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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Ⅱ - 부채디플레이션 온 몸으로 막아라

Special ReportⅡ - 부채디플레이션 온 몸으로 막아라

재정위원회 세워 나라빚 줄이고…초고령화 사회 진입도 늦춰야



흔히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일본의 장기 불황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1992년부터 2011년까지 20년 동안 일본 경제는 연평균 0.75% 초저성장에 머물렀다. 급기야 2010년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5조4884억 달러에 그쳐 5조9304억 달러를 기록한 중국에 역전당했다. 그동안 지켜온 G2의 자리를 내놓는 수모를 겪은 것이다.

1980년 후반 일본 경제가 승승장구할 때 세계의 이목은 언제 일본이 미국을 앞질러 세계 1위가 될 것인가에 집중됐다. 1989년 자민당 지도자로 후일 도쿄 시장이 된 이시하라 신타로와 소니의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가 함께 지은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이라는 책이 불티나게 팔리기도 했다. 그러던 일본이 이제는 중국에 G2의 자리를 내주고 좌충우돌 우경화로 자존심 지키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20년 간의 초저성장 탓이 적지 않다. 0.75%는 신규 일자리가 거의 생기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런 기간이 20년 간이나 지속되고 앞으로도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일본 청년들에게 희망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런 일본 청년들을 표현하는 각종 신조어까지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이 이렇게 된 것은 엔고, 관료적 규제, 기업 해외탈출, 부채디플레이션, 금융부실 증가, 고령화·저출산, 복지지출 증가, 재정악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일본 장기 불황의 원인이 된 이런 요인이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1959년부터 1973년까지 지속된 일본의 고성장기(연평균 8.9% 성장)를 한국이 1963부터 1991년까지 따라가고(연평균 9.5% 성장), 1974년부터 1991년까지 지속된 일본의 중성장기(연평균 4.2% 성장)를 한국이 18년 뒤인 1992년부터 2011년까지 따라갔다(연평균 5.1% 성장). 그렇다고 해서 1992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저성장기를 20년 뒤인 2012년부터 한국이 따라갈 이유가 없는 것이고 따라 가서도 안 된다. 지금까지는 일본을 따라가면서 성장했지만 이제는 일본을 벗어나야만 한국이 살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초래한 통화가치 고평가, 관료적 규제, 기업 해외탈출, 부채디플레이션, 금융부실 증가, 고령화·저출산, 복지지출 증가, 재정악화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이 모두가 현재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과제라는 점이다. 여기서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이 부채디플레이션(debt deflation)이다.

부채디플레이션은 자산가격은 하락하는데 이미 빌린 부채는 그대로 있으니 소비나 투자가 위축되고 빌린 돈을 갚지 못하여 금융부실도 증가해 장기 침체를 초래하는 현상을 말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어빙 피셔가 대공황의 원인을 설명하면서 도입한 개념을 하이만 민스키가 1980년대 금융불안을 설명하면서 발전시킨 개념이다. 경제학에서 부채디플레이션은 장기불황의 전조로 해석되고 있다.



부채디플레이션은 장기 불황의 전조일본의 경우 1980년대 후반 형성된 부동산 버블이 1991년 붕괴하기 시작했는데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대안을 내놓지 못하면서 금융부실이 초래되고 소비와 투자가 위축됐다. 금융회사를 구제하는 과정에서 재정부실도 증가했다. 한국 역시 2008년 붕괴되기 시작한 부동산 버블이 벌써 4년째 지속되고 있다. ‘

하우스푸어’, ‘렌트푸어’ 등 여러 문제를 파생시키고 있다. 한국 경제가 장기 불황으로 가지 않으려면 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 부동산 가격을 빠른 시일 내에 안정시키지 못하면 장기 불황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일본의 경험이 가르쳐 주고 있다.

다음으로 복지지출 증가와 재정악화 문제가 중요하다. 일본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70% 내외,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3% 내외로 관리 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부동산 버블 붕괴로 금융부실이 급증하면서 재정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1997년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처음으로 100%를 넘어섰고 1999년에는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도 6%를 돌파했다. 2009년 민주당 집권을 전후하여 복지 지출이 증가하면서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200%를 돌파했다. 올해는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236%, 재정적자 비율은 8.7%에 도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제 일본은 정상적으로는 도저히 해결하기 어려운 형국에 이르러 신용등급이 강등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2012년 34%로 추정한다. 그러나 이는 중앙 정부만 포함한 것으로 지방정부에다 공기업 중 정부기능을 수행하는 공기업을 포함하는 식으로 국제기준에 맞추면 60~70%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한다. 여기에다 앞으로 급증할 복지 지출을 고려하면 한국의 재정상황은 만만한 형편이 아니다.

독립된 재정위원회를 설립하는 등 엄격한 재정규율로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퍼주기식의 단순한 복지보다는 일하는 ‘근로복지’로 복지 지출의 무분별한 팽창을 방지하면서 성장과 복지가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원화 고평가 대책 서둘러야설상가상으로 고령화의 급진전도 일본의 재정악화에 영향을 미쳤다. 65세 이상의 인구 비중이 7% 이상인 사회를 ‘고령화(aging)’ 사회, 14%를 넘으면 ‘고령(aged)’ 사회, 20%가 이상은 ‘초고령’ 사회라고 한다. 일본은 1970년에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고 1994년에 고령 사회에 진입한 후 2006년 초고령 사회로 진입했다. 고령화 사회에서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데 36년이 걸렸다.

한국은 2000년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이후 2026년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전망이다. 고령화 사회에서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속도가 일본보다 훨씬 빠르다. 따라서 한국도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제한된 재정 중에서도 이 부분에 관해서는 좀 더 적극적인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해외탈출 러시를 둔화시키는 정책도 필요하다. 현재 해외에 나가 있는 한국 기업은 5만2000여 개에 달한다. 이들 중 한국 유턴을 고려하고 있는 기업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가장 큰 원인으로 규제를 꼽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정부는 규제의 전봇대를 과감히 뽑아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초기에 역설한 정책이지만 못하고 만 가장 큰 이유는 규제의 이익을 향유하고 있는 공직자들의 저항 때문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국민들의 생명줄이 달린 문제다. 해외에 나가 있는 한국 기업의 국내 유턴정책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미국, 일본 등은 법인세 감면, 공장부지 제공 등 자국 기업들의 유턴을 위한 다각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1985년 플라자회담으로 인한 일본 엔화의 고평가가 일본 기업의 경쟁력 추락과 기업 해외탈출 가속화의 계기가 됐다. 한국도 원화 고평가가 기업 해외탈출의 또 하나의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세계 경제의 장기 불황을 극복하고자 경쟁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선진국의 양적완화 정책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과도한 원화 고평가를 막는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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