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중국이 경매시장 지형 바꾼다

중국이 경매시장 지형 바꾼다

크리스티, 외국 경매사로는 처음 단독 지점 열어…서구 박물관도 진출 모색



아시아 큰손들이 세계 미술품 경매시장의 지각변동을 불러오고 있다. 그 중심에는 13억 인구의 중국 시장이 있다. 소더비와 함께 세계 2대 경매업체 크리스티는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의 크리스티 경매에 등록된 아시아 고객은 2011년~2012년 불과 1년 사이에 31%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크리스티 총 매출에서 아시아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3%에서 지난해 16%로 불과 4년 만에 13%포인트 증가했다.

크리스티와 소더비는 한때 세계 예술품 경매시장의 98%를 좌지우지했다. 하지만 중국 경매회사의 급성장과 시장확대로 최근에는 점유율이 70%대로 떨어졌다. 2005년 설립된 중국의 국영 경매업체 베이징(北京)폴리옥션과 1993년 설립된 중국 최초 경매회사 가디언(嘉德)은 각각 세계 3·4위로 우뚝 섰다.

오랫동안 아시아 예술품 경매시장의 중심은 홍콩이었지만 어느새 베이징이 홍콩을 밀어내고 뉴욕, 런던과 함께 세계 3대 경매시장으로 급부상했다. 크리스티와 소더비는 최근 몇 년간 중국 시장의 문을 두드려왔지만 중국 정부는 쉽사리 영업을 허가하지 않았다. 그동안 두 회사는 홍콩의 경매행사를 통해 중국 수집가와 접촉해 왔다.

먼저 앞서 나간 것은 소더비였다. 지난해 가을 중국 국영기업 거화(歌華)문화발전그룹과 손잡고 외국 경매회사로서는 처음 중국 본토에서 예술품 경매를 진행할 수 있는 합작사를 설립했다. 이에 자극받은 크리스티는 4월, 상하이 시정부와 상하이에 크리스티 중국본부를 두고 중국내 어디서든 단독으로 경매(중국 ‘문화 유물’ 제외)를 진행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합의서에 서명했다. 중국 본토에 외국 경매회사가 단독으로 지점을 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홍콩·뉴욕·런던·파리 등 전 세계 주요 크리스티 경매시장에서 아시아 예술품 및 전문가 관련 사업을 총괄하는 조나단 스톤 크리스티 국제 아시아 미술부 회장은 e메일 인터뷰를 통해 “(소더비라는) 경쟁자가 있어 미술품 경매시장의 범위가 더 커질 수 있었기 때문에 경쟁은 언제나 환영”이라며 “이번 합의를 계기로 보다 많은 중국 고객이 크리스티의 국제 네트워크와 전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말로 기대감을 내비쳤다.

2004년 홍콩 경매를 통해 세계적인 경매사 중 처음으로 한국 예술품을 시장에 내놓은 것이 크리스티였다고 말하는 그는 “당시와 비교하면 국제 경매시장에서 한국 예술품에 대한 인지도와 관심은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고 덧붙였다.

“런던과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한국인 수집가들의 활동도 눈에 띄게 활발해졌습니다. 관심 분야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예술가의 작품부터 전후 서구 현대 미술가 작품에 이르기까지 폭이 넓어졌습니다.”

한국 작가의 작품 중 홍콩 크리스티 경매 최고가 기록은 2007년 5월 648만 홍콩 달러(9억3300만원, 수수료 포함)에 판매된 홍경택의 ‘펜슬 1’이 갖고 있다. 세로 캔버스 3개를 붙여 크기가 259x581㎝에 달하는 대형 작품으로 홍 작가가 1995∼1998년 그린 ‘펜과 연필’ 시리즈 중 하나다. 커다란 화면에 연필과 펜들이 기하학적으로 배치돼 장관을 이룬다.

지난해 5월 홍콩에서 열린 크리스티의 ‘아시아 20세기& 동시대 미술’ 이브닝 경매(Evening Sale)에서는 서도호 작가의 설치 미술 작품 ‘원인과 결과(Cause & Effect)’가 242만 홍콩달러에 낙찰되기도 했다. 이브닝 경매는 경매 출품작 중 주목할 만한 대표작들을 따로 모은 경매다.

런던 대학 코토드 미술연구원(Courtauld Art Institute)에서 예술사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후 10년 넘게 크리스티 런던에서 근무한 스톤 회장은 2000년 일본 도쿄로 근무지를 옮긴 후 줄곧 아시아 미술시장 전문가로 활동해왔다.

그는 국제 예술품 경매시장에서 중국인 큰손의 부상으로 중국 예술품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상승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중국 현대 작가의 수묵화와 송(宋)대에 만들어진 도자기에 대한 관심이 특히 높습니다. 인기가 높아지자 크리스티는 올 2월, 뉴욕에서 처음으로 중국 현대 수묵화 작가 작품경매를 실시했다. 경매가격도 덩달아 큰 폭으로 뛰었다.



기꺼이 함께할 수 있는 작품 사라“지난해 12월 홍콩 경매에서 중국 작가 쉬 베이훙(徐悲鴻, 1895-1953)의 작품 ‘나뭇가지에 앉은 까치들’은 당초 감정가의 8배인 280만 달러(31억2564만원)에 낙찰됐습니다. 장미나무로 만든 17~18세기 수납장은 299만 달러에 팔렸죠. 중국 예술시장으로 돈이 몰리면서 점점 많은 서구의 박물관과 예술관련 행사들도 중국시장 진출을 모색 중입니다.”

글로벌 경매사의 중국시장 진출이 본격화 됨에 따라 우려되는 ‘짝퉁’ 예술품의 유입에 대해서는 “크리스티는 조금이라도 의심의 여지가 있는 작품은 경매에 내놓지 않는다”며 “최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이 경매에 출품될 모든 작품들의 진위여부와 그간의 보존 역사를 꼼꼼히 점검한다”고 말했다.

지속적인 경기 불황에도 지난해 크리스티의 글로벌 매출은 전년대비 10% 증가했다. 스톤 대표는 “점점 많은 사람이 예술에 관심을 갖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면서 ‘전자경매’ 도입으로 예술품 경매의 저변 확대도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크리스티가 온라인으로만 진행되는 경매를 처음 실시한 것은 2011년 12월, 고인이 된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소장품 경매를 통해서였습니다. 지난해에만 6번의 온라인 전용 경매를 실시했는데 참여 고객의 39%가 크리스티 경매에 처음 참가한 사람들이었어요.”

그는 투자 상품으로서의 미술품의 가장 큰 매력은 ‘독창성’이라고 말한다. “다른 모든 투자상품과 마찬가지로 예술작품 가격 역시 경기의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금융상품과 달리 작품에 대한 수요뿐 아니라 작품의 보존 상태·주제·장르·작품의 탄생시기 등 고유의 속성에 영향을 많이 받죠. 물론 경매시장의 트렌드도 무시 못합니다.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 작가의 작품이라 해도 희귀성이나 작품이 그려진 배경 이야기 등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일 수 밖에 없습니다.”

최근 국내에서도 미술품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와 관련해 초보 투자자들을 위한 조언을 구했다. “특정 미술품을 보는 관점과 구입 이유는 천차만별입니다. 따라서 예술품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감정적인 요인에 좌우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본인이 좋아하고 기꺼이 함께 할 수 있는 작품 구매가 중요합니다. 평소 경매 행사나 전시장, 박물관 등을 다니며 작가와 작품 시대 예술 사조 등과 친숙해지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처음부터 무조건 ‘뜨는’ 작가의 작품을 구입하려 드는 것은 별로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비상계단 몰래 깎아"...대구 아파트에서 일어난 일

2"올림픽 휴전? 러시아만 좋은 일"...젤렌스키, 제안 거부

3일론 머스크, 인도네시아서 '스타링크' 서비스 출범

4취업 준비하다 봉변...日 대학생 인턴, 10명 중 3명 성희롱 피해

5주유소 기름값 또 하락...내림세 당분간 이어질 듯

6아이폰 더 얇아질까..."프로맥스보다 비쌀 수도"

7 걸그룹 '뉴진스', 모든 멤버 법원에 탄원서 제출

8 尹 "대한민국은 광주의 피·눈물 위 서 있어"

9성심당 월세 '4억' 논란...코레일 "월세 무리하게 안 올려"

실시간 뉴스

1"비상계단 몰래 깎아"...대구 아파트에서 일어난 일

2"올림픽 휴전? 러시아만 좋은 일"...젤렌스키, 제안 거부

3일론 머스크, 인도네시아서 '스타링크' 서비스 출범

4취업 준비하다 봉변...日 대학생 인턴, 10명 중 3명 성희롱 피해

5주유소 기름값 또 하락...내림세 당분간 이어질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