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투자 귀재’의 보험시장 도전
CEO - ‘투자 귀재’의 보험시장 도전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6월 18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제49차 세계보험회의(IIS) 연차총회 특별 연설에서 뜻밖의 발언을 했다. 그는 이날 오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감독 패러다임은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면서 금융회사의 지속가능한 경영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 보험산업에서도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다”며 기존 보험 영업의 틀을 깬 미래에셋생명·현대라이프생명의 사례를 소개했다.
최 원장은 현대라이프생명이 올 초 내놓은 ‘현대라이프제로’는 ‘보험은 복잡하다’는 선입견을 깬 상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또 다른 보험사는 보험료 납입기간 동안 수수료를 균등하게 받도록 설계사를 설득해 무리한 마케팅을 지양하고 보험유지율을 높였다”고 덧붙였다.
미래에셋생명의 보험상품인 ‘진심의 차이’를 지목한 것이다. 그는 “이런 시도가 성공할 지 미지수지만 현재까지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치하했다. 또 “시장의 자율적인 노력과 더불어 감독기관이 금융소비자 보호에 분명한 시그널을 주면 한국 보험시장의 신뢰가 점차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진심의 차이’ 상품 진심 통해최 원장이 사례로 든 ‘진심의 차이’는 설계사 수당을 계약 첫 해에 몰아주는 관행에서 벗어나 7년에 걸쳐 나눠주도록 만든 상품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중도에 해약하더라도 설계사 수당을 미리 떼지 않기 때문에 돌려받는 돈이 훨씬 늘어난다. 예전 변액저축보험은 6개월 만에 해지하면 환급률이 20.4%에 그쳤지만 이를 92.2%로 크게 높였다. 당장 설계사 손에 들어오는 수당은 줄어들지만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장기적으로 고객이 늘어날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최현만(53) 미래에셋생명 수석부회장은 1월 24일 이 상품을 내놨다. 증권사에서 보험사 최고경영자(CEO)로 자리를 옮긴 지 8개월 만의 사실상 첫 작품이었다. 그는 지난해 6월 주주총회를 거쳐 미래에셋생명 대표를 맡았다. 최수현 금감원장은 새로운 시도가 성공할 지 미지수라고 했지만 ‘진심의 차이’는 보험업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1월 출시 이후 6월까지 7463건의 계약이 이뤄졌다. 금액으론 1761억원어치다.
‘고객이 최우선’이란 출발점에서 만든 이 상품이 입소문을 타면서 회사 전체 실적과 이미지도 나아졌다. 보험계약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따지는 지표인 ‘13회차 유지율’이 2011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 때 78.6%에서 2012회계연도에는 81.3%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자산도 16조5000억원에서 19조4000억원으로 늘었다. 보험사의 재무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RBC) 비율도 262.3%에서 279%로 높아졌다. 금감원 민원발생평가에서도 평가등급이 한 단계 올랐다. 투자의 귀재가 이끄는 회사답게 생명보험협회 공시 기준 자산운용수익률도 2012회계연도에 6%로 업계 1위였다.
‘진심의 차이’는 1997년 외환위기 직후 뮤추얼펀드로 주식 투자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최 수석부회장이 보험시장에 던진 도전장이다. 그는 주식시장에선 투자의 귀재로 불리지만 보험 분야에선 초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파격적인 상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
취임 1년을 맞은 그는 6월 17일 주주총회에서 “보험은 초보다 보니 무조건 현장을 돌면서 공부를 했다. 그러다 보니 잘못된 관행이 눈에 들어오더라”고 말했다. 그가 고객의 요구와 시장의 변화를 읽고 혁신을 이룬 건 이번뿐만 아니다. 그는 미래에셋증권사장에 취임한 2000년 1월 개인 고객에게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제공하고 수수료를 경쟁사보다 80% 깎아줘 증권가에 충격을 줬다.
당시 증권업계에선 ‘빅뱅’으로 불렸다. 그는 “당시 보통 0.5% 정도이던 거래 수수료를 0.029%로 낮추자 밤에 협박 전화가 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 때도 시간이 지나자 고객이 미래에셋증권으로 몰렸다.
협박 전화까지 받았지만 당시에는 누구를 설득할 필요는 없었다. 뚝심 있게 밀어 붙이면 됐다. 이번 진심의 차이 때는 다르다.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설계사가 있다. 미래에셋생명이야 혁신적인 회사로 평가 받을 지 몰라도 설계사들은 당장 받는 수당이 줄어들기 때문에 반발이 클 수 있다.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전에 설계사부터 사로잡아야 했다. 내부 구성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면 새로운 실험은 성공하기 어렵다.
최 수석부회장은 진심의 차이 출시를 앞두고 먼저 본점 직원에게 강연을 했다. 다음에는 지점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계사를 상대로 설득에 나섰다. 미래에셋생명에서는 그의 이런 강연을 ‘부흥회’라고 불렀다. 그만큼 강의장의 열기와 진지함이 대단했다. 그는 1400명의 직원을 일일이 만나 설득했다. 5000여명 설계사를 설득하기 위해 전국 150개 점포 가운데 120개를 방문했다.
그의 다음 혁신 도구는 스마트비즈센터다. 지난해 이 센터를 세워 온라인·모바일에 익숙한 20~40대 대상의 마케팅을 준비했다. 보험도 직접 찾아서 가입하는 사람이 늘어서다. 특히 온라인을 기반으로 본인이 필요한 상품을 찾는 20~40대가 편리하게 가입할 수 있어야 한다.
1년여의 준비를 마치고 인터넷으로 가입할 수 있는 ‘미래에셋생명 다이렉트보험’을 6월 24일 내놨다. 다이렉트보험은 일반 보험상품뿐만 아니라 소득 공제를 받을 수 있는 연금저축보험, 임산부와 군인 대상의 건강출산보험·건강제대보험 등 다양한 상품으로 구성했다.
최 수석부회장은 “저금리·저성장에 불확실성도 커서 누구나 따뜻하고 안정된 삶을 바라기 때문에 혁신적인 상품을 내놓는다면 보험업이 미래 성장산업으로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연내 상장 불투명그는 이렇게 혁신을 거듭하며 비교적 순탄한 1년을 보냈다. 그러나 올해 중요한 목표인 미래에셋생명 상장은 다소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애초 ‘진심의 차이’에서 올린 실적까지 반영해 준비하면 늦어도 11월에는 상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국내 증시가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가면서 문제가 생겼다.
최 수석부회장은 “(상장) 시기가 중요하진 않다”며 “주주와 투자자 모두 만족할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상장이 다소 늦어질 수 있다는 뉘앙스다. 사실 요즘 경제·증시 분위기는 과거 동양생명 상장 때보다 좋지 않다. 삼성생명도 상장 후 공모가를 웃돈 날이 손에 꼽을 정도다. 더구나 경기 침체로 국내 보험시장 상황도 여의치 않다.
그는 “국내 보험시장은 저성장·저금리·고령화로 성장세가 둔화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다. 위험을 잘 관리하면서 저금리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고령화에 따른 보장성·연금보험 수요를 끌어오면 ‘후발주자의 반란’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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