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Y - 갈림길에 선 아베노믹스
ECONOMY - 갈림길에 선 아베노믹스
일본은 1980년대 후반 주식과 부동산의 대규모 거품 붕괴 이후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경제실패를 수습하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으면서 경기회복이 지지부진했다. 업무 및 기업문화는 여성과 이민자에 적대적이고, 경쟁을 두려워하며, 창조적 파괴와 단절됐다. 이 같은 화석화된 문화를 개혁하지 못하면서 문제가 오래 지속됐다.
근년 들어 일본은 반유토피아적인 조짐을 드러냈다. 남성들이 섹스에 무관심하고, 출산율이 급감하며, 자살이 증가하고, 인구가 감소했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의 잿더미 속에서 글로벌 강국으로 부상하는 기적 같은 스토리가 막을 내리는 듯했다. 2010년 중국이 일본을 추월해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일본이 소생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12년 12월 아베 신조가 일본의 경기침체를 종식시키겠다는 공약을 앞세워 총리직에 올랐다. 그가 선택한 무기는 공격적인 통화정책, 재정적 부양책, 구조개혁 세 가지였다. 첫째 무기를 휘두르자 금융시장과 기초 경제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투자자들이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겪은 온갖 문제에도 불구하고 세계에는 유동성이 풍부하다.” 사모펀드 기업 라이트이어 캐피털 창업자이자 일본 신세이 은행의 이사를 지낸 도널드 매런이 말했다. 논리적인 다음 투자대안은 일본이다. 그리고 시장은 이 같은 변화를 열렬히 기대한다.
최초의 그리고 가장 손쉬운 방법은 통화적 부양책이었다. 중앙은행들은 단추 한 번만 누르면 엄청난 돈을 찍어낼 수 있다. 지난 4월 일본은행은 채권 매입 규모를 한 달에 790억 달러 선으로 확대했다. 일본의 통화 공급량을 2015년까지 두 배로 늘리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채권매입은 기본적으로 벤 버냉키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양적완화(quantitative-easing, 통화공급 확대) 전략과 일치한다. 거기에 일본은행은 한 발 더 나아가 시장에 뛰어들어 부동산 투자신탁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 같은 금융자산을 사들인다. 목표가 뭘까? 시중에 자금이 풍부해지면 엔화 값이 떨어진다. 이는 수출에 호재이며 물가도 적당히 오른다.
돈을 새로 찍어내 자산가격을 끌어올리는 것도 인플레 효과가 있다. 그것이 핵심이다. 일본은 오랫동안 디플레이션(물가하락)에 허덕였다. 그럴 때는 아무도 오늘 돈을 쓰려 하지않는다. 내일이면 가격이 내려갈 텐데 왜 지금 컴퓨터를 사겠는가? 인플레이션(그리고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이 확산되면 사람들은 내일까지 기다리지 않고 오늘 구매를 결정한다. 결과적으로 경제가 성장한다.
그리고 그 방법이 실제로 주효했다. 엔화 값은 지난 12개월 사이 달러 대비 22% 하락했다. 그에 따라 수출이 촉진됐다. 몇 년 동안 줄어들던 수출이 올해 상반기 전년 동기 대비 4.2% 증가했다. 6월에는 수출이 2012년 6월 대비 무려 7.4%나 늘어났다. 그것은 수출주도형 경제에는 영양제 주사나 다름 없다. 2013년 1분기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1% 증가했다. 연율로 환산하면 4.1%에 달한다. 더욱이 사람들이 이젠 물가 상승을 기대한다.
예상대로 일본 주식시장도 뜨겁게 달아오른다. “통화 부양책이 상당히 효과를 봤다”고 IHS의 수석 경제전문가 나리만 베라베시가 말했다. “그 효과가 환율 그리고 그것을 통해 수출에도 나타난다. 그리고 주식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통화팽창은 아드레날린 주사 또는 카페인과 같은 효과를 가져왔다. 일본의 경제 자신감이 커지는 듯하다. 7월의 참의원 선거는 아베의 정치적 입지를 탄탄하게 굳혀줬으며 아베노믹스에 대한 부분적인 승인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다른 두 무기는 아직 사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휘두를 때 많은 마찰이 예상된다. 재정적 부양책의 예를 보자. 인프라 투자 등 현재 거론되는 조치들은 GDP의 2% 포인트 선에 맞먹는다고 베라베시는 지적한다. 그것은 “상당하지만 게임 판도를 바꾸는 수준은 아니다.” 더욱이 정부 지출 증가의 효과가 2014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예정된 소비세 인상으로 상쇄될 수 있다고 그는 지적한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제3의 무기인 구조개혁은 빛을 보지도 못할지 모른다. 아베노믹스는 단기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장기 실적을 개선하려면 일본은 지난 20년 동안 기피해 왔던 일을 해야한다. 기업·금융·공업·농업 부문의 개혁이다. 일본의 정치 시스템은 아직 그런 개혁을 추진하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더 중요한 요소가 있다. 일본에는 이른바 혁신적 소유주(disruptive ownership)가 없다는 점이다. 행동주의를 실천하는 주주(shareholder activists), 잭 웰치 같은 CEO, 헤지펀드 매니저, 사모펀드 기업, 신생 벤처기업이 그런 혁신적 소유주다. 혁신적 소유주들이 너무 많아 고민인 미국 기업에선 구조조정과 변신이 끊임없이 이뤄진다. 고통이 따르지만 경제가 반응을 보이도록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일본 혁신적 소유주들의 실적은 참담한 수준이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질리언 테트는 2003년의 저서 ‘일본 구하기(Saving the Sun)’에서 일본 은행을 구조조정하기 위한 미국 금융가들의 노력을 기록했다. 일본 광학기기 업체 올림푸스의 경영자로 영입된 영국 기업인 마이클 우드포드는 2012년 12월 그 경영난에 처한 일본 기업을 이끌 동안의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내게 털어놓았다.
일본에서 가장 최근 혁신을 시도한 외국인은 댄 로브다. 하락세에 있던 야후를 ‘주주 행동주의’를 통해 회생시킨 헤지펀드 매니저다. 로브는 소니의 지분 6%를 사들여 대폭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그 복합기업에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분리해 매몰돼 있다고 여겨지는 금전적 가치가 실현되기를 바란다. 소니는 그 제안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구체적인 실행 일정표는 내놓지 않았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