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city - 예루살렘에서 아랍인으로 산다는 것
“그런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 유대인이든 아랍인이든 친구들이 묻는다. 옳은 얘기다. 예루살렘은 언제나 녹록하지 않은 곳이다. 갈수록 더 종교적이고, 극단적이고, 인종차별적이 돼간다. 지난 5월 ‘예루살렘의 날’ 아침 바로 그 질문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완전 탈환을 축하하는 날이다(1967년 그날 동 예루살렘과 구시가지가 합병됐다).
대규모 경찰이 배치되고 우익 의원들이 성전산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라디오에서 들었다. 곧 주요 도로가 차단되고 행진이 시작됐다. 그들은 유대인의 영원한 수도 예루살렘의 통일을 찬양했다. ‘깃발 춤’을 추며 구시가지로 행진했다. 노래하고 춤추며 승리를 축하했다. 성전산 충성파는 매년 그렇듯이 제3성전의 모델을 들고 그 산을 오르려고 했다.
아랍인들은 창문에서 그런 광경을 지켜보며 깊은 시름에 잠겼다. 우익의 횡포에 어쩔 도리가 없다. 그들은 전쟁에 졌고 지금도 지고 있다. 그냥 문을 굳게 걸어 닫고 ‘깃발 춤’을 추는 유대인들이 아랑곳하지 않는 고통의 삶을 감추었다. 흥청대는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의 아랍 아이들 중 84%가 빈곤선 아래서 생활한다는 조사 결과를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내가 예루살렘에 머무는 진짜 이유를 친구들에게 말한 적이 없다. 이해하지 못할 게 뻔하다.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이 내게는 늘 ‘죄악의 도시’이기 때문에 이곳에 산다고 말하면 누가 믿을까? 예루살렘 외에 다른 곳에서는 내가 술을 마실 수 없다고 말하면 누가 믿을까?
20년 전 열다섯 살 때 부모님이 나를 서예루살렘의 유대인 기숙학교에 보냈다. 그때 예루살렘을 처음 봤다. 첫눈에 예루살렘이 싫었다. 버스를 탔을 때 군인이 올라와 즉시 나를 아랍인이라고 알아봤다. 처음 길을 떠나 아랍 옷을 입고 아랍인의 엷은 콧수염을 기르고, 아랍인의 두려운 표정을 짓는 소년을 어떻게 달리 보겠는가? 그 군인은 나를 버스에서 내리게 한 뒤 몸을 수색했다. 첫 경험이었다.
그런 외모의 정체성을 희석시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서서히 히브리어를 익혔다. 수상하게 보이지 않으려면 어떤 차림을 해야 하는지 급우들에게 배웠다. 콧수염을 밀고 유대인처럼 머리를 길렀다.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자 기숙학교를 벗어나 도시를 돌아다녔다. 카페, 영화관, 음반가게, 서점을 발견했다. 내가 태어난 크파르 티라에서는 볼 수 없는 신기한 게 많았다. 어렸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된다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뒷거리의 술집을 발견하고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지만 난 여전히 예루살렘을 배회한다. 이제는 모스크와 교회만이 아니라 사람들도 한눈에 알아본다. 눈빛만 보면 아랍인인지 유대인인지 바로 알 수 있다. 절망한 사람, 희망을 가진 사람을 눈길만으로 알아볼 수 있다. 이제 내 또래의 아랍인은 예루살렘의 더 나은 미래를 꿈꾸지 못한다. 그들은 자유로운 예루살렘, 평화로운 예루살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예루살렘을 상상하지 못한다. 동예루살렘의 모든 아랍인은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기만 기도 할 뿐이다.
하지만 기도는 이뤄지지 않는다. 이스라엘 정부는 동예루살렘에 유대인 마을을 계속 건설한다. 유대인 정착민들은 아랍인 동네에서 ‘다윗의 도시’를 건설하겠다고 다짐한다. 때로는 동예루살렘의 아랍 주민이 점령을 원하는 듯하다. 그들은 점령군 없는 삶을 상상하지 못한다. 거의 중독 수준이다. 체념하고 억압을 받아들인다. 억누르는 사람이 갑자기 없어지면 삶이 공허해질까 두려워한다.
때로는 주인이 노예를 필요로 하기보다는 모든 아랍 세대가 주인을 섬기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 주민들에게 국민보험 급여만 꿈꾸도록 가르쳤다. 국가 보조금의 노예로 만들었다. 거리를 쓸고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도록 허용해준 것만 해도 고맙게 여기도록 가르쳤다. 요르단강 서안의 동포들과 달리 이스라엘에서 취업이 허용되는 것만해도 감사하도록 만들었다.
동예루살렘은 갈수록 허약하고 고립돼 간다. 가끔 어린이들의 눈에서 일말의 희망이 비칠 뿐이다. 그 때문에 나는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다. 말했듯이 예루살렘이 아니면 다른 곳에서는 취할 수 없다.죄를 지을 바엔 신이 거주하는 곳에 최대한 가까이서 하는 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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