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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 마누라 빼곤 다 바꿨다

Special Report - 마누라 빼곤 다 바꿨다

조직·생산방식·성장전략 환골탈태 … 해외 거점 적극 활용



“완전히 새로운 얼굴로 돌아오겠습니다.” 어느 철강상사의 사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도요타자동차 간부에게 들은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세계 판매 1000만대를 향해 질주하던 도요타는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에 발목이 잡혔다.

겉잡을 수 없는 수요 감소에 2008년 도요타는 창업 이후 처음으로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2009년에는 일본 내 생산량이 279만대에 그쳤다. 1970년대 이후 일본 내 생산량이 300만대 아래로 떨어진 건 처음이었다.

“전 직원이 하나가 되었을 때 도요타는 달랐다. 그들이 반드시 부활할 것이라 느꼈다.” 그 철강상사 사장의 말이다. 실제로 2009년 6월 도요타 아키오 사장의 취임 이후 도요타는 달라졌다. 시설 확대를 멈추고 뼈를 깎는 고정비 삭감에 돌입했다. 그리고 지금 도요타는 ‘REBORN(재생)’이란 구호에 맞춰 다시 공격에 나설 만큼 회복했다.

수요가 빠르게 늘었지만 도요타는 앞으로 3년간 일본 안팎에서 새 공장을 짓지 않을 방침이다. 도요타 사장은 3월에 회사를 4개 부문으로 분할하는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판매 대수가 다시 확대 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더 건실한 회사를 만드는데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판매 확대보다 조직 쇄신이 더 급하다고 본 것이다. 도요타에서는 지금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까?



도요타 시설 투자 3년 간 동결도요타는 일본 자동차 회사 중에서도 일본 내 거점에 대한 애착이 각별하다. 도요타 사장은 “돌에 달라붙어서라도 국내 생산 300만대는 사수하겠다”고 거듭 이야기해왔다.

도요타에게 300만대란 어떤 숫자일까? 생산 부문 경험이 많은 도요타의 한 간부는 “기술 혁신과 기능 전승을 위해 필요한 최소 생산량”이라고 말했다.

그는 “캠리·코롤라 같은 세계적인 인기 차량이 있지만 지금은 그걸 거의 해외에서 만든다”며 “프리우스와 같은 히트 상품을 만들어 캠리·코롤라의 공백을 메우려면 일본 내 기술 기반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 도요타 기본 방침은 일본의 설비를 최대한 유지하고 북미 시장 회복에 대비하는 것이었다.

니이미 아츠시 생산담당 부사장은 “환율이 안정됐을 때 빠르게 대응하려면 일본 거점을 잘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이 판단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 도요타가 재기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물론 일본 내 현장에서는 철저한 생산 혁신과 체질 강화가 함께 이뤄졌다.

각 지역별 공장에서는 라인 개조가 한창이다. 생산 대수가 적은 차종은 다카오카와 다하라 공장에 모으고, 같은 카테고리의 차종은 하나의 공장에서 생산하도록 체계를 바꿨다. 공장마다 자신 있는 분야에 집중해 채산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부품 생산은 다운사이징(규모 축소) 작업이 진행 중이다. 완성차 300만대 원칙만 있는 게 아니다. 도요타는 400만대가량의 엔진과 650만대가량의 트랜스미션을 일본 내에서 생산한다.

이 부가가치 역시 도요타의 매출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요소다. 도요타는 엔진을 담당하는 시모야마 공장과 트랜스미션을 담당하는 기누우라 공장을 개조했다. 월 2만대를 생산해야 이익이 나던 것을 월 5000대로도 가능하도록 바꿨다. 소규모 라인으로 전환해 경쟁력을 높였는데 신흥국에 공장을 신설할 때도 이 라인을 이식할 계획이다.

회사의 조직 구조도 손을 보는 중이다. 도요타는 지난해부터 대규모 조직 개혁에 착수해 회사를 4개의 비즈니스 유닛(단위)으로 분할했다. 약 44%인 신흥국 판매 비중을 2015년에 50%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신흥국 시장에서 팔리는 차는 선진국과 크게 다르다. 안전이나 환경을 좀 더 중시하는 선진국 대상 차량과 가격이 중요한 신흥국 대상 차량은 설계부터 차이가 있다.

또 고급차인 렉서스는 독일 벤츠나 BMW와 같은 확고한 브랜드 확립이 큰 과제다. 이렇게 상반되는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도요타가 내놓은 것이 바로 ‘비즈니스 유닛제’다. 이에 따라 도요타는 선진국을 담당하는 제1 도요타, 신흥국을 담당하는 제2 도요타, 렉서스 사업을 담당하는 렉서스 인터내셔널, 엔진·트랜스미션 개발을 담당하는 유닛사업담당으로 나눴다.

기술면에서는 2011년부터 ‘도요타 뉴글로벌 아키텍쳐(TNGA)’라는 새로운 설계 구상을 선보였다. 도요타는 차종의 증가에 따라 전용 부품이 늘어 생산 가격이 증가하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 폴크스바겐은 엔진·구동계 등을 모듈(복합부품) 단위로 공통화 해 생산 가격을 크게 낮췄다. 도요타도 중장기적인 계획 아래 부품 공통화를 노린다.

가토 미츠히사 부사장은 “현재 20~30% 수준인 부품 공통화 비중을 70~80%까지 늘리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신설된 TNGA 기획부가 5~10년 뒤를 내다보고 부품의 라인업을 결정하면 이를 바탕으로 개별 자동차 개발 책임자가 공통화된 부품을 사용할지, 새롭게 설계할지 판단한다.

차종이나 지역, 또는 개발 시기를 뛰어넘어 종합적인 계획에 따라 발주하면 비용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게 도요타의 판단이다. TNGA에 근거해 설계된 첫 번째 자동차는 2015년 출시하는 4세대 프리우스다. 기존 프리우스에 비해 부품 가격을 평균 30% 이상 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아시아·태평양 전초기지는 인도사이타마현 북부 요리이 마을의 구릉지대. 도쿄 디즈니 리조트와 거의 맞먹는 면적 98만㎥ 거대 부지에 공장 건물이 늘어섰다. 애초 예정보다 3년 늦어져 올 7월 가동을 시작하는 혼다의 요리이 공장이다. 공장 전체를 가동하면 연간 약 25만대를 생산할 수 있다.

현재 공장 가동을 위한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자동차 회사마다 현지화를 외치는 가운데 혼다가 굳이 일본에 새 공장을 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미국에 이익의 절반을 의존하는 사업 구조를 벗어나 소형차와 신흥국의 성장으로 방향을 바꾸려는 계획이 담겨 있다.

이토 다카노부 혼다 사장은 “요리이 공장은 피트와 같은 소형차의 생산 효율을 높일 방안을 찾을 거점”이라고 말했다. 올 가을 출시하는 신형 피트는 해치백 스타일의 ‘피트(해외명 재즈)’와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스타일, 해외 전용 세단 ‘시티’ 세 가지 모델로 구성된다.

혼다는 신흥국 시장에서 판매가 늘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2016년 이 세 가지 차종으로 현재의 약 3배에 달하는 연 150만대를 판매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혼다는 2016년 전 세계 판매 목표를 600만대로 지난해 가을 내걸었다. 신형 피트가 전체의 4분의 1을 담당하는 핵심 차종이 된다는 뜻이다.

신형 피트는 엔진 개선으로 연비와 주행 성능이 나아졌다. 혼다가 피트를 세계적인 히트 상품으로 만드는 것은 얼마나 가격을 낮출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혼다는 원래 요리이 공장을 최첨단 기술을 도입해 다양한 차종을 신속하게 생산하는 하이테크 공장으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와 수요 감소에 밀려 계획을 중단했다. 공장은 완성돼 있었지만 설비 도입은 취소했다. 대신 공장 활용 방향을 180도 전환해 라인을 축소했다. 플랫폼을 피트에 집중시켰고 불필요한 공정을 없앴다. 새로 도입된 라인은 건물의 절반만 사용했고 나머지 공간에는 외주로 돌리려 했던 부품 가공 시설을 배치했다.

요리이 공장은 단순히 일본 내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공간이 아니다. 돈이 되는 생산 체제를 전 세계에 구축하기 위한 ‘실험 공장’이다. 요리이 공장 건설을 지휘한 다카하시 마사키 사이타마제작소 기사는 “신흥국에 요리이 공장과 같은 공장을 또하나 지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하고 설계했다”고 이야기한다. 애초부터 오직 일본에서만 얻을 수 있는 부자재나 기술은 사용하지않았다.

요리이 공장의 설계도만 있으면 신흥국에서도 언제든지 고효율의 소형차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또한 지역에따라 불필요한 공정을 없애거나, 조달 부품에 따라 달라지는 가공 공정에도 쉽게 대응할 수 있게 설계했다. 요리이 공장의 노하우는 내년에 가동하는 멕시코 공장을 필두로, 2015년 태국 제2공장, 중국 등에도 이식한다. 이들 공장에서도 요리이 공장 못지 않은 비용 절감이 이뤄질 전망이다.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큰 곳은 아무래도 해외다. 각 해외 거점이 주체성을 갖고 뛰자는 취지다. 회사의 운명을 쥐고 있는 만큼 각 지역의 생산총괄본부장으로 믿을 수 있는 인재를 보냈다. 지금까지 글로벌 시장을 영역을 넓혀왔지만 어디까지나 중심은 일본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장 구조는 크게 변했다.

단순한 현지생산이 아닌 ‘제조’의 본질적인 부분까지 현지화한다. 상품 개발부터 부품 조달까지 해당 지역에서 처리하는 체제를 구축할 것이다. 지금까지 제품 기획이나 부품 조달은 주로 일본에서 했다. 이를 각 지역이 스스로 담당하는 구조를 만드는 게 최종 목표다. 더 이상 환율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역의 자립은 필수적이다.”

이토 사장은 해외 현지화의 당위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혼다의 핵심 임원 중 하나인 마츠모토 요시유키 상무가 아시아·태평양 생산총괄책임이란 직책으로 최근 인도에 부임했다. 혼다는 세계를 6개 지역으로 나눠 사업을 진행한다. 각 지역의 자동차 개발·구매·생산을 총괄하는 리더가 생산총괄책임자다.

마츠모토 상무는 개발책임자로서 초대 피트의 성공을 이끈 주역이자 이후 일본 내 소형차 사업 재건에 기여한 혼다의 차세대 에이스다.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신형 피트의 판매 직전에, 점유율이 3%에도 미치지 않는 인도로 마츠모토 상무가 이동하는 것은 혼다 안팎에서 화제가 됐다.

“만나는 사람마다 위로했다”고 마츠모토 상무가 웃을 정도다. 하지만 마츠모토 상무의 인도 파견은 이 지역을 아시아의 성장 축으로 키우려는 혼다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아시아의 주력 거점인 태국과 어깨를 견줄 만한 나라로 인도를 키울 생각이다.



과도한 ‘기능 추구’ 혼다 DNA 버려야혼다는 생산과 소비를 연결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를 기본 전략으로 내걸고 오래 전부터 현지화를 추진해왔다. 하지만 실제로 일본의 결정에 따라 해외에서 생산하는 것뿐이었다. 이런 식으로는 신흥국 시장에서 상품이나 가격 측면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지금의 피트는 신흥국에서 다소 비싸다고 여긴다. 신흥국에서 일본만큼 판매가 늘지 않는 이유다.

마츠모토 상무는 “신형 피트로 볼륨존(가장 잘 팔리고, 가장 많은 구매층을 가진 가격대)를 노릴 것”이라고 선언했다. 가격 인하도 불사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가격 승부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현지 주도의 개발·생산 체제다. 마츠모토 상무는 “신형 피트는 초기 단계부터 신흥국의 욕구와 최적의 상품 조달 체제를 감안해 개발했다”고 강조한다. 같은 부품이라도 각 지역에 맞춘 복수 도면이 작성돼 있다. 또한 도면의 개량이나 파생 차종 개발 등 원래 일본에서 실시해온 작업도 현지에서 주도하도록 바꿨다.

소형차 전략을 내걸고 늦게 나마 신흥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선진국 시장에서 쌓은 ‘기능 추구’ 또는 ‘독자성 중시’라는 혼다의 기존 DNA와는 딴판이다. 성공을 위해서는 이 DNA마저 버릴 수 있다는 게 혼다의 각오다. 최첨단 대형차를 일본에서 만들어 미국에 파는 과거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얼마나 철저히 벗어날 수 있느냐가 관전 포인트다.

- 일본 경제 주간지 주간동양경제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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