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누나(프로골퍼 박지은)보다 제가 더 유명할지도”
“이젠 누나(프로골퍼 박지은)보다 제가 더 유명할지도”
외식 전문업체 SG다인힐의 CEO인 박영식(34) 부사장이 새로 연 가게에는 대부분 긴 줄이 늘어선다. 지난해 9월 서울 여의도 IFC몰에 문을 연 이탈리안 핏제리아(피자식당) 꼬또에서는 재료가 떨어져 기다리던 손님을 돌려보내는 일이 곧잘 벌어진다. 한우 등심 전문점인 투뿔등심 가로수길점에는 주방장이 한 점씩 구워주는 특별 메뉴가 있다. 이걸 먹으려면 적어도 한 달 전에는 예약해야 한다. 광고 한 번 하지 않는데도 인기다.
SG다인힐은 회사 설립 6년 만에 7개 브랜드, 20개 직영점으로 4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린다. 스페인식 타파스 가게인 봉고(Vongo), 햄버거 전문점 패티패티, 회사의 모태인 이탈리안 레스토랑 블루밍 가든 등 7개 브랜드 모두 컨셉트가 다르다. 박 부사장이 이를 모두 구상했다. 가게 메뉴 하나, 인테리어 하나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게 없다.
박 부사장은 음식 장사를 숙명으로 여긴다. 그의 아버지는 서울 강남의 유명 한식점 삼원가든을 세운 박수남 회장이다. 할리우드 스타를 비롯해 외국 유명인이 방한하면 꼭 들르는 음식점으로 유명하다. 그의 누나는 유명 프로골퍼였던 박지은이다. 누나와 달리 어려서부터 내 가게를 열겠다는 꿈을 키운 박 부사장은 2004년 뉴욕대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귀국 후 스물다섯 살에 외식사업에 뛰어들었다.
“삼원가든 옆에 갯벌장어 가게를 처음 냈어요. 장어를 좋아했는데 가게 준비하면서 많이 먹어서 지금은 냄새도 못 맡아요(웃음).” 나름 단골 손님이 늘었지만 만족할 정도는 아니었다. 일식집으로 바꿔 봤지만 신통치 않았다. 2008년 업종을 이탈리안 레스토랑 겸 카페로 바꿨다. 가게를 둘러싼 담을 허물고 개방된 공간으로 만들었다. 빌딩만 늘어선 강남구 신사동 한 복판에 갑자기 아담한 주택 같은 건물이 나타나자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호기심에 방문한 손님들은 음식 맛에 놀랐다.
일식집에서도 한 두 숟갈 나오는 성게알을 푸짐하게 넣고, 꽃게 한 마리를 통째로 넣는 식으로 파스타를 만들어 내놓았기 때문이다. 일식당을 운영하며 좋은 재료를 비교적 싸게 공수하는 노하우를 터득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첫 번째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블루밍가든이 입 소문을 타면서 말 그대로 대박을 쳤다. 일하던 직원들이 힘들어서 영업 중간에 도망 갈 정도로 손님이 밀어 닥쳤다.
핏제리아·블루밍가든·투뿔등심 … 성공 행진늘 이렇게 잘되기만 한 건 아니다. 블루밍가든의 성공에서 자신감을 얻은 박 부사장은 다음 해 이탈리안 타파스(전채요리) 전문점을 열었다. 그런데 생각만큼 손님이 들지 않았다. 지금처럼 타파스 요리를 좋아하는 고객층이 두텁지 않았다. 대신 블루밍가든은 꾸준히 성장했다. 신사동 가로수길, 강남역을 비롯해 5호점까지 늘려나갔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고깃집 아들답게 스테이크와 한우등심전문점을 열어 인기를 끌었다. 미국식 스테이크하우스인 붓처스컷은 그가 10년 전부터 해보고 싶은 가게였다. 당시에는 스테이크하우스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 시도하지 못하고 2011년 3월에야 시작했다. 박 부사장의 말에 따르면 ‘무서울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대기하는 고객 이름을 적는 커다란 예약지가 꽉 차는 건 물론이고 웨이팅(기다리는 고객)을 못 받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죠. 주말 예약은 2주 전에 마감이 될 정도였고요.”드라이 에이징은 온도와 습도를 맞춰 육류를 숙성·건조시키는 방식이다. 3~4년 전부터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가 외식업계 매니어 사이에서 인기를 끌자 박 대표는 다른 가게에서 400g에 10만원을 받는 스테이크를 200g에 4만원대의 가격으로 내놨다. 삼원가든이 오래 거래한 공급처에서 좋은 고기를 싸게 구할 수 있었다. 드라이 에이징한 붓처스컷 스테이크가 어떻게 만들어 진 것인지 메뉴판에 상세히 적었다.
그랬더니 고객들이 그 문구 그대로 블로그에 올리며 좋은 반응을 보였다. “붓처스컷(butcher’s cut)이라는 상호도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될 수 있는 이름을 찾다가 떠올린 겁니다. 발음이 부처인지 붓처인지 초반에 사람들이 많이 헷갈려 했는데 오히려 그 점때문에 더 잘 기억해 주시더라고요.” 붓처스컷은 이태원에서 시작해 서울 청담동·광화문·강남·삼성동, 경기도 판교까지 가게를 늘렸다.
박 부사장의 사업 모델은 국내 외식업에서 보기 드문 형태다. 한 개 브랜드를 만들어서 전국 단위로 퍼뜨리는 프랜차이즈가 아니다. 단 하나의 가게에서 수십 만원대의 코스요리를 내놓는 파인다이닝(fine-dining:고급식당)도 아니다. 2만~3만원대의 런치코스가 나올 정도로 대중성이 있으면서도 대여섯 개의 직영 가게만 고급스럽게 운영한다. 그는 “사서 고생한다”고 표현한다. “획일화한 모델로 운영하는 프랜차이즈와 달리 7개 브랜드를 각각 몇 개씩 직영 매장으로 운영하면 공을 들여도 효율성은 떨어집니다. 그래도 이게 제일 제가 잘하는 분야인걸요.”
경기 침체로 소비자가 지갑을 닫은 요즘에도 인기를 모으는 비결이 궁금했다. 박 부사장은 “마케팅 포인트를 잡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음식 잘하는 건 기본이고 비슷한 다른 식당과 차별화 할 수 있는 디테일을 꼭 만듭니다. 투뿔등심은 와인 반입때 콜키지(반입 요금)가 무료인데다, 최고급 리델 와인잔을 제공합니다. 고깃집에서 ‘소폭(소주+맥주)’을 자주 마시는 걸 감안해 소주는 영하 3도, 맥주는 0도를 유지하는 소맥 전용 냉장고도 만들었죠. 입소문을 탈 수 있는 요소를 만드는 거죠.”
그렇다고 무조건 퍼주다가는 망하기 십상이다. 박 부사장은 수익이 나도록 다른 요소를 맞춰나가는 방식을 택했다. 투뿔등심의 경우 1인분에 2만9000원(부가세 미포함)으로 다른 가게에 비해 싼 가격을 책정한 대신 직접 구워먹는 방식으로 인건비를 줄였다.
“임대료가 조금 더 비싸도 목이 좋아 손님이 많이 찾는 곳에 가게를 내서 매출로 수익을 맞출지, 반대로 싼 곳에 가게를 내고 적은 고객에서 수익 내는 방법을 택할지 잘 택해야 합니다.”
외식업 창업 위해 직장 그만둔다면 말리겠다삼원가든과 SG다인힐은 올 가을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삼원가든은 인도네시아에 해외 1호점을 낸다. SG다인힐은 중국의 유명딤섬 전문점인 ‘난시앙’을 가을에 들여온다. 미국식 바비큐를 내세운 맥주집을 새로 내고 가장 잘나가는 브랜드인 투뿔등심 3개 지점을 더 열 계획도 있다. SG다인힐은 2015년까지 매출 1000억 달성을 목표로 세웠다.
샐러리맨 사이에서 “치킨집이나 차릴까”하는 말이 툭 하면 나온다. 그만큼 외식업이 만만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다. 박 부사장은 그러나 “직장 관두고 식당 차린다면 말리고 싶다”며 업계의 어려운 현실을 지적했다. “인구 80명당 식당이 1개에요. 서울이 뉴욕보다 식당 밀도가 7배는 높아요. 장사 노하우와 기술·전문성 없이는 실패 확률이 높습니다. 돈 벌기도 힘든데 왜 꼭 외식업을 하냐고요? 가게를 열고 손님을 모으는 것 하나하나가 너무 재미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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