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Money - 금괴·보석·예술품 비밀창고 역할도

Money - 금괴·보석·예술품 비밀창고 역할도

금고 속 물건은 은행도 몰라 … 화재나 수색영장 있을 때나 외부인 열람
한 시중은행의 대여금고 방.



최근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가 보유한 시중은행 대여금고 7개를 찾아냈다. 금고 안에는 예금통장 50여개와 금·다이아몬드 등 귀금속 40여 점이 들어 있었다.

경기도 성남시도 7월에 고액 체납자 5명의 은행 대여금고 5개를 찾아내 압류·봉쇄 조치했다. 이들이 지난 2년 간 체납한 세금은 최대 8000만원으로 총 26건에 이른다. 대여금고는 고객의 화폐·유가증권·귀금속 등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은행이나 증권사 지점에서 빌려주는 고객 전용 소형 금고다.



휴가철에는 무료로 이용할 수도대여금고는 과거부터 고액 자산가의 ‘보물창고’였다. 고객이 대여금고에 수십억원의 현금을 넣는다고 해도 금융정보분석원(FIU)에 통보되지 않는다. 계좌를 통해 2000만원 이상 거래되면 모두 FIU CTR(고액현금거래)에 보고되지만 대여금고의 재산은 본인외에 어느 누구도 알기 어렵다.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처럼 거액자산가들이 재산 은닉 목적으로 대여금고를 즐겨 활용한다.

대여금고의 표준 규격은 평균 가로 12~16cm, 세로 6~8cm, 높이 5~8cm다. 책상 서랍과 비슷한 크기와 모양이다. 5만원권으로 채울 경우 3억원 정도 들어간다.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 2300여 지점에 40여 만개의 대여금고가 있다.

대여금고 실에는 은행 직원과 고객이 함께 들어가야 한다. 은행 직원이라도 혼자 들어갈 수 없다. 고객이 자신의 번호가 적힌 금고를 찾아 은행원과 함께 키를 꽂고 돌린다. 문이 열릴 즈음 은행원은 조용히 사라진다. 혼자라는 것을 확인한 고객은 따로 마련된 방에서 자신의 전용 보관함을 열어본다. 윤태웅 신한은행 여의도PB센터장은 “대여금고는 본인 외에 열람이 불가능해 고객을 관리하는 전담프라이빗뱅커(PB)도 내용물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대여금고는 사이즈에 따라 소·중·대(1~6)로 나뉘어진다. 가장 사이즈가 큰 대여금고는 평균 가로 60~90cm, 세로 80~100cm, 높이 10cm 이내다. 열쇠는 필수다.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전자식이나 지문인식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대여금고는 대개 지점의 안쪽에 있다. 주변에는 이동 물체를 감시하는 센서와 CCTV, 연기 및 화재 경보장치 등이 설치돼 있다.

최근에는 금고가 예술작품 보관장소로 사용되기도 한다. A은행 PB는 “대부분 문서나 금괴 등을 보관하지만 최근에는 비밀스럽게 입수한 작품도 보관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여금고는 거액 자산가만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이용 자격에는 제한이 없다. 해당 은행 고객이라면 가능하다. 계약기간은 1년이고 1년마다 연장할 수 있다. 비용도 저렴하다. 크기에 따라 5만~50만원의 보증금과 1년에 1만~5만원 정도의 이용료를 내면 쓸 수 있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이용료 없이 보증금만 받고 운영한다. 절도사건이 늘어나는 명절이나 휴가철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예금 잔액 1억원 이상 등 거래 실적이 많은 고객으로 이용 자격을 제한하는 경우도 있다. 이유철 신한은행 차장은 “대여금고 수량이 제한돼 있어 거래 금액이 많은 고객이 주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대여금고는 고객 본인이 있어야 열 수 있지만 예외도 있다. 대여금고 이용 고객이 사망했을 경우에는 모든 상속인의 동의 하에 열람과 처분이 가능하다. 또 화재·천재지변 등 비상사태나 보관물품에 대한 법원 제출명령, 법관이 발부한 수색영장이 있을 때에는 임의개문(본인 없이 금고를 여는 것)이 가능하다. 이 경우 은행은 금고를 빌린 본인에게 금고 문을 연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거나, 개문 후 사후에 알려주면 된다. 이번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 대여금고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임의개문 사례는 전에도 있었다. 지난해 서울시가 1000만원 이상 고액 체납자의 세금 납부를 독촉하기 위해 시중은행 319곳에서 이들의 대여금고 503개를 압류해 금고를 개봉했다. 개방된 대여금고 속에는 집 문서부터 금괴·황금돼지 등의 금 관련 제품과 보석류, 명품 시계, 각종 기념주화, 고서화, 미술품, 다량의 외국돈이 발견됐다. 이용규 우리은행 차장은 “대여금고는 법적으로는 ‘임대차’에 해당되기 때문에 범죄와 관련된 물건이 보관돼 있었다하더라도 은행은 법적으로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말했다.



대여금고도 못 믿어 … 개인금고 판매 증가일반인들이 귀금속이나 유가증권을 보관하기 위한 목적으로 금고를 사용하는 사례도 늘었다. 이에 따라 가정용 금고 판매량도 증가했다. 올 초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이 4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낮춰지고 세무조사가 확대되면서 자금 노출을 꺼리는 자산가들이 늘었다.

신세계 강남점에서는 가로 34㎝, 세로 32㎝, 높이 64㎝ 크기인 금고가 가장 많이 팔린다. 가격은 253만원 정도다. 5만원권을 가득 채우면 12억원이 들어간다. 롯데백화점 서울 소공동 본점에 입점한 금고매장 ‘루셀’의 올 1분기 매출은 지난해 4분기보다 두 배 가량으로 증가했다.

홈쇼핑 채널에서도 개인금고가 인기다. 7월 중순 새벽 1시 홈쇼핑 채널에서 판매된 가정용 개인금고는 방송에서 250대 ‘완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날 판매된 상품은 높이와 폭이 40㎝ 안팎 소형으로 정가가 47만원이었다. 늦은 시간에 방송된데다 일반 금고보다 가격도 비쌌지만 화려한 색깔과 장식이 고객의 눈길을 끌었다. 금고 제작사인 선일금고 관계자는 “홈쇼핑 방송 한 번에 최대 700대까지 팔아봤다”며 올해 금고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작년 대비 매출이 80% 가까이 늘었다”고 말했다.

젊은층에서도 금고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다. 신세계 서울 강남점 루셀 매장 관계자는 “매장 방문객 중 20~30대가 부쩍 늘었다”며 “꼭 현금이 아니더라도 예물반지나 여권 등 귀중품을 보관하기 위해 금고를 사러 왔다는 고객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28일 서울 지하철 9호선 일부구간 '경고 파업' 철회

2‘하늘길도 꽁꽁’ 대설에 항공기 150편 결항

3‘이재명 아파트’도 재건축된다…1기 선도지구 발표

4코스피로 이사준비…에코프로비엠, 이전상장 예비심사 신청

5‘3000억원대 횡령’ 경남은행 중징계….“기존 고객 피해 없어”

6수능 2개 틀려도 서울대 의대 어려워…만점자 10명 안팎 예상

7중부내륙철도 충주-문경 구간 개통..."문경서 수도권까지 90분 걸려"

8경북 서남권에 초대형 복합레저형 관광단지 들어서

9LIG넥스원, 경북 구미에 최첨단 소나 시험시설 준공

실시간 뉴스

128일 서울 지하철 9호선 일부구간 '경고 파업' 철회

2‘하늘길도 꽁꽁’ 대설에 항공기 150편 결항

3‘이재명 아파트’도 재건축된다…1기 선도지구 발표

4코스피로 이사준비…에코프로비엠, 이전상장 예비심사 신청

5‘3000억원대 횡령’ 경남은행 중징계….“기존 고객 피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