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다가 돌아왔다
구로다가 돌아왔다
일본 환율정책의 전설 구로다가 돌아왔다. 아베 신조 총리는 3월 19일 임기가 끝나는 시라카와 마사아키 일본 중앙은행(BOJ) 총재 후임으로 구로다 하루히코(68·黑田東彦)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를 내정했다. ‘미스터 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와 함께 일본환율정책을 주무른 신화적 인물이다. 구로다의 귀환에 외환시장은 벌써부터 들썩인다. 가뜩이나 가파른 엔 약세로 심기가 불편한 주변국 역시 구로다의 현업 복귀에 신경이 곤두선 눈치다.
구로다는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일찌감치 유력한 일본은행 총재감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아소 다로 재무상이 무토 도시로 다이와종합연구소장을 지지하고, 재무성 내무토의 인기 역시 높아 구로다의 발탁 가능성은 유동적이었다. 하지만 아베의 선택은 역시 대담한 금융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는 구로다였다. 재무성 출신인 구로다가 총재로 선임될 경우 BOJ와 재무성 간 공조가 강화
10년 전 ‘리플레이션’ 국제 공조 주장무엇보다 오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둔 아베로선 ‘디플레이션 탈출’이라는 아베노믹스 목표를 충실히 구현할 인물이 필요했다. 자민당 입장에선 선거 전까지 아베노믹스의 효력을 입증하기 위해 엔 약세와 주가 상승을 계속 끌고 가야 한다.
이는 금융시장 참여자의 눈높이를 충족시키는 인물이 일본은행 수장을 맡아야 가능하다. 무토는 상대적으로 금융완화 정책의 대담성이 떨어지는 인물이다. 그가 선임되면 아베의 정책 의지에 대한 시장의 의심을 부를 수 있었다.
영국 옥스포드대 석사 출신인 구로다의 영어 구사 능력과 오랜 세월 국제금융통으로 쌓은 해외 네트워크 역시 발탁 배경이다. 아베 내각의 엔 절하 정책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국제사회를 달래려면 구로다 정도의 국제감각과 노하우가 필요했던 거다.
아베와 가까운 측근 인사는 “디플레이션 극복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저돌성, 외환시장의 오랜 경륜을 갖춘 인물, 그러면서 재무성 내 보수주의자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물로 구로다가 적임”이라고 평가했다.
디플레이션 공포가 전 세계에 회자되던 2002년 당시 미국에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 이사가 있었다면, 일본에는 구로다 재무관(국제금융 담당 차관)이 있었다. 10여년이 흐른 지금, 버냉키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직을 7년째 수행하고 있고, 구로다는 일본은행 총재 내정자가 됐다.
2002년 11월 버냉키 당시 이사는 그 유명한 ‘헬리콥터로 돈 뿌리기’를 주창했다. 구로다 당시 재무관은 “미국·일본·유로존·중국이 참여하는 글로벌 ‘리플레이션(reflation·통화팽창을 통한 경기와 물가 자극)’ 정책 공조를 제안했다. 이 제안 후 리플레이션은 글로벌 금융정책의 화두로 떠올랐다.
사실 ‘2% 물가상승률 목표 설정을 통한 공격적 통화부양책’으로 상징되는 아베노믹스의 원조 역시 구로다다. 그는 재무관으로 재직하던 2002년 12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칼럼을 기고했다. 구로다는 당시 기고에서 일본은행의 소극적 통화정책을 비난하며 ‘3%의 물가상승률 목표 설정’을 촉구했다. 그는 ‘이를 달성하기 위해 일본은행은 장기 국채와 금융상품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돈(본원통화)을 무제한으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공격적인 금리인하 정책을 지지하면서 유럽중앙은행(ECB)에 대해서도 물가 목표를 2~3% 수준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권유했다. 미국·일본·유로존이 합심해서 공격적인 통화부양에 나서면 3개 통화의 환율에는 아주 제한적인 영향만을 미칠 뿐이며, 이는 글로벌경제에 최소한의 비용만으로도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당시 한국은행도 이 같은 글로벌 공조 대열에 동참했다. 근원인플레이션을 기준으로 2.5%로 설정한 중기 물가안정 목표를 2.5~3.5%로 높였다. 또 당시 4.25%이던 콜금리 목표치를 1년여 동안 네 차례에 걸쳐 1%포인트 내렸다.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가 훗날 “문제가 있었다”고 술회한 ‘부동산 2차 파동’의 뿌리가 거기에 있다.
‘미스터 엔’으로 잘 알려진 사카키바라는 구로다의 직계 선배다. 사카키바라가 공격적인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엔 절하 정책을 펼쳤다면 후임자 구로다는 정교한 이론으로 무장한 인물로 평가 받는다. 그렇다고 공격성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재무관으로 활동하면서 엔 약세를 유도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푼 자금이 14조엔에 달했다.
1년 만에 엔화 가치 35% 끌어내려이를 통해 구로다는 1999년말 100엔대 초반이던 달러·엔 환율을 135엔 근처까지 끌어올리는(엔 평가절하) 능력을 보였다. 물론 2002년 2월부터 중국과 한국이 연계해 일본의 엔 약세 유도정책에 강도 높은 불만을 제기하면서 구도다발 엔 약세 행진은 급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1년여 만에 엔 가치를 35% 절하시킨 구로다의 능력은 지금도 도쿄외환시장의 전설로 남아있다. 주변국이 구로다의 현업 복귀에 긴장하는 이유다.
외환시장 한 켠에서는 구로다가 복귀해도 엔화 가치가 지금보다 더 큰 폭의 약세를 보이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달러·엔 환율은 꼭지점에 도달했고, 연말이면 80엔대로 회귀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HSBC의 외환전략가 데이비드 블룸은 “앞으로 일본은행이 내놓을 수 있는 조치에는 한계가 있으며 그다지 급진적인 조치를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호주의 웨스트팩은행 역시 최근 보고서에서 엔의 추가 약세 모멘텀은 제한적이라고 봤다.
G7과 G20 회의 이후 엔 절하를 유도할 수 있는 일본의 행동반경도 제한적이라고 했다. HSB C와 웨스트팩은행은 현재 92~93엔대인 달러·엔 환율이 연말에는 각각 80엔, 85엔대로 떨어질 것(엔 강세 전환)으로 내다봤다. 물론 연말 달러·엔 환율이 90엔대 중반을 유지하거나 100 ~105엔까지 갈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여전히 더 많기는 하다.
구로다의 등장은 주요국 중앙은행과 핵심경제정책 라인에 ‘올드 보이(old boy)’가 대거 귀환하는 현상과 맞물려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벤 버냉키 후임으로 그의 스승인 스탠리 피셔(70) 전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 이름이 오르내린다. 현존하는 최장수 중앙은행장인 중국 인민은행의 저우샤오촨 총재의 유임도 유력하다. 73세의 아소 다로가 일본 재무성을 꿰차고 앉은 상황이나 이탈리아 총선에서 ‘붕가붕가 할아버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건재를 확인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노회한 인사들 틈바구니에서 패기만 앞세운 중앙은행장과 재무장관은 논리 싸움에 휘둘리기 십상이다. 나아가 그만큼 세상은 점점 더 불안해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레전드(전설)’와 ‘막무가내파’에 대한 짙은 향수에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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