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2013 KOREA 2030 POWER LEADERS - 오늘 죽어도 요리를 하겠다

2013 KOREA 2030 POWER LEADERS - 오늘 죽어도 요리를 하겠다

김은희(37)는 주목받는 차세대 셰프 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다. 올해 푸드&와인 부문 선정자 중 유일한 여성이다. 패널들은 섬세한 감성·신선함·진정성을 담은 그의 요리를 높게 평가했다.
2005년 뉴욕 CIA 졸업, 뉴욕 Bouley, Cru 근무 요리 강사·케이터링·메뉴 컨설턴트·푸드 컬럼니스트, 2009년~ 더 그린테이블 오너 셰프, 저서 『접시에 뉴욕을 담다』등 다수



“스물여섯 살 때 교통사고를 겪었어요.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생각이 많아졌죠. 오늘 죽어도 행복한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서울 강남 서래마을 ‘더 그린 테이블’의 김은희 셰프는 국내 유일의 여성 프렌치 레스토랑 오너 셰프다. 교통사고 당시 웹디자이너였던 그는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사고 후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정말하고 싶은 일은 요리라는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음이 굳어지니 여러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양식이 하고 싶어 외국학교를 검색했다. 최종 선택한 학교는 뉴욕의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당시만해도 한국에 그리 알려지지 않은 학교였다. 후배들로는 정식당의 임정식 셰프, 비스트로 드 욘트빌의 토미 리 셰프가 있다.



한국 식재료로 프랑스 요리김은희 셰프는 자신의 요리를 “요리사 김은희가 한국의 식재료로 만드는 프랑스 요리”라고 정의했다. 프랑스식 조리법을 쓰기 때문에 프렌치라고 덧붙였다. “프렌치 레스토랑이지만 파스타도 있고 여러가지 요소가 섞여 있어요. 사실 퓨전은 촌스러운 게 아니에요. 한동안 퓨전이 붐이었다가 최근엔 무시하는 경향이 있죠. 저는 우리나라의 모든 요리가 퓨전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직접 농장들을 방문해 식재료를 고른다. 그 계기 또한 특이하다. 2006년 귀국 후 요리 강사와 푸드 스타일 리스트인 두 언니를 도왔다. 김 셰프는 케이터링과 컨설팅을 맡았다. 요리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며 레시피 책도 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오니 한식에 빠지게 됐다”는 그는 “하지만 한식을 제대로 배울 시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대신 선택한 것이 한국 식재료 탐방. 언니들과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농장에서 본 식재료에 반해 생각보다 일찍 2009년 더 그린 테이블을 오픈했다. 하루라도 빨리 신선한 식재료로 만든 요리를 접시에 올리고 싶었던 것이다. 경찰이었던 아버지 또한 은퇴 후 작은 텃밭을 가꾸고 있었다. 아버지도 현재 더 그린 테이블에 식재료를 공급하고 있다.

“재료를 보고 메뉴를 구성해요.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어 좋아요. 계절에 따라 일 년에 네 번 메뉴를 바꾸죠.” 더 그린 테이블의 1층은 파인 다이닝 코스요리, 2층은 편안한 비스트로 요리를 선보인다. “욕심이 많아 두 가지 스타일 다 하고 있다”는 그는 최근 주변에서 칭찬을 많이 듣는다고 했다. 여성으로서 꿋꿋이 오너 셰프를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려움도 많다. “육체적으로 고되죠. 그래서 틈틈이 마사지도 받고 침도 맞고 보약도 챙겨 먹어요. 그래야 하고 싶은 요리를 하죠.”

그는 인력관리가 가장 힘들다고 했다. 손님을 막 대하는 매니저도 겪었고 어느 순간 말없이 사라져 버리는 알바생도 있었다. 그래도 직원들과 소통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제가 직원들에게 금전, 시간적으로 투자한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상처받아요. 모든 것을 끝없이 투자하는 거죠. 지금은 직원 복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겸손한 사람은 더 가르쳐 주고 싶고, 그러다 보면 보석같은 직원이 나타나요.”

그는 “셰프로서 자만은 금물”이라고 말했다. 자신만만하게 요리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에 문을 열었던 더 그린테이블도 처음엔 파리만 날렸다. 하지만 입소문을 타고 매일 만석이 됐다. 장사는 잘됐지만 그와 직원들의 몸과 마음은 지쳐갔다. 열정은 시들해졌다. 이를 어떻게 알았는지 손님 발길이 끊겼다.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에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했다.



슬럼프 딛고 다시 달렸다“비싼 수업료를 내고 많은 걸 배웠다고 생각해요. 모든게 감사하죠. 요즘은 정성과 끈기가 중요하다고 직원들에게 늘 당부해요.” 그는 주방에만 있지 않고 가끔 홀에도 나온다. 손님들에게 얼굴을 비추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굴이 안 보이면 “오늘은 셰프님이 안 계셔서 그런지 별로네요”라고 말하는 손님이 있기 때문이다. 김 셰프는 “다음에 레스토랑을 하면 오픈키친을 하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더 그린 테이블은 안정되기까지 1년 반 걸렸다. 2012년에는 자리를 잡아 인기가 높아졌다. 요리를 맛 본 사람 중에는 다른 사람에게 꼭 가보라고 추천하는 이들이 많다. 그의 곁에는 함께 요리를 하는 언니들이 있어 든든하다. 언니들과 있을 때 ‘우리는 음식의 노예’라고 우스갯소리도 한다. 16시간 일한 후 녹초가 되도 다음 날 일찍 다시 식당으로 향한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꿈이 뭔지 물었다.

“요새 뜬금없는 소원이 하나 생겼어요. 굉장히 맛있는 음식을 하는 부티크 호텔을 만들고 싶어요. 가이세키 요리를 하는 료칸처럼 말이에요.”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하나은행-율촌, 패밀리오피스 자산관리·법률자문 ‘맞손’

2파란만장 빗속 혈투…베네수엘라-아르헨티나, 월드컵 티켓은 과연

3'학폭 가해자' 이다영, 내년부터 미국 리그서 활동

4테슬라 로보택시 '개봉 박두'…주가는 '출렁' 주주들 '술렁'

5"어도어 대표 복귀 원해" 민희진, 가처분 소송 오늘 심문

6홍명보호 '십년감수', 이재성 맹활약에 요르단전 2-0 설욕

7"마약사범 구속했는데"…알고보니 식품첨가제 '황당'

8"사기 계약" 벤츠 차주들 뿔났다…집단 소송 돌입

9백 오피스가 있기에 당신이 웃을 수 있다

실시간 뉴스

1하나은행-율촌, 패밀리오피스 자산관리·법률자문 ‘맞손’

2파란만장 빗속 혈투…베네수엘라-아르헨티나, 월드컵 티켓은 과연

3'학폭 가해자' 이다영, 내년부터 미국 리그서 활동

4테슬라 로보택시 '개봉 박두'…주가는 '출렁' 주주들 '술렁'

5"어도어 대표 복귀 원해" 민희진, 가처분 소송 오늘 심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