어 축제를 주최하고 거기에 방글라 아카데미를 사용하는 데 대한 논란이 잇따랐다. “방글라 아카데미에서 헤이를 하지 마라”는 피켓을 든 사람들이 그 앞에서 소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 같은 정서는 각종 블로그와 여러 벵골어 신문에서도 드러났다. 표면상 시위대는 그 프로그램에 대한 기업후원을 반대했다. 하지만 시위 저변에는 벵골어(이곳에서는 방글라로 부른다)를 외면하고 영어를 찬양하는 데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이 깔린 듯 했다. 빈부와 계급의 문제도 수반됐다.
방글라데시에서 헤이 축제의 주최는 실제로 민감한 문제다. 나라의 존재 자체가 서파키스탄의 문화침략에 맞서 방글라를 인정받기 위한 1950년대의 운동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축제 기획자들은 현지 문화와 역사에 충분한 경의를 표하려고 상당한 공을 들였다. 개막식 때 방글라 시구(詩句)에 맞춘 인도 고전무용 공연을 선보였으며 일종의 민속무용극인 자트라로 끝을 맺었다. 41개의 패널 중 최소 15개 이상이 방글라로 진행됐다. 무대에는 방글라데시 작가가 외국인 작가보다 4배나 많았다.
방글라 패널에는 트리미타 차크마 같은 새로운 시인들을 위한 자리도 똑같이 마련됐다. 소수민족인 차크마어로 작품을 쓰는 시인이다. 그리고 이번 행사의 무대 위에는 여성이 남성보다 많았다. 방글라데시에선 독립 후 특정한 언어적 민족주의가 융성하면 불행히도 그에 따라 영어의 사용이 쇠퇴했다.
하지만 헤이 같은 국제적인 축제를 방글라 아카데미에서 주최하는 것은 방글라데시가 독립 50년째로 접어들면서 그만큼 문화가 성숙하고 새로 자신감을 얻었다는 뜻이다. 헤이 축제는 훨씬 더 풍성한 프로그램으로 내년에도 개최될 전망이다. 필시 시위대도 다시 등장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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