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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금융 상품 봇물 … 초저금리 둔감한 부유층 공략 강화



서울 충정로의 직장에 다니는 이인호(30)씨. 최근 교통사고를 당해 급전이 필요했다. 월급날은 멀었고 빌릴 곳은 마땅찮다. 불현듯 생각난 게 1년 전에 가입한 주택청약종합저축.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내 집 마련에 필수라는 생각에 가입했다. 월 10만원씩 납입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은데다, 민영주택 청약 1순위 자격을 따내는 조건이 까다로워 깰까 말까 고민 중이었다.

A은행 창구에서 “해지해 달라”는 이씨에게 은행 직원이 말했다. “고객님, 청약저축을 2년 유지하면 연 4% 금리가 적용됩니다. 아주 급하지 않으면 갖고 계시는 게 어떨까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빈손으로 은행을 나와 곧바로 친구에게 전화했다. “미안한데, 돈 좀 빌려줄래?”

2009년 5월 출시 이후 한동안 실효성 논란이 컸던 주택청약저축이 다시 각광 받고 있다. 초저금리 시대에 일반 정기예금 금리가 대개 2%에 그치면서 꼭 내 집 마련 목적이 아니라도 재테크 수단으로 주목하는 것이다. 월 2만원 이상을 2년 넘게 내면 연 4% 금리를 받는다.

무주택세대주 가입자는 연간 납입금액(연 120만원 한도)의 40%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은행권도 이런 점을 파고 들어 이 상품의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예전엔 주택청약저축을 내 집 마련에 필수 통장으로 홍보했다면 요즘은 높은 금리의 ‘만능통장’임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같은 상품을 놓고 금리환경에 따라 다르게 파는 역발상 마케팅이다.

KB국민은행은 4월부터 주택청약저축 판매를 시작했다. 3월 기준 1190만 계좌가 개설됐을 만큼 많이 팔렸지만 초저금리 시대를 등에 업고 우리·신한·하나·기업 등 은행과 경쟁한다는 전략이다. 판매 한 달 만에 50만 계좌에 잔고 2600억원을 유치하는 등 후발주자로선 선전 중이다. 애초 9월까지 100만 계좌 판매가 목표였지만 초과 달성할 전망이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통장 최대 납입한도인 1500만원을 한 번에 입금한 고객도 상당수였다. 주택청약이 아닌 높은 금리 재테크를 목적으로 한 고객이 그만큼 늘었다는 뜻이다. “주객 전도라고 할 수 있지만 은행으로선 고무적입니다. 이미 국민 5명 중 1명이 (주택청약저축에) 들었는데 새 고객이 얼마나 들겠냐는 우려가 많았거든요.” 국민은행 관계자의 말이다.



연 4% 금리 주택청약저축 인기주택청약저축처럼 초저금리 시대에 금융권이 공을 들이는 상품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고배당주 랩(wrap) 상품이다. 한국투자증권이 5월 22일부터 재판매에 들어간 ‘아임유랩-고배당주’는 ‘저금리 시대의 투자 대안’이란 홍보 문구를 내걸었다. 최소 가입금은 2000만원이다. 초저금리 시대에 고배당주 투자를 선호하는 고객요구에 맞춘 상품이다. 조재홍 한국투자증권 고객자산운용담당 상무는 “0%대 수시 예금이 나오는 저금리 시대에는 시중금리 이상의 안정적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고배당주 랩 상품이 인기”라고 말했다.

왜 지금 고배당주 투자일까? 고배당주는 일반 주식보다 상대적으로 배당 수익률이 높지만 연간 수익률로는 매력이 덜했다. 배당주는 배당을 앞둔 연말에 투자하면 배당 수익을 얻을 수 있어 예전엔 연말 무렵 인기를 끈 주식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요즘은 연중 언제든 갖고 있으면 적절한 수익을 기대할 만한 주식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고배당 기업은 대체로 경기 영향을 적게 받는데다, 현금흐름이 안정적이라 요즘 같은 불황에 강한 특성이 있다. 한마디로 시세 차익과 배당 수익을 같이 얻는 동시에 안정성까지 높다는 것이다.

올해 들어 고배당주에 투자한 개인투자자 장모(42)씨는 “정기예금보다 수익이 높으면서 정기예금 못지 않게 안전한 투자 수단”이라며 “연말까지 가져갈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시가 배당률이 3.5% 이상으로 일반 정기예금 평균 금리보다 높은 유가증권시장 상장법인 61곳의 1월 이후 5월 12일까지의 주가 상승률은 평균 27.1%였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 상승률은 마이너스 2.61%였다.

강현기 아이엠투자증권 연구원은 “저금리 기조가 오래 이어진 일본의 경우도 2001년부터 고배당주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좋았다”며 “국내 시장에서도 장기적 관점에서 고배당주의 성과가 우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권이나 투자자가 초저금리 시대에 배당주 펀드 등 고배당주 관련 상품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이처럼 초저금리 시대이지만 무턱대고 고수익을 강조하진 않는다.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크고 부동산 시장도 예전만 못해 수익률이 예전보다 낮더라도 안전한 상품을 선호하는 투자자가 늘어서다. 이렇게 안전 추구 성향이 짙어지면서 은행·증권사뿐 아니라 자산운용사도 맞춤형 상품 강화에 나섰다. 특히 여러 자산을 혼합해 변동성을 낮춘 중위험·중수익 상품이 인기다. 김영호 트러스톤자산운용 대표는 “시중금리보다 수익률이 다소 높게 나면서 주식보다는 변동성 작은 중위험·중수익 구조를 투자자들이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KB자산운용이 5월 출시한 ‘KB글로벌멀티에셋인컴펀드’는 주식형과 채권형의 장점을 섞은 중위험·중수익 펀드다. 글로벌 고배당주 외에 채권 관련 자산과 부동산투자신탁(REITs) 등에 투자한다. 삼성자산운용·한국투자신탁운용 등도 초저금리 환경과 주식시장 하락에 대비한 중위험·중수익 상품으로 고객 유치에 나섰다.

이색 테마를 내걸어 우대금리를 적용하는 상품도 여럿 있다. 초저금리 시대에 웬만한 기존 예금상품으로는 고객의 눈을 끌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신한은행 ‘두근두근 커플 정기예금(스마트폰 전용)’은 둘이 가입할 때 더 높은 금리 혜택을 준다. 가입금 1000만원에 최대 연 3.24%의 금리로 연인이 아니라도 가족·친구끼리 가입할 수 있다.

하나은행 ‘드라마 정기예금’은 TV 드라마 시청률에 따라 금리가 바뀐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MBC ‘구가의 서’ 시청률이 15% 이상(가장 높은 회차 기준)이면 연 2.85%, 이하면 연 2.80% 금리를 적용하는 1년제 정기예금 상품이다. 드라마 애호가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이려는 상술이다.



중위험·중수익 상품이 주종아예 특정 소비층만 겨냥해 초저금리의 덫을 비껴가려는 경우도 있다. 초저금리 영향에 덜 민감한 부유층 공략에 집중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삼성생명이 지난해 만든 부유층 자산관리 전담조직 ‘삼성패밀리오피스’는 금융자산 30억원 이상의 소수 고객을 전담한다.

하나대투증권은 금융자산 20억원 이상 고객을 겨냥한 맞춤형 금융 서비스(PIB)를 강화하기로 하고 전문가 수십 명을 각 지점에 나눠 배치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이색 상품이든 부유층 겨냥 상품이든 초저금리 추세에 따른 영업 타격을 최소화하려는 고육지책”이라며 “저금리 기조가 길게 이어질수록 금융권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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