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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조 수‘ 퍼 추경· ’·· MB정부와의 선 긋기

20조 수‘ 퍼 추경· ’·· MB정부와의 선 긋기

성장률 전망 낮추고 한국판 재정절벽 강조 … 나라빚으로 새 정부 빛내기 여론은 부담



박근혜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이하 추경) 편성에 돌입했다. 규모는 20조원 안팎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2009년 편성한 28조4000억원 추경에 이어 많은 ‘수퍼 추경’이 될 전망이다. 새 정부가 가급적 빨리 추경 편성에 나서리라는 건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다만 시중의 예상보다 템포가 빨랐다. 경제사령탑인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박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은 지 1주일 만이다. 임명장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이다.

정부의 추경 논리는 두 가지다. 우선 경기가 지난해 말 예상보다 훨씬 나쁘다는 점이다. 소비와 투자는 좀체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수출도 활력을 못 찾고 있다. 경기는 8분기 연속 0%대 성장(전분기 대비)이 확실시된다. 한국 경제는 유례 없는 저성장 늪에 빠져있다.

두 번째는 세입 부족이다. 지난해 정부는 올해 경제가 4% 성장할 것으로 보고 그에 맞는 세입을 예상해 예산을 짰다. 그런데 경기 악화로 애초 예상보다 6조원 이상의 세금이 덜 걷히게 생겼다. 공기업 지분 매각 수입에도 차질이 생겼다.

정부는 애초 산업은행 민영화를 통해 2조6000억원, 기업은행 지분을 대폭 팔아 5조1000억원을 걷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새 정부가 민영화를 전면 중단하기로 하면서 6조원 정도의 구멍이 생기게 됐다. 이석준 기획재정부 2차관은 “올해 세입 차질 규모가 12조원 정도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성장율 하향은 MB정부 부실 털어내기여기까지는 지극히 경제적인 사정이다. 그러나 추경에는 나름의 정치 공학이 숨어있다. 막대한 정부 지출을 새로 하자는 것인 만큼 이득을 보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이 있게 마련이다. 정치공학적으로는 정부·여당이 추경의 수혜자다. 재정 지출을 늘리면 아무래도 겉으로는 경기가 좋아지게 돼 있다. 추경에 대한 견제 장치도 있다. 추경은 그냥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라 빚을 새로 내거나, 전년도에 쓰고 남은 나랏돈을 쓰는 것인 만큼 요건이 엄격하다.

경기 악화와 관련된 추경은 국가재정법 89조 2항에 명시돼 있다. ‘경기 침체, 대량 실업, 남북 관계의 변화, 경제협력과 같은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다. 이 중 ‘경기침체(recession)’는 일반적으로 성장률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것을 의미한다. 웬만큼 경기가 나빠졌다고 해서 추경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새 정부가 이번에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3%에서 2.3%로 확 낮춘 것도 이런 정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2.3%는 역대 정부의 출범 첫해 성장 전망치 중에서 가장 비관적인 것이다. 정부는 경기악화가 예상 외로 심하다는 이유를 댔지만 시장에선 “추경 편성 명분 쌓기”라는 해석이 퍼져있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한국 정부가 경기 하강 위험을 과장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새로 집권한 정부의 성장률 하향 조정에는 또 다른 정치적 실익이 있다. 일종의 과거 부실 장부 정리 효과다. 기업 세계에선 새로 취임한 최고경영자(CEO)가 오자마자 과거 부실을 장부에 반영하는 ‘빅 배스(big bath)’가 일반적이다. 회계 용어로는 ‘전기 오류 수정’쯤 된다. 이렇게 하면 현재의 부실이 새로운 CEO와 무관함을 드러낼 수 있다. 게다가 바닥에서 출발하는 만큼 실적을 개선시키기도 쉽다.

이번 경우도 별로 다르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고위 당국자는 “새 정부는 MB정부와 선을 분명하게 긋고 이기는 게임만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의 설명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그는 청와대 출입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2.3%의 성장률은 새 정부가 인계 받은 경제상황이 어떤지를 체크하고, 새 정부의 경제정책 출발점이 어디란 것을 국민들께 보고 드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MB정부가 짜놓은 예산대로 경제를 운용하면 2.3% 성장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다시 말해 경제가 2.3% 이상 성장하면 그것은 새 정부의 공적이 된다는 뜻도 된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와 관련 “추경을 통해 하반기에는 성장률을 3%로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고, 그에 근거해 추경에 돌입하는 것은 전례가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부처의 장관은 “이번 성장률 하향은 2009년 MB정부의 2기 경제팀을 맡은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의 정책 사례를 벤치마킹 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MB정부 1기 경제팀장이었던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으로부터 경제정책 지휘봉을 넘겨받았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 복판에서 취임한 윤 전 장관이 맨 먼저 한 일이 경제성장률 하향 조정이었다. 그는 2월 10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경제팀장으로서) 마이너스 성장을 예견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정부가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은 정직성이라고 본다”면서 그 해 성장률 목표치를 애초의 3%에서 -2%로 5%포인트나 떨어뜨렸다.

그때 정부가 짠 추경이 28조4000억원이다. 경기 악화로 줄어든 세입을 메우기 위한 11조2000억원을 빼더라도 세출 확대가 17조 7000억원에 달하는 수퍼 추경이었다. 그러나 가만 놔두면 경기가 마이너스로 가라앉을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 추경은 국회를 무난히 통과했다. 결국 그 해 우리 경제는 0.3% 성장률을 이뤄냈다. 세계 각국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가운데 돋보이는 플러스 성장이었다.

2009년과 지금의 상황이 다르다는 견해도 많다.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성장 전망치는 지금까지 나온 전망치 중에 가장 낮다. 통상적으론 정부 전망치가 민간보다 0.5%포인트 이상 높게 마련인데 정반대가 된 것이다. 한국은행이 1월에 내놓은 성장률 전망치도 2.8%다. 이에 비해 2009년엔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해 국내외에서 한국경제 성장률을 앞다퉈 낮췄다. IMF는 -4%로 예상했을 정도였다.



‘정부가 경제난 과장’ 지적도정부가 세입 부족을 이유로 내세운 ‘한국판 재정절벽(fiscal cliff)’ 주장도 논란에 휩싸여 있다. 조 수석은 “눈에 훤히 보이는 세수 결손을 방치하면 올해 하반기에는 한국판 재정절벽 같은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엔 짚어볼 대목이 있다. 재정절벽은 한국 경제가 이제껏 겪어보지 않은 일이다.

노무라증권의 권영선 한국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전무)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자동 발동되는 정부지출삭감(시퀘스터) 시기와 부시의 감세 종료가 겹쳐서 의회가 합의하지 못 하면 경제에 큰 충격을 준다. 한국은 추경이 없어도 미국처럼 정부 지출이 당장 중단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한국판 재정절벽’은 과장이라는 이야기다. 일각에선 정부가 추경 통과를 위해 위기감을 조성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온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20조원 추경을 놓고 여야간 격돌은 불가피하다. 추경 전쟁에서 유리한 쪽은 여당이다. 야당이 끝까지 반대했다간 경제 회생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에 직면하기 쉽다. 문제는 돈이다. 이번처럼 추경을 하면 나라빚은 늘 수밖에 없다. 경제도 살려야 하고, 나라빚이 급격하게 느는 것도 막아야 한다. 따지고 보면 추경은 늘 정치적 결정이다. 이번 추경 국회는 박근혜 정부 출범이후 여야가 내공을 겨루는 첫 경연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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