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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건강·치료식 도시락 유망

노인 건강·치료식 도시락 유망

1인 가구 겨냥한 고급 반찬 배달 서비스 유망 … 편의점 도시락도 인스턴트 제품 급감



도시락은 음식 그 이상이다. 도시락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선 특히 그렇다. 도시락만으로 시대 변화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다. 시대 영향이 반영된 소비 수요의 미묘한 변화가 도시락의 진화로 연결되는 게 다반사다. 저성장이나 고령화가 대표적이다. 현대·공업·도시·개인화 등 시대 변화가 지금의 일본 도시락을 만들었다. 도시락은 일본 경제·사회의 가늠자이기도 하다. 가격부터 구성·유통 등 제반 변화에서 일본적 키워드가 나온다.

아베 정권의 승부수인 ‘아베노믹스’도 도시락으로 흥행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 도시락 인기 변화에서 성공을 점칠 수 있다. 연초부터 일본의 질적·양적완화는 주식 등 실물자산 가격을 끌어올렸다. 이는 자연스레 소비가 늘어나는 ‘부의 효과(Wealth effect)’를 낳았다.

벚꽃놀이라는 계절 요인까지 맞물려 도시락 판매 시장에 온기를 지폈다. 벚꽃 구경에 필수인 도시락 판매량이 늘고 가격이 뛰었다. 유명 공원 인근 판매장에는 특설 코너가 설치됐고 인기 품목의 가격대는 1000엔대에서 2000엔대로 올랐다. 백화점의 소풍 도시락 매출도 덩달아 늘었다. 값비싼 도시락의 흥행몰이는 아베 정권 이전엔 찾기 힘든 현상이었다.



고령자 대상 배달 서비스 활발일본의 도시락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몇 가지 풍경을 보자. 먼저 편의점이다. 점심시간 편의점은 인파로 넘쳐난다. 도심 사무실 밀집지역 편의점에서는 줄 서는 게 보통이다. 계산대만큼 전자레인지도 쉴 새 없다. 기차역엔 아예 도시락 전용매장까지 있다.

‘에끼벤(驛弁)’으로 불리는 지역·기간 한정판 도시락이다. 이 도시락을 즐기는 ‘에끼벤 여행’도 인기다. 식사시간 공원의 벤치는 도시락족(族) 천지다. 아무렇지 않게 홀로 먹는 이들이 적잖다. 상점가엔 도시락 전문점이 빠지지 않는다. 퇴근 시간이면 저녁거리용으로 도시락을 사기 위해 들르는 이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덕분에 도시락 시장은 급성장을 거듭한다. 외식산업과 따로 비교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지난해 일본의 외식산업 시장 규모는 23조2386억엔이다. 음식점·숙박시설·직원식당·병원급식 등이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도시락은 외식산업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조리품 소매업’으로 분류된다. 시장 규모가 6조4648억엔이다. 전년보다 2.7% 커졌다.

통계에서 누락되는 새로운 도시락도 속출한다. 배달 도시락이 대표적이다. 조리품 소매업은 고객이 직접 점포를 찾아 구매하는 테이크아웃 형태다. 별도의 반찬 판매까지 포함한다. 배달 도시락은 최근 새롭게 떠오른 사업 아이템이다. ‘간병식’이 대표적이다.

죽 같은 유동식과 영양식 도시락을 노인시설에 배달하는 것이다. 후지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11년 이 시장의 규모는 1036억엔으로 성장했다. 이런 추세라면 2021년 1600억엔대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와 별도로 65세 이상 고령자 대상 도시락 배달 서비스 시장규모는 2011년 600억엔을 돌파했다.

영세 업체를 뺀 도시락 전문점은 대개 프랜차이즈 체인으로 운영된다. 매출 규모로는 ‘호토모토’ ‘혼케가마도야’ ‘홋카홋카테이’ 등이 상위권이다. 항간에선 ‘도시락 삼국지’라 부른다. 1위는 호토모토다. 도시락 프랜차이즈의 원조 홋카홋카테이와 같은 회사였다가 상표권 분쟁으로 2008년 분리했다.

총 2078개 점포로 시작해 지난해 2800여 개로 늘었다. 매출은 1270억엔을 기록했다. 1980년 창립한 혼케가마도야는 약 2300개 점포를 보유했다. 매출은 2008년 기준 1114억엔이다. 호토모토와의 상표권 분쟁 이후 대부분의 점포를 잃은 홋카홋카테이는 점포수 1300여개로 매출 660억엔(2010년)의 실적을 기록했다.

도시락 프랜차이즈의 실적은 하향세다. 공식 통계가 없는 가운데 일본 프랜차이즈체인협회 추정에 따르면 시장 규모가 줄었다. 프랜차이즈 수는 2001년 40개에서 2008년 22개로 줄었다. 점포는 1만717개에서 7555개로 급감했다. 매출 역시 5557억엔에서 3911억엔으로 감소했다. 전체 시장인 ‘조리품 소매업’의 성장과 대조된다. 프랜차이즈 전문점은 약세인 가운데 편의점·수퍼 등이 도시락 시장의 신흥 강자로 떠오른 것으로 풀이된다. 즉석에서 먹는 도시락보다 ‘나카쇼쿠(中食)’로 불리는 반제품 형태가 인기를 끌면서 전문점이 이 업종과 경쟁에서 패배했다는 게 중론이다.

전체 도시락 시장의 경쟁 양상은 저가 대결로 압축된다. 경쟁이 심한 가운데 싼 신제품을 개발하는 게 관건이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격 경쟁이 더욱 치열하다. 유력 경쟁품인 규동 업계까지 저가 마케팅에 뛰어든 것도 영향을 미쳤다. 10~30%까지 가격이 떨어졌다. 신제품 개발 경쟁도 뜨겁다. 도시락은 워낙 자주 먹는 음식인 까닭에 단골 손님이 질리지 않도록 다양한 상품 개발이 필수다.

도시락은 집에서도 통한다. 도시락을 사서 집에서 먹는 인구가 늘었다. 이를 통칭해 ‘나카쇼쿠(中食)’라 부른다. 도시락을 포함해 반찬과 디저트를 사서 집에서 먹는 것이다. 밖에서 먹는 외식(外食)과 집에서 해먹는 내식(內食)의 중간 식이란 뜻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활성화됐다.

나카쇼쿠 시장 규모는 1995년 5조엔대에서 2008년 8조5000억엔으로 커졌다(야노경제연구소). 외식시장을 위협할 정도다. 주된 구매 경로는 2조2000억엔대의 편의점이다. 값 싸고 조리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특히 혼자 사는 사람 사이에서 인기다.

독신자 중 65%가 1주일에 1회 이상 나카쇼쿠를 이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인터넷식생활조사, 2008년). 이용 품목(복수응답)은 도시락(66.4%)이 압도적이다. 주먹밥(65.2%), 빵·샌드위치(56.7%), 튀김(45.2%), 샐러드(43.8%) 등이 뒤를 이었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고 인스턴트 식품보다 포만감이 있다. 메뉴가 다양한 것도 인기 비결이다.

편의점의 미래도 도시락에 좌우될 정도다. 도시락을 장악하지 않고서는 미래가 불투명하다. 나카쇼쿠를 필두로 다양하게 내놓은 메뉴가 매출 증진의 일등공신이다. 주요 고객은 노인층이다. 이런 점에서 도시락은 노인의 생활 수준을 지키는 버팀목이다.





편의점의 미래 도시락이 좌우무연사회가 일상화된 일본 노인의 생존 공포는 ‘구매난민(買い物難民)’이란 단어로 요약된다.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일본에선 ‘또 하나의 노인문제’다. 돈이 있어도 거동이 불편해 음식을 사먹기 곤란한 고령자의 공포를 뜻한다. 최대 800만명이 해당한다.

생활주변의 생필품 판매처가 급감한 결과다. 이때 구매난민의 우려를 불식한 게 편의점이다. 편의점의 전략 변화 덕에 구매난민이 급증하는 걸 일정 부분 막았다. 편의점의 진화가 노인의 ‘먹거리’에 부흥한 덕분이다.

원래 편의점은 젊은층 취향이었다. 젊음을 내세운 차별화 전략으로 성장했다. 청년 입맛에 맞는 상품·진열·입지를 고수했다. 특히 야간 활동이 잦은 30~40대 남성이 충성 고객이었다. 한때 고객 비율의 70%까지 점했다. 그랬던 게 최근 바뀌었다. 노인·여성·10대가 주력이다. 이중 편의점 업계는 고령자를 노린다.

인구 4명 중 1명이 노인이다. 실제 노인 고객의 충성도가 급격히 높아졌다. 1989년 9%였던 50대 이상 고객이 2008년 26%로 늘었다(세븐일레븐). 2011년 현재 50대 이상 고객 비중은 32%로 더 늘었다(로손). 재택과 근린(近隣) 지향성 등 노인 인구의 라이프스타일에 눈높이를 맞춘 결과다. 그도 그럴 게 부부나 단신 세대도 식사 대용으로 편의점 도시락을 찾는 게 경제적이다.

편의점 도시락의 성장세는 ‘인스턴트→신선 제품’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돋보였다. 노인 건강의 위협 인자에서 파수꾼으로 진화할 것이다. 도시락을 필두로 외식과 내식의 경계선인 나카쇼쿠를 강화해 독거 노인의 생활 자립을 돕는 차원이다. 덕분에 업계는 숨통을 텄다. 도시락에서 불황 탈출의 힌트를 읽어내면서 단골 고객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인스턴트 식품의 대명사’ 오명 벗어편의점 업계는 노인 고객이 선호하는 도시락과 반찬 수요를 감안해 신선 식품 비중을 늘렸다. 『남자 독신의 길(男おひとりさま道)』이란 책은 이런 다양화 트렌드를 ‘도시락 업계의 혁명’으로 표현했다. 당뇨식·감염(減鹽)식·키자미(잘게 쓴 재료)식·환자식 등 광범위한 제품 출시가 특징이다. 인스턴트의 대명사라는 오명을 벗는데도 열심이다. 유기농은 물론 인접 지역에서 재배된 농수산물을 재료로 고른 영양분을 반영해 건강 도시락을 내놓는 추세다.

여세를 몰아 편의점은 찾아가는 도시락 배달에 주목했다. 택배·배송 서비스다. 도시락을 비롯한 냉동식품의 즉각적인 배달 서비스는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신문 판매점과 제휴해 택배 서비스에 나선 사례가 재미나다(패밀리마트). 상품은 있는데 전달 체계가 없는 편의점과 발은 있는데 수익구조가 마땅찮은 신문 보급소의 만남이다.

2010년 12월부터 4개월에 걸쳐 제휴 실험을 해봤는데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도시락·식품 등의 이동 판매도 있다(세븐일레븐). 구매난민의 잠재 파워에 주목한 사례다. 아직은 농촌지역이 실험 무대다. 원래 이동 판매는 생활협동조합과 동네 상점가 등이 활용했다. 전국에 산재한 개별 점포를 착발기지로 쓰면 세밀한 서비스가 가능할 것으로 평가된다.

유명 도시락 전문 프랜차이즈 ‘마고꼬로 도시락’ ‘다마고야’ 등은 노인 대상 마케팅에 적극적이다. 저단백질·칼로리 조정 메뉴 등 고령자 메뉴를 개발했다. 노인이 먹기 쉬운 조리법을 사용하고 개인별 맞춤 식단을 제공한다. 정부의 노인 지원시스템도 이용한다. 이 시스템의 데이터와 연계된 조리·택배 시스템을 개발해 수요가 많은 곳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 덕분에 업체들은 안정적인 수입을 올린다. 마사지·가사대행서비스까지 제공하면서 다른 업체와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도시락은 일본 창업시장의 유력 아이템이다. 워킹맘 증가와 고령화 진전으로 도시락 도시락 시장이 꾸준히 커질 전망이다. 수지경제연구소는 2021년 일본 도시락 시장 규모는 현재의 2배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음식에 곤란을 겪는 노인 입맛에 맞춘 전용 도시락 개발·배달이 관심 대상이다. 일반식은 물론 수요에 따라 건강·치료식 도시락을 추가하면 이를 찾는 수요가 적잖다. 반찬 등을 배달하는 것도 틈새 아이디어다. 노인은 충성도가 높아 한번 인연을 맺으면 계속 주문하게 마련이다.

‘노인=단독 가구’ 이미지가 정착되면서 1인 가구를 위한 반찬제공도 인기다. 편의점 등을 중심으로 1인 가구를 위한 다양한 카테고리의 제품이 나왔다. ‘99플러스’란 전문점은 고기·채소·잡화 등 일상품목 1만2000개 이상을 소량으로 포장해 99엔의 동일 가격에 판매해 화제를 모았다. ‘로크필드’라는 고급 반찬 전문점은 다양한 채소를 먹고 싶어도 비용 부담 때문에 주저하는 수요를 겨냥해 30개 종류 이상의 채소가 들어간 샐러드를 판매해 성공했다. 창업 비용이 비교적 저렴해 소자본 창업에 어울리는 업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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