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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산업국가 일군 중동의 야심가

사막에 산업국가 일군 중동의 야심가

석유·가스 발판으로 미디어·교육·스포츠 강국으로 키워 … ‘두바이보다 한 수 위’ 평가



페르시아만 연안의 이슬람 국가 카타르의 ‘에미르(이슬람 국가의 군주)’ 셰이크 하마드 빈 할리파 알 타니(61)는 야심가다. 중동에서는 물론 미국과 유럽에까지 국제적인 영향력이 대단하다. 하마드의 글로벌 영향력은 미디어와 스포츠, 그리고 21세기형 신산업 세 가지에서 나온다.

하마드가 국제적으로 주목 받는 인물이 된 가장 큰 요인은 글로벌 위성채널인 알자지라의 창업주이자 사실상의 소유주라는 사실이다. 하마드는 1996년 1억3700만 달러를 투자해 아랍권 위성뉴스채널인 알자지라 방송을 개국했다. 섬 또는 반도라는 뜻의 알자지라는 카타르의 자랑이자 하마드의 야심적 프로젝트다. 중동에 처음으로 생긴 제대로 된 언론이기도 하다.

이 채널의 특징은 중동의 시각으로 중동 뉴스를 성역 없이 보도한다는 것이다. 외국 독재자는 물론 전제 군주도 봐주는 법이 없다. 1999년 1월1일부터 아랍어권 최초로 24시간 뉴스 방송을 시작했다.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등 중동·아랍권의 요동치는 역사적 현장에 특파원을 보내 생생한 뉴스로 아랍권은 물론 서방 뉴스 시청자까지 사로잡았다.

알자지라가 서방 방송 못지 않은 실력을 과시한 게 2011년 중동민주화운동 현지 보도다. 당시 현지 특파원들의 생생한 현장 중계로 아랍어권 전역에 충격을 줬으며 그 결과 민주화의 전도사로 평가받았다. 24시간 뉴스 방송의 원조 격인 미국 CNN을 비롯한 서방 방송도 앞 다퉈 알자지라의 영상과 보도를 인용하기 시작했다.

2003년에는 알자지라 영어 채널까지 열고 미국·유럽 등에 본격 진출했다. 하마드는 이 채널이 광고 수입 증가로 재정자립을 이룬 뒤에도 필요할 때마다 자금을 보태며 운영을 좌우했다. 카타르 수도 도하에 본부를 뒀으며 하마드의 사촌인 하마드 빈 타메르 알 타니가 모기업인 알자지라 네트워크스의 회장이다.

2011년 개인 소유에서 공공 소유로 소유 형식을 바꾸고 편집권 독립을 강화했으나 하마드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알자지라 채널의 모기업인 알자지라 미디어 네트워크는 알자지라 영어 채널과 10개의 스포츠 채널, 다큐멘터리 채널, 알자지라 발칸, 알자지라 터키, 알자지라 아메리카 등 글로벌 네트워크를 자랑한다.



알자지라 창업주이자 스포츠광하마드는 스포츠광으로 글로벌 스포츠 행사를 사막의 나라 카타르에 유치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2006년 제 15회 아시안 게임을 수도 도하에서 열었다. 페르시아만 소국의 수도에서 아시안 게임이 열리기는 처음이다. 대회 기간 구경하기 힘든 폭우가 내려 몇몇 시설이 침수되기도 했지만 무사히 대회를 치러 저력을 과시했다. 도하 아시안 게임은 쾌적한 분위기에서 깔끔하게 치러져 중동의 자부심을 살려줬다.

하마드는 여세를 몰아 2011년에 2022년 월드컵축구를 유치하는 기염을 토했다. 아시아 축구협회가 주최하는 아시안컵 대회도 두 차례나 개최해 월드컵을 치를 능력을 보여줬다. 인구 190만명에 자국민은 25만명 밖에 되지 않는 페르시아 만 연안의 작은 이슬람 국가가 세계인의 스포츠 향연인 월드컵을 유치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로 평가 받는다. 하마드의 야심이 아니라면 결코 이룰 수 없는 사업이다.

하마드는 이미 경제 분야에서 작은 기적을 이뤘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카타르의 구매력 기준(PPP) 1인당 국내총생산(GDP) 은 10만2211달러로 세계 1위다. 1인당 명목 소득도 9만9731달러로 10만7206달러인 룩셈부르크에 이어 세계 2위다. 사실상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다. 전 국민은 무상교육·의료 서비스를 받는다. 심지어 통신비도 국가에서 전액 부담한다. 세계적인 복지 수준이다. 이 같은 경제 성장이 가스매장량이 세계 3위인 에너지 강국이란 것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는 점이 주목된다.



구매력 기준 소득 1위이런 업적은 하마드의 강한 리더십과 미래에 대한 통찰력 때문에 가능했다는 게 국제적인 평가다. 하마드는 집권한 1995년부터 지금까지 연 평균 15%가 넘는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 중동 산유국으로는 드물게 석유·가스산업에만 만족하지 않고 알루미늄 제련업을 비롯한 금속산업, 농업에 필요한 비료 생산을 비롯한 각종 화학·금속산업을 일궈냈다.

국가의 산업화를 이렇게 급속히 이룬 그는 고부가 서비스 산업으로 눈을 돌렸다. 작은 왕국을 중동의 교육·과학기술·금융 등 21세기형 3차 산업의 중심지로 만들려고 한다. 중동지역은 2차 산업도 그렇지만, 고부가 3차산업도 턱없이 취약하다. 그래서 부호들은 서구의 제품을 쓰고, 외국으로 유학을 가며, 중동지역 밖에서 휴가를 보낸다. 이런 중동 부호들을 카타르로 불러들여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해 또 다른 산업을 키워보겠다는 게 하마드의 꿈이다.

하마드는 이런 수요를 유치하기 위해 서비스 산업 가운데 특히 교육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1997년 미국에서 코넬대(의과대)·카네기멜런대(컴퓨터사이언스)·텍사스A&M(엔지니어링)를 비롯한 분야별 최고 수준의 대학 5개교를 한꺼번에 유치했다. 이 학교들은 카타르에 들어설 ‘에듀케이션 시티(교육 도시)’에 분교를 내고 중동학생들을 가르치게 된다.

중동 거의 전역이 아랍어를 쓰기 때문에 유학생들의 언어 소통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영어 강의도 할 예정이다. 이런 사업을 위해 하마드는 카타르재단을 설립하고 부인을 재단 이사장에 앉혔다. 중동에서는 드물게 여성 교육에도 신경을 쓰겠다는 메시지다. 눈길을 끄는 부동산 개발로 중동과 서구의 부호들을 유치하려던 두바이보다 한수 높은 전략으로 평가 받는다.

하마드는 자신이 즐기는 스포츠를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대규모 스포츠시티를 조성했다.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을 연 곳이 바로 여기다. 하마드는 거기서 더 나가고 싶어한다. 2022년 월드컵까지 유치했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여름 올림픽도 계속 노린다.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국가 발전의 기회로 활용한 한국을 벤치마킹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올림픽·월드컵 유치한 한국 본받아여기에 더해 하마드는 활발한 기부와 외교 활동으로 중동은 물론 서방에서도 주목 받는다. 우선 통 큰 기부로도 유명하다. 문제는 박애주의적인 기부를 넘어 상당히 정치적인 기부도 많이 한다는 점이다.

2005년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가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물바다가 되고 수많은 사상자와 이재민이 발생했을 때 1억 달러의 성금을 내놨다.

지난해에는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학살을 방지하자며 각국에 파병을 호소했으며, 사우디 아라비아와 함께 반군 측에 무기와 군 자금을 대준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리비아 공습 때 이에 동조해 자국 전투기를 출격시켰다. 하마드가 얼마나 ‘열혈남아’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를 중동 전역에 선명하게 각인시킨 또 하나의 사건은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가지지구 방문이다. 2006년 총선 승리로 이슬람 강경파 하마스의 통치가 시작된 이래 가자지구를 방문한 첫 외국 국가원수다. 민중은 팔레스타인에 동정적이지만 지도자나 정부는 개입을 꺼리는 중동 정서상 국가원수의 팔레스타인 방문은 큰 반향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그는 가자지구에 2억5400만 달러 규모의 재건 지원까지 약속했다. 중동 전역에서 단박에 용기 있는 영웅으로 부상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 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하마드가 반미 성향이 강한 하마스에 현찰로 자금을 대줬다고 보도했다. 뿐만 아니라 1월 알제리에서 벌어진 가스시설 근무 외국인 납치 살해 사건 및 말리 내전과 관련 있는 이슬람 테러조직에도 자금을 대줬다는 의혹이 프랑스 언론에서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하마드는 중동에서 미국과 가장 가까운 파트너로 통한다. 1992년 이후 미국과 밀접한 군사적 관계를 맺어 미 중부 군사령부의 전진기지와 공군작전센터를 유치했다. 페르시아만 북안의 이란을 견제하는 미 해군 함대가 기항하는 곳도 카타르의 항구다. 하마드 덕분에 미국은 중동 기지를 확보한 셈이다. 걸프전에 연합군 측으로 참전을 결정한 드문 중동아랍 지도자다. 만일 그가 테러 의혹이 있는 이슬람 조직에 돈을 대줬다면 이는 자신의 평판을 유지하기 위한 ‘보험금’일 가능성이 크다.

카타르의 에미르인 할리파의 아들로 태어난 하마드는 1971년 영국 샌드허스트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해 카타르 육군 중령으로 임관했다. 이후 장군으로 승진한 뒤 육군 참모총장에 올랐다. 그는 1977년 왕세자로 책봉되면서 동시에 국방장관으로 임명됐다. 1980년대 초반에는 최고국가계획위원회를 이끌며 경제사회 정책개혁을 주도했다.

그는 1995년 6월 부왕인 할리파가 스위스 제네바로 잠시 요양을 떠난 사이 무혈 궁정 쿠데타로 정권을 차지해 2000년 6월 정식으로 왕위에 올랐다. 그는 부왕의 해외 계좌를 동결해 역쿠데타를 방지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해외망명 생활을 하던 부왕은 결국 두 손 들도 2004년 귀국했다.



쿠데타로 집권한 ‘개혁 군주’왕위 찬탈을 ‘평화적인 쿠데타’로 홍보한 하마드는 자신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개혁과 가시적인 성과에 더욱 매진했다. 아랍 군주로는 드물게 2005년 헌법을 채택했으며 1999년부터 여성 참정권도 부여했다. 2008년에는 중동국가론 드물게 자국 내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가톨릭 교회의 건립을 허용했다.

그런 점에서 조카인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을 뒤 개혁정치로 나라를 튼실하게 다진 세조와 닮았다. 하마드는 세계적인 부호이기도 하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2010년 전 세계 왕족 재산 순위를 매겼을 때 20억 달러로 7위에 올랐다. 한국과는 장기적인 가스 공급 계약을 했다.

셰이크 하마드 빈 할리파 알 타니라는 그의 이름에서 맨 앞에 붙은 ‘셰이크’는 연장자를 뜻하는 존칭이다. 부족의 지도자나 원로에게 붙이지만 반드시 나이가 많을 필요는 없고 젊어도 지도자 가문 출신이면 붙일 수 있다. 하마드는 그의 이름이고, ‘빈 할리파’는 할리파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원래 아랍에선 이름에서 ‘빈 아무개’를 계속 반복하며 거의 족보 수준으로 조상을 나타내지만 여기서는 이를 줄여 아버지까지만 적었다. 아랍인들은 영어로 이름을 나타낼 때 통상 이 정도만 적는다.

알 타니는 출신 가문 이름이다. 이 가문은 19세기부터 카타르의 에미르로 군림했다. 카타르는 영국의 지배를 받다 1971년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일부로 독립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별도 나라로 분리됐다. 에미르는 아미르, 또는 아미라고도 부르며 이슬람 세계에서 작은 나라나 독립 지역의 군주를 가리키는 말이다. 원래 사령관·장군·제후라는 뜻이다.

아랍 세계에선 높은 귀족이나 관리를 부르는 칭호로도 쓰이며 개인 이름으로 쓰기도 한다. 현재 중동 지역의 독립 국가 가운데선 아랍에미리트를 이루는 토후국의 지도자 외에 쿠웨이트와 카타르의 최고 통치자가 이 호칭을 쓴다. 바레인의 최고 통치자도 이 호칭을 쓰다가 2002년 왕으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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