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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repreneur - 남들이 물건 팔 때 유통 혁신을 생각했다

entrepreneur - 남들이 물건 팔 때 유통 혁신을 생각했다

조선혜 지오영 회장은 대표적인 자수성가 CEO다. 다국적 기업에 맞서 의약품 유통업계의 혁신을 주도했으며 지난해 1조2000억원 매출을 올렸다.
1955년 인천 출생, 숙명여대 약학과 졸업, 1991년 성창약품 대표, 2002년~ 지오영·지오영네트웍스 대표이사 회장



조선혜 지오영 회장과 인터뷰는 서울 연희동 신사옥 구내 식당에서 시작했다. 지난해 매출 1조2000억원 기업의 회장이 약속 장소를 구내식당으로 정한 데엔 남다른 자랑거리가 있겠다 싶었다. 점심상을 대하니 기대 이상이었다. “지오영 직원들은 밥 먹으러 회사에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헛된 말이 아니었다.

조 회장은 “좋은 인재가 회사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생각으로 식당·사무실 등 근무 환경 개선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며 “하루 세 끼 모두 어머니가 내오는 밥상처럼 차리고 싶다”고 말했다. 식당은 사옥 터에 있던 옛 성산회관 주방직원들을 고용해 직영하고 있다.

조선혜 회장은 대표적인 자수성가 전문경영인이다. 지난해 기업경영성과 분석 사이트 CEO스코어가 매출액 기준 1000대 기업을 분석한결과 여성 CEO가 경영하는 기업은 단 9곳에 불과했다. 그중 자수성가한 CEO는 조 회장, 김성주 성주디엔디 회장, 박성경 이랜드월드 부회장 정도다. 조 회장의 지오영(393위)과 지오영네트웍스(453위) 두 회사 모두 매출 500위 안에 올랐다.

지난해 국내 의약품 유통시장 규모는 12조원을 넘어섰다. 자산 100억원 이상으로 외부감사를 받는 121개 도매업체가 12조10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선두인 지오영의 매출은 1조2280억원으로, 2위인 백제약품의 두 배가 넘는다. 지오영은 의약품의 풍부한 구색과 신속 정확한 배송, 친절한 영업력 등이 강점으로 꼽힌다. 현재 공동회장 체제다. 익수제약 출신의 이희구 회장은 대외업무에 주력하고, 성창약품 출신의 조 회장이 실질적인 경영을 맡고 있다.



규모경제·전산화 등 약품유통 혁신숙명여대 약학대를 졸업한 조 회장은 지방공사 인천병원의 약제과장으로 일하다 의약품 유통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의약품 유통업계의 낙후된 시스템을 보면서 문제의식을 느꼈다”며 “유통구조를 고쳐 업계는 물론이고 의료 소비자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1991년 성창약품을 인수해 사업을 시작했다. 조 회장은 돈을 버는 것보다는 자신의 비전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생각에 설 다고 한다.

기업 성장의 원동력은 인수합병을 통한 지역 영업망확보와 물류센터 구축이었다. 그가 의약품 유통업에 뛰어들 당시 국내 시장은 다국적 기업인 쥴릭이 주도했다. 쥴릭은 다국적 제약사의 의약품을 독점했고, 국내 업체는 쥴릭에서 의약품을 구매해 이를 다시 유통했다.

사실상 쥴릭에 종속된 상태로, 국내 업체 대부분이 저마진 구조와 열악한 거래조건에 노출되어 있었다. 2002년 사명을 지오영으로 바꾼 조 회장은 ‘의약품 유통·물류의 선진화·대형화·투명화’를 선언하고 본격적으로 인수합병(M&A)에 나섰다. 전국적인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조 회장은 “작은 규모로는 외국계 기업과 경쟁이 힘들다. 또 국내 의약품 유통의 선진화를 위해서도 규모의 경제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수도권은 지오영이 커버하고 있었기에, 각 지역의 중소 유통업체를 인수하는 방법으로 영역을 넓혔다. 강원지오영·대전지오영·호남지오영·청십자약품 등을 세워 지역 거점으로 육성시켰다. 골드먼삭스로부터 유치한 400억원은 인수합병의 실탄이 됐다.

전국 네트워크를 구축한 조 회장은 2010년 ‘탈(脫) 쥴릭’을 선언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도매업계의 주권회복’ ‘생산자와 직거래가 되는 분수령’이라고 평가했다. 현재 지오영은 전국 약국 2만1000개 중 70%에 해당하는 1만5000여 개의 약국과 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한양대병원·인하대병원·차병원 등 약 50여개의 병원에 의약품을 제공한다.

지역별 물류센터 또한 지오영의 급성장을 가능케 했다. 지오영은 인천 등 전국 4곳에 물류센터를 두고 2만여종의 의약품을 공급하고 있다. 조 회장은 “물류 투자는 유통기업의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국적 제약사는 신뢰를 중요시한다. 그들의 의약품 물류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실체를 마련해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2007년 완공한 인천물류센터는 업계의 롤 모델이 됐다. 연면적 1만2000㎡(3500평) 규모의 자동화 물류센터다. 2011년에는 연면적 1만㎡(3000평) 규모의 TPL(3자 물류) 전용센터를 증축했다. 3자 물류는 타 기업의 물류를 취급하는 것으로, 의약품 유통을 넘어 전문 물류 사업으로 영역을 다각화했다. 지오영은 현재 17개 국내·외제약회사에 물류서비스를 제공한다.

“의약품 유통업은 마진이 상당히 낮다. 350억원을 들여 자동화물류센터를 짓겠다고 하자 많은 사람이 반대했다. 투자금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본 때문이다. 하지만 목표가 정해지면 방향은 명확하다. 규모화를 앞두고 돈 계산을 하면 걸음이 더딜 수 밖에 없다. 다국적 의약품 전문유통회사를 수차례 방문하고 운영체계를 공부한 결과 첨단 물류센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인천물류센터 덕분에 쥴릭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최근 제약업계, 의약품 유통업계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건강보험재정절감을 위한 역대 최대 규모의 의약품 일괄 약가인하 조치 탓이다. 업계는 매출액 감소와 수익성 하락 등 심각한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지오영은 오히려 매출이 늘고 수익성이 대폭 개선됐다. 혁신에 투자하고 위기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조 회장을 두고 “예지력과 실천력이 있다”고 평가한다.

지오영은 짧은 역사 속에서도 업계 내의 효시라 불리는 것들을 이뤄냈다. 조 회장은 영업과 물류를 분류했다. 영업사원이 사무실에서 전화로 주문받고 창고에서 약품을 꺼내 배달가는 후진적 시스템을 개선했다. 지오영 사옥에는 의약품이 보이지 않는다. 영업사원은 영업과 서비스를 담당하고 배송은 물류센터에서 진행한다. 유통업 핵심인 영업사원의 기를 세워준 것이다. 의약품 재고를 공개한 것도 지오영의 경쟁력이다.

지오영은 업계 최초로 웹사이트를 통해 의약품 재고를 밝혔다. 약사들은 지오영 웹사이트에 들어와 물류센터의 재고를 파악하고 스스로 주문한다. 조 회장은 “유통기업이 재고를 밝힌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며 “약품 사재기를 방지하고, 약국의 재고를 해결하는 등 의약품 유통 선진화에 큰 역할을 했다”고 자평했다.



기업의 유리천장은 깨진다올 1월 입주한 신사옥도 조 회장의 혁신 의지를 보여준다. 영업사원이 많은 기업은 사옥 투자에 인색하다는 인식을 깬 것이다. 신사옥은 지상 7층 규모로, 설계단계부터 디자인과 편의성에 신경 썼다. 조 회장은 “임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성장한 만큼 최적의 근무환경을 만들고자 했다”며 “근무환경이 좋아야 자긍심도 생기고 일의 능률도 오른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향후 자체브랜드(PB) 의약품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 그는 “사업 초기부터 많은 관심을 가지고 몇가지 PB 제품을 내놓은 바 있다”며 “전국적 의약품 유통망 구축이 마무리되면 약국과의 상생을 위해 PB 제품 출시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2010년 기준 경제총조사 결과로 본 여성대표자 사업체 현황 및 특성’에 따르면 국내여성 경제인은 125만명. 전체 사업체의 37.2%를 차지한다. 2004년에 비해 5배가량으로 늘었다. 하지만 여성 기업 대부분 매출 규모가 작고 종업원 수가 5인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숫자는 늘고 있지만 영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사업의 지속성도 떨어진다. 여성 기업 중 설립된 지 10년이 넘은 경우는 37.4%에 그쳤다. 6~10년인 경우가 34.2%로 그 다음이다. 11~15년은 15.3%, 2~3년은 13.6%다.

조 회장 역시 사업하는 내내 여성 CEO로서의 고충을 겪었다. 그는 “사업 초기 전화를 받으면 ‘사장 바꾸라’는 말을 들었다. 나 역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 받았다”며 “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의 능력이 높이 인정받고 있으며, 기업의 유리천장도 곧 깨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여성은 다양하고 섬세한 능력이 있으나 남성에 비해 조직 적응력과 책임감이 부족하다. 이 부분을 스스로 깨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조 회장은 “오너가 슬럼프에 빠지면 임직원들도 의욕을 잃는다. 그래서 오너는 늘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며 “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해야 가는 길도 명확하고 일도 즐겁다”고 말했다. 회사명은 ‘지오그래픽(Geographic)’과 ‘榮(영화로울 영)’의 조합이다. 이 땅의 삶을 영화롭게 만들겠다는 것이 조 회장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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