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Ⅱ - 무역수지로 따지면 ‘3승 2무 3패’
Special Report Ⅱ - 무역수지로 따지면 ‘3승 2무 3패’
#1. 고등어·삼치·갈치 등 수산물을 가공해 판매하는 청해물산은 2년 전만 해도 미국 수출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경남 사천에 있는 이 회사는 국내 홈쇼핑 시장에 제품을 납품하는게 주수입원이었다. 지난해 매출은 47억원. 경기 침체와 경쟁 업체 난립으로 고민하던 청해물산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되자 미국 시장 문을 두드렸다.
이 회사 주력 상품의 미국 수입 관세(4~5%)가 없어지면서 중국 업체와 맞설 수 있는 가격 경쟁력이 생겼다고 판단해서다. 청해물산은 해외 박람회·바이어 상담회에 적극 참여했다. 원산지 증명서 작성 등 FTA 업무를 익혔다. 영어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홍보물도 제작했다. 드디어 미국에서 러브콜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2011년 단 2000달러어치를 수출하던 청해물산의 대미 수출액은 지난해 18만5000달러로 껑충 뛰었다.
#2. 위조지폐를 감별하는 지폐 정사기와 지폐 계수기를 만드는 기산전자. 100% 수입에 의존하던 지폐 정사기를 15년 전 국내 처음으로 국산화했다. 기술력이 알려지면서 해외 수출도 늘었다. 하지만 이 회사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위기에 빠졌다. 연구·개발(R&D)에 큰 돈을 투자했는데 주문량이 뚝 떨어졌다. 특히 매출의 30%를 차지하는 유럽 시장 주문이 줄었다.
기산전자에게 한·EU FTA는 기회였다. 초반엔 원산지증명서 발급 등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FTA로 2.2%이던 관세가 없어지면서 주문량이 늘었다. EU와의 FTA 발효 후 유럽 매출은 3배로 늘었다. 한·미 FTA효과도 톡톡히 봤다. 미국과의 FTA 발효로 1.8%였던 관세가 철폐되면서 미국 시장 수출이 늘었다. 지난해 회사 매출은 2010년 대비 2배 넘게 뛰었고 주문량이 늘면서 직원도 20% 늘렸다.
FTA 10건 타결, 10건 진행 중#3. 돈육가공 업체인 A사는 지난해 말 무역위원회에 SOS를 쳤다. 한·EU FTA로 유럽산 돼지고기 수입이 증가해 매출이 뚝 떨어진 때문이다. 무역위원회가 FTA로 피해를 본 기업을 지원하기위해 시행하는 무역조정지원 신청을 한 것이다. 무역조정지원은 FTA 상대국으로부터 수입이 증가해 심각한 피해를 입었거나 피해가 예상되는 기업에 융자·컨설팅을 해주는 제도다.
매출액이나 생산량이 전년 대비 10% 이상 감소하면 신청할 수 있다. 시계를 제조하는 B사는 한·EFTA 발효로 스위스산 시계 수입이 늘면서 무역위원회에 무역조정 신청을 했지만 결국 파산했다. 골프웨어를 만드는 C사는 한·아세안 FTA 발효로 매출이 급감하면서 무역위원회에 조정 신청을 해 10억원을 융자받았다.
무역위원회 무역구제정책팀 홍장의 서기관은 “한·EU, 한·미 FTA 발효와 무역조정 기업 지정 요건이 완화돼 신청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2009년 3건, 2010년 2건이던 무역조정 지원 신청 기업은 지난해 13곳으로 늘었고 이 중 8개 기업이 정부 지원을 받았다.
한국은 2004년 이후 10건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다. 8건이 발효됐고, 2건(터키·콜롬비아) 협상이 타결돼 발효를 앞뒀다. 어느 하나 쉬운 협상은 없었다. 안에선 반대 여론에 부딪혔고 협상 테이블에선 지루한 밀고 당기기가 이어졌다. 우리나라의 첫 FTA인 한·칠레 FTA는 농·어업인의 거센 반대 속에 1999년 12월 공식 협상이 시작돼 50개월 만인 2004년 4월 발효됐다.
싱가포르·유럽자유무역연합(EFTA)과는 비교적 무난하게 협정을 맺었지만 아세안·EU·인도와의 FTA는 협상 시작부터 발효까지 5년 안팎이 걸렸다. 2006년 6월 협상이 시작된 한·미 FTA는 국론이 분열되는 진통 끝에 6년 만인 2012년 3월 15일 발효됐다.
우리나라는 현재 10건의 FTA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다.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는 지난해 1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공식 협상 개시에 합의했다. 지금까지 5차례 협상했다. 일본과는 2003년 협상을 시작했지만 6차 협상 후 잠정 중단됐다. 현재는 협상 재계를 위한 협의가 진행 중이다. 지난해 11월에는 한·중·일 FTA 협상이 시작돼 올 3월 26일 서울에서 1차 협상이 열렸다. 이밖에 걸프협력회의(GCC)·뉴질랜드·멕시코·베트남·인도네시아·캐나다·호주와 FTA 협상 중이다.
한국 정부는 FTA 협상 때마다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 FTA를 체결하면 국내총생산(GDP)이 몇 % 증가하고 무역수지는 몇 조원 증가한다는 식이다. 가령 정부는 한·EU FTA가 발효되면 매년 약 4억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볼 것이라고 홍보했다. 미국과 FTA를 맺을 때는 향후 10년 간 실질 GDP가 5.7%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진행 중인 FTA 협상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수준 높은 개방을 전제로 한·중·일 FTA가 체결되면 우리나라 GDP가 1.5% 정도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부 설명대로라면 우리가 손해 보는 FTA는 없어야 한다. 과연 그럴까. 이코노미스트는 각 체결국과 FTA가 발효된 해와 지난해 무역수지를 비교했다. 무역수지로 따져 본 한국 FTA 성적은 ‘3승 2무 3패다’. 체결국과 교역 규모나 흑자가 대폭 늘었으면 ‘승’, 교역·수지에 큰 변화가 없으면 ‘무’, 교역이 늘지 않았거나 늘었어도 무역 적자가 확대됐으면 ‘패’로 봤다.
빗나간 장밋빛 전망물론 FTA 성과를 수출입 실적만 놓고 따지기엔 무리가 있다. 일반적으로 FTA는 상품 관세 인하·철폐는 물론 서비스·투자 자유화와 비관세 장벽 철폐 등을 포함하기 때문에 장기간에 걸쳐 정교하게 측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체결국 별로 관세 인하·철폐되는 시기와 품목이 제각각이어서 단기간에 평가하기도 어렵다. 한·칠레 FTA처럼 칠레와의 무역 적자는 확대됐지만 우리 기업이 칠레를 교두보로 중남미 시장 진출이 활발해진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까지 포함해야 한다.
그럼에도 FTA의 1차 성과 기준은 무역수지일 수밖에 없다. 수출이 늘고 무역수지가 좋아져야 FTA를 추진할 명분이 서고 현재 진행 중인 협상도 힘을 받기 때문이다. 일종의 ‘중간 평가’라고 보면 된다. 관세청 FTA포털에 따르면, 한·칠레 FTA가 발효된 2004년 우리나라는 칠레에 7억800만 달러를 수출하고 19억3000만 달러어치를 수입했다. 무역수지는 12억200만 달러 적자였다. 8년이 흐른 지난해 대 칠레 수출은 3.5배 늘고 수입은 4배 정도 증가했다. 적자 규모는 22억 달러로 늘었다.
한·칠레 FTA협상 당시 우리 정부는 FTA가 체결되면 역간 4억 달러의 무역수지 개선 효과가 있을 것으로 봤지만 빗나갔다. 2004년 이후 한국은 9년 연속 적자를 봤다. 누적 적자는 약 140억 달러다. 칠레산 농수산물 수입은 7배 급증했는데, 칠레 수입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선점 효과는 시간이 갈수록 떨어진 게 주된 이유다.
2004년 당시 칠레는 8건의 FTA를 체결했는데, 현재는 60개 나라로 늘었다. 중국·일본과도 FTA를 맺었다. 물론 일부 품목은 FTA 선점 효과를 톡톡히 봤다. 자동차와 가전제품이 그렇다. 한국 자동차의 칠레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2003년 10%대에서 지난해 35%로 뛰었다. 2007년 이후 줄곧 1위다. 삼성전자·LG전자 등 한국 기업의 가전제품 시장 점유율은 60%에 이른다.
싱가포르(2006년 발효)와의 성적은 좋았다. 우리나라의 2006년 대 싱가포르 무역수지는 36억 달러 흑자였다. 이후 무역수지는 계속 증가해 지난해는 132억 달러 흑자를 봤다. 양국 교역도 크게 늘었다. 2005년 127억 달러였던 교역액은 지난해 385억 달러로 증가했다. 한·싱가포르 FTA 발효 후 대 싱가포르 수출은 3배 넘게, 수입은 1.8배 정도 늘었다. 반도체·석유제품·무선 통신기기·컴퓨터·자동차·선박 해양 구조물 수출 실적이 특히 좋았다.
EU와의 무역수지 15년 만에 적자우리나라가 세 번째로 FTA를 체결한 유럽자유무역연합(EFTA)과는 큰 손해를 봤다. EFTA는 1960년에 창설된 기구로 회원국은 스위스·노르웨이·아이슬란드·리히텐슈타인 4개국이다. 강소국으로 구성된 EFTA와의 FTA 성적은 신통치 않다.
발효 당시(2006년) 우리나라는 EFTA에 17억 달러어치를 수출했다. 하지만 6년 후 수출액은 15억 달러로 오히려 줄었다. 수입은 껑충 뛰었다. 22억 달러였던 수입액은 EFTA가 경쟁력을 갖춘 선박부품·의약품·기계류 수입이 급증하면서 지난해 77억 달러로 늘었다.
무역수지는 4억700만 달러 적자에서 지난해 62억 달러로 대폭늘며 6년 연속 적자를 봤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수출 기업 524곳을 대상으로 가장 성공적인 FTA를 조사했는데, 한·EFTA가 꼴찌였다. 발효 당시 정부는 한·EFTA FTA로 우리나라의 GDP가 0.02~0.05% 늘고 경제적 이익이 2억 달러 안팎이라고 전망했었다.
동남아국가연합인 아세안과의 FTA는 짭잘한 재미를 봤다. 2007년 발효된 한·아세안 FTA 이후 한국의 대 아세안 수출은 2배 넘게 늘었다. FTA 효과가 컸다. 2005년 274억 달러였던 수출액은 FTA 발효 이듬해인 2008년에 493억 달러로 증가했고, 지난해에는 791억 달러로 늘었다. 상대적으로 수입은 크게 늘지 않아 무역수지는 2009년 69억 달러 흑자에서 지난해 272억 달러로 증가했다.
아세안은 2010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2위 교역국이 됐다. 하지만 FTA 효과가 계속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아세안은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일본·인도·호주 등과 FTA를 발효해 경쟁이 점차 치열할 전망이다. 때문에 우리 정부는 아세안 공략 강화를 위해 개별 회원국과 FTA를 추진할 계획이다.
2010년 발효된 한·인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은 아직 뚜렷한 성과가 없다. CEPA는 시장 개방보다 경제 협력에 무게를 두지만 상품·서비스 교역이나 투자 등 실제 내용은 FTA와 큰 차이가 없다. 한·인도 CEPA 발효 후 양국 교역규모는 늘었다. 발효 2년 전인 2008년 156억 달러였던 양국 교역은 2010년 170억 달러로 늘었다. 발효 2년 후인 지난해는 188억 달러로 증가했다. 하지만 수출은 제자리인데 석유제품·면사·합금철·알류미늄괴 수입이 늘면서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2010년 57억 달러에서 지난해 50억 달러로 줄었다.
2011년 8월 발효된 한·페루 FTA 이후 1년간 우리나라의 대 페루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7%, 양국 교역량은 6.2% 증가했다. 2012년 한 해를 기준으로 하면 수출은 14억7000만 달러, 수입은 16억4000만 달러다. 전년보다 수출은 1억 달러 늘고 수입은 3억 달러 정도 줄었다. 대 페루 무역적자는 2011년 약 58억 달러에서 지난해 약 17억 달러로 줄었다.
한·EU FTA는 EU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게임으로 전개됐다. EU 집행위원회가 올 2월 25일 유럽 의회에 제출한 ‘EU·한 FTA이행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FTA가 발효된 2011년 7월부터 1년 동안 EU의 대 한국 수출은 37% 증가했다. 같은 품목의 전 세계 수출은 27% 늘어 EU가 한국의 FTA 효과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한국으로부터의 수입은 1% 증가하는 데 그쳤다.
2011년과 지난해를 비교해도 양상은 비슷하다. 2011년 한국의 대 EU 수출은 557억 달러였는데 지난해는 494억 달러로 줄었다. 유럽이 재정위기에 빠지기 전인 2006년 수출액과 비슷한 규모다. 같은 기간 수입은 474억 달러에서 504억 달러로 늘었다. 이로 인해 한국의 대 EU 무역수지는 마이너스 10억300만 달러로 1997년 이후 15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봤다.
오랜 진통 끝에 지난해 3월 15일 발효된 한·미 FTA 이후 1년간 양국 교역은 줄었다. 수출은 1.4% 늘었는데, 수입이 큰 폭으로 감소(마이너스 9.1%)한 것이 이유다. 하지만 FTA 혜택 품목 수출은 10.4% 늘고 수입은 4.1% 증가했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설명이다. 이에 비해 FTA 혜택을 받지 않는 품목 수출은 마이너스 3.6%, 수입은 마이너스 20.1%였다.
기획재정부 무역협정 국내대책본부 박일영 과장은 “미국과의 FTA로 혜택을 본 품목의 수출 증가율은 같은 기간에 다른 나라에 수출한 증가율보다 월등히 컸다”며 “FTA 효과가 확인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자동차 부품의 대미 수출은 FTA 발효 후 1년간 10.9% 늘었다. 같은 기간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로 수출된 자동차 부품 증가율은 6%였다. 석유제품은 관세 인하로 한국산을 선호하는 미국 바이어가 늘면서 수출이 29% 늘었다. FTA 관세 혜택을 받지 못하는 무선통기기와 반도체 수출은 줄었다. 반도체·철강제품 등 비혜택 품목 수입도 크게 줄었다.
하지만 이를 모두 FTA 효과로 보긴 어렵다. 우리나라 자동차는 FTA 관세 혜택을 못 받지만 미국 수출이 17% 늘었다. 또한 미국산 반도체·철강 수입이 준 것은 우리 기업이 수입선을 미국에서 일본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 기업은 한·미 FTA효과를 긍정적으로 본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수출기업 35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응답 기업의 61%가 ‘한·미 FTA가 수출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수출이 늘었다’는 응답은 26.1%, ‘수출 감소의 버팀목이 된다’는 답은 23%였다. ‘수출 상담이 증가했다’는 응답은 12.1%였다.
FTA 활용도 높여야결과적으로 그동안 우리나라가 발효한 FTA 8건 중 아세안·싱가포르·미국과는 재미를 봤고, EFTA·EU·칠레와는 손해를 봤다. 인도·페루는 별 영향이 없었다. 이처럼 FTA는 체결국의 산업 경쟁력·개방 수준, 체결국 간 비교 우위·협상력, 세계 경제 동향 등에 따라 희비가 갈린다. FTA는 한국경제의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다. FTA는 글로벌 통상 질서다.
지난해 말 현재 전 세계에서 발효된 FTA는 351건. 이 중 70% 이상이 2000년 이후 체결됐다. 분명한 사실은 시간이 갈수록 우리나라의 FTA 선점 효과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금혜윤 지역통상팀 전문연구원은 “한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들이 다른 국가들과도 FTA를 확대하면서 한국이 누릴 수 있는 FTA 이점과 효과가 점차 줄어들 수 있다” 말했다.
결국 FTA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성패가 달렸다. 지난해 말 한국무역협회가 중소기업의 FTA 활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FTA로 수출이 증대 효과를 봤다는 업체는 26.3%였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3월 350개 수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한·미 FTA가 수출에 별 도움이 안됐다는 응답이 38.8%였다. 수출에 도움이 됐다고 답한 기업(61.2%) 중에도 실제 주문이 늘었다는 응답은 26.1%였다.
FTA 애로점을 조사한 결과 원산지 증명·관리가 어렵다는 응답은 대기업이 40.5%, 중소기업이 40%로 비슷했다. 하지만 미국 시장 진출에 필요한 인력이나 자금 등 역량이 부족하다는 응답은 대기업이 15.6%, 중소기업은 34.5%였다. FTA 효과를 높이기 위해 정부가 기업의 해외시장 진출 지원, 원산지 증명 관리 지원, FTA 전문가 양성에 적극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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