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 REPORTER AT LARGE - 영국인의 속이 거북하다
- NB REPORTER AT LARGE - 영국인의 속이 거북하다
미국 만화영화 ‘사우스 파크(South Park)’의 재미있는 에피소드 중 하나. 주인공 에릭 카트맨이 스콧 테노먼이라는 한 골목대장에게 복수를 한다. 테노먼 부모의 살을 섞은 칠리 콘 카르네(칠리고추를 넣은 고기와 강낭콩 스튜)를 그에게 먹였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테노먼은 구토를 하면서 흐느끼기 시작한다. 카트맨은 식탁 위로 뛰어올라 소년의 얼굴을 핥으며 이른바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의 눈물”을 마신다. 이렇게 에피소드는 끝난다.
지난 한 달 동안 영국 소비자들도 방식은 다르지만 스콧 테노먼과 같은 꼴을 당했다는 역겨운 인식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많은 슈퍼마켓 체인에서 판매되는 이른바 쇠고기 제품(버거·미트볼·라자냐)에 말고기가 포함됐다고 밝혀졌다. 그것도 약간 들어간 게 아니다. 말고기가 29%나 들어간 비프버거(beefburgers, 햄버거의 영국식 표현)가 테스코에서 판매됐다. 핀더스 비프 라자냐(인기 전자레인지용 즉석식품)에는 쇠고기가 아예 들어 있지도 않았다. 100% 말 DNA 식품이었다.
영국 음식이 맛 없기로 유명하기는 하다. 초콜릿바 튀김(deep-fried Mars bars)과 해기스 피자 같은 끔찍한 요리를 만들어낸 건 맞다. 하지만 영국인이라면 말을 먹느니 차라리 개를 먹는다. 말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영국인이 프랑스인 같은 야만적인 인종과 차별화하는 주된 방법 중 하나다.
그런데 그런 영국인들이 말고기를 먹고 있었다니. 불순물 섞인 식품들이 유럽 각국의 매장 판매대에서 회수되고 있다. 영국의 경우 말고기가 들어간 제품이 대형마트 아이슬란드·테스코·코압·알디·리들, 패스트푸드 체인 버거킹, 그리고 연간 매출액 17억 달러에 달하는 범유럽 저가 즉석식품 브랜드 핀더스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이 스캔들이 터진 뒤로 영국 슈퍼마켓들은 1000만 개가 넘는 비프버거를 회수했다. 테스코는 지난주 말고기가 60% 포함된 스파게티 요리를 진열장에서 내렸다. 핀더스는 라자냐 40만 개, 알디는 냉동 라자냐와 스파게티 볼로네즈를 거둬들였다. 말고기가 영국에서 최대 1년 동안 팔렸을지 모른다는 주장도 있다.
영국의 식품기준청(FSA)은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1990년대 설립된 정부기구다. FSA는 소매유통업체와 납품업체에 쇠고기 제품의 말고기 성분검사를 실시해 보고하도록 요청했다. 결과적으로 특히 값싼 가공식품에 그런 문제가 만연해 있음이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학교, 병원, 대중식당, 케밥 식당, 호텔, 요양시설 등 기본적으로 대규모 식재료 조달계약을 맺은 곳은 모두 이번 스캔들에 연루됐을지도 모른다. 말고기를 먹지 않았다면 부자이거나, 채식주의자거나, 운이 좋거나 셋 중 하나다.
지금까지 발견된 말고기는 여러 경로를 통해 영국에 유입됐다. 프랑스 냉동식품 수출업체 코미겔의 룩셈부르크 공장에서 만든 제품이 영국의 핀더스·테스코·알디뿐아니라 기타 15개국의 소매유통업체와 식품 조달업체에 납품됐다. 아일랜드 공화국의 실버크레스트 생산공장과 잉글랜드 요크셔의 자매회사 데일팩은 영국 슈퍼마켓에 냉동버거를 공급했다. 두 회사 모두 아일랜드 업체 ABP 푸드 그룹의 자회사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들 식품업체의 배후에는 스판게로 같은 납품업체 네트워크가 있다. 이 프랑스 업체는 키프로스와 네덜란드의 거래상을 통해 루마니아 도살장에서 구입한 고기를 코미겔에 공급했다. 고기는 아일랜드 중개상 매커덤 푸즈를 통해 실버크레스트에 전달됐다.
매커덤 푸즈는 플렉시 푸즈라는 덴마크 소유 수입업체로부터 주문을 받았다. 플렉스 푸즈는 잉글랜드 북부 도시 헐에 본사를 둔 회사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잉글랜드·프랑스·폴란드 그리고 루마니아까지 유럽 전역에 자리잡은 도살장과 육가공 공장들이 있다.
이 공급사슬의 어딘가에서 누군가 사기 행각을 벌여왔다. 그리고 사슬의 연결고리마다 제각기 바로 뒤의 업체를 손가락질한다. 정부는 FSA의 규제가 느슨했다고 탓한다. FSA는 소매유통업체들의 품질관리가 허술했다고 비난한다. 제조업체들은 서로 손가락질한다. 핀더스는 코미겔을 고소했다. 코미겔은 스판게로에 소송을 걸지 모른다. 스판게로는 X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듯하다. X는 누군가를 고소하려 하지만 아직 그게 누구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을때 사용하는 프랑스의 법적 개념이다.
값싼 말고기를 쇠고기로 둔갑시키려는 “국제적인 범죄 음모”가 의심된다고 오웬 패터슨 영국 환경장관은 말했다. 바꿔 말해 우리 잘못이 아니니 외국인들, 그리고 범죄 조직을 탓하라는 뜻이다. 루마니아인들이 이런 일을 할 만한 옛 공산주의 불한당들에 가깝다는 의혹이 많았다.
다니엘 콘스탄틴 루마니아 농업장관은 지난주 페이스북에서 이같은 암시를 격렬하게 비난했다. “아무 실질적인 근거도 없이 유럽 납품업체의 잘못을 우리에게 전가하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겠다.”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어느 누가 결백하단 말인가? 지난 12일엔 웨일즈 업체에 케밥 재료로 말고기를 판매한 혐의가 있는 영국 도살장을 경찰이 급습했다.
핀더스의 마케팅 슬로건 중에 “우리를 믿어도 좋습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식품업체가 믿음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존재하겠는가? 경제는 중세 농가의 자급자족 단계를 훨씬 벗어났다. 사람들은 식품 공급원으로부터 여러 단계 유리돼 있다. 소비자들은 판매자가 쇠고기라고 하면 그대로 믿는 수밖에 없다. 음식점 손님으로선 주방장이 수프에 침을 뱉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듯이 말이다. 일단 그 신뢰가 깨지면 다시 회복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영국에선 과거에도 식품안전 스캔들이 있었다. 1996년 3월 유럽연합은 ‘광우병’ 위기에 맞서 영국 쇠고기 수출을 금지했다. 방역 대책으로 400만 마리 이상의 소가 살처분됐다. 광우병으로 불리는 소해면상뇌증(BSE)은 쇠고기 내장 등 특정위험물질을 통해 사람에게 전염돼 새로운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병(CJD)이 된다고 밝혀졌다. 인간광우병이라 불리며 사람의 두뇌를 사실상 젖은 스펀지처럼 만든다. 영국 쇠고기의 전 세계적인 수입금지는 2006년 5월에야 해제됐다. 러시아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로비 끝에 지난해 11월 해제하기로 합의했다.
말고기가 새로운 BSE는 아니다. 일부 말고기에 진통제 페닐부타존이 포함됐을지 모른다. 페닐부타존은 인간의 먹이사슬에 절대 포함돼서는 안 되는 물질이다. 골수에 이상을 초래할 작은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루마니아 말들은 가축으로 수출하지 못한다. 다수가 ‘말 에이즈’에 걸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간에 해롭다기 보다는 꺼림칙한 느낌을 주는 정도다. 내로라하는 많은 식품 평론가가 쇠고기보다 지방이 적은 말고기가 몸에 좋을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녀에게 핀더스 ‘쇠고기’ 라자냐를 먹이겠다고 나선 장관은 아직 없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어쨌든 자녀에게 핀더스 쇠고기 라자냐를 먹이려는 장관은 없으리라는 점이다. 말고기 스캔들에 관련된 식품은 거의 예외 없이 가장 저급한 상점에서 판매하는 가장 값싼 즉석식품이다. 한 끼에 2.50달러 선이다. 달리 대안이 없을 때만 가족에게 먹이는 소금 많고 불쾌하며 전자 레인지에 데워먹는 저급 식품이다. 말고기로 오염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잘 숙성된 살코기보다는 소 눈꺼풀이나 주둥이 고기를 갈아 재료로 썼을 성싶다.
그러나 눈꺼풀과 주둥이를 먹을 능력밖에 안 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지불한 비용에 상응하는 가치를 지닌 눈꺼풀과 주둥이를 기대하는 게 당연하다. 앞으로 영국에선 영세민이 애용하는 즉석식품과 관련해 나쁜 뉴스가 더 터져나올 듯하다. 영국인들의 속이 뒤집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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