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두뇌를 더 잘 이해하고 싶은데 그 주제에 관해 단 한 권의 책만 읽을 시간밖에 없다면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이 제격이다. 프린스턴대 심리학자인 카너먼은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오랜 동료 학자인 아모스 트버스키와 함께 의사결정의 심리학에 관해 연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카너먼은 인간의 인지과정이 어떻게 빠른 사고(‘시스템1’)와 느린 사고(‘시스템2’)로 나뉘어지는지 상세하고 종합적으로 설명한다. 시스템1은 걷기, 숨쉬기, 그리고 1+1의 계산 같은 기본적인 과제와 계산을 다룬다. 반면 시스템2는 더 복잡하고 추상적인 의사결정과 435 x 23 같은 계산을 담당한다. 우리의 실수 중 다수는 피로 등의 요인으로 시스템2에 더 적합한 일을 시스템1이 맡게 될 때 때 발생한다고 카너먼은 썼다.
최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카너먼은 과신의 위험, 정책결정의 우선순위에서 경제학자들이 여전히 서열 1위를 차지하는 이유, 그리고 ‘행동경제학’이라는 용어에 가벼운 불만을 갖는 이유 등을 설명했다.
‘생각에 관한 생각’의 주요 표적 중에 과신도 포함되는 듯하다. 불행히도 사람들은 이 같은 성향을 과시하는 유형에게 더 많이 끌린다는 증거가 있다. 그것이 합당하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다(예를 들면 정치적 예언자들). 뻔한 답변을 목청 높여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끌리는 우리의 타고난 성향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분야에서 특히 가장 어려운 문제다. 바로 민주주의의 운영이다. 사람들은 지배적이고, 낙관적이며, 친구들에게 잘 대하고, 적에게는 공격적인 듯이 보이는 지도자들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대담함을 좋아하며 소심하고 회의적으로 미적거리는 태도를 경멸한다. 이런 상황에선 자격을 갖춘 지도자의 선발을 정통적이고 비판적인 언론매체에 기대해볼 만하다. 하지만 대중매체는 대중의 기호가 아무리 빗나갔더라도 그것을 반영하는 쪽으로 기울게 마련이다.
일반 단체에서 좋은 지도자가 선출될 전망이 훨씬 더 밝다. 정계뿐 아니라 기업계에서는 주장이 강하고 자신감 있는 인물이 큰 우위를 차지한다. 그들이 운까지 좋아서 일찍이 약간의 성공을 거둘 경우에 특히 그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일반 단체는 실질적인 업적과 대화에의 기여도로 사람들을 평가하기에 유리한 입장에 있다. 그들은 지도자 선출에 느린 사고를 적용할 수 있으며 그래야 한다.
인간의 두뇌가 특정 상황에서 얼마나 오류를 범하기 쉬운지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로부터 ‘생각에 관한 생각’의 이론에 대한 저항이 있는가?
아모스 트버스키와 나는 우리의 초기 연구에서 그런 저항에 맞닥뜨렸다. 초기 연구는 지적 성과보다는 판단의 오류에 주로 초점을 맞췄다. 우리가 인간의 지능이 낮다고 믿는다고 추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제시되는 관점은 분명하게 사고의 결함뿐 아니라 탁월함도 함께 다룬다.
그리고 인간의 속성에 편견을 가졌다는 비판은 그리 많이 받지 않았다. 그러나 특히 금융계에서 그런 사람들을 일부 만났다. 그들은 내 책에서 주장하는 수준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세계를 이해하는 개인들(종종 자신들이나 워런 버핏 등)을 쉽게 생각해냈다.
노벨상을 받고 연구 결과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다만 아모스 트버스키와 그런 영광을 함께 누리지 못했다. 기분이 어땠는가?
연구는 아모스의 사망 전에 이미 상당히 알려졌다. 그리고 그는 숨지기 전에 우리가 노벨상 후보로 지명됐으며 결국에는 수상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에게 노벨상은 59세에 눈을 감음으로써 누리지 못하는 많은 결실 중의 하나였으며 분명 가장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나로서도 내가 받은 인정이 운 좋게 그와 성공적인 팀을 이뤄 함께 한 연구 덕분이라는 사실을 결코잊지 않는다.
복잡한 질문 한 가지. 시스템2가 어떤 중요한 결정과 계산을 시스템1에게 양보하지 않도록 하려는 사람에게 아주 간단명료하게 조언을 한다면?
그 답변이 뻔하기 때문에 사실상 복잡한 문제가 아니다. 서두르지 말고, 시간을 두고, 가장 냉정하고 객관적인 친구에게 조언을 구하라. 친구들에게 감정을 털어놓으면 때때로 큰 도움이 된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가장 도움이 되는 친구는 따로 있다. 감정을 이해하면서도 거기에 지나치게 휩쓸리지 않는 사람이다.
예컨대 잘못된 결정을 초래하는 한 가지 중요한 요인은 손실을 회피하려는 마음이다. 그에 따라 우리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에 훨씬 많은 비중을 둔다. 좋은 친구는 득과 실이 더 중립적으로 취급되는 조언을 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문제에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관점을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 당사자보다 순간의 두려움과 희망에 좌우될 가능성이 작다.
최근에 출간된 ‘공공정책의 행동적 토대(The Behavioral Foundations of Public Policy)’ 머리말에서 경제학자들이 정책결정을 ‘독점’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좋든 싫든 경제학은 정책결정자들이 현실과 연관성이 있고 유용하다고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유일한 사회과학이다. 그것은 우리 삶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도 했다. 왜 그런가?
정책입안자들은 보통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심리학과 사회학을 모두 이미 안다고 생각한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현실이 그렇다. 반면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무지를 충분히 인식한다. 수학의 이용이 경제학에 마법의 손길을 더해준다.
실제로 정책관련 리서치의 분석을 경제학자들이 담당하는 건 지극히 합리적이다. 그들이 빅데이터를 이해하고 그 사용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책에서 경제학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이유다. 정책에는 항상 득실이 수반되며 거의 항상 돈이 관계된다는 사실도 또 다른 요인이다.
근년 들어 재미있으면서도 한편으로 심리학자들에게는 불만스러운 또 다른 현상이 일어났다. 정책입안에 관한 한 사회심리학 또는 인지심리학을 응용할 때 요즘엔 툭하면 행동경제학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내 학문분야를 도용한 ‘범인들’은 두 절친인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이다. 그들의 공저 ‘넛지(Nudge)’에는 사회 문제에 심리학을 적용하는 정책적 건의가 풍부하다.
상황에 따라 상식적인 심리학과 과학적인 심리학을 번갈아 가며 적용한다. 실제로 ‘넛지’에는 경제학보다 심리학이 훨씬 더 많다. 하지만 ‘넛지’의 저자들이 행동경제학의 권위자이기 때문에 그 책은 곧바로 행동경제학의 대중적인 정의로 자리잡았다.
그 영향으로 정책문제에 심리학을 적용하는 심리학자들이 요즘엔 행동경제학자들로 간주된다. 그에 따라 나처럼 경제학에 무지한 사람도 행동경제학자라는 호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 덕분에 이들 심리학자의 이론이 더 큰 주목을 받게 된다. 명망있는 경제학자에 따르는 높은 신뢰성의 혜택을 보기 때문이다.
엘다 샤피르를 비롯한 다른 학자들과 함께 이 같은 현실을 바꾸고 싶어하는 듯한데. 정책입안과정에서 심리학의 위상을 높이려는 목적일 성싶다. ‘생각에 관한 생각’이 이 같은 노력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한다고 생각하는가? 심리학 연구결과를 공공정책에 더 긴밀하게 엮어 넣으려는 지속적인 노력에서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내 두터운 책을 끝까지 읽은 용감한 독자라면 한 가지를 알아차리게 된다. 행동경제학이라는 이름 아래 놓이게 된 정책응용 방안들을 내가 열렬히 지지한다는 사실이다. 그같은 연구의 앞날을 대단히 낙관한다. 그것은 최소 규모의 투자로 중간 규모의 소득을 얻는다는 특성을 지닌다. 하지만 그 연구가 궁극적으론 진면목을 인정받아 제대로 된 이름으로 불리기를 희망한다.
예컨대 영국의 총리 관저에 그런 일을 담당하는 부서가 있다. 비공식 명칭은 ‘넛지 부서’이지만 공식적 이름은 ‘행동 분석팀’이다. 심리학자가 총괄한다. 적합한 명칭의 가치는 좋은 심리학자들이 몰려들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학문을 분명하게 인정하는 노력에 참여하려 한다.
합리적 주체 모델의 강점은 무엇인가? 경제학자들이 버려야 할 부분을 자발적으로 포기하리라고 생각하는가?
애덤 스미스가 묘사한 시장을 생각해보라. 시장의 제빵업자를 비롯한 다른 참여자가 합리적인 태도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가정한다. 그럼으로써 아침에 어떻게 적당한 양의 빵이 런던에 공급될지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합리적 주체 모델은 이 같은 사고를 논리적인 극단으로 확대한다.
시장의 행태를 예측하고 싶다면 개인주체들이 예측가능하고 상당히 단순하게 행동한다고 가정하는 게 최선이다. 예컨대 시장 참여자들이 비슷한 동기에 따라 움직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기회를 활용한다고 가정하는 식이다. 나는 경제학자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도식화된 개별 주체 가설을 포기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합리적 주체 모델은 정책분야에서 더 의심스러운 결과를 초래한다. 개인들이 합리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가정 때문이다. 그것은 많은 사람이 유감스럽게 여길 만한 이념적 색깔과 정책적 함의를 지닌다. 개인이 합리적이라고 가정하면 그들 자신의 선택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할 필요가 없다.
극단적으로 사회복지 정책이나 오토바이 이용자들의 헬밋 착용을 의무화하는 법이 필요 없다. 세계에서 가장 탁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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